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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정책의 현실

2013-07-09


이번 주제는 우리나라의 ‘디자인 정책의 현실’에 관한 내용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디자인이 정책으로 언급되기 시작한지는 얼마 되지 않았는데요. 이번 강의에서는 디자인 정책의 역사와 필요성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고 우리나라 디자인 정책의 발전과정과 현 정책에 대해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강사 |이경돈(신구대학교 공간디자인학부 교수)
정리 | 전누리

정책이란 국가 또는 정부자치단체가 공익을 위한 행동방안을 정하고 이를 규율과 조례를 통해 국가 운영에 반영하는 것입니다. 먼저 정책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이 그림을 한 번 보겠습니다.

<그림 1> 은 우리가 흔히 보는 ‘엘리베이터 픽토그램(pictogram)’입니다. 위 사진에는 ‘손대지 마시오.’, ‘기대지 마시오.’ 라는 문장과 그림이 함께 들어 있습니다. 한번 생각해 봅시다. 픽토그램은 대중들이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간단한 그림으로 사인을 보내 행동을 요하는 신호입니다. 따라서 픽토그램만 보고도 의미를 이해하고 행동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림 옆에 굳이 문장을 쓸 거면 왜 픽토그램을 사용했을까요? 그림을 보고 이해하지 못 할 수도 있어 글씨를 함께 적어놓았다는 것은 픽토그램의 목적과 기능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오류는 디자인 교육에서 온다고 생각합니다. 디자인을 그림 그리는 기술로 보는 것이 아니라, 디자인이 사회적 의미와 쓰임을 시각 형식으로 담아 전달하는 매체라고 이해했다면 이러한 오류는 없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또한 ‘손대지 마시오.’, ‘기대지 마시오’, 그림에 사선이 그려져 있습니다. 그러면 노란 바탕색 그림은 ‘떨어지지 마시오.’라는 뜻일까요. 의미 전달이 잘못되고 있습니다. 엘리베이터에서는 당연히 기대지 말고 손대지 말아야 하지 않습니까? 이렇게 작은 픽토그램에서 우리는 디자인 교육의 현실을 알 수 있고, 사회적으로도 디자인의 개념과 역할에 대한 인식이 올바르지 못하다는 현실을 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디자인 정책의 역사

역사적으로 디자인은 언제부터 정책에 포함되었을까요? 고대 그리스의 광장과 로마의 콜로세움은 그 곳에 살고 있는 지역 주민들을 위한 공공의 장소였습니다. 개인이 아닌 그 곳에 살고 있는 지역주민을 위해 지은 건물이었습니다. 오래전 공공을 위한 도시 디자인이 시작되었고 그 장소는 현재까지 보존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은 공공을 위해 지은 건물이라도 쉽게 부숴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이것은 디자인 계획을 잘못한 결과이고, 디자이너가 잘못 설계하여 그 건물에 사는 사람들이 만족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역사적으로 보존할 가치가 없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즉 정책, 디자이너, 사용자의 3박자가 맞지 않았던 것입니다.

근대에 들어 디자인 정책은 영국에서 가장 먼저 시작했습니다. 왕립예술대학의 전신인 왕립공예대학과 런던의 디자인 박물관을 설립했고 2011년에는 여러 개의 기관으로 나눠져 있는 디자인 센터의 기능을 묶어서 디자인카운슬(the council of industrial Design, COID)이라는 공동체를 설립하였습니다. 미국은 영국과는 다르게 디자인 전문가들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 제안을 하면 그것을 받아들여 정책에 반영하는 민간 주도적인 방식입니다. 이러한 기관으로 뉴욕 디자인카운슬(NewYork Design Council)이 대표적입니다. 일본의 디자인 정책은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일상적인 물건에서도 일본 디자인이 강하게 드러나도록 유도합니다. 디자인을 국가 정책으로 삼아 일본이라는 나라를 세계에 알리고 있습니다.

이렇게 각 나라마다 디자인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디자인 정책을 펼쳐갈 때 우리나라는 어떠했을까요? 우리나라는 1970년대가 되어서야 경제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물건을 만드는 능력은 있었지만 디자인에 대해서는 잘 몰랐고, 디자인 포장센터(현재 디자인진흥원)에서 포장만 지원하는 정도였습니다. 1980년대 호황을 누리면서 도시 디자인을 시작했습니다. 겨우 형형색색으로 택시나 버스에 색칠을 하는 정도였습니다만, 80년대 후반으로 가면서 점차 확대되었습니다. 80년대 후반 삼성동 코엑스의 설립과 그 곳에서 개최된 국제 박람회는 우리나라 국민에게 디자인에 대한 눈을 뜨게 했습니다. 그리고 86년 아시안 게임과 88년 올림픽을 통해 거리정비, 숙박업소, 음식점, 종업원 옷차림 등으로 디자인이 확산되었습니다. 이렇게 우리나라는 80년대 후반부터 도시 디자인이 시작되었습니다.


