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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l of Design - 1회 대량생산 속의 디자인 (총3회)

2004-07-13

우리의 실생활에 넘쳐나는 디자인된 물건들은 사회의 일정한 원칙과 방식에 의하여 생산되고 소비 된다.
그리고, 디자인의 발상으로부터 디자인의 보급까지 이 대량생산방식에 의존하는 것은 우리의 1세기 동안 지속하여온 자본주의 부산물로 이해 할 수 있다. 또한, 디자이너에게 있어서 자신의 작품을 생산 한다는 것과 그것을 대량생산 한다는 것은 디자이너에게는 최종의 목표로 이야기 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의 많은 경우 대량생산이라는 의미는 대부분 단지 생산과 소비라는 하나의 루프적인 의미로서 생각되고. 당연한 것으로 받아 들여지고 있는 지도 모른다.
그 속의 디자인이 걸어가는 지금의 한걸음 한걸음이 무언가 결정할 수 없는 복잡함을 수반하는 스파게티 증후군에 미쳐 있지만 그러나 디자인은 또 하나의 새로운 흐름을 만들기 위해 한걸음 한 걸음 조심스럽게 내딛고 있다.

인테리어라는 것은 크게는 실내의 디자인을 의미하는 것이며, 작게는 실내의 모든 것을 디자인하는 것을 인테리어라는 의미로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인 인테리어의 의미이다.
결국, 우리가 입고 있는 옷으로부터 출발하여 공간의 구상까지를 인테리어라는 의미에 포함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생산이라는 최종의 피할 수 없는 선택을 가지고 우리의 생활 속에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좋든 싫든 이 대량생산 방식에 의하여 현재의 대부분의 디자인은 생산되고 소비된다.
이러한 피할 수 없는 생산의 방식은 1920년 이후 미국식 생산방식 즉, 대량생산 방식 (mass-production)이라는 형태로 직간접적으로
우리가 사는 사회에 많은 영향을 끼쳐 온 것은 사실이다.
1925년 이후 기술의 급격한 발전과 과학이라는 문명의 충돌 속에 대량생산은 많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시대를 여는 유일한 열쇠로 생각하였으며, 하나의 신앙의 체계를 가진 모습으로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일본의 건축 이야기는 아니지만 옷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인체를 감싸는 하나의 공간이라는 의미로 생각될 수 있다라고 생각한다.
최근의 일본의 젊은 디자이너 Dai Fujiwar와 Issey Miyake의 공동 작업물인 A-POC는 산업 디자인과 패션 디자인이라는 부분에서 많은 발상의 원점을 제시하고 있다.

Issey Miyake의 자신의 디자인의 데마 인 창조적인 자극과 지혜, 무한함 이라는 브랜드의 이미지는 그의 새로운 파트너인 Dai Fujiwar에 의하여 새로운 길로 접어들고 있다.
Dai Fujiwar에 의한 A-POC의 디자인의 제한은 방적기에 의한 끊임없는 한 장의 천의 생산으로부터 출발한다.
A-POC가 말하는 끊임없는 한 장의 천이라는 것은 절단되어지지 않는 정보의 무한성을 포함하는 천이다.
천이라는 것은 한 올 한 올의 실로 얽어져 구성되는 패턴에 의하여 옷을 구성하고 그 구성은 하나의 천의 모습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손에 넣을 수 있는 천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천에 의하여 만들어지는 옷의 구성은 한 장의 천의 길이로서 나누어 생각할 수 있고, 그 천의 길이는 핸드백, 모자들의 다양한 기능과 형태를 지는 모습으로 무한히 변형 될 수 있는 속성을 가진다.

Dai Fujiwar와 Issey Miyake의 디자인의 의미는, 이런 천의 의미는 적든 많든 지금까지의 천이라는 개념, 즉 방적공장에서 만들어낸 흰색의 천에 물들인 천과 그 천에 프린팅한 한 장의 패턴, 즉 한 장의 천으로 하나의 옷을 만들자는 이야기로 축약 할 수 있다.
이것은 의류생산의 전통적인 생산 방식과 새로운 도전의 기술적인 접근으로부터 Dai Fujiwar와 Issey Miyake는 새로운 디자인으로 제안하고 있다.

