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9-22
마포구 구수동 사거리는 서강대교와 멀지 않은, 그리고 강변북로를 가까이 끼고 있는 곳이다. 아파트 촌과 골목길이 공존하는 편안하고 평범한, ‘동네’의 어감과 같은 동네. 옛 구(舊)자와 물 수(水)자를 쓰고 있는 이 동네의 한자 이름대신 그냥 우리말로 된 형용사 ‘구수하다’는 싱거운 말장난을 하고 싶어진다. 그렇게 구수한 구수동 사거리를 거닐다 보면 흥미로운 두 공간을 만날 수 있다. 건축집단 MA 사옥과 CJ문화재단의 공연장 AZIT. 샌드위치 판넬, 골강판 등 주변과는 다소 이질적인 재료를 외관으로 삼은 이 두 건물은 무심코 지나갈 수 없도록 시선을 잡아 끌지만, 또 언제 여기 있었나 싶을 정도로 이 장소에 콕 박혀있었다. 그러고 보니, 구수동의 옛 지명인 구수철리(舊水鐵里)라는 마을이름이 무쇠를 뜻하는 ‘수철(水鐵)’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고 했던가.
글 | 김유진 객원기자, 에디터 | 이상현(shlee@jungle.co.kr), 사진 | 스튜디오 salt
회색은 차갑고 매정하다. 회색은 여유는 모르고 발전이라는 단어만 강요하는 도시나 혹은 삭막한 기계 문명 따위에 동원된다. 흰색과 검정색 사이에서 농도를 조절하는 회색은 그래서 검정색도 흰색도 아닌 애매모호함이다. 쉽사리 규정이 어렵다. 그럼에도 그 농도 조절의 융통성은 회색의 매력이다. 또 어떤 컬러보다도 표현되는 질감에 민감하다. 세련됨을, 스타일을 안다.
구수동 사거리에서 구수동으로 더 들어가는 안쪽 골목길에 널찍한 회색 빛깔의 건물을 맞닥뜨렸다. 그것을 만나러 가지 않았는데, 대뜸 나타났으니 맞닥뜨렸다는 표현이 맞다. 그런 방식의 출현은 매우 멋졌다. 실제로 그 건물 자체가 그렇다. 흡사 컨테이너 박스 같은 회색 빛 금속 질감의 외관에 두꺼운 폰트로 강직하게 적어놓은 MA, 그리고 ‘건축집단(建築集團)’이라는 부제. 그 만큼 단정적으로 스스로를 표현하는 방법도 없을 텐데, 오히려 더 알고 싶어진다. 건물 왼쪽, 같은 이름표를 달고 있는 하얀 벽돌무늬의 작은 집 역시 궁금증을 배가한다. 아기자기한 분위기를 건물 밖 유리로 그대로 전하는 그 1층 벽에는 카페 m.a.堂이라고 적혀있다. 건축집단, 사옥, 카페, 검정, 회색, 흰색, MA, m.a.堂. 어딘가 모르게 강약이 느껴지는 믹스매치. 회색의 언어로 말하면 농도의 조절이다.
창고 용도로 신축된 건물을 사옥으로 선택한 것은 어쩌면 MA다운 선택이었다. 양주 송암 천문대, 엔저빈 신사옥, LG전자 창원 연구소 및 복지관 등 MA가 채워온 포트폴리오 목록은 한국적 건축에 대한 인식과 한국적 모티브에 대한 고민을 바탕으로 과잉보다는 절제, 장식보다는 충실한 기본기에서 아이디어를 활용하는 MA의 건축스타일을 드러내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약간의 리터치만 가해도 건물의 특성을 재미있게 살릴 수 있는 이 곳이 흥미를 자극하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cmyk값으로 치자면 k=100이 분명할 검정색 정사각형 금속 프레임의 건물 입구에 들어섰다. 공교롭게도 그 곳은 www.archigroupma.com 이라고 쓰여진 사인의 하단이다. 알파벳의 조합을 번지처럼 사용하는 웹의 가상 주소처럼, 이 속내를 알 수 없는 건물은 그렇게 사람을 받아들였다. 입구 정면, 가장 먼저 눈에 보이는 것은 블록의 질감을 그대로 살린 벽면. 방향을 틀면 층층이 반복적으로 둘러진 검정색 기둥이 짧은 회랑을 마련한다. 건물을 에둘러 들어가는 전통 건축의 동선을 의도했다는 복도는 시선의 방향과 각도를 공간 깊숙한 곳으로 이끈다. 기둥 사이로 모습을 보였던 MA의 사무실은 복도의 끝에서 그 모습을 온전하게 허락한다. 온돌을 썼다는 에폭시 바닥, 벽면과 천장으로 샌드위치 판넬(스티로폼 양쪽에 금속판을 붙인 건축 자재)의 질감과 나무 소재가 한눈에 들어오는 공간은 밖에서 보는 것 보다 더 넓고 높게 느껴졌다. 눈길이 처음 머무는 지점은 입구의 맞은편 벽면을 꽉 채운 나무로 짠 책장. 이 거대하고 조직적인 수납공간은 묘하게 건축적이다. 시선을 그 앞으로 이동시켰다. 공간의 대부분을 사용하고 있는 사무공간은 오밀조밀하지만, 역시 높은 층고로 상대적으로 시원하게 시선을 확보한다. 특별한 위계를 두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공간 구성. 대신 나무 재질의 파티션과 수납장이 각 개인별 자리를 구획한다. 한편, 사무 공간 중간에 뿌리를 내린 나무 두 그루는 자칫 차가워 보일 수 있는 공간을 위한 초록빛 생명이다.
