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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의 일상성을 조심스레 엿보다

2007-07-31



CA Press 현대건축사가 주최하고 월간 MARU, 월간 CONCEPT이 주관하는 Art+Design(섞음과 엮음)전이 5월 9일부터 18일까지 중구 충무아트홀에서 열렸다. 월간 MARU특별기획전으로 마련된 이번 전시는 디자인과 순수예술의 산뜻한 만남을 통해 집에 대한 소중한 휴식의 공간개념을 상기시키고자 마련되었다. 또한 작가의 관점에서 김씨의 일상을 제시하고 객관화된 김씨가 느끼는 공간의 신선함을 제시해보고자 하였다.
이번 전시는 건축 및 공간, 환경, 전시, 시각, 플라워디자인이라는 다양한 장르의 디자인코드에 회화, 조각, 설치라는 순수예술의 장르를 접목시킨다는 차원에서 새로운 전시방식이라고 볼 수 있다.

글 김용삼 draegon3@maruid.co.kr
사진 최정복 기자

자연의 편안한 쉼터를 담은 117평의 전시공간에서 참여 작가들은 거실, 침실, 정원, 욕실 및 화장실, 로프트 공간을 공동으로 담고자 하였으며 그 속에서 김씨의 흔적들은 호흡 - 관통과 스며듦, 아트와 디자인의 정체성, 나만의 정글과 로프트 공간의 은밀성, 고요한 빛의 마당, 선의 흔적, Blue, 산소 같은 삶의 원동력 등의 튼실한 공간언어로 되살아난다.
김씨네 집으로 갑시다!는 김씨라는 대중적인 사람을 전시 주인공으로 끌어들여 김씨의 관점에서 각각의 공간들을 콘셉트화 시켜 제시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관객들은 서로 다른 장르의 작가들이 서로 섞이고 엮이는 가운데 묘한 재미를 지켜볼 수 있으며, 그 속에서 우리네 삶의 진한 흔적들과 자연을 담은 쉼을 위한 공간을 연상해 볼 수 있다.

이번 “김씨네 집으로 갑시다”의 섞음과 엮음전에는 노성진(이플래닝환경디자인연구소, 공간 및 전시환경 디자인), 김창현(보우C&H, 건축 및 공간디자인), 서성희(NAMU Flower & Art, 플라워디자인), 최용운(디자인두기, 공간 및 시각디자인), 안정원(Metel Design, 건축 및 공간디자인)의 디자이너가 참여한다. 순수예술 분야로는 성동훈(조각, 설치), 김지영(회화, 설치), 장태묵(회화), 정광식(조각), 최홍선(도예, 설치)의 작가가 참여하여 자연이 숨쉬는 창의적인 리빙공간의 개념을 선보였다.
전시 개막일에는 조촐한 국악연주가 마련되었으며 관람객들은 참여 작가와의 진솔한 대화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정해진 공간의 제약과 빠듯한 시간의 한계성에서 볼 때 갤러리에서의 설치전은 어지간히 전시를 준비해나가는 사람들의 머리를 지끈거리게 만든다. 그런 점에서 이틀 남짓한 공사기간과 빠듯한 예산, 전시를 앞두고 벌어진 예기치 않은 돌발 상황, 갤러리인 점에서 공간 쓰임새의 제약성 등을 감안해 볼 때 자못 그 결과물에 갈채를 보내는 바이다.

그리고 그 공간을 만들어 나간 참여 작가와 관련업체, 충무아트홀 관계자, 그리고 전시장을 찾아주신 많은 관람객 여러분들께 심심한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바이다. 이제 김씨가 만들어 간 다섯 가지의 공간들은 작가와 관객의 기억으로 남게 된다.

섞임과 엮임이라는 다소 어려운 주제로 시작된 MARU특별기획전은 김씨라는 평범한 우리네 일상의 인물을 주인공으로 김씨가 집에서 숨쉬고 호흡하고 행동하는 모습들을 콘셉트로하여 그려내고자 하였다. 전시장 입구에는 큼지막한 포스터가 넌지시 아트+디자인의 섞임과 엮임이란 주제를 알려주고 있다. 그 초입에는 전시공간의 주공간인 정원이 마련되어 있다. 정원이라면 풀과 나무가 자라나야 하지만 김씨의 정원에는 묵직한 도자기의 덩어리와 이와 대조적인 가벼운 한지가 부드럽게 공간을 채우고 있다.

