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10-04
애니메이션의 배경그림은 움직이지 않는다.
초 단위로 움직이는 캐릭터들을 따라가다 보면 멈춰있는 배경그림은 의례 그곳에 늘 있는 풍경처럼 당연하게 느껴져 관심있게 살펴보지 않게 된다. 어떤 배경은 빠르게 전환되지만 눈길이 오래 머무는 화면에서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멋지다”, “예쁘다”라는 두루뭉술한 반응으로 뭉뚱그려 표현한다.
하지만 졸라맨도 아니고 배경그림도 없이 캐릭터 홀로 외롭게 액션하는 모습을 상상한다면 배경그림이 갖는 비중이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일본 인기 애니메이션의 왠만한 작품은 SEY의 손을 거치지 않고는 완성될 수 없다.아직까지는 ‘하청’이라는 생산용어가 익숙한 시스템이지만, 애니메이션 제작사의 동등한 제작파트너로서 작품 전체 예산의 10~15%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애니메이션 배경이라는 장르에 대한 재고가 이루어지고 있는 이때, 정면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파트가 아니지만 작업의 충실도와 작품의 베이직을 아우르는 배경그림의 숨어있는 고수 Studio SEY를 찾았다.
취재 │ 최현진
들어서자 포스터 컬러물감에 물을 갠 파레트가 책상에 가득하고 붓을 든 스탭들이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다. 컬러가 직접 물든 도화지를 대하는 기분이 묘하고 따뜻했다. 장정호 대표를 비롯한 SEY 스탭들 모두 그렇게 웃고 있었다.
Studio SEY의 탄생과 역사가 궁금하다
92년 오픈한 SEY는 97부터 2년간의 일본 유학을 마치고 2000년 재오픈을 했다. 이누야사, 나루토, 에스카플로네, 최종병기그녀, 건담, 철인28호 등의 작업을 했다. 국내 애니메이션 작업보다 일본의 애니메이션 배경전문업체인 UNI와 일본 애니메이션 작업을 주로 하고 있다(UNI는 테츠카 오사무의 작품부터 참여한 일본 최대 배경전문제작사).
작업 공정은 레이아웃 단계에서부터 참여하고 있고 설정작업과 색작업에 활발하게 참여중이다. 그동안 일본 TV 시리즈물 8편과 극장용에 참여했다. 한국에서 SEY와 처음 일하는 곳인데 안정적인 작업파트너이다. 그동안 한국작업의 퀄리티에 대한 신뢰도를 높여주었다는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데 회장이 직접 한국을 찾아 스텝들과 식사를 자주 나눌 정도로 신뢰가 남다르다. 향후 기획단계에도 참여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중이다. 대표적인 한국 작품은 『다모』로 기획부터 참여했었다.
배경작업에 대한 철학은?
캐릭터를 그리거나 배경을 그리거나 모두 그림을 그리는 아티스트다. 배경그림은 무엇보다 그 작품의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다. 작품의 역사, 시간대의 이미지, 캐릭터의 표정까지 디테일하게 계산한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다. 실제 카메라가 들어간다고 예측하며 작업한다.
포토샵의 사용으로 디지털화되었지만 수작업의 개념을 넘어갔다해도 도구만 다를 뿐 별도로 생각하지 않는다. 어차피 그림이란 작가 생각으로 작업하므로 툴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어떤 그림을 추구하는가?
생활감있는 그림이다. 나무나 숲 등 자연물을 그릴 때 생활감을 추구하며 작업한다. 역시 그림다워야 하는 그림이다. 누가 봐도 보면 볼수록 마음에 와닿는 그림이 좋은 그림이라고 생각한다.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는 그림은 아무리 잘 그렸다해도 의미가 없다.
기억에 남는 작품은?
SF물인
<에스카플로네>
가 기억에 남는다. 『아키라』 미술감독과의 작업이 좋았고 작품도 마음에 들었다.
현재 작업중인 작품은?
『KAPPA』라는 작품으로 도쿄타워를 소재로 한 이야기이다. 현재 1/3 분량의 작업을 마친 상태이다. 2007년 일본 개봉을 목표로 두고 있다. 『KAPPA』는 『짱구는 못말려』의 히라 게이지 감독의 작품이다. 이번 UNI 회장단이 방문했을 때 새로운 작품 『디그레이맨』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져서 함께 진행하게 될 것이다. 분량은 평균 한 달에 300장 정도 작업한다.
에스카플로네>
도전해보고 싶은 분야가 있다면?
실사영화의 콘티와 이미지 컬러가 나오면 배우, 세트, 장소 등이 필요할 때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스토리와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작업을 해보고 싶다. 『매트릭스』 같은 경우 컬러링과 라이팅을 세팅한 상태에서 작업되었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 영화에서는 조명까지 완벽하게 세팅하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설정 스케치만 되어 있는 상태에서 작업한다.
일본업체와 작업하며 어려운 점은?
커뮤니케이션 문제는 오히려 무난한데 환율문제가 변수로 작용한다. IMF 이후 20%까지 환율이 하락하는 바람에 수익이 줄어드는 현상이 일어난다.
SEY는 무슨 뜻인가?
일본에서 귀국해서 아들을 낳았는데 아들 이름과 똑같이 회사이름을 지었다. 나중에 사전을 찾아보니 라틴어로 ‘미지의 섬’이라는 멋진 뜻이 있더라. 많은 일을 하려는 욕심을 버리고 중요한 일에 집중하며 천천히 조심조심 나가고 싶다.
애니메이션협회 미술분과에서 하고 있는 일은?
한국애니메이션협회 미술분과 위원장을 맡고 있다. 후배 아티스트 여건 개선과 일반인들에게 알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CF, 게임 등 일반 디자인 작업에 참여하는 도구로 다양한 사업을 하고 있다. 최근 배경그림으로는 최초로 전북도립미술관에서 전시회를 가졌는데 반응이 좋았다. 작품으로서 가치를 재평가 받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