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8-12
급격한 산업화를 겪으면서 한국사회는 경쟁 속에서 존재 가치를 찾아야만 하는 현실에 놓이게 되었다. 남보다 더 돋보여야 생존할 수 있었기에 더 많이, 크게, 그리고 빠르게 삶을 살아왔다. 자신의 몸집에 어울리지 않는 커다란 간판을 달고 있는 거리의 가게들도 한국 사회의 기형적인 성장에 따른 결과로 보는 이들도 있다. 큰 간판이 손님 눈에 잘 띄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눈에 잘 띄는 것이 매출과 등가 관계에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몸에 밴 습관 탓에 여전히 크고 화려한 간판이 선호된다.
종로구 계동 작은 언덕배기 골목에 자리한 이탈리안 푸드 전문점 ‘후스테이블(Hu’s Table)’은 대형화와 고속화의 반대편에서 작은 목소리로 작은 공간이 주는 포근함을 전한다.
글, 사진 | 팝사인 한정현 기자( hjh@popsign.co.kr)
아들 시후의 이름을 딴 간판 ‘후스테이블’
후스테이블은 간판이라고 해봐야 작은 아크릴로 짠 라이트박스와 페트지에 가게 이름을 프린팅한 것이 고작이다.
정기주 사장과 부인인 김숙경 씨의 소박하고 아기자기한 취향 탓에 큰 간판으로 가게를 알리는 것은 지양했다. 정기주 사장은 “우리 부부는 애써 드러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가게를 알리는 데 전혀 신경을 쓰지 못했어요”라고 말했다. 인터넷 공간에서도 저마다 자신을 홍보하는데 혈안이 되어 있어 인터넷 광고 제안도 많이 들어오지만 후스 테이블과는 딴 세상 이야기로 받아들인다.
소박한 아기자기함이 깃들어 있는 것은 이 가게의 이름과도 관련이 있다. 후스 테이블이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Who’로 생각하지만 아들 시후의 이름 끝 글자를 ‘Hu’라는 영어로 표기한 것이다.
가게 오픈 당시 부부가 그렸던 풍경이 있다. 아들 시후가 학교 친구들과 함께 가게 문을 활짝 열고 들어와선 ‘배고파요 맛있는 거 만들어주세요’라고 말하는 일상의 모습이었다. 김숙경 씨는 “시후가 친구들과 편하게 가게를 찾는 것처럼 손님들도 편하게 가게 문을 열고 들어왔으면 하는 바람으로 가게를 시작했어요”라고 말했다.
가게 4층엔 아이들과 함께 하는 도예교실도 마련
후스테이블에선 파스타와 수제 화덕 피자가 대표 메뉴다. 피자는 정기주 사장이 직접 화덕에서 구워낸다. 김숙경 씨는 작년까지만 해도 동생과 함께 가게 4층에 마련한 작업실에서 아이들에게 그림과 도예를 가르쳤다. 아이들이 빚은 찰흙을 작업실 가마에서 구워냄으로써 아이들이 도예를 체험하도록 했다. 수업을 받기 위해선 기다려야 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지만 올해 동생이 아이를 출산하면서 잠시 가마의 불을 꺼야만 했다. 김숙경 씨는 “언젠가는 다시 시작해야죠”라며 새로운 시작을 기대했다.
후스테이블은 가족의 단란함이 차려져 있는 가게다. 가게를 시작할 때의 마음도 가족이 우선이었고, 가족들이 가게 인근에 모여 사는 탓에 사랑방처럼 가족의 모임 장소로 애용되고 있다고 한다.
가족에게 음식을 내놓은 것과 똑같은 마음으로 손님들의 음식을 준비한다는 정기주 사장은 좋은 재료를 사용해 몸에 좋은 음식을 만드는데 정성을 쏟는다. 가족들이 자주 모여 음식을 먹고 특히 시후는 하루에 한번 정도는 가게 음식을 먹기 때문에 후스 테이블에서는 가족과 손님이 먹는 음식을 따로 구분하지 않는다.