바닥에 툭툭 던져지듯 랜덤하게 놓여진 도자는 생명의 구체적인 표출인 생성과 호흡의 결과물로서 구(Sphere)에서 연유한 다양한 호흡의 형태들을 의미한다. 이 희디흰 둥근 알과 열매들은 언뜻 보기에 단단히 봉합되어 속이 비어있는 듯 보이지만 자잘하게 뚫려진 구멍을 통해 어느 순간 사방과 환희 열리는 세상과 호흡하고자 한다. 숨막힐 듯 답답한 현실세계, 자못 단절과 고립의 늪에 빠질 수 있는 김씨의 모습은 도예가의 길고 지속적인 호흡(Breathing) 작업을 통해 이제 활력을 되찾고 있다. 마치 인위적으로 존재하는 카페트 위에서 순수의 결정체인 흰 빛깔의 덩어리가 알알이 열매를 맺듯 소중한 생명의 흐름을 거실이란 공간에 던져주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그 묵직한 도자의 재질을 포용력 있게 감싸 안기라도 하는 듯 유연하고 가벼운 한지가 움직임과 흐름을 이어주고 있다.

바닥에서 시작되어 마치 공중으로 비상하기라도 하려는 듯 한지의 매스는 매끄럽게 바닥과 상부공간을 자유롭게 넘나들고 있다. 그 뒤 천사의 날개처럼 길게 펼쳐진 흰 종이의 나풀거림은 휘어지고 엮여지면서 거실 전체공간을 채우기도 하고 부드럽게 도자를 감싸기도 한다. 형태가 단순히 하나의 덩어리로써 공간에 소극적으로 병치되어 있는 형태가 아니라 덩어리와 공간이 서로 넘나들고 휘감으면서 자라나는 생명체와 같은 움직임을 의도하고자 한 것이다.
디자이너가 연출하고 도예가가 제작한 점토 덩어리들이 설치된 공간은 이제 꿈틀거리며 율동성 있는 생명체가 가득한 정원으로 변모하게 된다. 그 넘치는 생명력이 김씨의 편안한 호흡을 돕게 된다. 그 속에서 김씨는 자유의 날개를 달고 자못 몽환적인 유토피아를 꿈꾸게 될 것이고 이제 정원은 김씨의 비상이라는 자유의지를 넌지시 표현하게 된다.

“김씨네 집으로 갑시다! 라는 제목에서 김씨는 로프트 공간을 사랑하게 된다. 거실과 안방 그리고 화장실, 정원에서 갖지 못하는 은밀성과 폐쇄성을 찾아낸 것이다. 도시는 늘 모든 것을 반듯함과 도덕성의 기준에서 보이지 않는 기준점이 늘 머리를 무겁게 한다. 이제 나이도 들고 생각을 찬찬히 챙기고 살지 못했던 회한도 든다. 아이들이 자라고 그렇게 자란만큼 자리를 내어주던 집안의 요소와 자리가 요즘은 조금 서운하다.

김씨는 상당히 개성을 가지고 있지만 참 보편적으로 사고하고 보편적으로 살아온 자신에 하나의 전환의 공간을 만들고 싶어진다. 그곳이 혼자만의 사랑방 혼자만의 로프트 공간이다. 로프트는 왠지 덤으로 얻어진 공간인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곳에 김씨만의 은밀한 공간을 만들고 싶어진다. 하루 종일 게으를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 주는 공간이 그렇게 그리울 수가 없다.
김씨는 흥분한다. 나만의 정글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마음의 정글에서 공간의 정글까지 김씨 스스로를 달랠만한 은밀한 공간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오히려 도시에서의 폐쇄 공간은 자유의 공간이라고 느껴지는 순간이다.
창문의 빛이 그렇게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는 공간이다. 대신 커다란 화면에서는 ‘바그다드 카페’에서부터 ‘책 읽어 주는 여자’ 그리고 가끔 야한 영화가 공간을 채워준다. 그리고 흩어진 오래된 사진들과 너부러진 언더웨어와 김용택 시인의 ‘섬진강’, 회화적 공간… 어느 날 모네의 물 속 그림이 흔들리듯 물결을 느낄 때가 있다.”

