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10-19
두부쩜넷(http://www.duboo.net)을 클릭한 순간, 익숙한 듯 하면서도 무척 낯선 세계로 들어선 느낌이다. 깔끔한 홈페이지는 이곳 저곳을 클릭하다가 길 잃을 필요도 없이 구성자체가 심플하다.
그런데 볼수록 빠져드는 묘한 끌림이 있다. 두부(DuBoo)가 전해주는 상상의 기발함은 삭막한 정신과 메마른 감성에 동화적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 이국적이면서도 동양적인 생김새를 지닌, 순수한 아이의 영혼을 지니면서도 묘한 악녀의 기질이 엿보이는, 이중적인 캐릭터가 바로 ‘두부’다. 일상 속에서 느끼는 건조한 갈증에 시원한 소다수를 건네주는 두부와의 만남. 그리고 이야기.
취재ㅣ 박현영 기자 (maria@yoondesign.co.kr)
젊음이 숨쉬는 거리, 자유로움이 용솟음치는 홍대앞에서 만난 한세진씨는 휴대폰을 소지하지 않고 다니는 요즘 보기 드문 젊은이다. 왜 휴대폰을 가지고 다니지 않느냐라는 질문에 그녀는 간단하게 답한다.
“방해받기 싫어서요.”
그렇다.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그녀는 사람과의 가장 빠른 커뮤니케이션 수단이라고 자부하는 나의 휴대폰에 대한 과한 집착을 허무하게 만들어버렸다.
하루라도 휴대폰을 집에 놓고 오는 날이면 온종일 어떤 전화가 왔을까, 급한 전화는 아닐까…등등의 번민(?)에 사로잡히곤 하니 말이다.
그래도 약속을 정하고 사람을 만날 때 좀 불편하지 않을까요? 라며 은근히 휴대폰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나. 그러나 그녀의 답변은 역시 명쾌했다.
“그래도 약속은 잘 지켜요^^”
두부는 그녀가 창조한 일러스트 캐릭터이자 그녀 자신을 지칭하기도 한다. 학교 때 별명은 물론 넷상에서도 ‘두부’로 통하는 그녀는 동화 일러스트 작가이다.
생각보다 꽤 다수의 출판물에서 그녀의 그림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녀가 창조해 낸 ‘두부’와 ‘마누’는 고정적인 매니아층과 다수의 독자가 존재할 만큼 제법 알려져 있다. 현재 두부((www.duboo.net))와 마누(www.manoo.co.kr) 2개의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200여 개가 넘는 사진을 클릭하다 보면 어느새 오른쪽 마우스를 연신 눌러대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그녀의 일러스트 작품은 내 컴퓨터에 고스란히 옮겨질 정도로 보는 순간 소장하고 싶은 욕구에 사로잡힌다. 현재 그녀는 2003년부터 동화책 일러스트를 그려오고 있고, 월간 ‘보그걸(vogue girl)’에서 visual art를 연재하면서 많은 사랑을 받아온 ‘마누(manoo)’의 본격적인 캐릭터 개발이 한창이다.
또한 11월 중순에는 마누가 이야기하는 캐릭터 제작 관련책이 출간될 예정이어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홈페이지는 언제, 어떤 계기로 오픈 했는가?
처음에는 남들처럼 포트폴리오를 보여주기 위한 용도로 홈페이지를 시작했다.
그러다 사람들이 한 두 명씩 들어오면서 그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이 재미있어서 계속 유지를 하게 되었다. 2001년 1월에 오픈 한 이후 리뉴얼을 4-5번은 했다.
->두부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먹는 ‘두부’를 말하는 것인가?
두부는 원래 내 별명이었다.
원래 두부를 좋아하고 얼굴이 하얗고…그래서 불려진 것 같다.
아이디도 두부이고…
홈페이지를 처음 개설할 때 도메인을 무엇으로 할지 고민하다가 그냥 두부로 정했다.
홈을 처음 오픈하고 이름에 대한 질문을 가장 많이 받았다.
->캐릭터와 일러스트를 하게 된 계기는?
전공은 광고 멀티미디어 디자인이었다.
그러나 원래 캐릭터나 일러스트에 관심이 많았다.
학교 다니면서 전공 이외에 따로 일러스트 공부를 했고, 일러스트 수업이 한 과목 있었는데
그 수업은 정말 열심히 들었다.
그림을 처음부터 잘 그린 것은 아니었다.
노력을 많이 했고, 타고났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출판사와 일을 하게 된 계기는?
홈페이지의 포트폴리오를 보고 연락을 많이 주셨다.
거의 80%이상이 홈페이지를 보고 일이 이루어졌다.
일한 것을 올리고 그것을 보고 또 연락이 오고… 그렇게 해서 나를 더 알리게 되었다.
