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10-26
며칠 전, 친구들과 함께 했던 어느 요구르트 아이스크림 전문점에서였다.
“ 여긴 참 적은 비용으로 높은 효과를 얻고 있는 공간인 것 같아. 인테리어가 참 맘에 드는데 하나하나 뜯어보면 절대 큰 돈이 들어갔을 것 같지는 않단 말이지. 디자인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이런걸 디자인이라고 하는 게 아닐까?”
디자인과는 무관한 친구가 한마디를 했다.
무슨 인연인지 바로 다음 날. 정글 회원에게서 메일을 한 통 받았다. 젊고 건강한 디자이너를 추천한다는…무엇보다 ‘레드망고’를 만드신….이라는 대목에 눈이 갔다. 디자이너 비전공자도 디자인을 생각하게 만든 ‘그’ 디자이너가 몹시 궁금했다.
2004년 10월 13일. 나는 디자이너 김학석을 만나러 갔다.
사무실에 들어서는데 여기가 어딘가 싶었다. 사무실이라 하기엔 너무나도 분위기 있는 이 곳. 레드망고를 떠올리며 들어선 이곳에서 뿌리는 같지만 안으로 담기엔 버거운 또 다른 매력을 보았다.
인터뷰 | 호재희 정글에디터 (lake-jin@hanmail.net)
1977년에 태어났단다. 올해로 스물 여덟. 숫자로 적은 나이는 아니었으나, 그가 경험한 것들, 해낸 일들,,, 뒤돌아보면 그렇게 나이를 먹기엔 세월이 너무 더디다.
발명가가 되고 싶었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혼자 무언가에 집중해서 생각 하는 것이 좋았고, 생각나는 것들은 만들거나 그려 보아야 직성이 풀렸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던 친구의 형이 그에게 실내디자이너라는 직업을 알려주었다. 그 뒤론 아무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실내디자이너가 되기 위한 길만이 그 앞에 있었을 뿐.
대학에 들어가 처음부터 차근차근 시작하기로 맘을 먹었다. 내성적이었던 그는 성격부터 고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선택한 아르바이트가 패스트푸드 전문점에서의 일이었고, 한단계 한단계 경험을 쌓기 시작했다. 성격 개조를 위한 한학기가 그렇게 지나고, 이제는 ‘디자인’을 가까이 하고 싶었다. 무턱대고 설계 사무실을 찾아가 도면도 볼 줄 모르던 그가 일을 하기 시작했다. 열심히 일했고 나름 인정도 받았지만, 뭔가 모래성을 쌓고 있는 기분이었다.
전문화된 지식의 필요성을 느꼈다. 그런 필요성을 느끼면서 군입대를 하게 되었고, 디자인 감각을 늦추고 싶지 않았던 그는 군대에서 닥치는 대로 디자인에 대한 책들을 읽어댔다. 덕분에 디자인과 더욱 가까워진 채로 제대를 하게 되었다. 군복무를 마친 뒤, 다시 시작하기로 마음 먹은 그는 디자인을 처음부터 배우기로 결심했다. 도장, 목공, 가구 심지어 사인까지 전국 방방 곡곡을 쫓아 다니면서 경험했다.
그러던 그에게 기회가 왔다. 그의 모습을 지켜보던 지인의 권유로 ‘예가’라는 회사를 맡게 되었던 것. ‘예가’는 그에게 많은 것을 경험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우선, 처음으로 한 공간을 디자인 해 설계에서부터 시공까지 홀로 도맡아 해냈다. 디자인뿐만 아니라 인간관계, 위기대처 능력 등 사회적 경험을 하게 해 준 기회였다.
‘예가’에서 했던 디자인들이 사람들에게 인지되기 시작했다. 그다지 유쾌하지 않게 ‘예가’는 사라졌지만, 디자이너 김학석은 그 자리에 남아있었다. 그리고 그의 디자인은 계속되었다.
이룸과 무너짐을 동시에 알게 된 디자이너 김학석은 학교로 돌아갔다. 그리고, 주변에 한참 꿈을 꾸고 있는 후배들을 보았다. 그는 그가 그 동안 경험한 것들을 후배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그것 또한 차근차근 쉬운 것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우선, 혼자 습득한 디자인 관련 컴퓨터 프로그램들을 후배들에게 쉽고 빠르게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이 「디자인 원」의 모태가 되었다.
그렇게 학교 생활에 적응하고 있는 그에게 프리랜서 디자이너를 관리하는 한 회사에서 요구르트 아이스크림 전문점 디자인 기획을 위한 의뢰가 있었다. 그리고 그는 인테리어 디자이너를 넘어서 그 프로젝트와 관련된 모든 것들을 디자인하기 시작했다.
