2004-01-06
제작비 1억2천만달러를 들여 일본 및 뉴질랜드, 캘리포니아의 워너브라더스 스튜디오에 실제 크기의 세트를 건축해 제작했다는 “라스트사무라이”. “글로리(1989)”, “가을의전설(1994)”을 감독한 에드워드 즈윅(Edward Zwick) 작품으로 예고편을 접한 순간부터 칼로 그은 듯 단아하게 컷트된 영상미에 반해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던 영화다.
수려하다는 말로 밖에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는 이 영화의 영상미는 이미 “레전드오브더폴”, “브레이브허트(1995)”로 아카데미 시네마토그래피상을 수상한 바 있는 DP(Director of Photography) 존 톨(John Toll)의 카메라워크에 힘 입은 바 크다. 극심한 틸팅이나 패닝, 롤링이 없이 한 컷 한 컷을 완벽한 구도로 잡아 마치 멋진 스틸 사진을 보는 것 같이 짜여진 이 영화의 영상에는 정적 긴장감마저 감돌며 영상미의 극치를 경험하게 만드는 마력이 있다.
천재적이라 생각되는 것은 영상에 존재하는 이 정적 긴장감이 “라스트사무라이”의 백미라 할 전투 시퀀스를 통해서는 그야말로 장렬한 “시각적 리얼리티(Visual Reality)”로 고조되면서 한편의 에픽 드라마로서 “라스트사무라이”를 느끼도록 만드는, 그래서 영상으로써 영화를 얘기하는 영상 테크닉의 묘를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쏘고 맞으며 찌르고 찔리는 이 처절해 아름다운 전투 장면의 “시각적 리얼리티” 한 가운데 CG 효과가 교묘하게 숨어 있어 흥미롭다. ‘절대 이펙츠라는 느낌이 들어서는 안된다’는 감독의 주문 하에 이루어졌다는, 그래서 비밀스러운 “라스트사무라이”의 비주얼이펙츠.
어느 부분에 어떻게 이용되었는지 살짝 알아본다.
“라스트사무라이”는 일본, 뉴질랜드, 미국 등지를 돌며 적절한 현장을 찾아 철저한 고증을 거쳐 직접 제작한 실제 세트를 배경으로 촬영한 Not CG 영화다. 그런 만큼 비주얼이펙츠에 있어서도 최근 개봉된 다른 종류의 에픽 영화 피터잭슨(Peter Jackson)의 “반지의 제왕”이나 피터 위어(Peter Weir)의 “마스터 앤드 커맨더: 위대한 정복자”와는 그 접근 방법이 사뭇 다르다.
일단 이 영화에는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상상의 도시 미나스 티리스(Minas Tirith)나 “마스터 앤드 커맨더”에 나오는 함선 아케론(Acheron)과 같은 미니어처의 제작과 촬영에 관련된 복잡한 디지털 작업 과정이 없다. 또 에픽드라마적 느낌을 고조시키는데 필수불가결한 버추얼 카메라의 스펙터클한 크레인 샷 같은 카메라워크는 정적인 간결함과 절제미를 담아내고자 한 “라스트사무라이”에서는 오히려 금기될 사항이었다.
대신 “라스트사무라이”의 비주얼이펙츠는 시대적 리얼리티의 정확한 재현에 초점을 맞추고 주로 1860년대 일본의 분위기를 보다 더 시대에 맞도록 수정/보완하거나 라이브액션의 리얼리즘을 보완/극대화하는 합성작업 선상에서 극히 제한적으로 이용되었으며 이펙츠라는 느낌이 들지 않도록 하는데 주의하며 진행되었다.
근대화의 격동기를 맞아 문화적 사회적으로 북적대는 명치시대 재현과 관련해서 가장 훌륭한 이펙츠 샷은 목조건물이 빽빽하게 들어선 항구를 향해 천천히 다가오는 범선과 그 위에서 먹구름이 가득한 음침한 하늘을 배경으로 항구 쪽을 바라보는 주인공 네이든 알그렌 대위(톰 쿠르즈)가 비춰지는 요코하마 항구 샷이다.
