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4-03
커다란 미루나무의 그늘에 앉아 잠시 쉬기도 하고 넓은 운동장을 마당삼아 뛰어놀던 향수어린 초등학교 교정. 그 동심어린 기억의 편린들은 어느새 우리를 과거의 시간 속으로 이끌어 어린시절 가슴으로 느꼈던 진한 향수성을 서서히 일깨운다.
경북 시골의 한적한 곳에 자리하던 망정초등학교. 수려한 자연경관을 배경삼아 아이들의 꿈을 담은 공간이 들어섰다. 하지만 개발의 흐름에 따라 점차 도시로 사람들은 빠져나가고 아이들은 그 수를 채우지 못해 결국 학교는 문을 닫는다. 수년 동안 폐교가 되면서 자연스럽게 건물은 낡고 허름해지고 비행장소로 변하는 등 곳곳에서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기 시작하였다. 이에 탑런테크의 박용해 대표는 쓸모없이 변해버린 초등학교에 기업 연수원을 계획한다. 이미 기업혁신대상(대통령상) 수상과 우수상공인 표창을 수상한 바 있는 그였기에 갖고 있는 사고 또한 건실하고 창의성이 넘쳐났다.
기업의 복합문화, 휴식공간으로 만듦으로써 임직원의 연수공간이 얻어지게 되고 아름답게 변모된 외부공간의 혜택을 마을주민들에게도 베풂으로써 폐교의 대안공간을 제시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이러한 클라이언트의 코드에 맞추어 디자이너는 되도록 건물의 틀을 유지한 채 필요한 부분만 기능적으로 탈바꿈시키기 시작한다. 우선적으로 아이들이 없어도 그곳에 추억이 담겨져 있게 한다는 따뜻한 정서성을 공간의 틀에 풀어 넣고자 한다.
“작은 창문과 울타리, 격자나무문과 숙직실, 지린내가 나는 푸세식 화장실, 삐걱거리는 나무 마루판과 빛바랜 칠판, 개구멍과 배수통, 닳아 낡은 콘크리트 바닥과 열 번쯤 칠한 나무 기둥들….” 오래 전부터 있어왔던 나무 한그루 돌맹이 하나도 소중하게 여기고 그것을 디자인 요소로 반영하려는 디자이너의 환경적 사고는 옛것의 흔적을 간직한 채 공간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게 된다.
기업의 연수원을 주목적으로 한 점에서 넓은 학교 공간은 새로운 분위기로 서서히 탈바꿈된다. 건물 이름부터 신선한 향기를 자연경관에 담는다는 프레시온(fresh-on Park)으로 짓는다. 뿌연 먼지 나는 드넓은 전면 마당 곳곳에 둔덕을 지닌 잔디가 덮혀지고 나무가 심어진다. 전체의 경관을 느리게 음미하라는 듯 철도침목으로 만든 길 역시 길게 우회하는 듯 동선을 연결한다.
외부에서 연수원 건물의 인지성을 높이고자 그물형 철망구조물이 덧대어졌고, 교실 외벽에는 낙서처럼 그리고 싶었던 다채로운 컬러의 채색이 경쾌함을 묻어낸다. 공간을 연결하는 복도와 내부바닥 역시 콘크리트의 질감을 그대로 느낄 수 있도록 투명한 칠만이 살며시 입혀진다. 각각의 교실은 다실과 식당, 숙박공간으로 구성된다. 마당이 훤히 내다보이는 교실 하나는 편안히 차를 마시며 쉴 수 있는 다실이 된다. 다실은 박공형 천정을 터서 목구조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고, 벽면에는 문산 김영식 명인의 질박한 차 그릇이 찻집으로서의 분위기를 더해주고 있다.
다실에 전통적인 향기를 불어넣고 도자기 전시개념을 살포시 도입하면서 공간의 윤기는 더한다. 거기에 바닥면에서 낮게 깔린 길쭉한 띠창을 통해 운동장 너머의 풍광이 자연스럽게 들어오고 창밖에는 표정을 간직한 벅수 한 쌍이 조심스레 웃음을 제공하고 있다. 박스형태의 교실 내부는 구름채, 언덕채, 들채, 바람채라는 이름을 달고 편안한 숙박공간으로 변모하고 냄새나던 푸세식 화장실은 황토찜질방이 되어 직원들의 피로를 말끔히 풀어준다.
이렇듯 프레시온파크에는 직원가족을 위해 추억을 담아준 집주인의 넓은 가슴만큼 인자하신 선생님 표정이 담겨져 있기에 더욱 살갑게 다가온다. 마치 아이들이 금방이라도 교실 안쪽에서 뛰어나와 ‘선생님’하고 부를 것 같은 정감어린 정서를 디자이너와 건축주는 이곳에 담고자 한 것이다. 또한 그러한 점에서 폐교의 튼실한 대안공간이자, 마을주민을 위한 공용공간적 성격을 지닌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를 깊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