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4-14
마당 한 켠, 물이 고인 구덕이 보인다. 정갈하게 깎인 돌 구덕에는 조그마한 수도꼭지가 달려있다. 저 작은 곳에서 누군가는 아침 해를 등으로 받으며 맑게 고인 물에 얼굴을 씻었을 것이다. 이렇듯 경험해보지 못한 옛 이야기들은 저마다 자길 들어달라며 이곳 저곳에서 아우성을 친다. 묵직한 나무대문에서, 까만 고무신이 놓인 섬돌 위에서, 네모나게 하늘을 가린 처마 사이에서. 재단법인 아름지기가 소유한 안국동 한옥은 구석구석이 이야기로 가득한 곳이다. 이렇게 세월을 담아내는 이야기 말고도 그들이 만드는 새로운 이야기들 역시 흥미롭다. 서울 속 북촌 한옥의 정취를 담아내는 안국동 한옥과 길손들의 쉼터가 되는 함양한옥, 새롭게 진행하고 있는 시인 이상의 집터 이야기까지 말이다.
에디터 | 이은정(ejlee@jungle.co.kr)
삼청동 초입, 정독도서관과 가회동 헌법재판소 사이에는 있는 듯 없는 듯 한옥 한 채가 숨어있다. 지금의 아름지기를 태동시킨 공간인 안국동 한옥이다. 윤보선 대통령의 생가 행랑채였던 이 곳을 아름지기가 넘겨받은 것은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인 2001년의 일. 낡은 한옥이었던 이 곳은 이젠 돌려 앉으면 스무 명 남짓한 사람들이 서로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랑방 같이 정겨운 공간이 되었다. 아름지기 사무국의 배지운 실장은 이곳 안국동 한옥과의 첫 만남을 이렇게 회상한다.
“마냥 이 집이 예뻤어요. 어느 곳이든 첫 느낌이라는 것이 있잖아요? 처음 면접 보러 왔을 때 이 동네가 좋고 이 집이 좋아서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요. 그 당시에는 북촌이라는 말이 많이 쓰이지 않았고, 대신 안국역 근처나 가회동이라고 지칭되었어요. 그 안국역, 가회동 일대에 한옥들이 참 많았는데 낡고, 춥고, 살기 힘든 그런 집들이 많았죠. 그런데 이 집은 너무나 예쁘고 번듯하고 불편하지 않았는데 그게 너무 신기하고 좋았어요. 이 곳을 통한 새로운 가능성도 보이고… 그렇게 일을 시작하게 되었죠.”
아름지기들이 안국동 한옥을 두고 가장 고민한 부분은 이 건물의 쓰임새였다. 2001년 즈음부터 북촌 가꾸기 사업이 시작되고, 조금씩 한옥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사람들이 안국동 한옥을 롤모델처럼 참고하기도 했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을 넘어선 의미를 찾는 일. 그들이 가장 집중한 부분은 안국동 한옥이 가진 생활공간다운 면모였다. 그간 이곳에서 진행된 가구 전시와 복식 전, 도시락 전 등은 이러한 안국동 한옥의 매력을 살려 기획된 전시였다고. 지금도 이곳에서는 생활공간으로써의 소소한 매력을 살린 전시와 공연들이 이어지고 있다.
안국동 한옥이 북촌형 한옥으로써 도심에서의 한옥의 기능을 보여주었다면 함양한옥은 그 성격이 조금 다르다. 안국동 한옥을 기반으로 한옥 운영의 자문과 컨설팅을 담당하던 아름지기 사무국에 함양한옥의 기증의뢰가 들어온 것은 2003년의 일. 그간 아름지기의 활동을 눈 여겨 보던 한 독지가로부터였다. 어린 시절 본인이 나고 자랐으나 이제는 더 이상 아무도 살지 않고 선대 할아버지의 언질 때문에 쉽사리 처분할 수도 없는 그 곳을 아름지기가 뜻 깊게 사용해달라는 부탁과 함께였다고. 아름지기들은 새로운 고민에 빠진다. 위치상 사무실이나 전시시설로 사용되기엔 힘든 이 고택을 어떻게 사용할지를 놓고 다양한 의견들을 나눈 끝에 그들은 이 곳을 한옥문화체험관으로 사용하기로 결정했단다.
“다양한 고민들이 있었어요. 먼저 한옥숙박시설이 가진 장점에 대해 고민해봤죠. 한옥에는 콘도나호텔에서 찾아보기 힘든 정취가 있어요. 하지만 씻고 자는 것이 불편하고 방 간 소음이 엄청나다는 단점이 있죠. 그런 단점들의 개선사례들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비슷한 콘셉을 가진 다른 사례를 찾아서 일본 료칸 답사를 갔지요. 료칸은 일본의 전통 숙소인데 한옥숙박과는 다르게 고급숙박으로 인식되고 있어요. 여러 가지 주목할만한 차이들이 많았는데 그 중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바로 서비스였죠. 그렇다면 함양한옥이 어떤 모델이 되어야 할까를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한옥 호텔과 같은 개념의 숙박시설이었어요. 그래서 방이 아닌 채 별로 집을 대여해드리기 시작했어요. 함양한옥은 안채와 사랑채, 이렇게 두 채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여기에 서비스 시설인 목욕채와 식당채를 만들었습니다. 회전율을 높이려면 방 별로 대여하는 것이 맞아요. 하지만 이 집만이 가진 고유성을 살리고 이 공간의 소중함을 느끼게 하기 위해서는 채 별로 충분히 이 곳을 느끼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북촌개발 이후 그 일대를 둘러싸고 있는 삼청동과 부암동, 서촌 일대에 대한 관심도 역시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특히 서촌은 예로부터 문화예술인들이 많이 살던 동네로 현재까지도 미술과 문학 등 다양한 분야의 아티스트들이 모여 살고 있는 곳. 아름지기들이 2007년부터 진행해오고 있는 프로젝트는 바로 이 서촌과 관련된 것이다. 시인 이상의 집터에 관한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다. 원래 다섯 필지였던 이상의 집터는 현재 한 필지씩 쪼개져 각자 다른 용도로 사용되어 왔단다. 그 다섯 필지 중에 남은 한 필지가 다세대주택으로 바뀌려고 할 때 뜻을 같이 한 몇몇의 건축가들이 본인들의 사비를 털어 그 토지를 매입했다고. 이렇게 지킨 이상의 집터를 통해 의미 있는 작업을 진행하는 것이 현재 아름지기가 담당하고 있는 역할이다. 다섯 명의 건축가의 의견을 모아 진행하고 있는 이상의 집 프로젝트는 건물과 위치의 특성상 보존에서 신축으로 의견이 모아진 상태이다. 실제 이상이 살았던 곳은 아니지만, 그의 흔적이 남아있는 이 공간을 유지하기 힘든 현실을 안타까워하는 건 비단 아름지기들뿐만이 아닐 것. 하수상한 시대를 살아가는 지금, 중요한 것은 공간이 가진 고유성과 시간의 더께를 인정하는 일이다. 효율이나 경제성의 유령에 지배당하기 보다는 과거와 현재의 아름다움에 눈을 떠 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