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12-09
2003년 8월, 접어가는 여름을 마무리하고 설레이는 가을을 준비할 무렵..
우리는 Daum UI팀으로부터 한메일넷 디자인 개편에 대한 제안 요청을 받았다.
13년 동안 큰 틀이 바뀌지 않았던 대한민국 대표 메일 한메일넷.
그 누리끼리한 배경컬러와 이제는 흔치 않게 된 굴림체의 큰 글씨에 무반응 했던 세월을 접고 드디어 젊고 신선하고, 웹 메일의 트렌드를 선도하는 메일로 변신을 단행한다는 것이었다.
다음 한메일팀은 개편에 대한 구상과 개발을 진행해오고 있었으며, 디자인에 한해 내부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신선하고 획기적인 탈바꿈을 위해 외부업체를 고려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제안설명회에 참석했던 우리는 다음 한메일팀이 고민해 온 개편의 목적과 방향에 대해 공유하고 곧바로 제시할 개편의 방향과 시안에 대해 준비를 시작했다.
한메일넷은 가장 많은 이용자들을 확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타 메일 서비스들의 변화와 성장에 비해 기능적, 심미적으로 제1의 메일서비스라는 위상을 인식시키는데 버거웠던 것이 현실이었다.
다양한 기능들이 지속적으로 추가됐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또한 분석을 위해 이것저것 시도해보지 않았을 때는 그러한 기능들이 있는지 조차 몰랐던 것이 태반이었다.
당연 개편의 핵심은 한메일의 다양한 기능에 대해 이용자들의 손이 닿는 곳에 잘 보이도록 배치하고 더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 외 메일개편에 대한 한메일팀의 요구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한메일 개편의 이슈를 세가지로 정리하였다.
적극적이고 다이나믹한 웹메일 이라는 것은 단순한 메일확인에서 그치는 것이 아닌 편지쓰기를 비롯한 다양한 메일기능의 활성화라는 운영측의 요구와 맞물린 것이었다.
한메일넷 이용자들의 대부분은 편지 읽기 기능을 주로 사용하고 편지쓰기 기능 이용의 빈도는 이에 비해 현저히 낮았다. 단순히 메일이 정보를 주고 받기 위한 공간에서 벗어나 엔터테인먼트, 커뮤니티의 역할까지 확장된 메일서비스가 한메일넷의 위상인데 반해 (이미 편지지, 카드메일, 한줄 답변등의 기능들이 이러한 요소들을 충족시키고 있었는데도) 이를 십분 이용하고 있는 이용자들은 극소수라는 것이었다.
웹메일을 이용하는 이용자들에게 기본적인 메일 확인 외에 더 이상의 활용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까?
하지만 인터넷의 발전과정이 그러했듯이 솔루션의 성격에서 시작한 메일서비스는 점차적으로 기본적인 기능+ 알파(α)가 필요할 것이고 더 나아가 언젠가는 이 알파(α)가 기본적인 기능보다 더 선택을 좌우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 확신하였다.
한메일넷은 이러한 준비를 시작하였으며 이러한 기능들을 가장 잘 도출할 수 있는 UI와 선도적인 메일서비스라는 이미지를 입히는 이미지네이션(imagination)이 우리의 임무였다.
우리의 제안은 한마디로 이러했다.
“감성적인 디자인으로 한메일의 기존 이미지를 깨고 이용자들에게 그야말로 FUN! 하게 다가가자”
“Fun 한 공간에서 Fun한 액티비티가 일어날 수 있다”
이는 세가지 개편의 구체적인 실현방안으로 도출되었다.
물론 이러한 감성적이고 재미있는 메일 이라는 컨셉으로 단언 짓기엔 많은 고민들이 있었다. 다양한 이용자층에 대한 배려도 필요했고, 과연 메일에서 이용자들이 Fun한 것들을 기대나 할까, 또는 이러한 요소들이 네비게이션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방해한다거나 이용자들이 13년간 학습되어온 경험성을 침해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들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분명 한메일의 감성적 디자인이 대다수의 이용자들에게 즐거움과 신선한 충격을 안겨줄 것이라 확신하고 이에 따른 과학적인 UI 설계와 시각적 전략을 마련했다. 마음을 졸이며 마친 프리젠테이션 결과 우리의 제시한 ‘감성메일’이라는 컨셉은 다음의 메일 서비스 운영자들 및 임원들의 지향과 필요에 맞아 떨어졌음이 입증되었다.
