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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위(無爲)’로 지속시키는 디자인

2009-02-10

잘 재단되고, 아름답게 디자인된 오브제들. 의도된 컨셉트를 수용하면서도 미적으로 완결성을 지니는 ‘디자인’이라는 의미가 그 목적에 충실한 나머지 낭비해버리는 것들에 대해, 이를 인식하고 그 대안을 풀어내는 디자인이 주목받고 있다. “그린디자인, 에코디자인과 같은 용어들의 의미가 비단 리사이클과 리유즈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라고 이야기하는 낫씽디자인(Nothing Design)의 구진욱 대표는 이를 ‘지속 가능한 디자인’의 관점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에 대한 고민을 한국적 정서와 아기자기한 아이디어로 만들어가고 있는 낫씽디자인의 작업들을 소개한다.

에디터 | 김유진(egkim@jungle.co.kr)

‘디자인’이라는 단어와 결합한 ‘낫씽’이란 이름은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디자인이라는 것 자체가 ‘무엇인가를 재단하고 완성하는’ 행위적 표현인 데에 반해 ‘낫씽’이라는 단어는 이에 대한 너무도 확고한 부정이 아닌가. 그럼에도 이 결합은 ‘하지 않음’으로서, 혹은 ‘최소화 함’으로서 더욱 적극적일 수 밖에 없는 행위들을 연상시킨다.
노자의 무위사상에서 가져왔다는 ‘낫씽’에 대해 구진욱 대표는 ‘무위’의 진정한 의미가 ‘진공묘유(眞空妙有)’ 즉, 진정 없으나 묘하게 있는 바가 있다는 뜻에 가깝다고 설명한다. 낫씽디자인의 철학은 현재에 존재하는 것을 적극 활용하면서 동시에 ‘지속 가능한 디자인’을 추구하는 데에 위치해 있다.
“자연에 대한 의식이 물론 기본이 되겠지만, 저희는 도시까지 아우르는 어반 디자인(Urban Design)의 개념에 더 가깝습니다. 물질적인 것보다는 정서적으로 순화시킬 수 있는 것들이요. 유기농을 먹는다고 친환경이나 그린 디자인에 가깝다고 할 순 없지요. 저희가 생각하는 것은 마음속의 초록빛에 가깝죠.”
건물 틈새로 피어나는 꽃에는 화분의 반을 잘라 붙여 작은 화단을 선물하고, 네모난 벽돌에는 구멍을 뚫어 도시의 빛을 밤하늘의 별처럼 만들어주는 것이 낫씽디자인의 방식이다.

못질 대신 테이프를 활용한 행거는 나무 벽에 못질을 가하지 않아도 옷부터 칫솔, 면도기까지 아기자기한 물건을 가볍게 걸도록 허락하고, 단 한번의 컷팅으로 완성시킨 사각형의 스폰지 소파는 사용할 때만 그 형태를 드러내면서 무위(無爲)본능을 실천한다.
‘진공묘유’ 머그컵은 앞서 언급한 글자 그대로의 철학을 담았다. 컵 손잡이 하나로 컵을 어떻게 놓을 것인가,라는 보관의 문제를 해결해준다. 낫씽디자인에서 직접 설명한대로 “아무것도 디자인되지 않은 것도, 필요 없는 것을 생략해 버리고 마는 것도 아닌, 인간의 내면적 감각을 자극시키는” 디자인이다.
이렇듯 낫씽디자인이 생성하는 유형 혹은 무형의 디자인 컨텐츠는 동양적 사상을 기반으로 한다. “동양 사상이라고 해서 무조건 전통적인 것만 추구하자는 데에는 반대합니다. 옛 선인들과 어른들의 생활 속의 지혜나 재치 있는 표현에서도 충분히 찾을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책 받침대에 적용되는 ‘지게’ 원리라든지 맑은 하늘에 내리는 비를 ‘호랑이가 장가간다’고 표현하는 것과 같은 거죠.”

동양의 선인들이 처마 끝에 달아놓은 물고기 모양의 풍경도 동양의 아름다움을 담은 모티브가 된다. 바다 빛깔을 닮은 하늘을 보며 물고기 모양의 종을 달아놓았던 것은 바다의 큰 물을 연상하며, 목조건물에 화재가 일어나지 않도록 혹은 가뭄이 들지 않도록 기원했을 옛 사람들의 염원이 담겨있는 유산이다.
이를 모티브로 삼아 완성한 ‘하늘 물고기(Fish in the sky)’는 네델란드의 익스페리멘타디자인에 초대 받아 큰 호응을 얻었던 작품이다. 암스테르담이 인공적으로 땅을 개간한 바다 위의 땅이라는 점에 착안, 암스테르담이 바다였던 시절을 다시금 떠올리게 하듯 비닐 소재의 물고기 오브제를 만든 것. 바람이 움직여야만 소리를 냈던 풍경처럼, 바람이 완성시키는 물고기 형상은 자연과 보다 가까웠던 동양적 정서를 상징한다.
24개 팀이 경합을 벌여 12개 팀에게만 전시 기회를 주었던 익스페리멘타디자인에서, 낫씽디자인의 ‘하늘 물고기’는 유별난 관심을 받았다. 동양의 작은 나라에서 가져온 긴 막대기에 달려있는 물고기가 암스테르담이라는 도시의 옛 모습을 이야기하고, 또 옛 동양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잘 살도록 기원하고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낯설고도 재미있었을까.

디자인이라는 단어가 동양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바로 우리의 삶 속에 디자인이 묻혀있기 때문이라고, 낫씽디자인은 말한다. 낫씽디자인의 ‘낫씽’은 기품 있는 시조만이 품을 수 있는 행간의 여백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행과 행을 만들어가는 것은 이미 우리 옆에 존재하는 것, 그 사이 여백에 담긴 의미들을 채워가는 것은 무위에 가까운 지속 가능한 디자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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