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8-18
광고는 시대와 사회의 거울이다. 단 30초 광고 속에는 그 시대의 문화와 사회상,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이 모두 담겨 있다.
과거에는 어떤 생활용품이 있었고 어떤 문화가 유행했으며 경제 규모는 어느 정도였는지를 간결하게 보여준다. 여기 그 소중한 자료들을 모아 우리나라 초창기 광고 역사부터 현재, 미래를 담은 국내 최초의 광고 박물관이 있다. 벚꽃 활짝 피던 따뜻한 봄 4월 26일 천 년 고도 경주에 개관한 한국 광고 영상 박물관 뮤지엄 큐(Q). 마치 감독의 큐 사인에 액션을 취해야 할 듯한 기분으로 신나는 광고 여행을 떠나본다.
취재ㅣ 여수연 기자
사진ㅣ 박건주
아직 수학여행 철도 아닌데 이미 뮤지엄 큐 안에는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사진을 찍기도 하고 열심히 메모도 하며 활기찬 모습이다. 우리나라 초창기 광고 모습을 보며 당시 소박한 모습에 깔깔 웃기도 하고 영상 광고 제작 과정 디오라마(diorama) 전시관 속 다양한 직업들을 보며 메모하는 모습이 진지하다. 이런 모습을 꿈꾸며 윤석태 박물관장(경주대학교 석좌교수)은 뮤지엄 큐를 만들었으리라. 뮤지엄 큐는 우리나라 광고 영상계의 거장인 윤석태 교수와 경주대학교(총장 김일윤)가 만나 이루어질 수 있었다. 산학협동 차원에서 2000년 3월부터 시작한 프로젝트가 무려 6년의 준비 기간이 걸렸다. 1~2년이면 뚝딱 세워지는 우리나라의 일반적인 정세에 견주면, 6년이란 시간은 결코 긴 시간이 아닐 수 없다. 경주라는 지역적 특색으로 인해 공사 중에 건물터에서 유적이 나오기도 하고, 경주시 조례에 의한 건물 규제 등으로 2년 동안 공사가 중단되기도 하는 등 어려움이 많았다.
그럼에도 경주를 고집했던 이유는 바로 신라의 역사가 살아 숨쉬는 곳이자 연간 300만 명의 관광객이 오고, 대한민국 꿈나무인 학생들이 매해 100만 명씩 반드시 찾아오게 되는 수학여행지라는 점이다. 한국 광고 발전을 위해, 또 광고쟁이를 꿈꾸는 학생들을 위해 그동안 광고라는 특성상 꽁꽁 감추어서 보여줄 수 없었던 광고에 관한 각종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뮤지엄 큐는 경주시 조양동 옛 내동 초등학교 건물을 리모델링한 3층 건물로 총 6945평의 대지 위에 3600여 점의 각종 자료와 기자재, 엄선된 700여 편의 광고가 1183평의 전시동, 영상관에 전시되어 있다. 뮤지엄 큐는 우리나라 최초의 광고 박물관이자 한 나라의 광고가 총체적으로 정리된 박물관으로는 세계 최초라고 한다.
한국 광고 역사의 집대성
우리나라 최초의 TV 광고는 어떤 모습일까? 최초의 스토리보드는? 최초의 신문 컬러 광고는? 최초의 광고 잡지는? 최초의 세계 광고 전시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우리나라 근대 광고가 등장한 것은 이제 한 130년 정도 되었다. 1876년 개항 이래 신문, 잡지가 출간하며 시작된 첫 광고의 태동을 한국 광고 영상 역사관에서 누렇게 빛바랜 자료들로 확인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 한국 젊은이들의 징병을 권장하는 광고, 최초 신문 컬러 광고 등 전시장에 전시된 광고 속에서 한국 역사의 아픔과 기쁨, 우리 민족의 삶을 엿볼 수 있다. 지금 시대에도 감히 표현하기 어려운 양반집 아낙네로 보이는 신여성이 담뱃대를 든 요염한 모습의 담배 광고는 당시로서는 놀라울 정도로 혁신적이다.
이렇게 누구나 쉽게 우리나라 광고의 전반적인 역사와 발전 과정을 보고 느끼며 학습할 수 있는 한국 광고 역사관은 시대별로 8개 부분으로 나누어 전시하고 있다. 우리나라 광고의 시작부터 성장과 쇠퇴, 1980년대 컬러 TV의 등장에 따른 광고의 변화, 1991년부터 2000년대까지 1인당 국민소득 1만 달러 시대를 열며 맞게된 광고 시장의 개방, 2001년 이후 뉴미디어 시대의 광고 모습 등 우리나라 광고가 진화하는 모습을 다양한 콘텐츠에 담아 전시하고 있다.