디자인 정책의 필요성

각 나라에서 디자인을 정책으로 추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1960년대는 TPM(Total Product Management)시대라고 해서 많이 생산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1980년대는 물건의 질이 중요했고, 2000년대는 TDM(Total Design Management)이라 말하는 디자인을 관리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는 Made in Japan, Made in America보다 Design by who?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이폰, 아이패드를 생산한 국가나 장소보다는, 애플사의 핸드폰 디자인을 누가 했고 최신 모델은 어떤 디자인으로 나올지에 더 관심을 둔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들이 자신의 취향에 맞는 디자인 선택을 중시하고, 매스컴이 이러한 디자인 현상을 집중적으로 다루는 등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디자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다 보니 국가에서도 디자인을 정책에 포함시킨 것입니다. 그래서 각 나라에서는 디자인 진흥기관들을 설립하고 연구 내용을 채택하며 디자인을 시민에게 돌려주는 등 디자인 활동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이제 디자인은 국가나 각 지방자치정부에서 공공을 위해 추진할 수 있는 정책으로 자리 매김하고 있는 것입니다.


서울시 디자인 정책 추진사례

서울시에서 추진했던 디자인 사례들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서울은 경제 발전 논리에 집중해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 ‘하드시티(Hard City)’ 를 추구했습니다. 하지만 기능적으로만 빠르게 발전하다보니 주변에 있던 오래된 것들을 잃었고 불편한 도시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문제는 서울만이 아닌 급속히 팽창한 세계의 많은 도시가 안고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제 전 세계 도시는 기능이 아닌 자연과 인간 중심의 발달을 지향하기 시작했습니다. 무분별한 도시의 팽창, 난개발 등의 심각성을 깨닫고 계속된 확장이 아닌 슬럼가를 개발하자는 ‘뉴어버니즘(new urbanism)’ 도시 개발을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새로운 형태의 도시계획을 서울에서도 2000년대 들어 적용했습니다.

서울시는 ’소프트시티(Soft City)‘를 타이틀로 재미있는, 매력적인, 교감하는, 즐거운, 인간적인, 유니버설, 배려, 프리, 공동체 등을 포함하는 방향으로 설정하고, 이를 위해 조직을 갖추고 기준을 세워 디자인 사업을 공식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했습니다. 복지시설, 행정건축물, 문화건축물, 도로시설물, 교통건축물, 조명, 운송수단, 지시 유도 사인, 영상매체, 조각, 미술, 광고판, 문화재 야경 등 공공 생활의 주요한 것들을 정책에 포함시켰습니다.

또한 서울시는 도시 계획 중 건축법에만 포함되어 있는 경관법을 디자인 정책으로 포함시켜 간판관리법, 건축법, 토목도시계획법을 공동으로 관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예를 들어 강이 있는 쪽은 강이 보이도록 설계하고, 건물로 산을 가리지 않는 설계를 고려하며 도시 계획을 유도하고 있습니다. 또한 도시철도, 고속도로, 아파트 등을 건설할 때에도 녹지대를 배치하고, 건물을 디자인 할 때도 주변 건물들과 어울리게 디자인하도록 유도하고 있습니다.


각 나라의 도시들은 도시의 정체성을 나타내기 위해 여러 가지 활동을 합니다. 예를 들어 베를린의 상징은 곰입니다. ‘아이러브 뉴욕’ 표시를 모르는 사람은 없겠죠. 세계적으로 유명한 도시들은 고유의 서체와 색, 도시의 상징(emblem)을 만들고 있습니다. 서울시도 서울의 색채, 서체, 엠블럼인 해치를 만들어 서울의 상징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또한 서울시에서는 스타일만이 아니라 기능도 함께 생각하며 디자인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신호등 체계를 개선하여 신호등의 개수를 줄이고 통합하여 하나로 집중 배치하였죠. 신호등이 줄어드니 기둥도 줄어 서울 거리가 한결 간결하게 정리되고 편리해졌습니다.


환경미화원 옷도 과거보다 가격이 1.5배 비싸지만 움직이기 편하고, 계절 변화에도 쉽게 적응할 수 있도록 디자인 되었습니다. 또한 자동차 사고 피해를 줄일 수 있도록 색채도 고려되었죠. 그 밖에 공중화장실, 쓰레기 소각장, 시장 등도 디자인 정책에 포함하여 정비했습니다.

