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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한 입, 와인 한 모금-소규모 갤러리

2008-12-23

술 파는 곳이 더 많은 골목에 오래 전부터 그곳을 지키고 있었던 것 같은 간판이 하나 있다. 모자라지도 과하지도 않은 나무 간판 하나 걸고 선 공간에는 그림도 있고 술도 있다. 쌉싸름한 술 한 모금에 그림 한 점 안주 삼아 시간을 보내다 보면 어느새 자정, 시간을 뭉텅뭉텅 잘라 마시는 이곳은 ‘소규모 갤러리’다.

에디터 | 정윤희(yhjung@jungle.co.kr), 사진 | 스튜디오 salt

지난 여름 문을 연 소규모 갤러리의 외관은 노랗다. 휘영청 둥근 달처럼 노랗고, 늦가을 은행나무 잎처럼 노랗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다양한 인상을 주는 이 곳은 지난 7월 문을 열었지만 처음 방문한 사람도 마치 7년 단골손님 마냥 들락거린 것처럼 익숙하고 정겹다.
소규모 갤러리는 태초부터 맥주와 여자가 좋았던 ‘바지사장’과 소규모 갤러리의 마스코트인 ‘무왕이’와 ‘끙이’를 너무나 사랑하는 여사장이 알콩달콩 운영하고 있다. ‘바지사장’ 김상민 씨가 2개월에 걸친 막노동(?) 끝에 완성한 인테리어는 ‘빈티지’를 컨셉트로 꾸며졌다. 풍물시장을 샅샅이 뒤져 간신히 찾았다는 4대의 텔레비전과 나무의 질감이 고스란히 살아있는 부엌과 테이블, 무성한 잎을 드리운 나무 장식, 그리고 구석에 놓인 소품 하나까지 빈티지한 컨셉트를 중심으로 계산된 것들이다. 특히 천장 조명을 둘러싼 치킨망에 꽂아놓은 손님들의 폴라로이드 사진들은 빈티지한 소규모 갤러리에 따뜻함을 더해준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인테리어를 완성하는 것은 곳곳에 걸린 작품들이다. 기성 작가의 작품보다는 아마추어 작가의 작품을, 순수 회화 보다는 보는 재미가 쏠쏠한 작품을 더 환영한다는 이곳은 작가들에게 최소 2주간의 전시기간과 이 때 사용할 전시 플래카드를 선물한다. 아마추어 작가의 신청을 더 반기게 된 것은 작품을 자세히 보기 위해 술잔을 들고 서성이는 손님들의 적극적인 반응 때문이라고. 작품의 형식에 제한을 두지 않는다고 하니 자신만의 전시회를 꾸미고 싶다면 소규모 갤러리의 문을 두드려봐도 좋을 것이다.

오후 5시부터 다음날 아침 7시까지 문을 여는 소규모 갤러리는 부드러운 맥주 거품과 달콤한 와인향도 함께 즐길 수 있다. 국내에 몇 안되는 공식 소믈리에 조광기 씨와 부천현대백화점 와인숍의 점장을 맡고 있는 김민지 씨의 조언으로 만들어진 와인리스트와 주인의 넉넉한 인심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이벤트는 단골손님을 만드는 일등 공신들이다. 이러한 소규모 갤러리만의 매력에 반해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블랙신드롬, 지하드 등 이름 짜한 인디 밴드들이 ‘즐겨 찾기’ 리스트에 이곳을 추가했다고. 이 예술적인 단골손님들은 와인과 그림에 취해 즉흥 공연을 열기도 한다니 운이 좋으면 ‘종합 예술’을 감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포털 사이트에서 ‘소규모 갤러리’를 검색하면 ‘소규모’ 갤러리들이 검색된다. 그러나 ‘소규모 갤러리’는 그 수많은 ‘소규모’ 갤러리에게 없는 어떤 것을 가졌기 때문에 주머니 속 송곳처럼 단연 돋보일 수밖에 없다. 그것이 주인장들의 넉넉한 인심인지, 재기 발랄한 작품들인지, 입술을 보랏빛으로 물들이는 와인인지는 직접 체험해보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무엇을 찾더라도 만족할 수밖에 없는 이곳은 ‘소규모 갤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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