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6-10
얼마 전 가까운 친구가 재미난 소식을 알려줬다. 사진 공유 사이트 플리커(www.flickr.com)에 올린 자신의 사진을 미국의 꽤 유명한 광고대행사에서 구입했다는 것이다. 소프트웨어 개발 회사 광고에 들어갈 이미지인데, 스튜디오에서 조명을 설치하고 모델을 섭외해서 찍은 것도 아닌 똑딱이 카메라로 지하철에서 우연히 찍은 사진이었단다.
물론 전문 포토그래퍼에게 의뢰한 것보다는 저렴한 금액이었겠지만 자신이 들인 노고에 비하면 아주 후한 금액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요즘 이런 일이 적지 않은 것 같다. 그러니까 차별화된 이미지로 승부하려면 다른 디자이너들도 찾는 게티이미지 같은 유명 사진 제공 사이트로는 조금 부족하다는 것이다. 아마도 플리커나 기타 유사 사이트가 형성하는 커뮤니티가 이런 대안을 제시해주는 듯하다. 온라인 커뮤니티는 그 자체를 어떤 독립적인 매체로 인식하기엔 아직 부족한 점이 없지 않다.
그러나 그저 하위 문화 정도로만 여기고 다른 쪽으로 고개를 휙 돌려버린다면 많은 것을 놓칠 수 있다. 예를 들어 그래피티 문화가 그렇다. 하위 문화 중에서 가장 하위였던 길거리 낙서가 어느새 최상위 유행이 되었으며, 이젠 주류 문화에 속해버렸다. 재미난 것은 그래피티를 주류로 승격시킨 장본인은 보드를 타거나 벽에 그림을 그린 10대들이 아니라, 저 높디높은 고층 건물에 숨어 있는 마케터와 경영진이란 점이다.
그들이 발굴해 유행시키고 결국 주류 문화에 편입시킨 그래피티처럼, 끊임없이 웹사이트를 돌아다니면서 앞에서 언급한 내 친구의 사진 같은 것을 찾아내고 결국 유행이 되는 수순을 밟는다. 그런 의미에서 디자이너에게 온라인 커뮤니티의 프로모션적 의미와 형태는 무엇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세상에는 즐겨찾기를 해도 해도 끝이 없을 만큼 방문해봐야 할 디자이너의 멋진 사이트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지금까지는 개인 사이트나 회사 사이트에 직접 찾아가야만 그들의 작업을 볼 수 있었지만, 최근 꽤 인기를 끌고 있는 몇몇 블로그는 그런 수고로움을 극단적으로 덜어준다. 그것도 아주 따끈따끈한 데다 우연히 그들의 좋은 작업물을 만나는 발견의 즐거움마저 준다.
‘나는 매일 아침 매니스터프를 체크한다(Every morning I check Manystuff)’라는 슬로건의 매니스터프(www.manystuff.org)가 좋은 예다. 매일 오전 1~2개의 디자이너 사이트를 소개해주는데, 달랑 이미지 한 장과 그 작업을 한 디자이너 혹은 디자인 스튜디오를 링크해둔 게 끝이다. 그 사진을 보고 마음에 들면 클릭해서 방문해보고, 마음에 안 들면 다음 이미지로 넘어가면 된다.
지난 5월 19일에는 사샤 레오폴드(Sacha Leopold)라는 미국 디자이너를 선택했다. 매일 아침 한 번씩 들러볼 가치가 충분히 있다. It’s nice that(www.itsnicethat.com)이란 사이트는 한 수 더해 링크 걸린 사이트에 짧은 코멘트도 달아준다. 예를 들어 “내 친구의 동창 사이트인데 아주 귀여운 작업이 많다.”라는 짧은 소개 글과 함께 링크가 걸려 있다. 주로 그래픽, 일러스트레이션, 북 디자인에 집중된 매니스터프에 비해 제품, 영상, 패션 등 카테고리가 다양한 편이다.
이들 사이트는 돈을 받고 디자이너를 소개해주는 게 아니라 블로그 운영자가 ‘실력’을 보고 간택한다(주인의 취향이 많이 반영되긴 한다). 주목할 만한 점은 이 사이트로 인해 자생적인 디자이너의 교류도 일어나지만 프로젝트 러브콜을 받는 디자이너도 생기는 등 구인구직이 쏠쏠하게 일어 난다는 점이다. 즉, 디자이너들이 꼬물꼬물 몰려 있는 온라인 벼룩시장쯤 될까? 학생들의 작업도 소개하지만 어느 정도 실적과 실력이 있어야 게재하기 때문에 최근의 디자인 추세를 재빨리 가늠하기에도 더없이 좋은 소스다.
당연히 전 세계 디자이너의 작업을 구경할 수 있다. 업데이트도 빠르고 그날 소개되는 사이트가 어떤 것인지 모른다는 점에서 자꾸 들락거리게 만든다. 이 외에도 디자인 담론의 장으로 디자이너들에게 이론적 근거를 마련해주는 디자인 옵저버(www.designobserver.com), 직접 디자이너를 인터뷰해 포드캐스트로 다운 받게 해주는 디자인 매터(debbiemillman.blogspot.com)는 이미 디자이너가 꼬이는 유명한 커뮤니티들이다. 커뮤니티가 꼭 특정 장소에 회원을 모집해 시작할 필요는 없다. 우리에겐 시공간을 접을 수 있는 인터넷이란 아주 편리한 매체가 있으니까.
기사제공 | 월간디자인
글/ 박경식(디자인 마니아)
기획·진행/ 전은경 기자, 권혜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