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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영상 | 리뷰

한 구직자의 취업 일기-유나이티드 항공 “인터뷰”

2004-09-06




70년대 말이던가?
컬러 TV가 상용화가 시작되던 시대에 수상기를 통해 접하게 된 컬러 이미지에 진짜 신기해 했던 기억이 난다.
요즘 기준으로 보면 형편없는 컬러 재현이겠지만 그 당시로서는 눈에 보이는 총천연색 이미지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어찌나 신기하던지…

그런데 얼마 전에 그 비슷한 종류의 “신기함”을 이번에는 흑백 (엄밀히 말하자면 모노톤) 영상을 보며 느꼈다.
요즘 TV가 대부분 총천연색 영상을 보여주고 있으니 모노톤 영상이 자아내는 비주얼이 참신하게 느껴졌을 만도 하다.

하지만 그 이유만은 아니었다.
면접을 받는 한 구직자의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는 이 애니메이션 광고는 마음 훈훈하게 하는 이야기도 이야기지만 걸죽한 유화의 질감과 끊임없이 움직이는 배경 및 캐릭터들이 만들어내는 비주얼이 참신하기 그지 없었다.

살펴 보니 이미 두 차례에 걸쳐 아카데미 상 후보에 오른 바 있는 애크미필름웍스 (www.acmefilmworks.com)의 애니메이터 웬디 틸비 (Wendy Tilby)와 아만다 포비스 (Amanda Forbis)의 공동작품으로 광고대행사인 팔론|미네아폴리스 (Fallon|Minneapolis, www.fallon.com)의 의뢰를 받아 제작한 유나이티드 항공사 애니메이션 광고 시리즈 중의 하나였다.

CG 작업이라고 단정 짓기에는 불규칙적인 질감이 실감나게 살아 있고 수작업 애니메이션이라고 하기에는 그 표정과 움직임이 너무나도 사실적인 이 작품.
어떤 컨셉으로 어떤 제작과정을 거쳐 만들어냈는지 감독이자 애니메이터 겸 페인터로서 제작에 참여했던 틸비와 포비스에게 직접 물어보았다. (그림 1)



이 광고는 조지 거쉬윈 (George Gershwin)의 랩소디 인 블루(Rhapsody in Blue)를 변주한 피아노 소리와 함께 시작된다. 개 한 마리와 함께 한적하게 살고 있는 한 남자가 창의 커텐을 올리고 아침을 맞이하는 장면이다. (그림 2)

테이블에 놓여 있는 시계는 아마도 4시 30분(?)을 가리키고 있는 듯. 상당히 이른 아침이다.
치카치카 양치질 하고 면도 한 후, 머리를 곱게 빗고 양말을 신고 양복을 걸치는데 이 때까지만 해도 출근을 준비하는 보통 직장인의 평상적인 일상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헌데 이 친구.
넥타이를 고르는데 엄청 시간을 쓰더니 결국은 처음 고른 평범한 동색 넥타이로 낙찰을 보는데 그래도 석연치 않은 듯 함께 사는 애견에게까지 의견을 물어보려는 폼이 뭔가 특별한 날을 위한 점찮은 장소 옷차림을 준비하고 있음을 짐작케 한다. (그림 3)

비행기를 (물론 유나이티드 항공) 타고 어디론가 가는 주인공. 옐로우 택시에 고층 건물이 즐비한 것을 보니 도착한 곳은 뉴욕이다.
건물을 찾아 엘리베이터를 타고 목표한 층을 향해 가는 이 남자.
사람들이 빽빽이 들어 선 좁은 앨리베이터 공간에서 마땅히 시선을 둘 곳이 없어 주변을 둘러 보다 시선을 밑으로 하는데…
이게 웬 청천벽력! 글쎄 구두를 짝짝이로 신고 있는 게 아닌가... (그림 4)

뒤 이어서 나타나는 장면은 긴 테이블 끝에 앉은 세 사람, 그리고 이력서를 내미는 주인공.
이 친구는 다름 아닌 면접을 보러 온 것이었다!
쏟아지는 질문 공세에 진땀을 흘려가며 답변한 후 길로 나서는데…
머리에는 온통 짝짝이 구두 생각 뿐이며 면접에 실패했다 느끼는지 고개를 떨구고 힘없이 걷는다. (그림 5와 6)

바로 그 때 걸려오는 전화.
채용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듯 주인공은 쾌재를 부르며 하늘로 튀어 오른다.
편안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 오른 주인공.
곧 달콤한 잠에 빠져들고 “제대로 가는 지 여부는 당신에게 달려있지만 그 곳으로 데려다 주는 항공은 오직 유나이티드”라는 멘트가 주제곡과 함께 흘러나온다. (그림 7)



광고 “인터뷰”를 처음 본 것은 지난 4월.
걸죽한 유화의 질감 표현이 지금까지 보아 온 것과는 그 수준이 다르고 무성영화를 보는 듯이 끊기는 듯 하면서도 부드럽게 이어지는 애니메이션이 범상치 않은 재주꾼이 만든 것임을 느끼게 했다.

