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05-24
나지막이 울려 퍼지는 잔잔한 소리의 파장처럼 하나의 의미 있는 공간은 주변부로 그 넉넉함을 전해준다. 마치 그것은 높은 데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의 순환관계처럼 좋은 디자인이란 매개체로 건강한 환경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한약냄새에 찌들고 칙칙한 분위기로 인식되던 우리네 한의원 공간.
도무지 꿈쩍도 하지 않을 것만 같던 그 공간이 조심스레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과감한 색채를 사용하기도 하고 파격적인 개념을 적용하여 기존의 방식을 탈피하며 고객의 눈높이에 맞추어 가고 있는 것이다.
‘한의원이 꼭 한의원 같아야 하나요?” 클라이언트의 다소 반어적인 물음에 충실히 답변이라도 하듯 기린한의원은 신선한 공간의 향기를 발하며 방문객들에게 여유로움을 제공하고 있다.
마치 한의원을 찾는 고객들에게 갤러리나 쉼터 같은 분위기를 부여하려는 듯 그 느낌부터 시원스럽다. 건강한 자연미, 상쾌한 휴식처, 그리고 밝고 유쾌한 공간미를 담아내려는 디자이너의 의도는 10m에 이르는 그린 톤의 파사드에서 그 시작을 알린다.
여성전문병원을 지향하는 기린한의원의 아이덴티티를 녹색으로 정하고 색채 심리학을 통해 건강하고 안정감 있는 공간 분위기를 유도한 것이다. 이로 인해 자칫 무심하게 내팽개쳐지기 쉬운 복도 공간은 넉넉한 한의원 공간의 품으로 안겨지고 그 첫인상을 싱그럽게 이끌고 있다.
자못 기다란 복도의 이미지월을 배경삼아 걷다보면 평면의 가장자리에 자리한 출입구가 눈에 들어온다.
색다른 공간으로의 진입을 알리는 진입부는 전실을 두어 제법 깊숙이 처리되어 있고 한의원으로 방문하는 고객들은 낮추어진 단 차이를 인식하며 내부로 들어서게 된다. 진입부에서부터는 바닥을 따라 잔잔하게 이어진 흰자갈이 안쪽 공간으로 동선을 자연스럽게 이어준다.
전실을 지나 인식되는 공간은 슬레이트석과 매끈한 유리박스로 마감된 벽면이다. 진입하면서 곧바로 인포메이션이 보이는 것이 아니라 갤러리와 같은 입면으로 인식하게 함으로써 고객들의 시선을 한 단계 걸러주고 출입시 환자들의 긴장을 완화시키는 장치인 셈이다.
안쪽 공간에 떡하니 버티고 있는 이 커다란 벽면은 흡사 부유하듯 바닥 면에서 살그머니 띄워져 있고 하부조명으로 처리되어 있어 더없이 생기감 있게 느껴진다. 한의원에 자연스러운 느낌을 부여하기 위한 슬레이트석의 질감은 벽면을 가득 채우고 그 사이에 살포시 투명한 유리박스가 함입되어 있다. 이러한 두개의 상반된 재료를 통해 서로 다른 면과 매스가 충돌하고 이를 통해 더욱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유도하고 있다.
슬레이트석 벽면의 트인 공간 역시 실과 실의 소통을 이어주는 동시에 그 투명함과 시원스러움으로 공간을 풍성하게 해주고 있다. 환자들의 동선을 고려한 나머지 거부감이 없이 살짝 들어올려진 대기실은 슬레이트 벽면의 연속성을 보여주고 그 자체가 하나의 독립된 매스로 인식된다. 하나의 공간 속에 또 다른 의미의 공간이 자리를 틀고 있는 셈이다.
대기실에서 편안히 앉아 기다리는 시간의 무료함을 달래주려는 장치인 듯 대기공간의 영역은 한 편의 콩트를 연출하는 무대가 되고, 사람들의 동적인 풍경을 배경삼아 잠시간의 여유를 즐기는 자그마한 카페공간이 된다. L자 형태로 트여진 벽면 역시 전시공간의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고 감미로운 음악이 벽면을 타고 흐른다.
한의원이지만 한의원 같지 않은 색다른 공간미를 선사하고자 하는 디자이너의 욕심(?)은 다채로운 매스의 조합을 통해 더욱 살아난다.
육중하면서도 날렵하게 인식되는 대기실 자연적인 매스, 대기실과 연속성을 추구하며 동일한 마감재로 처리된 안내데스크와 불쑥 튀어나온 상부 매스, 그 안쪽 탕비실을 부드럽게 감싸고 있는 강렬한 와인컬러의 유리벽면 매스 등은 천장과 바닥 면을 타고 때론 무게감 있게 혹은 흐르는 듯 매끄럽게 공간을 채우고 있다.
전체적으로 내부 실들은 안쪽에 자리한다. 시각적 흐름을 모아주려는 듯 다소 낮게 처리된 안쪽 복도를 통해 진료실과 침구실로 진입할 수 있다. 진입시 긴장의 완화를 유도한 통로공간은 한쪽에는 강렬한 레드풍의 유리벽과 띠벽이 실크벽지를 타고 흐르는 듯 이어진다.
다른 한쪽은 은은한 실크벽지로 마감하여 차분하면서도 자못 묘한 기대감을 더해준다. 복도 안쪽에 자리한 원장실에는 별도의 서재공간을 마련하여 진료 이외의 시간에 차분히 독서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인포메이션 한쪽에 자리한 상담실이나 침구실 역시 편안한 색채를 유도하여 진료시 심리적 긴장감을 가라앉히고 있다.
이렇듯 기린한의원은 그 속에 채워진 언어의 무게와 디자이너의 창의적인 색채가 유감없이 가미되어 한의원 같지 않은 이색적인 한의원으로 방문객들의 감성을 자극하고 있다.
디자인 : 임철호/ 디자인비즈(02-546-1362, www.design-biz.co.kr)
디자인팀 : 정승오, 박규범
건축주 : 노스텔라, 기린한의원
시공 : 디자인비즈 + 김태성(019-366-0458)
위치 : 인천광역시 남동구 구월동 1456 이토타워 4F 기린한의원
용도 : 의료시설
면적 : 174.94㎡ (52.92평)
설계기간 : 2005.03.03 ~ 3.20
시공기간 : 2005.03.21 ~ 4.18
바닥 : 대리석, P타일
벽 : 슬레이트석, 컬러유리, 인테리어필름, 수성페인트, 우레탄도장, 실크벽지,
천장 : 수퍼화인도장, 실크벽지
협력업체 및 제품 : 목공/김태성(019-366-0458), 설비/대왕설비(02-2278-1841), 도장/화신도장공사(02-923-8343), 전기/다산전기(02-427-9846), 유리/유리나라(02-2649-5858), 석공/유일대리석(031-339-6316), 도배/광명지물(02-877-5764), 조명/현대조명(02-2274-8128), 주문가구/유나가구(02-473-4366), 가구/라파엘가구(031-595-0477), 하림가구(031-595-8550), 침장/흰돌장식(02-2269-5400), 사이니지/명일기획(032-427-4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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