사무 공간의 또 다른 한쪽 면은, 채광은 가능하고 시야는 차단하는 폴리카보네이트 소재를 활용해 공간을 구획했다. 이는 사무공간 앞쪽으로 회의 공간을 마련하는데, 철제 계단으로 연결되는 2층 대표실 벽면까지 이어진다. 자칫 지루함을 없애기 위한 나무 블라인드도 함께다. 반투명한 재질과 소재의 결은 특유의 오묘함을 선사한다. 소재 특성상 간단한 메모도 가능하고 이미지나 사진 등을 붙여도 마치 인테리어를 한 것처럼 보인다.
회의실 역시 심플한 인테리어와 자재의 질감을 가공 없이 그대로 담은 공간의 특성을 고스란히 수용한다. 은은한 베이지색 원석의 테이블이 공간의 중심을 잡아주고, 나무 소재로 짜여있는 내부 벽면은 손으로 꾹 누르면 수납장이 되어 튀어나오며, 화이트보드를 꼭 껴안고 있는 벽면은 역시 블록 자재를 그대로 활용했다. 또 하나의 공간 포인트인 검정색 금속 계단을 오르면 MA 유병안 대표의 사무실이다. 2층 입구 정면에 평행으로 서서 방문객을 맞이하는 두꺼운 나무 도어는 입구의 동선을 끊어주는 동시에 뒤편의 2층 화장실을 절묘하게 가리는 역할을 한다. 회전이 가능해서 왼쪽으로 보이는 대표실의 문으로 사용할 때는 90도로 회전시키기도 한다. 내부 동선은 길쭉하게 떨어진다. 천장과 가까워 창고 건물의 마감재인 샌드위치 판넬의 재질감이 더 가까이 느껴지는 가운데, 비스듬하게 넘어가는 천장 모양이 아늑하다. 사실 창고였던 공간에 2층이 있었을 리는 만무할 터, 효율적인 공간 활용을 위해 특별히 설계했다. 규모가 더 커질 경우에는 입구를 제외한 나머지 세 면에 2층 공간을 증축해 임원실로 사용하기로 이미 계획해 놓았다. 2006년에 첫발을 뗀 MA가 규모가 커지면서 사옥을 홍대에서 구수동으로 옮긴 것이 2007년이니, 공간 활용 측면에서도 앞을 내다봐야 했던 것. 즉, 2층 공간은 MA의 미래에 맞춰 변화를 앞두고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이 건물 밖에는 직원들을 위한 특별한 장소 두 곳이 있다. 먼저 회의실 옆 샘플실을 지나면 나오는 작은 뒤뜰. 가끔 여는 파티 공간으로도 유용하고, 초록빛 잔디와 나무가 있는 작은 정원은 햇빛을 듬뿍 머금으며 ‘광합성’을 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이 뒤뜰은 작은 하얀색 건물의 뒷문과 연결된다. 애초 창고 건물의 관리 사무실이었던 2층짜리 건물. 처음에는 자재 창고로 사용했다는 건물은 그 용도를 고민한 유 대표의 아이디어로, 1층을 작은 카페 m.a.堂(마당)으로 변모시켰다. 반복적인 조명과 나무 소재의 장식장, 금속 자재의 바, 대표실의 회의 탁자에 활용했던 고목으로 제작한 창가의 테이블까지, 작지만 MA의 건축스타일을 압축적으로 반영한 공간. 직원들에게 제공하는 ‘커피 한잔의 여유’이자, MA의 정체를 궁금해하는 주민들과 소통할 수 있는 유익한 장소다. 들어온 문과 반대편 문을 열고 나가면, 이 건물을 맞닥뜨렸던 처음의 장면으로 다시 되돌아 간다.
건축사무소가 사옥으로 스스로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어쩌면 가장 근원적인 건축적 언어다. MA는 그들의 사옥을 시간의 변수, 수납, 동선, 활용도에 대한 고민이 담긴 ‘효율’의 공간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본질’의 공간으로 만들었다. 재료에 대한 탐구, 매력적인 자재의 적재적소의 선택, 질감을 살린 마무리. 직선이 즐비한 건축적 요소 사이에서도 금속, 블록, 나무 등 자재를 그대로 활용해 그 딱딱한 직선에 유쾌함을 실은 것도 그 본질의 묘미다. 공간에 들어오기 전, 외관으로만 느꼈던 MA의 첫인상은 소위 말하는 ‘쿨함’과 ‘시크함’의 전형 같았다. 그러나 그 회색 건물이 담고 있었던 MA는 단순한 ‘쿨시크’와는 달랐던 것이다. 이들의 모습은 어떤 제스처나 몸짓으로 보여지는 ‘애티튜드’로 정리되는 것이 아니라, 본질에 다가서고자 하는 탐색의 차원이었다. MAster, MAestro, Master Architect에서 이름을 따왔다는 MA. 그 MA가 지닌 농도는 본질을 향한 담백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