A-POC가 지향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제단 되지 않는 옷의 생산이다.
이 제단 되지 않는 옷의 의미는 크게는 각개인의 다양한 인체적인 특성을 신축성 있게 받아들이는 옷을 의미하는 것이며, 크게는 나노테크롤로지와 바이오 테크놀로지에 의한 새로운 천의 생산과 새운 재료의 도입을 열망하는 디자이너의 목소리 일 것이다,
그리고, 20세기의 과학과 기술의 랑데퓨를 넘어 디자인과 과학, 기술, 생산의 결합을 의미하는 것일 것이다.
이 A-POC의 이러한 디자인의 제안을 정보의 빈약과 경험의 부족이라는 과제를 안고 있지만, A-POC의 디자인은 단계적인 접근으로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여 나아가고 있다. 현재 시제품으로 판매되고 있는 A-POC의 제품들은 스웨터의 형상으로 Dai Fujiwar와 Issey Miyake의 개념을 착실히 반영하여 나아가고 있으며, 이러한 단계적인 실험과 각계의 융합된 도전은 새로운 시대의 디자인의 정신으로 이야기 되어 질 수 있을 것이다.

일상 속에는 많은 사물들의 전시장이다. 우리사 사용하는 종이컵으로부터 의자들로 이어지는 모든 인간 생활의 모습은 자신의 생활의 패턴과 당 시대의 일반적인 생활의 패턴을 반영한다.

또한 현대의 디자인은 디자인을 단지 보여지는 디자인이 아닌 즐기는 디자인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단지, 보기 좋다라는 의미는 우리의 생활을 의미 없는 디자인으로 넘쳐나는 생활의 공간으로 만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우리는 그것을 디자인이라는 것으로 인식하고 최고의 걸작으로 불리며 때로는 히트 상품이라는 것이라는 자본의 달콤한 언변에 너무나 많은 생각들이 마취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일상 생활 속의 디자인의 의미에서 Alash Kaynama의 디자인의 작업은 아카데미즘의 순수성으로 이해 될 수 있다. 그가 이야기하는 디자인 속의 아카데미즘의 순수성은 생각의 구도이다.
즉, 아이디어라는 디자인의 발상은 거대 구조와 하부구조라는 생각의 구조를 가지며, 그가 생각하는 거대 구조는 아카데미즘으로 대변되는 순수한 생각의구조외 아이디어 그리고 하부구조인 실생활의 적응의 구조로 이야기되는 의미를 지닌 것이다.

생활 속의 의자라는 것의 최소한의 기능은 사람을 안게 하는 것이다. 즉, 휴식을 취하기 위해 앉을 수 있게 하고 식사를 위해 앉을 수 있게 하는 것인 의자의 최소한의 기능이다

그러나 현재의 인테리어 공간 속에 의자가 가지는 의미는 자신의 고유한 의미를 지니며 낮은 테이블은 의자에 종속된다. 하지만 이것은 몸이 지니는 인체에 대한 의미의 연결은 아닌, 의자와 사용자의 상호적인 의미를 받아들이는 자세에 기인 한다.
현대의 의자들은 어디까지나 앉기 위한 최소한의 기능보다는 사교성과 대화를 강조하며, 자세를 자유롭게 하는 기능적인 의자들로서 실 생활에 투입 된다.
이 새로운 기능의 이미지는 인체적인 자세를 비난 하기 보다는 현대의 사회구성원이 일반적으로 취하는 자세를 이미지화하고 생산하는 것으로서 최종적인 디자인의 의미를 가진다.

일본의 인테리어 디자이너인 SCHUWA TEI 의 의자 디자인은 이러한 현대 산업 사회 속의 디자인의 한 부분을 반영한다.
그가 디자인하는 의자는 사회 구성원의 모습과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인식을 착실히 반영하고 있다.
1999년 이후의 SCHUWA TEI 에 의한 디자인은 밝은 색깔과 철의 재료적인 모습으로 각 실내의 요소들과의 조합으로 의자라는 요소의 재인식을 시도하고 있다.
결국 SCHUWA TEI 의 디자인은 사회 구성원의 생활의 모습과 시대의 요구를 반영하며 의자를 구성하는 나무 재질 속의 얇은 선의 사용으로 역설적은 구성을 만들어 내고 철과 나무라는 재료의 다층 계열 속에 통합을 만들어 내고 있다.