서울시의 디자인 정책은 보이지 않는 작은 것에도 있습니다. ‘턱이 없이 미끈하게, 컬러는 빼고 단순하게, 장식은 배제하고 기능중심으로’, ‘통행에 불편 없게’, ‘화려한 장식은 사용하지 말고 교명조(다리의 이름)양식을 간단하게’, ‘방음벽은 나무를 활용한 녹화방음벽으로’ 등의 계획을 세우고 실행했습니다. 서울시는 이러한 계획을 모두 종합해서 우리 디자인의 우수함을 많은 사람들에게 홍보하고 디자인을 함께 공유하고자 ‘동대문디자인 플라자’를 건축하고 있습니다.


서울시는 2007년 ~ 2008년부터 디자인관련 사업을 시작했고 ‘세계디자인수도’로 선정되었습니다. ‘세계디자인수도’는 시범 도시인 이탈리아의 토리노를 시작으로 2010년에는 서울, 2012년 헬싱키, 2014년에는 아프리카 케이에프타운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세계디자인 수도 선정은 세계에서 서울시가 디자인정책을 통해서 발전하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서울은 유네스코에서 지정하는 세계 10대 디자인 창의도시로도 선정되었습니다. 이처럼 서울은 세계 10대 도시에 들어가는 선진국으로 앞에서 언급한 사례들을 포함하여 디자인과 관련된 많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우리나라에서 디자인 정책 활동은 다른 나라에 비해 늦게 시작되었습니다. 영국이 디자인 법을 만들고 디자인 박물관(Design Museum)을 만들었을 때 우리는 조선시대였습니다. 미국에서 가난한 예술가를 살리기 위해 건물 앞에 미술작품을 두는 예술 정책을 시행했을 때 우리나라는 전쟁이 끝나고 조금 지난 후였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나라는 이미 다른 나라의 디자인 정책을 따라 잡았고 디자인을 국가 프로젝트에 포함시킨 다른 어떤 나라보다 훨씬 훌륭하게 프로젝트를 시행하여 그 결과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디자인 정책의 주관 기관

우리나라의 디자인 정책은 서울시만이 아니라, 각 행정부서도 각기 역할을 맡아 진행하고 있습니다. 지식경제부에서는 ‘한국디자인진흥원’을 운영하며, 환경디자인 개선사업, 공공디자인 개발사업, 간판 가이드라인, 디자인 컨설팅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또한 최근에는 디자인보호법에 포함되지 않은 영역에도 디자인 지원이 될 수 있도록 관련법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문화관광부에는 ‘한국 디자인공예 문화재단’에서 디자인을 지원하고 있으며 국토해양부에는 ‘국토연구원’과 ‘건축 도시 공간연구소’를 두고 ‘살고 싶은 도시 만들기’, ‘복합도시 만들기’라는 테마로 도시 시설물을 관리합니다. 특히 새로 들어선 ‘행복도시(행정중심복합도시의 준말)’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디자인을 도시 계획 설계에 포함하여 추진한 프로젝트입니다. 행정안전부는 ‘한국 공공디자인 지역재단’을 설치해 간판에 관련된 디자인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외교통상부에는 2012년에 오픈한 ‘국제 외교디자인 교류재단’이 있고, 농림수산부에는 농촌마을을 중심으로 건축과 조경, 색채, 디자인과 관련된 지원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국가기관에서 이렇게 다양하게 디자인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까? 문제점은 각 부서마다 제각각 디자인과 관련된 정책을 펼치다 보니, 서로 중복되어 체계적이지 못하다는 면이 있습니다. 최근에는 디자인 관련 정책을 통합하면서 각 부서의 특징에 맞게 분야를 지원하자는 방향으로 의견을 모으고 있습니다. 또한 중복되고 하나에 집중되어 있지 않은 많은 디자인 학회와 단체들도 규합해서 디자인 분야를 더욱 발전시키자는데 의견을 모으고 있습니다.


공공을 위한 디자인 정책 참여

숲을 거닐다가도 앉을 수 있는 휴게공간이 있으면 좋겠죠? 이렇게 숲과 공원에서도 사람들끼리 서로 마주보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장소를 만드는 것이 정책입니다. 또한 강변을 바라보면서, 산을 바라보면서 앉을 수 있도록 배치를 고려하는 것도, 컬러와 형태를 주변과 어울리게 조절하는 것도 정책입니다. 디자인 정책은 우리의 일상 삶 전반에 관한 것이라, 정책 결과로 눈에 띄게 보일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항상 디자인은 생활의 질을 높이는 충분한 기능을 하고 있습니다. 디자이너 대부분이 디자인을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물건을 만드는 것에만 몰두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그치지 말고 디자인을 국가 정책적으로 추진한다면, 우리 삶의 역사를 더욱 빛나게 하는 길이 될 것입니다. 정책은 국가가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는 디자인은 누구를 위한 것입니까? 인간을 위해, 국민을 위해, 사회적 약자를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나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한 것입니다. 절대 나라고 생각하면 디자인은 대한민국에서 정책으로 자리 잡지 못합니다. 우리 것이라고 생각해 주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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