가족이 만들고 가족의 사랑으로 채워진 ‘후스테이블’
후스테이블의 인테리어는 부부가 콘셉트를 구상하고 정기주 사장이 인테리어 소품을 만들어 디스플레이했다. 정 사장이 직접 만들기도 하고, 손이 모자라 벅찰 경우엔 아이디어만 구상하고 인테리어 업체에 작업을 의뢰했기 때문에 소품 하나하나에도 부부의 철학이 담겨 있다. 후스테이블을 상징하는 테이블 디자인은 정 사장의 친구이자 지금은 처제의 남편이 된 그래픽디자이너 윤시호 씨의 작품이다. 후스테이블에는 곳곳에서 동심을 느낄 수 있는데 시후의 물건을 가게로 가져다 놓은 탓이다. 후스테이블에는 아들 시후의 자리가 가게 한 켠에 마련되어 있다. 가게 이름이 아닌 진짜 후스테이블인 것이다.
후스테이블로 가게 이름을 정하게 된 이유를 묻자 정기주 사장은 “아이들의 이름을 딴 가게들이 많잖아요. 00네, 00마트 같은 것과 비슷한데 저는 다만 영어를 사용한 것 뿐이죠”라고 말했다.
정 사장은 “언젠가 시후도 가게에 왜 자기 이름을 붙였냐고 묻더군요. 아들 이름을 붙인 가게가 많다고 말해줬는데 납득을 잘 못하더군요. 그런데 얼마 전 아들과 같이 여행을 갔는데 그 곳에서 수현마트라는 가게가 보이기에 저 가게 아이 이름이 수현이일 것이라고 말했죠. 아빠 말이 못미더웠는지 시후가 직접 가게 주인에게 묻는 거예요.”라고 일화를 소개하며 웃었다. 그런데 정 사장의 짐작처럼 정말 그 가게 사장님의 아들 이름이 수현이었다고 한다.
가게 유리의 포스터 ‘기억할 만한 시선’이 되다
통유리로 내부를 훤히 보이게 하는 인테리어가 트렌드로 자리 잡았지만 후스테이블은 유리를 전시회 포스터로 꾸미며 오히려 창을 가렸다. 디자인과 예술 관련 작은 전시회를 주로 붙여 놓는데 김숙경 씨는 “좋은 전시와 지난 전시회라 하더라도 인상 깊었던 포스트를 붙이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좋은 전시회를 손님들과 공유한다는 의미도 찾고 포스터가 인테리어의 한 요소가 되기 때문에 그래픽적인 요소도 고려한다고.
후스테이블은 최근 테이블을 하나 더 늘렸다. 원조 격인 계동 후스테이블에서 테이블 하나를 떼어 가회동에 가게를 차렸다. 가회동 가게는 정 사장의 부친이 30년 넘게 복덕방을 운영해왔던 공간이다. 복덕방으로는 공간이 너무 넓으니 가게를 차려보라는 부친의 권유로 테이블을 놓은 것이라고 정 사장은 설명했다.
후스테이블 2호점이라 자칫 대형화의 길을 걷는 것은 아닐까 우려됐지만 가회동 후스테이블 역시 계동처럼 소박하고 아기자기한 공간을 추구한다. 심지어 가회동 후스테이블에는 간판조차 달지 않았다. 페트소재 배너를 건 것이 고작이다. 아버지의 복덕방에도 간판을 달지 않고 창문에 작은 시트지만 오려 붙였다.
화려하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지는 않지만 골목길에 묻혀 있는 계동 후스테이블과는 달리 도로 한복판에 있는 것이 사장 부부는 영 어색하단다. ‘숨어 있기 좋은 방’이 타인에게 노출된 기분일까. 정 사장은 “표정 하나하나가 읽히는 것 같아 부담스럽고 적응이 안 돼요”라고 어색해했다.
가족처럼 편안한 테이블과 공간을 만들고 싶은 후스테이블은 가족에 대한 사랑이 손님들에게까지 전해진다. 과하게 치장하지 않는데도 사람들의 눈길을 받는 후스테이블은 작은 공간을 주는 매력이 담뿍 담긴 가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