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8-07
극장에 가야만 제대로 영화를 볼 수 있는 시절이 있었다. 이제 손바닥만한 모바일로 TV는 물론이고, 다운받은 영화나 외화 동영상을 마음껏 볼 수 있다.
그 어느 때보다도 모바일, 뉴미디어 산업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요즘, 경기도디지털콘텐츠진흥원 제작센터에서는 급변하는 뉴미디어 시장에 맞는 애니메이션 제작을 위해 ‘2006년 뉴미디어 콘텐츠 제작지원 사업’을 시작했으며, 공모를 통해 단편애니메이션을 제작하였다. 이렇게 제작 지원된 단편애니메이션은 뉴미디어 - 모바일 동영상 서비스 - 를 통해 내년 초 일반인에게도 공개되는데, 엄선된 여섯 작품을 2007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의 ‘애니 판타–뉴미디어 애니 특별전’ 섹션을 통해 미리 만나보았다.
취재| 권연화 기자 (yhkwon@jungle.co.kr)
자료협조 │ 경기디지털콘텐츠진흥원
수많은 사람의 발이 되어주는 지하철에서 만날 수 있는 다양한 인간군상. 그리고 황당무계한 추태 만상이 벌어지는 지하철에서의 다섯 개 에피소드를 담은 애니메이션이다. 자리를 두고 벌이는 은밀한 암투, 서로를 훔쳐보는 사람들 등의 에피소드는 황당하기도 하고, 때로는 재미있고, 때로는 짜증도 나는, 지하철에서 흔히 경험할 수 있는 일이다. 깔끔하게 정리된 라인과 컬러가 돋보이는 박생기 감독의 지하철은 2007년 안시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 스페셜 프로그램으로 초청되어 상영되기도 하였다. |
박병산 감독과 지앙 웨이린(Jiang Weilin) 감독이 만든 한중 합작 프로젝트로, 박병산 감독은 ‘장금이의 꿈’으로 잘 알려져 있다. 삼국영웅열전은 삼국지의 중요한 이야기로 구성되었는데, 적벽대전이 끝난 후 쫓기는 공명을 구출하는 조운의 에피소드, 술이 식기 전에 화웅의 목을 베어버리는 관우의 에피소드, 그리고 조조의 에피소드를 재구성하였다. 한국과 중국의 각기 다른 화풍과 애니메이션 스타일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슈퍼 히어로가 되고 싶어하는 자전거 ‘따릉이’의 액션 활극기이다. 날렵한 빨간 몸매를 자랑하는 슈퍼 다릉이는 할아버지와 보라 돼지와 행복하게 살고 있는데 어느 날 할아버지가 보라 돼지를 잡아먹은 후 가출을 한다. 그후 가출한 따릉이에게 많은 일들이 벌어진다. 자전거라는 독특한 캐릭터와 각각의 에피소드를 상이한 스타일로 이끌어낸 감수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백종석 감독의 슈퍼 따릉이는 2007년 안시애니메이션 페스티벌 TV시리즈 본선에 진출했다.
동글동글한 얼굴을 각각 다른 색깔의 스타킹으로 가린 스타킹 브라더스의 액션 스토리. 이들은 열쇠 따기와 잠입, 그리고 망보기의 고수들이다. 레이저 방어망도 뚫고 한 무리의 경찰도 손쉽게 따돌리는 스타킹 브라더스의 미션 임파서블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귀여운 캐릭터와 깜찍한 반전, 그리고 적절한 메시지가 어우러진 작품이다. 스타킹 브라더스의 김경숙 감독은 현재 록커뮤니케이션의 애니메이션 감독으로 제작 활동을 하고 있다.
추운 겨울 밤, 길에서 손을 녹여가며 자기 몸집만한 성냥을 들고 서 있는 성냥팔이 소녀. 동화 속에서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했던 이 소녀가 추위와 외로움, 그리고 멸시 때문에 분노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구봉회 감독은 이런 엉뚱한 상상에서 이 영화를 만들게 되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성냥팔이 소녀’를 컬트적으로 섞어놓은 뮤직드라마 형식의 애니메이션이다. |
슈퍼 히어로는 모두 근육질 몸매를 자랑하는 젊은이라고? 여기 ‘신초불이’를 부르며 모내 기에 열심인 다섯 명의 할머니, 할아버지를 보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우주 괴수로부터 지구를 지키던 우주용사 5인은 지구로 발령을 받게 된다. 다섯 용사는 지구로 오던 중 실수로 너무 오래 수면을 취해 백발노인이 되어 지구에 도착한다. 그러나 본래의 임무를 다하고자 온몸으로 맞서게 된다. ‘외계 괴물로부터 지구를 지키기 위해 보내진 5명의 흰머리 슈퍼 히어로’라는 상상을 뒤엎는 캐릭터를 내세워, 나이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유쾌하게 비튼다. 한국적 슬랩스틱 코미디 연출이 특징인 고세윤 감독의 ‘실버레인저’는 2007년 SICAF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서 ‘코리안 뉴웨이브’ 섹션을 통해 상영되었다. |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모바일 테크놀로지의 흐름에 따라 영상 콘텐츠의 다양성을 고민하고, 그에 따른 변화를 포착해본다는 취지에서 열린 ‘뉴미디어 애니 특별전’. 모바일을 통해 서비스되는 애니메이션인 만큼, 모바일 환경에 맞는 3분 이내의 에피소드 5개 분량으로 구성된 작품이 대부분이었다. 제한된 조건 속에서도 감독들의 재기 발랄한 상상력은 빛을 발했다.
일상의 소재(지하철)에서부터 뒤통수를 치는 상상력이 돋보이는(이상한 나라의 성냥팔이 소녀, 실버레인저) 작품, 기존 애니메이션의 틀을 깬, 새로운 캐릭터(슈퍼 따릉이, 스타킹 브라더스)가 돋보이는 작품, 그리고 한중 합작 프로젝트로 각국의 독특한 스타일을 보여준(삼국영웅열전) 작품까지. 상상력이 돋보이는 이 작품들은 곧 모바일 영상 콘텐츠로 만나볼 수 있다.
전화를 걸고 받기만 하는 모바일 시대는 지났다. 이제 모바일 하나로 인터넷, mp3 플레이어, 카메라, 동영상 촬영, TV까지 볼 수 있는 미디어로서의 모바일 시대가 시작되었다. 늘 새로운 것을 바라는 이들에게 애니메이션 시리즈는 얼마만큼 설득력을 가질 것인가. 배를 깔고 누워서 침 바른 손으로 한장한장 넘겨보던 만화책이 온라인 환경에서 웹툰으로 새로운 방향성을 모색했던 것처럼 모바일 애니메이션이 자리를 잡을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