특별한 개성적인 공간으로 표현된 로프트 룸은 김씨 즉 디자이너의 표상이고 자연과 우연성의 회화작가는 김씨 마음의 모네일 수 있다. 감질나게 액자처럼 표정 없이 걸린 회화적 감흥을 완전히 전환하는 방법을 김씨는 발견한다. 입구에서 시작된 네 개의 여백이 있는 풍경이라는 회화작품들이 로프트공간의 독특함으로 말해준다.
그 속에 담겨진 김씨의 공간, 차분한 블랙계열의 벽면과 벽의 방향성을 역동적으로 이어주는 위트 있기까지 한 생명의 돌진, 십자형 패턴으로 하부공간의 차별성을 구별 짓고 있는 카페트 바닥, 그림을 투영이라도 하듯 길게 바닥을 이어주는 흑경, 어둑한 공간에 마련된 홈시어터, 공간 한쪽에 놓여진 고재 나지막한 테이블, 좌식의 휴식공간을 겸한 독특한 취미실 혹은 바를 연상케 하는 커뮤니티 공간, 한쪽에는 아담한 정원도 마련되어 있다.
입구에서 열두 걸음쯤 길고 깊숙이 이어지는 김씨의 공간은 그만의 차분한 휴식공간이자 음악과 영화, 독서와 그림을 좋아하는 김씨의 개성미를 듬뿍 담고 있다. 자유롭고 창의적임을 중요시하는 김씨는 공간에는 값비싼 리플렉션 회화작가의 순수작업이 벽지처럼 벽면에 활용되고 있다.
그 그림 하부에는 리플렉션 작가의 순수성을 담아내고자 설치한 바닥면의 흑경이 공간의 깊이를 더하게 만든다. 이러한 디자이너의 색다른 시도는 액자의 틀에 갇혀버리고 마는 순수평면 회화의 외도를 통해 짜릿한 공간의 신선함을 부여하려는 의도가 담겨져 있다.

조각가와 공간 디자이너가 만난다면 어떠한 모습일까? 욕실과 화장실이라는 제한된 공간 내에서 디자이너와 조각가는 서로 절묘하게 섞이고 엮이면서 빛의 마당이라는 언어를 풀어내고 있다. “조각가의 작품에 조용히 빛이 다가서면 도시가 나타난다. 그리고 병풍처럼 둘러싸인 산들과 작업실 앞 풍경이 조심스럽게 나타나난다. 어린시절 홀로그램의 세상 속에서 머리 위의 한 마리 새가 항상 날아다니곤 했다. 요즘에도 그가 사는 세작골엔 수리 한 쌍이 하늘을 맴돌곤 한다. 사람도 없는 이른 새벽 동이 틀 무렵이면 햇살에 비친 수리 한 쌍의 찬란한 비상은 언제나 그를 또 다른 세상으로 이끌고 있다.”

이러한 조각가의 돌과 나무 소재를 이용한 작품세계를 디자이너는 유쾌하게 표현하고 있다. 화장실이라는 다소 처리하기 애매한 공간을 섬세하면서도 위트감 있게 엮여내고 있다.
입구의 'Ground of Light'라는 제목과 함께 ‘光’ 자의 붉은 CIP가 빛의 마당의 시작됨을 알린다. 거침(조각)과 부드러움(디자인)이라는 두 작가의 상반된 이미지는 도시를 표현한 조각가의 검은빛 작품과 금빛 병뚜껑의 벽면이 만나게 되면서 또 다른 빛의 공간으로 탄생한다.
도시 하늘을 날고 있는 두 마리의 돌 수리새는 오색컬러의 빛을 머금고 비상하듯 자유를 찾아 꿈틀댄다. 그 아래 조용히 돌 새의 영혼이 그림자가 되어 따라다닌다. 안쪽으로 이어지는 내부동선은 굴곡된 형태로 휘어들어가는 방식을 취함으로써 관람객들에게 묘한 호기심을 전해주게 된다. 긴 수직 띠 창을 통해 언뜻언뜻 전해오는 내부공간에는 조각가의 거친 돌과 나무 작품들이 벽면과 공간 곳곳을 채우고 있다.
거기에는 어김없이 자연의 빛이 투여되고 조각 작품들은 서서히 생명의 숨을 쉬게 된다. 오랜 세월의 풍파를 겪고 소나무 밑에서 견뎌온 촘촘한 돌조각들, 탄광에서 찾아온 거친 질감들의 조합은 돌 세면대, 나무의자, 돌 액자가 되어 공간에 자신이 걸어온 진한 생명력을 뿜어내게 되는 것이다.

