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08-02
생명의 순환체계에서 자연은 늘 크나큰 성인군자처럼 우리에게 진솔하면서도 감동어린 이야기를 전해준다. 늘 상 우리 인간들과 곁에서 존재하면서도 있는 듯 없는 듯 감싸주고 베풀어 주는 그 넉넉함에 겸허한 마음마저 들게 한다.
애초 그 본연의 심성이 포용과 미덕이라고 간주할진데 그런 연유로 우리는 자연의 순수함과 말없이 보내오는 맑디맑은 영혼의 메아리를 귀담아 듣고자 하는 것이리라.
하지만 자연의 이러한 인자한 미소는 때로는 성난 황소처럼 눈을 부라리며 무섭게 달려들어 우리를 엄습하기도 한다. 인간의 이기적이고 파괴적인 또 다른 속성에 냉엄한 채찍을 가하며 그릇됨을 냉혹히 꾸짖는 것이다.
이러한 자연의 두 가지 반대적인 속성에 대해 답을 찾기라도 하듯 최근 자연을 이해하고 닮은꼴을 찾고자 하는 움직임이 거세게 일고 있다. 그것은 일시적인 트렌드로 나타나기 보다는 지속가능하면서도 환경친화적인 방식으로 도심지 곳곳을 휘감고 있다.
‘맛있는 자연세계’를 디자인 모토로 한 어울림 명가 역시 그런 자연의 깊은 심성을 배우고 그 진한 물성의 흔적을 이해한다는 측면에서 자연주의에 충실한 공간이라고 볼 수 있다. 무언가 새로운 스타일의 차별화된 트렌드를 찾고자 런칭한 특별한 한식공간인 만큼 자연에서 그 흐름을 찾고 자연을 소재로 형성한 쾌적한 공간에서 고객들이 편안하게 쉬고 호흡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도시의 높고 밀집한 빌딩 숲 사이에 세워진 현대식 건물 지하공간에 어울림명가는 자리한다. 디자인 초기부터 지하공간이지만 어둡지 않고 여유 있는 곳으로 만들어 달라는 클라이언트의 요구에 디자이너는 외부의 자연환경을 내부에 구현하려고자 한다.
그동안 줄기차게 자연의 속성을 재해석하여 내부로 반영하고자 한 디자이너였기에 그 해답은 자연의 정서를 듬뿍 담아낸 맛있는 자연세계로 압축된다. 어떻게 하면 좀 더 자연스러울 수 있을까. 그렇다면 자연의 요소를 어떤 방식으로 구현해 낼 것인가. 이런 반복된 독백에 따라 억지로 짜 맞춘 것 같지 않은, 마치 오래전부터 있어왔던 것 같은 흔적 남기기는 만만치 않은 작업과정을 거쳐 서서히 구체화되기 시작한다.
외부와 연계된 제법 커다란 외부 계단실을 통해 깊숙이 아래로 진입하면서 어울림명가의 흐름은 이어진다. 입구의 초입에는 전통의 개념을 살포시 담은 여러 가지 오브제들이 반갑게 맞이한다. 그리고 이어서 펼쳐진 내부의 풍경은 가히 지하층이라는 것을 무색하게 할 만큼 확장된 공간감으로 다가온다.
흡사 야외의 한적한 전통가옥에 온 것같이 싱그럽고 포근한 자연의 향기가 넘쳐난다. 한쪽에는 자연석으로 축대를 쌓아 살포시 들어 올려진 정자가 마련되어 있고 홀에는 제법 큼지막한 나무들이 공간을 튼실하게 채우고 있다. 출입구 정면으로는 자연석으로 구성된 석축이 떡하니 버티고 있고 공간의 흐름에 따라 안쪽으로 동선이 두 갈래로 이어진다. 진입부에서 사선으로 틀어진 두 개의 연속된 동선은 안쪽으로 갈수록 공간의 깊이를 더하고 묘한 호기심마저 유발시킨다.
동선을 길의 개념으로 해석하고 그 길을 걷다보면 돌과 나무, 물과 흙 등으로 구성된 실들이 적재적소에 자리를 틀고 있다. 이러한 자연적인 구성요소는 디자이너의 감성과 접목되면서 더욱 현실적으로 풀어지고 있다. 제품화되어 생산된 기성 마감재의 사용을 철저히 배제하고 자연의 물성과 선의 장단을 가미하여 정적이면서도 생동감 있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그리고 그 속에는 전통의 개념이 슬그머니 덧대어지고 자연의 싱그러운 기운이 실들을 엮고 있어 더욱 친근하게 다가온다.
약 450평의 제법 널찍한 공간은 크게 세 개의 동선으로 구분되고, 독립된 각각의 룸들과 크고 작은 연회실, 플레이존 등으로 구성된다.