플래시필름웍스(Flash Film Works, www.flashfilmworks.com)에 의해 이루어진 이 장면은 블루스크린을 배경으로 한 실제 크기의 범선과 그 위에서 연기하는 톰쿠르즈, 구름과 하늘을 찍은 2D 사진, CG 3D 건물, 컴퓨터로 시뮬레이트 한 물 등으로 이루어진 디지털 합성 샷이지만 인공의 느낌이 전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림 2].
영화의 클라이맥스인 사무라이와 정부군의 마지막 전투 씬에서 말에 탄 채 장검을 휘두르며 적을 향해 돌진하다 말에서 떨어지는 가츠모토(켄 와타나베)의 액션 장면도 디지털 조작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 좋은 예다. 이 장면은 실상 액션을 연기하는 스턴트맨의 얼굴을 지우고 대신 와타나베의 CG 얼굴을 합성해 애니메이트 한 디지털 합성 샷이지만 완벽한 트래킹과 블렌딩으로 어디에고 디지털의 흔적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림 3].
“라스트사무라이”의 가장 완벽한 눈속임은 전투 씬의 무기에서 발견된다. 연기가 자욱한 공중을 가르는 CG 화살, 총검과 대포가 난무하는 육박 전투장을 이리 저리 가르며 쉬~익 소리와 함께 몸을 관통하는 CG 장검과 창들이 완벽에 가까운 영상미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 그야말로 장관을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림 4].
총검과 대포로 무장한 신식군사들과 갑옷과 장검으로 무장한 사무라이들이 벌이는 “라스트사무라이”의 전투 시퀀스는 총을 쏘고 맞고, 창을 찌르고 찔리는 전투의 치열함이 그야말로 살아 움직이는 감동 영상이다. 대부분 중거리 또는 클로즈업으로 잡은 1:1의 육박전 샷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특히 적의 몸을 관통하는 칼의 일격 순간을 그대로 눈 앞에 보여주어 마치 살인의 현장을 보는 듯한 스릴과 실제로 찔리는 듯한 아찔함이 느껴질 정도로 실감이 난다.
통상 이런 종류의 장면은 교묘한 카메라 앵글이나 기발한 액션 연출을 통해 결정적인 순간을 가려 표현하거나, 찌르는 순간에 이어 찔린 듯 괴로워하는 상대의 표정을 보이는 식으로 간접 표현되어 왔다. 그러기에 더욱 충격적이며 그런 만큼 참신하게 오는 것일 터인데 전장의 드라마와 스펙터클을 극대화시키려는 제작진의 의도가 드러나는 부분으로 여기서 몸을 관통하는 바로 그 검들이 실상 실제 검을 3D 스캔해 만든 CG 검이다 [그림 5].
영화 전체에 걸쳐 총 50여개 샷에 나타나는 이들 CG 검 및 창들은 2002년 수퍼볼 오프닝 시퀀스를 제작해 자사의 4번째 에미상을 거머쥔 디지털디멘션(Digital Dimension, www.digitaldimension.com)의 작품이다. 설립자인 베노아 지라드(Benoit Girard)를 비롯, 총 15명의 인원이 3개월에 걸쳐 이루어냈다고 하는데 ‘이펙츠 느낌이 들게 하지 말것’을 요구한 감독의 지시에 따라 라이브액션과 CG를 감쪽같이 블렌딩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진행되었다.
과정을 설명하자면, 실제 검을 3D 스캔해 CG 검을 모델링한 다음 트랙킹 툴을 사용해 라이브액션 그리드를 만들고, 그 위에 CG 모델을 얹어 라이브액션 플레이트와 일치시킨 후 렌더링하고 그것을 라이브액션 위에 얹어 합성하면 끝난다. 간단하다면 간단한(?) 과정이고 트랙킹 툴을 비롯해 3D 맥스 및 브이레이(Vray)와 같은 렌더링 툴, 그리고 디지털 퓨전(Digital Fusion)과 같은 합성 툴 등이 사용되었지만 시각적 리얼리즘을 중시해 불충분한 부분은 일일이 손으로 그려 수정하는 작업 과정이 더해져야 했다고 한다(그림 6).