구두를 짝짝이로 신고 면접에 응해야 했던 한 구직자가 취직에 성공하는 경험을 스토리로 한 사실도 왠지 제작자들의 가슴이 따뜻할 것만 같은 생각을 들게 해서 도대체 어떤 과정으로 제작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궁금증을 가중시켰다.

캐릭터의 사실적인 표정 묘사 수준도 놀라웠다.
만화처럼 단순화되어 있으면서도 표정과 움직임이 극히 자연스럽게 살아있었기 때문인데 무엇보다 궁금했던 것은 이들 질감 및 표정을 “CG로 만들어내었는가”였다.

감독이자 애니메이터 겸 페인터인 웬디 틸비와 아만다 포비스에 의하면 사실적 요소와 회화적 요소, 디지털 작업과 수작업 요소, 과감한 프레임 편집이 모두 합쳐져 이루어낸 결과라고 하는데
다음은 그들과의 인터뷰 내용이다.

스토리보드 과정을 포함해 약 75명이 이렇게 저렇게 동원되었으며 딱 8주 걸렸다.
초당 24 프레임 애니메이션으로 60초 짜리니까 총 1440 프레임이 있는 것인데 같은 드로잉을 두 번씩 이용했기 때문에 실제 사용된 드로잉은 그 절반인 720 개다.

별별 수단을 다 동원한 복잡한 과정인데 간단히 설명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라이브액션을 촬영한다.
사실적인 모션 표현을 위해 이루어지는 과정으로 주로 제작진이나 주변 친구들을 배우로 등장시키고 근처에 있는 집기구 등을 소품으로 이용해 촬영했다.
애니메이션 제작의 기초 프레임으로 이용되었다.

2. 애프터 이펙츠 편집
촬영 장면 중 잘된 프레임만을 골라 아이무비 (iMovie)로 불러들인 후 애프터 이펙츠로 보내 모션이 너무나도 사실적으로 표현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과정을 거쳤다.
이 과정에서 여러 프레임이 삭제되거나 복제되어 더해졌다.

3. 플래시 편집
편집된 비디오를 플래시로 불러들인 후 그를 바탕으로 캐릭터를 재디자인하는 과정으로 라이브액션 위에 주로 선이 살아 있는 캐릭터 드로잉을 그려 재디자인하고 기타 그래픽 엘레먼트 등을 더하는 과정이었다.

4. 촬영 프레임 인쇄
플래시에서 편집된 프레임들을 비디오 프린터를 사용해 종이에 인쇄하는 과정이다.

5. 인쇄된 푸티지의 스타일화
종이에 인쇄되어져 나온 촬영 장면에 연필 및 오일스틱 등으로 질감을 그려 넣는 과정으로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제작해 넣거나 디자인 요소들을 스타일화하고 기타 불필요한 세부를 지우는 과정이다.

6. 스캐닝
인쇄되어 스타일화 과정을 거친 종이 위 이미지를 일일이 스캔해 애프터 이펙츠로 불러들여 재조합하는 과정으로 이 과정에서 전체적인 채색 및 색보정도 이루어졌다.

광고주인 유나이티드 항공 측에서 특별히 질감과 리얼리즘을 살려달라는 주문을 해서 그 느낌을 살리는데 치중했다. 아카데미 후보에 오른 “해가 뜰 때 (When the Day Breaks)”를 가리키며 그 느낌으로 제작해 달라고 구체적으로 요구했는데 사실 “인터뷰”는 주인공이 동물이 아니고 사람이라는 점에서 달랐고 그런 만큼 혹시라도 너무나 사실적인 결과를 가져오지 않을까 신경 써야 했다.

프레임을 엄청 많이 없애 모션 자체를 생략하는 과정을 거쳤다. 주인공을 비롯한 캐릭터 자체도 플래시 드로잉 과정에서 많이 고치고 배경도 이곳 저곳을 지우고 그려 넣어 스타일화 했다. 이 과정에서 갖가지 흥미로운 실험이 이루어졌는데 예를 하나 들자면 스캔해 불러 들일 때 이미지를 살짝 움직이면 예기치 않은 재미있는 결과가 나오는 것 등이다.