가구가 실내에서의 제1의 구성요소 라 한다면 제2의 구성요소는 전기 제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의 SCHUWA TEI 의 디자인은 제2의 가구에 자신의 디자인을 투영하여 들어 간다.
1999년 AXIS에 소개된 파나소닉의 CD플레이어 디자인은 대량생산의 축약적인 의미를 잘 반영하고 있다.
CD플레이어의 단순한 기능에 충실한 이 디자인은 많은 찬반의 목소리가 많았지만 결국, 단순 선의 조각으로의 전향이라는 그의 전환적인 계기를 만들어 내고 있다라고 평가 되고 있다.

P-case로 불려지는 CD플레이어는 간단하게 디자인되어 있다. 그 간단함은 때로는 중후하고 강한 호소력으로 사용자를 매료시킨다.
단순한 사각형 박스 안의 기능은 현대 산업 사회의 전형적인 디자인을 말하고 있는 것 같이 보이나 흰색의 최소한의 기능의 통합은 현대 사회의 산업과 소비라는 새로운 장식의 의미의 해체적인 접근을 의미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의 디자인 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Tokujin Yoshioka의 작업은 다른 일본디자이너와는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작업을 하는 디자이너이다.
그의 작업에 중심이 되고 있는 모양과 색깔이라는 두 개의 도식으로 표현되고 시각화 라는 것에 그는 많은 물음과 새로운 디자인을 제안하고 있다.
그의 디자인은 캡슐안 봉합된 한정된 공간 속의 기능과 심미적인 감성의 열정 사이에 아르누보의 예술적인 특성의 리바이벌을 다자인한다.

즉, 그가 이해하는 공간 속의 디자인은 색, 실체, 입체감, 공간, 이 ‘분위기의 담론’은 동시에 많은 체계적인 수정을 통하여 모든 요소들에 영향을 미친다 라는 것이다.

분위기의 제계적인 수정이란 사물이 배치된 공간 속에서 각 사물을 움직이는 요소로서 이해한다는 것이다. 이 움직이는 요소로서의 공간의 분위기는 하나의 요소를 특수하게 다루는 데서 생겨 나지 않으며, 한 요소의 아름다움이나 추함에서 생겨나는 것도 아니며, 논의의 대상이 되지 않는 취향과 색의 일관성 없는 주관적인 체계와 관련이 있다고, 이해 되는 디자인인 것이다.

결국 그의 디자인의 행위는 분위기를 개념화하며. 사용자에 의하여 인식되는 분위기는 각자의 인식에 의하여 시간적인 기능으로서 파악되는 것이다.
또한, 이것은 시각에서 인식하는 빛에 의한 것이며 결국 인산의 감성의 표현으로 체계적으로 분위기라는 의미로 정의 지워진다. 그러나 현대인의 생활환경의 분위기는 그 어떠한 인식의 조건에도 부합되지 않는 그 무언가의 조직적인 은폐 행위가 수반된다.
그 은폐 작용은 소비와 자본의 창출, 그리고 광고라는 마법에 분위기의 정답화와 인식의 고정을 수반한다. 인식의 고정은 스타일의 교환을 끊어내며 즐기고 행동되는 디자인이 아닌 소비되는 디자인으로 이끌어 낸다.

현대 디자인과, 일본 디자인 속의 생산 과소비의 1회의 연재가 마쳤다,
생산이라는 것이 의미하는 바는 여기에 쓰여져 있는 것 과같이 많은 것을 의미하는 것 같아 보이는 하나의 트릭을 가지고 있다.
독자 여러분들이 디자이너 이길 바라는 이상 디자인의 생산은 곧 양산되는 시스템에 복속되는 현대 자본주의틀 속에 종속되지 않으면 안되는 그 무언가가 존재한다. 그 무언가를 풀기 위해 전시대의 디자이너들은 무수한 이론을 만들었고, 소멸되고 있다.
디자인 그리고 공간, 인간의 삶을 지배하는 것은 과연 무엇인지 한번 생각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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