지라드 사장은 이들 CG 무기가 “칼날 및 손잡이 장식과 같은 검 스타일은 물론이고 묻어나는 피의 양과 날의 반짝임 정도를 세세하게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기 때문에 영화제작자들에게 생과 사를 가르는 전투의 리얼리즘을 보다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유동성을” 주었고 나아가 “전통적인 방법에 비해 영화가 표현하고자 하는 전장의 리얼리즘이나 스펙터클을 한층 더 잘 표현할 수 있었다”고 평가하면서 효과로서의 CG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꽤 오래 전, 1995년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포레스트 검프(1994)”를 보면서 어떻게 톰 행스(포레스트 검프)를 닉슨을 비롯한 유명 인사들의 다큐멘터리 필름에 넣고 그들과 함께 말하고 움직이게 할 수 있었는지 궁금했던 적이 있다. 알아본즉, 그 해 아카데미 비주얼이펙츠 상까지 받은 이 놀라운 이펙츠가 케케묵은 매트페인팅 및 블렌딩, 그리고 클린업 기술이 고도로 숙련된 결과라는 사실에 깜짝 놀란 적이 있다.
고도의 숙련미를 실현하는 일. 그리 복잡한 얘기같지 않지만 해마다 새로운 이펙츠 영화가 제작되며 이펙츠 샷의 수와 양, 질을 경주하는 요즘에는 보다 쇼킹한 디지털 생물과 상상에서나 가능한 디지털 환경을 제작하는 편이 세인의 이목을 보다 쉽게 끌 수 있는 길이기에 단순한 합성과 블렌딩과 같은 오래된 효과를 완벽하게 실현하려는 노력은 점점 찾기도 어렵고, 설사 있다 하더라도 큰 흥미거리가 되지 못한다.
이해가 되는 것은 카메라 앵글 및 액션을 구성하는 촬영 전 단계에서부터 전체 영상의 분위기 및 색상을 통일감있게 마무리하는 촬영 후 작업에 이르기까지 컴퓨터는 이제 영화 제작 전 과정에 걸쳐 프리비즈(Pre-viz)다 디지털그레이딩(Digital Grading) 등의 테크닉으로 그야말로 종횡무진 그 활약상이 눈부시기 때문이다. 비근한 예로서 “반지의제왕” 시리즈에서 CG는 영화의 중추에 서서 그 역할을 얼마나 멋지게 해내었던가?
하지만 그 멋진 “반지의제왕”에서조차도 라이브액션과 디지털이미지가 미숙하게 합성된 샷이 곳곳에 있어 영화 자체의 현실감을 떨어뜨리는 요소로 작용한 경우가 있었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사실 엉성하게 합성된 첨단 이펙츠 영화를 보면 마치 기본기가 부족한 상태에서 묘기를 부리는 초심자를 보는 것 같아 불안감을 주며 영화 경험 자체가 그리 유쾌하지 않다.
극명한 예로서 “매트릭스” 3편을 들 수 있다. “유니버설캡처” 테크닉을 이용해 생성된 네오(키아누 리브스)의 디지털 얼굴이 버추얼 시네마토그래피를 구현하는 디지털 환경에서 종이 인형과 별반 다르지 않게 굳어 있음을 보았을 때 그때까지 보아온 영화 전체에 대한 인상이 얼마나 구겨지던가? 꼭 이펙츠 영화가 아니더라도 굉장한 폭발음과 함께 무너지는 건물들 사이로 삐져나오는 CG 불 효과가 건물과 따로 놀며 퓌식 사라질 때 영화 자체가 얼마나 시시하게 느껴지던가?
이런 맥락에서 보면 전혀 두드러지지 않는 블렌딩과 합성으로 이루어져 있어 그다지 특별할 것이 없어 보이는 “라스트사무라이”의 CG는 정말 훌륭하다고 얘기할 수 있다. 모든 CG 요소들이 완벽한 영상미 속에 속속 숨어 영화의 현실감을 고조시킬 뿐만 아니라 영화 경험 자체를 만족스러운 것으로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영화 속에서 튀며 겉도는 CG는 속말로 “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