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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명의 거장이 사는 집

2009-08-18


한국 근대건축의 1세대는 김수근과 김중업이다. 김수근이 현실과 이상을 조율하는 소통의 대화를 알았다면, 김중업은 고집과 근성으로 자신의 노선을 걷는 소신을 지녔다. 공간과 오마주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여전히 걷고 있는 김중업을 만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전통에의 결별과 반역’으로 근대의 문을 연 그는, 세계적인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 아래서 일했다. 제자가 선생에게 바친, 건축의 언어로 쓴 연서를 읽어본다.

에디터 | 이안나(anlee@jungle.co.kr), 자료제공 | 시공문화사


김중업과 르 코르뷔지에, 두 건축가의 삶은 닮은 구석이 있다. 출생지를 벗어나 국경을 넘나들며 살았고, 시인이기도 했으며, 뿔테 안경을 끼고 금욕적으로 살고자 했던 건축가였다. 르 코르뷔지에의 메모하는 습관마저 닮으려고 산, 김중업의 수첩 안에는 둘의 ‘교감’이 엿보인다. 같은 자리에서 그린 두 사람의 건축스케치, 르 코르뷔지에의 작업을 연구한 흔적 등이 그 반증이다. 1950년대 중반부터 1960년대 초반까지 김중업은 건축에서 시적인 것과 논리적인 것을 조화시키려 했다. 이 저울질이 정점에 다다른 작품이 1961년에 완공된 주한 프랑스 대사관이다. 김중업이 설계한 주한 프랑스 대사관은 한국 현대건축사에서 찾아 보기 힘든 원숙미가 있다. 한국 건축계는 대사관을 ‘원점’이라고 평가한다. 건축가 자신도 이 작품을 가리켜 ‘나의 작품세계에 하나의 길잡이가 되었고, 이것으로부터 비로소 건축가 김중업의 첫발을 굳건히 내딛게 되었다’라고 말했으며, 비단 과장이 아니다.


혹자는 이 건물을 한국의 전통양식과 결부시키기도 한다. 한옥의 지붕선이라든가, 전통적인 공간구성을 고려해 볼 때, 이런 주장은 부분적으로 옳다. 그리고 건축가 자신도 “한국전통건축의 특색 중 하나는, 무거운 중국의 지붕과는 달리 무게를 느낄 수 없는 지붕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그런 점에서 주한 프랑스 대사관은 ‘지붕이 사뿐히 하늘을 떠받치고 있다’라는 감정을 직설적으로 표현했던 것입니다”라고 이야기 했다. 허나 국한된 시각으로 이 건물을 바라보면, 손으로 만든 원으로 하늘을 바라보는 것처럼, 건물이 가지는 덕목들을 놓칠 수 있다.

김중업 건축에서 지붕이 갖는 의미는 매우 컸다. 그래서 지붕은 그에게 땅과 하늘 사이에 이루어지는 새로운 자연이었다. 건축은 부드럽게 때로는 모질게 하늘과 부단한 접촉을 꾀한는 것으로 인식되는 공간이자 부피인 것이다. 예부터 동양의 마천루는 얼마나 유연했는지 상기하면 된다. 하늘의 멋에 바치는 뜨거운 찬가로서, 이 지붕은 창조되었다 해도 무방하다. 1960년대 이후 설계된 김중업의 작품들에서 가장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모티브 역시 지붕이다. 주한 프랑스 대사관 외에도 그의 대표작으로 꼽을 수 있는 제주대학본관, 진해 해군공단, 유엔묘지 정문 등에서도 이 점은 명확하게 나타난다.


이를 두고 한국의 전통미를 찾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 석탑의 구축미와 명승고적의 구조미, 도자기 곡선의 유려함이야 말로, 지붕과 괘를 같이한다. 허나 김중업의 원전은 따로 있다. 르 코르뷔지에의 주지사 관저와 행정 청사를 닮은 김중업의 건물은, 건축의 언어로 스승을 오마주한다. 김중업은 르 코르뷔지에와 일하면서, 그의 건물 실사설계를 담당했다. 완공이 곧 랜드마크로의 시작이었던 르 코르뷔지에의 작품을 가장 먼저 맞이하는 자로서, 그는 얼마나 감격하고 흥분했을까. 김중업은 그 시간을 잊지 않고 한국에 돌아와, 이 땅의 굴곡에 맞게 변주해 설계하기 시작한다. 주한 프랑스 대사관은 르 코르뷔지에의 주지사 관저나 빌라 쇼단에서 나타나는 지붕의 형태에서 직접적인 영감을 받았지만, 훨씬 부드럽고 곡선적이다. 건물 자체의 선이 주변과 어울리기 위해 숨을 죽이고 하늘을 받아들이기 위해 손을 펼친 양, 지붕은 올라있다.


거장의 건축물이 가진 정수를 자신의 설계도안에 녹이는 것을 모두 오마주라고 볼 수는 없다. 김중업의 건축 안에는 독일 건축가 미스 반 데어 로에의 건축양식의 틀도 볼 수 있다. 김중업은 그의 건축 인생에서 딱 3개의 고층빌딩을 설계했다. 그 중 하나인 삼일로 빌딩은 미스가 만든, 뉴욕의 시그램 빌딩의 엄격한 비례를 따라 설계됐다. 빌딩이 들어서는 공간의 건축적 지형으로 보아 미스의 건축양식이 걸맞기 때문이다. 이를 프로토타입이라고 한다. 거장들의 철학과 기술은 자신만의 건축적 기반이 되고, 이 프로토타입을 후대 건축가들은 파종하듯 옮겨 심을 수 있다. 김중업은 1952년 10월 25일부터 1955년 12월 25일까지 르 코르뷔지에 사무소에 머물면서 현대건축사에서 가장 중요한 건축물들이 설계되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두 건축사제의 조우가 아니다. 나라의 정신이 만나서 일으키는 화음과 파열음이고, 그 끝에 주한 프랑스 대사관이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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