홀의 중앙에는 강울림이라는 열두 개의 실들이 개여울 가를 중심으로 정답게 자리를 잡고 있다. 언뜻 보기에는 이곳이 과연 지하공간인가 하는 의문점이 들 정도로 홀 한가운데에는 여러 개의 실들을 가로지르는 아담한 개울이 마련되어 있다. 홀 한가운데 턱하니 버티고 길게 물길을 내리는 개여울가의 여운, 졸졸졸 흐르는 시냇물 소리마저 정답게 울려 퍼진다. 개울 한쪽에는 물소리와 어우러진 큼지막한 새장도 운치를 더한다.
개여울 가에 놓인 자연스러운 돌들은 시골의 어느 개울가에서 본 듯이 친근함마저 유발시킨다. 억지로 만든 듯 반듯하지도, 매끄럽게 직선으로 조경하여 시각을 현혹시키지도 않는다. 그저 제각각 크기와 모양새를 달리하여 아무렇게나 놓인 것처럼 덤덤하게 다가온다.
물가에 자라난 풀과 몇 그루의 나무 역시 마치 예전부터 그곳에 있었던 듯 듬성듬성 돌 틈새에서 자라나고 있다. 개울물에는 간간히 수생식물이 자라나 일종의 물의 자정작용도 담당한다. 이렇듯 자연스럽게 놓인 개여울과 열두 개의 실들은 시시각각으로 빠르게 변해가는 트렌드를 쫓아가지도 않는다.
그저 그곳에 있는 것이고 서로 정답게 마주보고 있을 뿐이면 그만이다. 가만히 그 면모를 지켜보다보면 빙그레 미소마저 떠올려 진다.
시골길에서 만나는 순박한 어린아이의 표정처럼 장난스럽기도 하고, 개울가에 모여 빨래를 하는 아낙네의 소담스러움이 물씬 풍겨지기도 한다. 흡사 자연의 근원인 물이라는 커다란 모티브를 통해 공간 전체를 아우르는 듯 모태적 기운을 조용히 발하고 있는 것이다.
실의 배치는 정해진 반듯함 보다 물가를 근원삼아 제자리를 잡고 있다. 다소 랜덤하게 배치된 실의 구성은 오히려 공간의 입체감을 유도하며, 면과 선의 흐트러짐을 통해 공간의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실의 어긋난 배치를 통해 형성된 군들은 마치 이웃처럼 서로 마주보는 형태를 취하고 있으며, 그 틈새에는 다소 많은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조경의 요소가 듬뿍 가미되어 있다. 바닥면에서 살짝 들어 올려진 마루형태의 실들은 이곳이 한식을 취급하는 곳임을 넌지시 알려준다. 각각의 실들은 투명한 유리로 서로 튼실하게 소통하고 있으며 한쪽은 완전히 개울가로 개방된 적극적인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강여울의 중간쯤에서 개울을 가로지르는 다리 역시 개여울을 더욱 가까이서 접할 수 있는 디자인장치로 다가온다. 좁고 기다란 길을 형상화한 강여울 다리는 선형으로 날렵하게 두 번 휘어져 돌아가 거닐기에 알맞다. 이런 점에서 직선과 빠름의 의미는 몇 발치로 멀어져가고 곡선과 느림을 통해 한껏 여유로움 마저 공간 속을 파고들게 된다.
어찌 보면 다리라기보다는 나무로 덮인 길에 가까운 강여울 다리는 다면적 언어가 적용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거울과 유리, 흙을 소재로 한 벽면은 반사성, 확장성, 물성의 시각적, 공간적 언어를 담고 있으며, 길과 개울의 공간은 어릴 적 뛰어놀고 물장구치던 정겨운 골목길과 개울가의 풋풋한 정서를 반영하고 있다.
그 기억의 흔적은 마치 진하게 물들어버린 쪽물처럼 디자이너 자신의 깊은 정서를 근간에 두고 있는 셈이다. 또한 복도의 양편의 흐름을 연결하는 소통과 순환의 의미를 담고 있으며, 사적인 실의 개념을 벗어나 공공의 영역에서 사람과 자연과의 만남의 언어를 내포하게 된다.
이와 동시에 적용된 길이라는 장치는 진솔하면서도 사색적인 은율을 선사한다. 비단 잠시간이지만 길을 걷다보면 돌과 흙과 나무도 있을 것이고 그 중간지점이 되는 다리에서 개울물의 흐름도 느껴 볼 수 있을 것이다.
필요에 따라서는 개울가를 바라보며 진한 상념에 잠길 수도 있을 것이고, 도중에 만나는 사람과 자연과의 의미 있는 대화도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강울림의 정감어린 디자인 언어는 공간 전체를 아우르는 주축으로 강하게 작용하며 사적인 영역에 무게를 둔 산울림과 어울림존은 물론 주변의 여러 영역으로 그 기운을 상큼하게 전해주고 있다. 그 디자인 언어는 퇴적의 흔적을 통해 시간성을 담고자 한 벽면의 꿈틀거림, 원목판재의 솔직담백한 결과 마감효과를 그대로 이용한 물성의 순수성, 향수어린 시간과 추억의 향취를 담은 길과 개여울의 정서로 요약되며, 그것이 어울림 명가가 보여주고자 한 머뭄과 느림의 미학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