드로잉과 페인팅을 직접 해야 직성이 풀리는 편이다. 하지만 이 광고의 경우 제작기간이 너무 짧아 다른 페인터들의 도움을 받아야 했는데 이들의 페인팅 스타일을 일관성 있게 통일하는 일이 상당히 어려웠다. 다들 제각기 다른 도시에 살고 있어 의사소통 자체가 원활할 수가 없었던 탓도 커뮤니케이션을 더욱 어렵게 했다.

질감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 직접 손으로 그리는 페인팅 과정은 빼놓을 수 없는 과정으로 전체적인 느낌을 만들어내는데 가장 큰 공로자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애니메이션을 사실적으로 표현하는데 있어서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비디오 촬영 장면들이며 플래시를 통한 라인 드로잉 작업은 사실적 표현을 보다 스타일화된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내는데 지대한 역할을 했다.

질감의 표현에 있어 손으로 직접 그린 것과 같은 결과를 낼 수 있는 소프트웨어는 아직까지 발견하지 못했다. 또한 컴퓨터를 이용하면 매체들을 직접 만지는 데서 오는 즐거움을 느낄 수 없다. 하지만 이들 소프트웨어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어떤 프로젝트의 경우는 손으로 그린 것보다도 더 효과적인 결과를 낳은 케이스도 많다. 모두 장단점이 있다고 본다.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는 점이다. 수작업을 통한 인쇄, 스캐닝, 재조합 등등의 과정이 필요 없고 모든 것을 일사분란하게 통제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수정 및 변경 등을 하는데 있어서 컴퓨터만큼 효과적인 것은 없다.

단점이라면 페인트나 연필, 종이와 같은 매체의 질감을 살리는데 있어서는 아직 개선의 여지가 많고 무엇보다 매체를 사용하는 데서 오는 즐거움이 수작업보다 덜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하지만 이전에 비해 컴퓨터 소프트웨어에 대한 거부반응이 줄었다. 소프트웨어들이 나날이 정교해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우리 자신이 소프트웨어에 보다 익숙해 진 탓도 있을 것이다. 앞으로도 디지털 매체와 전통 매체를 효과적으로 이용한 작품을 계속 선보일 생각이다.


CG를 통한 질감 표현은 디지털 작업과 관련해 가장 큰 난제다. 말 그대로 디지털이다 보니 “예스”, 아니면 “노”로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하는데 질감이라는 것이 칼로 자르듯 그려낼 수 있는 그런 성질이 아닌데다 제대로 표현하려면 일일이 헤아릴 수 없는 수 많은 인자들이 고려되어야만 한다.

예를 들어 유화의 질감을 표현한다고 해보자. 우선 물감의 농도 (물감과 유액의 비율을 말한다. 너무 묽으면 칠은 흘러내리고 반대의 경우에는 덩어리째 화폭에 들러붙는다), 붓의 크기 및 모양, 그리고 물감의 양 (붓에 물감을 묻힌 정도) 등을 고려해야 한다.

그 다음에는 획을 그리는 속도 및 압력 (눌러 천천히 그리느냐 가볍게 빨리 휘두르느냐의 여부. 압력을 가하면 밑색이 베어나온다)가 고려되어야 하고 화면 (나무냐 종이냐 캔버스냐의 여부. 캔버스의 경우에는 캔버스 천의 종류), 밑그림의 건조 상태 (건조 되지 않은 상태라면 배경의 물감이 함께 묻어나오거나 문질러진다) 등등이 모두 “1” 또는 “0”의 상태로 입력이 되어야 한다.

게다가 유화의 질감은 평면처럼 보일런지는 모르지만 평면 이미지가 아닌 삼차원 입체로서 각도와 조명에 따라 그 양태가 달라진다. 이 말은 특정 질감을 패턴으로 만들고 그것을 특정 물체에 일괄적으로 입히는 현금의 이차원적 방법으로서는 질감을 제대로 표현할 수가 없다는 이야기다.

다시 말해서 질감은 삼차원 캐릭터를 모델링하고 애니메이트하는 것과 동일하게 다루어야 제대로 표현될 수 있는데 어느 누가 배경의 질감 처리에 그만한 공을 들이겠는가… 차라리 직접 그려 넣고 그걸 정교하게 스캔해 표현하는 것이 속 편하고 저렴한 방법이 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디지털 질감 표현은 수많은 인자 정보를 처리할 수 있는 컴퓨터 기술과 그 질감 표현에 드는 경비 및 효과의 경제성이 해결된다면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많은 애니메이터 및 디지털 페인터들이 인정하듯 컴퓨터로 각종 전통 매체의 질감을 그럴싸하게 표현할 수 있는 날도 얼마 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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