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5-26
미술시장의 급속한 팽창과 함께 국내의 화랑들도 조심스럽게 변화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 대표주자 격으로 이미 오래 전부터 최고 수준의 갤러리로 명성을 이끈 갤러리현대 역시 강남 신사동 한복판에 새로운 갤러리 공간을 개관하게 된다. 갤러리가 들어서기 전 건물은 압구정 로데오거리에 패션복합 상업건물이었다. 사업의 불투명성과 디자인디렉터의 부재로 자못 혼란스럽던 건물을 갤러리현대에서 인수하면서 공간 디자인은 새로운 변화를 요구하였다. 기존의 공간은 현대미술관의 전형으로 인식되는 화이트큐브(White Cube)와 너무나 동떨어진 커튼월 건물이었고, 건축주 박명자 회장의 고민은 리안갤러리의 백남준 전을 통해 만난 이호영 교수에게 디자인 디렉팅을 요청하면서 자연스럽게 풀려가기 시작한다. 이에 디자이너는 미국 체류시절 자주 찾던 뉴욕 현대미술관(MoMA)을 떠올렸고, 당시 MoMA 리노베이션 총디렉터였던 요시노 다니구치의 작품과 관람자의 편안함을 유도하기 위해 극도로 자제된 건축언어를 통해 세련된 공간을 표현하고자 하였다. 근 37년 만에 갤러리현대는 새로운 CI와 BI(Do Art)까지 감행하는 과감성도 보인다. 건축공간의 차별화된 디자인언어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 먼저 CI 디자인을 통해 기본개념을 정립한 후에 건축과 실내공간디자인의 조형언어와 차별화된 디테일을 이끌어 내고자 한 것이다.
갤러리의 모양새는 안쪽이 서로 한 몸으로 연결된 두 개의 직방형 매스가 하늘 높이 솟아 있는 형상이다. 자연스럽게 매스 중앙은 보이드 된 중정이 되고 내부공간으로 관객을 끌어안듯 인입시키고 있다. 이 빈 공간은 출입동선의 역할과 조각품이 진열된 아트공간이라는 공공성을 토대로 거리로 한껏 열려진 눈짓을 발하고 있다. 그리고 그 한 가운데는 지하 전시 층의 자연채광을 돕고 있는 톱라이트가 마련되어 있다. 지하 전시공간의 크리에이티브 솔루션(Creative Solution)은 3공간(Space 1,2,3)으로 구성된 지하층 갤러리의 애로점과 전시작가의 작품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해결요소로 작용한다. 중앙의 엘리베이터를 통해 수직으로 이동이 가능한 내부 전시공간은 지하 1층, 지상 3층까지 연속된다. 1층은 갤러리의 이벤트적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리셉션 로비를 중심으로 전시실(Space 4)과 레스토랑이 별도로 마련되어 있다. 이어진 2, 3층은 각각 2개의 전시장으로 구성되며 4층은 갤러리 사무실로 활용된다.
디자인을 담당한 모프의 홍일태 소장은 “건축물이 가지고 있는 스킨의 화려함보다 공간이 가지고 있는 프로그램적 사실에 대한 주안점을 두었으며, 이를 구현하기 위해 관람자가 최대한 한 작품에 집중 할 수 있도록 여타의 자극적 건축언어들을 제거하면서부터 디자인을 하였다”며, “절제된 건축언어와 매혹적인 예술공간을 만들기 위해 다양한 형태의 전시공간, 가변적 공간의 확장 그리고 전통적 갤러리의 주된 요구인 직사각형 공간의 구성 등이 중요하게 고려된 점이었다”고 밝힌다. 총괄 디렉터를 맡은 이호영 교수는 갤러리현대의 디자인에 대해 “완벽함이란 더 이상 뺄 것이 없는 것이라는 것이 아닐까”라는 메시지로 함축시킨다. 그 속에는 사람이 중심이 되는 공간이라는 진솔한 언어가 담겨져 있는 것이고, 이 시대 디자이너의 사회적 책임이 부재된 과욕과 화려함으로 가득 찬 천민자본주의를 넌지시 비판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취재 | 김용삼 · 안정원, 사진 | 최정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