->현재 홈에는 캐릭터 보다는 일러스트 작품이 더 많이 있는데…
현재 홈페이지에는 2003-4년 작품만 올려져 있고 리뉴얼을 하면서 그 이전 작품을 누락시켰다.
그 이전에는 캐릭터 작품이 더 많았다. 캐릭터와 관련해서는 마누(www.manoo.co.kr)홈페이지를 따로 운영하고 있다.
마치 캔버스 위를 뛰어놓는 천진난만한 아이들처럼 순수한 영혼과 아름다운 색채로 환상적인 일러스트를 보여준다. 이전에는 쉽게 볼 수 없던 스타일로 출판사에서도 ‘변화’라고 할 만큼 독특한 그림임에는 틀림없다. 또한 무섭다라는 말까지 들었을 정도로 범상치 않은 눈빛을 지녔다.
출판사 이아소의 “러브러브 레인보우” 일러스트작업을 비롯하여 교원, 지학사, 대한교과서 등의 출판사의 학습지와 동화책의 표지 및 삽화 일러스트 작업을 해온 그녀는 아이들의 시각에 맞추기 위해 노력을 하는데, 워낙 동화책을 좋아하고 어린이들용 학습 비디오나 애니메이션 등을 즐겨 본다고 한다.
특히 ‘낙서’가 일러스트에 많은 도움이 된다고 한다.
예전에 그렸던 것을 버리지 않고 가지고 있다는 그녀는 예전에 그린 그림을 통해서 아이디어를 얻고 또 지금 그린 것이 몇 년 후에 아이디어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두부에 대해 주위에서 ‘캐릭터가 심상치 않다’, ‘악동스럽다’ 라는 평을 듣는다고. 또한 이국적인 분위기에 대해 그녀는 지극히 동양적인 부분도 있다고 한다.
예를 들면 미간이 넓고 낮은 코랄까.
동화 속에서나 있을 법한 신비로운 모습을 지닌 아이? 혹은 여인. 그리고 이국적이면서 동양적이기도 한 복합적인 분위기. 아이의 순수함과 성인의 악함(?)이 공존하는 듯한 그녀의 일러스트 작품들은 그녀가 지닌 순수한 마음과 늘어가는 삶의 무게와 연륜이 만들어낸 대상이 아닐까?
일상이 모든 소재가 되는 그녀에게 캔버스는 따로 필요 없는 듯하다.
짧은 여행에서조차도 아름다운 피사체를 버리지 못하고 프레임 가득 담아온다.
그리고 그 추억이 고스란히 홈페이지에 남겨진다. 지난날의 사진을 보면서 아련하게 떠오르는 추억들.
그녀의 홈을 방문하는 낯선 이들에게는 한번쯤 찾아가고픈 희망의 장소로 변한다.
인형을 캐릭터로 활용한 사진을 2003년 보그걸에 연재되면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마누(manoo).
마누는 현실에 없는 상상속의 캐릭터로 인간세상에 내려와 인간과 친해진다.
11월 중순 책으로 출간되며 싸이월드 스킨으로도 제작 예정인 마누는 마시마로, 뿌까 등에 이어 사랑받는 국내 순수 캐릭터로 비상할 준비를 하고 있다.
좌우대칭 짝짝이 눈을 지닌 마누는 강아지라고도 하고 팬더라고도 한다. 그 생김새를 보면 둘 다 맞긴 한데… 정확히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녀는 상상력에 맡기란다.
마누는 이렇듯 상상력에 따라, 즉 생각하기에 따라 강아지가 될 수도 있고 팬더가 될 수도 있다.
아니면 제3의 다른 동물이 될 수도 있다. 정해진 설정 없이 한없이 자유로운 대상. 상상력을 키워주는 매개체임이 분명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으로 그녀는 한 초등학생의 메일을 꼽았다.
마누홈페이지에 매일 일기형식으로 메일을 보내고 있다는 것.
마누가 마치 실존 인물이라고 여기는지 “마누야~” 로 시작하는 메일에는 자신의 소소한 일상이 담겨져 있다고 한다. 그래서 그녀는 답장을 보냈다고. 마누인척(?)하고 말이다.
아이의 동심을 깨뜨리지 않는 그녀의 순수함이 엿보인다.
그녀가 그린 그림이 하나의 책으로 완성되고 아이들에게는 꿈과 희망을 준다.
종이뿐만 아니라 나무에도 그림을 그리곤 하는 그녀는 특정한 틀에 얽매이는 것을 싫어한다.
요시토모 나라를 많이 좋아하고 바스키아의 낙서적인 그림과 구스타프 클림트의 장식적인 그림에 영감을 받았다는 그녀.
두부와 마누가 함께 있는 그 공간에 들어서 보면 문득 거침없이 떠오르는 상상력을 발휘해보고 싶어진다. 그것이 설사 낙서가 될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