공간 안쪽에는 기존의 관념을 깨버리는 화장실이 나타난다. 당당히 공간의 중심성에서 스크레치한 바닥유리면의 조명을 받아 빛나는 화장실은 하얀색 실 커튼을 방패삼아 조용한 노출의 야릇함을 선사하고 있다. 그 옆에는 삼각형의 히노끼 욕조가 마련되어있어 낮은 레벨로 금방이라도 옷을 벗고 몸을 담그고 싶은 마음이 들게 만든다.

또 한쪽 모퉁이에는 한 그루의 나무가 심어져 있어 편안한 욕실의 공간미를 북돋아주고 있다. 화장실의 주위를 감싸고 있는 하얀색의 커튼은 강하고 거친 물성의 조각 작품들을 부드럽게 포용하는 듯하다. 디자이너의 여성스러운 공간감이 따뜻한 에너지의 빛으로 발하며 조화를 이루고, 이제 빛의 마당은 김씨에게 또 다른 안식을 가져다주는 공간으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선은 상징의 언어로 가득한 미로의 육체이다. 2차원의 화면에 이 육체를 세움으로써 3차원의 공간을 만들어 낸다. 김씨의 침실은 어떠한 불신의 이념 따위가 끼어들지 못하는 순수한 성채와도 같다. 형상을 기록함에 있어 선은 표현의 언어이면서 동시에 기록의 도구이다. 수많은 선들이 겹치면서 인체 내부의 풍경을 그려내고 있다. 그 속에 물고기와 새를 그려 넣어 생명을 부여하기도 하며, 그 과정은 매순간 의미를 부여하며 사는 인간의 사고의 흔적이며 관심의 적극성이라 할 것이다.”

“물과 거울로 대표되는 의식의 투영은 자동기술법(Automatism)적 내러티브로 작동하는 초현실의 상황을 연출한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초현실적 상황을 직면하고 있으나 지나치다 싶을 만큼 의식의 투영과정을 추적하고 있다. 이는 무의식의 독백도 아니며 현실을 초월한 꿈의 세계도 아니다. 현실의 강한 리얼리티가 나로 하여금 그로테스크한 내면을 드러내게 하는 이유이며, 구속된 현실을 직시하는 작가의 치열한 의식이기도 하다.”

김씨의 침실공간은 ALC 블록의 순수물성으로 표현된다. 마치 가공되지 않은 은밀한 그만의 성을 의미하듯 닫혀있으면서 적당히 열려있는 침실의 파격성을 통해 생각하고 고뇌하게 만드는 침실임을 강조한다.
ALC 블록의 가벽을 입구삼아 보여지는 내부공간은 단순하지만 창을 통해 내부가 프레임화되어 들여다보이고 창을 통해 거실과 정원의 풍경이 전달된다. 다른 한쪽의 벽면에는 네 개의 액자틀이 서로 중첩되고 그 속에 순수색채가 벽면의 질감을 바탕삼아 화려한 색감을 불태우고 있다. 그리고 조심스럽지만 과감하게 화가의 이 강렬한 터치는 액자의 틀 밖으로 성큼 뛰쳐나온다. 자못 새로운 변화를 위한 김씨의 열정적인 몸부림의 표현이랄 법하다. 그 창에는 액자화된 미로의 육체가 보이기도 하고 창의 비어짐을 통해 사고의 깊이를 있는 그대로 끌어들이기도 한다. 자신만의 개성적인 그림을 담아내고자 하는 김씨이기에 침대가 놓일 자리에 액자화된 작품이 덩그러니 걸려있고 그 너머에는 수직으로 들어올려진 침대가 벽면에 매달려있다.

