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12-27
필자가 대학에서 강의 하면서 항상 학생들에게 질문 받는 이야기 중에서 가장 많은 질문이 “애니메이션을 하면서 그림을 잘 그려야만 애니메이션을 할 수 있는가?”하는 질문이다. 이러한 질문을 받으면 항상 닭이 먼저 일까? 아니면 계란이 먼저 일까? 라는 질문과 같다고 생각 한다. 하지만 닭과 계란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그림보다는 애니메이션 연출력이 가장 큰 비중을 둘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는 이번 연재 글을 쓰면서 느끼는 필자의 생각이다.
이번 연재는 첫번째 연재와 시기적으로 동일한 연장에서 애니메이션 초기 실험주의 작가들을 중심으로 구성하고자 한다. 초기 예술가들이 애니메이션이란 매체에 새롭게 미학적 접근하게 된 것은 아방가르드 또는 전위적인 형식의 실험성에서부터 라고 할 수 있다. 애니메이션은 실사 영화와 그 괘적을 같이하며 발전해 왔고, 초기 예술가들은 영화 영상의 필름이라는 물적재료에 대단히 많은 관심을 보였다. 직접 필름 위에 그림을 그리거나 또는 필름 위에 직접 스크래치하는 방식으로 제작을 해왔다. 이러한 초기 애니메이션들은 이후 애니메이션 제작의 영역을 형식적 실험과 함께 실사 영화(Live action film)와 미학적 경계를 뚜렷이 구별하게 된다.
국제애니메이션필름협회(ASIFA: Association internationnal de film Animation)는 1980년 유고의 자그레브(Zagerb) 임시총회에서 ‘애니메이션의 미학’을 애니메이션에 관한 선언문으로 채택하고 그 정의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애니메이션은 기본적으로 화상의 1콤마(comma)의 수단에 의해 창조된 모든 것을 말한다. 이것은 조작된 동작을 창조하기 위한 모든 종류의 테크닉에 관련된 것으로 애니메이션 예술은 실사영상 방식과는 다른 다양한 기술조작에 의해서 움직이는 이미지를 창조한다.”
왜 글 서두에 이러한 원론적인 이야기를 하느냐 하면, 이번에 논의하고자 하는 기법의 모호성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애니메이션의 실험기법들은 아방가르드 이후 모더니즘의 영향을 많이 받은 작가들에게 더 할 수 없는 매력적인 장르로 여겨졌다. 이유는 애니메이션이 기존의 기법 또는 아카데믹한 전통의 장르적 경계를 모호하게 하면서, 실사 영화와 가장 가깝게 근접한 제작 방식이며, 새롭게 의미를 재현하기에 더없이 좋은 매체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여러 실험기법들 가운데에서도 픽실레이션 기법이 많이 이용되었는데, 픽실레이션(pixiliation)이란 실사영화의 필름상의 컷트(CUT)의 개념과 애니메이션의 컷 개념과 구별되는 것으로 필름의 프레임과 프레임 사이의 분절된 시간을 주목하여 사물을 재현하는 것이다.
이 픽실레이션 기법을 창안 한 작가로 로먼 맥래런(Norman McLaren)을 꼽을수 있다. 1914년 스코트랜드에서 출생한 그는 모더니즘의 영향을 받아 다수의 실험영화들을 발표했다. 애니메이션과 라이브 액션을 불문하고 국제적으로 많은 영화작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쳐왔다. 특히 애니메이션 영화 발전에 있어서 그의 업적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며 1941년에 캐나다 국립 영화국으로 초빙되어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를 설립한 뒤에는 주로 이곳을 주 거점으로 활동해 왔다. (주1)
로만 맥래런은 초기에 영화에 주목하여 작업을 했지만, 이후 영화의 편집에 흥미로운 점을 발견하고, 영화의 편집에서 일어나는 시간적 의미의 재해석(영화의 숏트Sout의 편집)보다 더 정교한 필름상의 프레임과 프레임사이의 간극을 차이로 이미지를 재현하는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애니메이션 미학에서 실사 영화의 미학과 가장 뚜렷이 구별되는 점으로 카메라의 컷이 일어나는 시점을 중심으로 쇼트단위의 컷트와 프레임 단위의 컷으로 나눌 수 있다. 이러한 미학적 관점에서 볼 때 우리가 보아온 영화의 특수촬영이나 CG등은 애니메이션의 영역으로 나눠야 하며, 이러한 구별 점과 기준을 작품의 형식으로 가장 먼저 시도한 작가가 로만 맥래런이다. 또한 로만 맥래런은 캐나다 국립 영화국에서 애니메이션 부분을 새롭게 신설하고 애니메이션 작가를 영입하여 상업적인 작품보다는 실험성과 작가의 개성이 뚜렷한 작품을 제작하는 것을 중심으로 기초를 세웠다. 이후 캐나다 애니메이션은 유럽의 애니메이션과 더블어 작가주의 또는 실험적인 작품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카논(CANON)
토론토영화제 외 4개 국제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음악의 “카논”형식의 음계를 애니메이션 형식에 맞게 제작한 작품이다. 처음은 영어의 ABCD의 사각형이 체스판 같은 곳에서 음악의 리듬에 맞게 반복하고 곧 컷아웃(CUT OUT)의 종이 인형이 반복된다.