김학석은 이 공간을 휴식이라는 개념으로 접근하기 시작하였다. 저칼로리의 요구르트 아이스크림과 과일이라는 건강식품이라는 데서 ‘휴식’을 찾아 딱딱하고 인위적인 공간 속에서 눈으로만 쉬는 것이 아닌, 몸과 마음까지 쉬어갈 수 있는 자연 친화적인 공간을 의도하였다.
‘나무 한 마리’가 바로 그것인데, 이는 나무속에 둥지를 튼 한 마리의 새라는 느낌이기 보다는, 우리에게 휴식과 쉼을 제공하는 자연 중 ‘나무’ 그리고, ‘새’를 하나의 휴식이라는 건강한 생명체로 보고 ‘나무 한 마리’라는 재미있는 표현과 느낌을 공간에 담아보았다.
기존의 매뉴얼을 가지고 있는 프렌차이즈점을 인테리어하는 것이 아니고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디자인 원에서는 매장 인테리어 뿐만이 아니라 CI, 가구, 명함 등 그 이미지를 위한 대부분의 디자인을 도맡아 했고, 사업의 성공과 더불어 레드망고의 인테리어 매뉴얼 디자인을 하게 되었다.
디자이너 김학석은 디자인에 있어 창의적 표현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인테리어 디자인에 –ism은 바탕이 될 뿐 그것이 디자인 방법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디자인이라는 것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훌륭한 디자인은 여러 혼합된 디자인 방법의 조화의 문제라고 생각하고, 그런 조화로 자신만의 –ism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실제로 공간과 어울릴 듯한 음악을 듣고 공간을 표현한다든가, 남들이 신경 쓰지 않는 작은 요소에 의미를 하나하나 부여하여 전체적으로 테마가 있는 공간을 만든다든가 하는 방법들로 공간을 디자인 해낸다. 실내라는 공간은 자판만 누르면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인터넷 세상과는 달리 내가 서서, 앉아서, 움직이면서 일해야 하는 곳이므로, 이론적인 논리에 집착할 필요는 없다.
디자이너 김학석의 디자인을 한단어로 표현할 수는 없다. 그만의 특색이 없다는 것이 그의 특색. 굳이 하나 선택하라면, 미니멀한 것이 그가 추구하는 스타일이지만, 남들이 기대하는 것처럼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무엇이든 쉽게 표현하고 쉽게 만드는 것이 그가 원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의 디자인은 대단한 과정이나 대단한 무엇을 요구하지 않는다. 단순하게 생각하고 단순하게 표현해 단순한 공간을 만들지만, 그 공간은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준다. 그에게 인테리어 디자인은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보는 일종의 자기 최면과도 같은 것이다. 스스로 생각한 틀에 자기도 빠져들고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도 같은 생각이기를.
공간만 생각하기보다는 전체의 이미지 조화를 생각하면, 기본적 개념에 기본을 둔 발상의 전환이랄까? 단지 색깔하나 바꿨을 뿐인데 모든 것이 변한 듯한 느낌을 주는 것이 가능하다.
계속되는 생각, 다양한 활동들은 그에게 많은 디자인 영감을 준다. 산책을 하거나, 음악을 듣거나, 그림을 보거나, 말을 늘어놓아 본다거나 하는 일들을 단순화 하다 보면 공간이 보인다.
2004년 6월. 오피스 공간 ‘오우가’를 디자인 하면서 말로만 듣던 ‘공간이 사람의 행동을 변화시킨다.’는 것을 믿게 되었다.
디자이너 김학석에게는 두 가지 꿈이 있다. 디자인 경영자로써의 꿈. 그리고 디자인 교육자로써의 꿈. 우선은 무언가 즐겁고 흥미로운 공간을 만들고 싶다. 단순히 공간 디자인에 대한 얘기가 아니다. 공간 뿐 아니라 그러한 프로그램들이 가득찬 곳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소망이다. 그리고, 학생들에게는 즐기면서 하는 디자인을 가르치고 싶다. 스스로도 아직 학생신분이지만, 보기에 요즘 디자인을 공부하는 학생들은 중심이 없다. 디자이너가 안되면 죽어도 좋다는 그런 의지도 없다. 디자인에 대해 애착을 가지고 경험을 쌓아가길 바란다. 경험이 차곡차곡 쌓이다 보면 어느날 문득 ‘디자이너’가 된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 믿는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속담은 부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하지만 디자이너 김학석에게 그것은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 미래는 모르는 것이고, 사람은 무한한 잠재 능력을 가지고 있다.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다 보면 언젠가는 차게 된다고 믿는다. 지나가는 사람이 그 독을 메울 수 있는 돌을 넣어 줄 수도 있는 것이고, 나 스스로가 그 독의 밑을 막는 돌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여유를 가지고 살란다. 계속 채우려고만 한다면 넘칠 뿐. 빈 공간을 두고 채워질 수 있는 여지를 두고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