침대 안쪽에는 육체의 미로작품이 반영되어 있고 인체내부에 김씨의 일상의 모습들이 생명력을 머금고 움직이고 있다. 이에 조용히 응하기라도 하듯 침대에는 보리이삭들이 침대를 토양삼아 빽빽이 자라나고 있다. 그것은 마치 서로를 인정하고 보듬어 주는 것을 의미한다. 아티스트와 공간 디자이너의 역할이 서로 공생하고 아티스트와 디자이너가 서로의 본질을 이해했을 때 섞음과 엮음은 스스로의 정체성을 가질 수 있다고 본다는 디자이너의 표현에 무게를 드리워본다.

다소 황당하리만큼 김씨의 거실에는 사슴 한 마리가 우뚝 놓여져 있다. 창백하리만큼 푸른색으로 빛을 발하는 사슴은 혼자 있기에 더욱 외롭다. 강인한 네다리로 버티고 서있지만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는 눈매에 왠지 모를 서글픔이 묻어나온다. 문득 작가의 눈을 닮기라도 한 듯 하다.

지속적으로 자신이 추구하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 외롭고 고독한 작가의 길을 의미하듯 사슴은 도덕적으로 엄격한, 겉은 냉철하리만큼 차갑게 보이지만 속은 한없이 따뜻한 마음을 지닌 김씨의 인간 됨됨이를 보여준다.
작품을 위해서는 몇날 며칠을 무섭게 작업에 몰두하고 조용히 다음 작업을 위해 사색하고 고뇌하는 작가의 인생에서 이제 거실은 그저 TV로 채워진 공간이 아니라 감수성을 되새기는 공간이 되는 것이다.

사슴 전체를 감싸고 있는 1만3천개의 투명한 푸른 구슬은 사슴 몸속에 장치된 조명이 구슬로 투과되어 잔잔하며, 환상적인 분위기를 조성한다. 사슴이라는 이미지에서 표출되는 외로움, 연약함, 그리고 고독함을 형상화하였다는 작가의 표현처럼 사슴을 도시 한 복판의 한 공간에 자연과 함께 옮겨 놓고자 하는 순수한 심성의 의미를 김씨의 거실은 추상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의 블루 컬러는 상징적, 시각적인 기표이며, 스톱모션으로 정지된 한 파트를 김씨의 거실공간에 오려서 그려 놓은 듯 사슴형상과 색을 표현한 것이다. 고독한 작가의 마음을 담은 사슴처럼 플로리스트 역시 거실에 대나무와 풀을 옮겨다 놓음으로써 거실의 고정된 관념성을 탈피하고 있다. 늘 상 우리의 일상에서 가족들의 커뮤니티를 이어주고 만나서 먹고 즐기고 정을 나누며 일상의 피로를 거리낌 없이 내려놓은 거실, 김씨의 거실은 집의 심장과도 같은 곳이다.
항상 두근두근 무언가 생기 넘치는 것을 만들기 위해 살아 움직인다. 조용히 창밖으로 전해오는 새들의 지저귐, 푸르름을 먹고 피어나는 싱그러운 자연의 향기…. 그렇기에 플로리스트는 거실을 산소 같은 삶의 원동력이라고 표현한다. 곧 자연의 싱그러움을 거실에 솔직담백하게 풀어내놓고 싶은 것이었으리라.

거실의 카페트는 부드럽고 탄력적인 잔디로 바뀌었고 단단한 콘크리트 기둥은 27개와 18개로 나뉘어 묶인 대나무 기둥이다. 대나무 기둥과 돌틈에는 길게 땅을 통해 흘러져 내려오는 자연의 넘침이 묻어나게 하고 둔덕과 돌 위에 조차도 자연의 생명력은 꿈틀댄다. 기둥 한쪽에는 소파를 의미하는 큼지막한 바위가 놓여져 있고 다양한 풀과 꽃들이 은은한 향기를 발한다. 마치 들판의 나무그늘에서 시원한 바람소리를 들으며 거닐다 큼지막한 넙적 바위 밑에서 잠시 잠을 청하고 싶은 자연의 삶. 김씨의 사랑하는 가족의 일상은 자연의 풍요로움을 머금고 그들만의 편안한 행복을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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