우리는 ‘감성메일’이라는 컨셉을 U.I를 개선하는 방향과 맞물려 실현하기 위해 한메일의 U.I 분석과 시각적 전략을 도출하였다.
가장 핵심적인 시각적 전략은 한메일넷 홈에 녹아나야 했다.
기존 한메일넷 홈의 구성은 간소한 레이아웃과 텍스트기반의 구성으로 한편으로는 익숙한 편리함을 한편으로는 지루함과 강약의 부족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미지 사용의 배제로 일차적인 네비게이션과 받은편지함 정보가 눈에 먼저 띄지만 개편 시 추가될 큼직한 배너광고와 이미지사용의 증가로 인해 과연 주목도를 유지할 수 있을 지가 관건이었다.
그래서 우리가 제출한 비주얼 전략은 기존 3단구성에서 좌측과 중앙의 중요한 요소들을 상단 전체에
강조 배치하는 방법과 텍스트를 중심으로 흩어져 있는 요소들을 성격에 따라 라인 또는 오브제를 통해 묶어 배치함으로 각각의 주목도를 높이는 것이었다.
그리고, 사용자의 경험성에 입각한 시각의 흐름을 고려, 중요한 순서대로 컨텐츠들을 시각적 흐름을 따라 배치시키도록 고안했다.
이러한 비주얼 전략과 U.I 구성을 바탕으로 첫 시안을 제시했다.
컬러면에서는 ‘오렌지’로 다음의 아이덴티티를 가져가되 더 발랄하고 선명하게 표현했으며, 그라데이션을 통해 세련됨을 가미했다.
무엇보다 기존 한메일의 인터페이스 구조와 다른 U.I설계 방향은 이미 사용성 평가를 통해서 나타난 바와 같이 받은편지함 정보와 편지목록의 직관적인 접근을 유도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VISUAL형태에 있어서 레이아웃은 자연스럽게 수평성이 강한 MAIL BLOCK을 중심으로 한 시각적 배치를 따르게 되었다. 이러한 수평적 MAIL BLOCK형태는 네비게이션과의 동일한 우선순위 측면에서 설계되어야만 했다.
처음 제시된 이 시안은 임원들 및 한메일 담당자들에게 엄청난 호응을 얻었다. 하지만 이를 발전시키고 정리해나가는 과정은 생각 이상으로 힘들었다. 먼저 고려되어야 할 것은 스킨의 도입이었다. 한메일넷 이용자들의 취향에 맞는 스킨을 제공하는 것이 이번 개편의 핵심중의 하나였는데 개발 가능하면서도 이용자들에게 선택의 폭을 넓히자는 취지에 맞게 스킨의 영역과 범위를 정하는 작업이 난관이었다.
스킨의 variation에 따른 시안들도 같이 작업되는 가운데, 형태면이나 운영면이나 여러 요소들이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되는 시안을 채택하기로 함에 따라 우리는 거의 매일 몇 세트씩 시안을 제출해야 했다.
시안이 결정되지 못하고, 연이은 모험과 시도가 몇 주 동안 진행되는 사이에 다음 User Research Lab.에서는 이용자들을 대상으로 Lab Testing을 진행하였다. 그 결과 우리는 몇 가지 이슈를 더 안게 되었다.
첫째는 생각보다 한메일 홈을 거치지 않고, 바로 ‘받은편지함’의 내용들을 확인하려는 이용자들이 많다는 것이었다. 이 조사 결과로 인해 한메일 홈에 ‘받은편지함’의 최신목록을 노출시켜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되었고, 그에 따라 우리는 한메일 홈에 강조해야 하는 영역에 대해 재설계를 감행해야 했다.
둘째는 한메일이 13년동안 가져온 세로구조 네비게이션(편지쓰기/편지읽기/ 주소록..등) 에 대해 가로구조로의 변경을 시도해본다는 것이었다.
한메일과 네이버를 제외한 많은 웹 메일들이 가로구조 네비게이션을 가지고 있는데, 한메일의 편지읽기, 쓰기, 주소록 등의 주 네비게이션을 가로구조로 바꾸었을 때 이용자들의 반응이 그다지 불편해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 점은 기존의 세로구조 네비게이션이 가로구조 또는 탭의 형태일 때 보다 덜 직관적이라는 원칙적인 유용성이 13년간 학습되어온 한메일넷 이용자들의 경험성을 크게 해치지는 않는다는 놀라운 결과였다.