이 작품에서 최고의 정수라 할 수 있는 점은 바로 사람의 동작을 이용하여 필름 편집에 의해 동작을 재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이후 많은 후배들에 의해 매우 흡사한 형식으로 차용되기도 했는데, 이 제작방식은 컴퓨터 그래픽을 이용한 특수 효과로 생각 할 수 있지만, 핵심은 바로 그러한 특수효과가 아닌, 필름에 재현상하는 과정을 수없이 반복하여 실사의 움직임이라고 할 수 있다.
똑같은 음계의 반복을 통하여 단순한 움직임을 표현했으며, 그러한 음악에 맞춰 실사의 움직임 또한 동일한 동작을 취하고 있지만, 이 단순한 동작의 조합을 통하여 매우 다른 상황과 이야기를 연출하는 것은 감독의 작품에 대한 계획이 얼마나 치열한 것인가를 보여주고 있다.
이웃(NEIGHBOURS)
이 작품은 로먼 맥래런의 필생의 역작이며, 또한 그의 대표작으로 가장 많이 알려지기도 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평화롭게 사는 한 중산층을 이야기의 중심으로 그려지고 있다. 어느날 두 이웃은 꽃을 밝견하게 되고, 그것에 대한 소유욕은 곧 집착으로 변해 자신과 가정을 파괴하고, 결국 자신들은 그 싸움에서 죽는다는 내용이다. 외연적 의미는 이웃과 평화롭게 지내는 것을 충고하고 있지만, 내연적 의미는 자본주의의 소유욕, 혹은 인간 본성의 본질적인 욕구인 물질적인 소유 욕망을 표현하고 있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인간이 자기의 욕심때문에 무차별하게 주위주변을 파괴하는 것을 표현했고, 더불어 관객들에게 이러한 무분별한 파괴행위를 경고하고 있다.
이 작품의 제작과정을 살펴보면, 카논에서 보여주었던 실사의 이미지를 그대로 차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 실제 배우들의 연기력보다는 로먼 맥래런의 애니메이션적 이미지 또는 동작을 표현하는 소도구(인형?)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배우들은 한 장소에서 같은 동작을 수 없이 되풀이하고 이것을 촬영하여 편집에서 동작을 재해석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다. 이러한 형식은 이후 MTV로고 타이들 애니메이션 등에서 종종 사용되고 있다. 또한 CF에서도 사용되고 있으며, 영화 “매트릭스”에서도 이러한 형식이 많이 사용됐다고 한다.
분명 로만 맥래런은 애니메이션의 어원처럼 “사물에 숨결을 불어 넣다.”라는 의미를 자기만의 독특한 제작방식으로 작품을 제작했다. 이러한 실험정신은 작품 내에서, 영화형식에서 실사로 표현되는 인간으로서 인간의 표현이 아닌, 새로운 형식의 동작을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로만 맥래런의 미적 형식은 초기 작가들의 투철한 실험정신으로 매너리즘에 빠진 우리들에게 귀감이 되어지고 있다.
주1)애니메이션, 이미지의 연금술, 김준양 저, 한나래 2000, p.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