1초, 1프레임과 싸우는 광고인들의 모습을 담아
광고는 짧다. 드라마나 영화가 오랜 시간 동안 보여주는 감동을 광고는 단 30초 안에서 해결해야 한다. 광고는 한정된 시간 동안 특정 집단의 여러 사람이 모여 펼치는 집합 예술 행위이다. AE,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카피라이터, 프로듀서, CM 플래너, 카메라, 조명, 특수 촬영, 미술, 세트 디자이너, CG 디자이너, 코디네이터, 메이크업헤어 아티스트, 조리, 녹음 등 광고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야 한다. 30초 예술을 만들기 위해 각각 다른 역할을 맡은 사람들이 모여 하나의 목표 지점을 향해 달려간다. 디렉터와 스태프로 불리는 이들이 없다면 광고도 없다.
일반인들이 참관하기 어려운 촬영 현장을 그대로 재현한 제작 스태프 디오라마 전시관. 광고 제작에 관한 전 과정을 각 단계별로 구분하여 전시하고 있다. 현재 활동하고 있는 각 분야 전문가들의 실제 사이즈로 실물 모형을 제작하여 그들이 작업하고 있는 기자재와 함께 입체적으로 전시했다. 제일제당 다시다의 광고 모델인 탤런트 김혜자 씨의 모형도 있다. 스태프와 기자재의 위치 등 단 10cm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았다고 하는 스태프 디오라마 전시관은 정확한 검증을 통해 실제와 거의 똑같은 모습으로 재현해, 보는 사람들에게 생동감과 재미를 주고 있다. 그 정교함이 어느 정도인가 하면 다시마 광고에서 실제 모델로 등장하는 강아지의 세밀한 표정에서부터 당시 강아지가 현장에서 배설한 똥, 스태프들의 목에 걸려 있는 휴대폰까지 재현했다.
다양한 전시 구성, 그리고 대한민국 미래의 광고
세계는 좁아지고 활동무대는 더욱 넓어졌다. 세계화는 이제 광고인들에게도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크리에이티브의 세계화는 결코 그 길이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우리 고유의 전통적 정서와 의식을 하나로 묶어내는 일이 우선 가장 먼저 해야 할 세계화의 지름길일 것이다. 우리 것을 너무 비하해서도 안 되고 남의 것은 무조건 찬양하는 것도 안 된다. 좋은 것은 끌어들이고 합리적인 것은 받아들여야 한다. 칸, 클리오, 뉴욕 페스티벌 등 주요 국제 광고제를 모아놓은 세계 우수 광고 전시관에는 세계 각국의 크리에이터들이 출품한 우수 작품들을 전시하여 그들의 크리에이티브 능력을 알 수 있는 자리를 만들었다. 이 전시관은 젊은이들에게 크리에이티브에 대한 관심과 세계무대에 대한 꿈과 국제 경쟁력을 키우는 데에도 한몫할 것으로 기대된다. 숨은 곳에서 광고를 돋보이게 하는 사람이 스태프라면 광고 안에서 광고를 돋보이게 하는 것은 단연 출연자일 것이다. 전시동 1, 2층을 연결하는 계단에는 우리나라 CF에 출연한 영화배우, 탤런트, 모델 등 400여 명의 친근한 얼굴이 관람자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지금은 원로가 된 배우나 모델들의 앳된 과거 모습은 함께 시대를 살아온 관람객에게는 향수를 불러일으킬 것이다. 이 외에도 공익광고전시관, 광고계 선구자들의 활동상과 기록이 담겨 있는 원로광고인관, 아이디어 놀이실 등 그야말로 우리나라 광고인의 활동에 관한 생생한 내용이 상세하게 담겨 있다. 광고주가 없다면 광고 또한 없을 것이다. 박물관 곳곳에는 CJ, 동아제약, 태평양, KTF, 대진침대 등 광고 뒤에 숨은 광고주들이 세상 밖으로 나와 있다. 모든 전시관에는 아직 채워지지 않은 빈 공간이 있다. 한국의 미래 광고가 실리게 될 곳이라고 한다. 미래 광고 주역들이 그들의 꿈과 열정으로 채울 곳. 10년 세월이 훌쩍 흐른 뒤 다시 뮤지엄 큐를 찾아갔을 때 어떤 광고가 새롭게 등장할지 벌써 궁금해진다. 이제 뮤지엄 큐는 우리 광고와 함께 역사 속에서 달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