결국 다시 우리는 이제까지의 모든 설정을 버리고 처음으로 돌아가 Look & Feel 보다 Usability의 결론에 따른 시안을 고민하였다.
한메일넷 시안을 한달여 기간동안 제작한 끝에 최종 디자인안이 결정되었다.
처음 프리젠테이션때 제출했던 시안의 장점 즉, 상큼한 느낌과 세로로 배치했던 주메뉴의 획기적인 긴장감을 살리고, User Research 결과를 반영하여 최종안을 정리했다.
얼마 안 남은 오픈 일을 위해 우리가 할 작업은 방대했다. 메일 화면들이 쓰기, 읽기, 주소록 말고 뭐가 있겠느냐 싶겠지만 그 속에 숨은 페이지들은 무려 300페이지에 달했다. 이 페이지들을 빠른 시간에 효과적으로 작업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웹스타일 가이드가 필요했다.
대부분의 프로젝트에서 웹스타일 가이드 작업은 초기에 설정하지만, 변화의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그리 비중을 두고 작업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각 대표페이지들의 웹스타일 가이드는 컬러, 폰트, 테이블 정렬 방식, 가이드라인 등 뿐 아니라 레이아웃에 있어서 1픽셀의 차질도 허용될 수 없었다.
특히 이번 작업물의 형태는 기존 사이트 구축형태의 프로세스와는 매우 다른 성격을 가지고 진행해온 결과물이다. 물론 많은 사이트 구축에서 있어서 USER INTERFACE의 고려라는 것은 언급할 필요도 없이 중요한 부분이긴 하겠지만 한메일넷은 더더욱 제한된 비주얼 영역 안에서의 경험성 테스트, 비주얼 성격의 반복된 실험 등을 거쳐서 한가지 컨텐츠의 위치와 성격이 결정되어지는 매우 어렵고 힘든 작업이 아닐 수 없다. 디자이너들에게 있어서는 마음껏 심미적 표현을 할 수 없는 어려움이 있지만 인터페이스와 사용자 경험이라는 구조적인 치밀함 가운데서 펼쳐가는 디자인의 새로운 깊이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였다.
석달 정도 진행된 한메일넷 개편작업동안 우리는 한메일에 심미적인 업그레이드에 대해서는 다양한시안과 스펙트럼을 제시하면서 클라이언트를 만족시켰지만 한메일팀의 마인드와 유저빌리티에 대한 세심한 룰에 대해 배운 게 참 많았다.
버튼의 위계, 기능을 알리는 몇 마디 단어들, 링크들의 중요도 순서, 위치, 컬러까지도 우리는 이용자들의 눈이 머물고 손이 가는 경로에 대해 치밀하게 학습하는 프로젝트가 된 것이다.
물론 고집어린 싸움도 많았고 애교로 서로 웃고 넘어간 것도 많았지만 어떤 프로젝트보다 ‘뭐가 맞는가’에 대해 갑을을 떠나 서로가 이토록 밤을 새워가며 토론하고 고민한 적은 없었던 듯 싶다.
또한 갑을을 떠나 이토록 논쟁을 벌이고, 마음을 합친 프로젝트도 없었다.
한메일 기획팀과 U.I팀, User Research Lab 까지 다들 최고의 편리하고 멋진 한메일 리뉴얼을 위해 서로 치열하게 논쟁하고, 치열하게 의기투합했었다.
물론 우리는 아주아주 예쁘고 멋진 메일을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예쁜 메일이냐, 더 편리한 메일이냐의 갈래를 두고 우리는 기꺼이 ‘예쁨’을 포기한 결론을 내렸던 지점이 많았다.
바뀐 U.I 와 디자인으로 혼란스러운 이용자들이 많겠지만, 이제 서서히 얼마만큼 편리하고, 친절한 메일인가에 대해 검증될 이용자들의 심판만이 남았다.
아쉬운 점들도 너무 많지만 그 동안 묻혀있었던 한메일넷의 재미있고, 풍요로운 기능들이 많이 비춰진다면 그나마 수고로움에 대한 위안이 될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