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3-27
서울의 지하철은 광고 매체 측면에서 세계 어느 나라의 지하철과 견주에도 뒤지지 않는 역동적인 다양한 매체가 구현되고 있다. 지하철이 광고 매체의 ‘핫’한 공간이 된 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가장 많은 대중이 지하철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대중에게의 노출이 곧 광고효과로 직결되는 전통적인 방법의 광고효과 조사에서 서울의 지하철은 광고주를 설득시킬 수 있는 효율적인 수단이다.
올해로 개통 150주년을 맞은 세계 최초의 지하철인 런던 지하철이 대중의 편의를 극대화하기 위해 공공디자인 측면에서 공을 들인 사실을 현재 우리의 지하철은 상기할 필요가 있다. 비단 시민의 편의성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일방적인 노출보다 대중과 교감하는 광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트렌드를 감안한다면 우리의 광고 매체 역시 공공디자인적인 관점에서 보는 시각이 필요하지 않을까.
글│전성원 계간 황해문화 편집장
기사 제공│팝사인
1863년 1월, 인류 최초의 지하철 등장
2013년 1월 10일은 인류가 지하철을 타기 시작한지 정확히 15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1863년 1월 10일, 영국 런던의 패딩턴(비숍스로드)과 페링던 사이의 6km 구간을 잇는 런던 지하철이 세계 최초로 개통되면서 인류는 SF소설에서나 상상할 수 있었던 ‘땅 속 열차’를 처음으로 경험하게 되었다. 초기의 지하철은 증기기관차로 운행되었기 때문에 매연이 심각한 문제였지만 1890년 11월 4일, 스톡웰과 킹 윌리엄가(街)를 연결한 ‘시티 앤 런던 지하철’부터 전기철도 방식의 기관차가 도입되면서 매연 문제가 해결되었었다. 매연 문제가 해결되면서 유럽의 여러 나라들이 앞 다퉈 지하철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1896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이어 오스트리아의 빈(1898), 프랑스 파리(1900) 그리고 독일의 베를린(1902)과 함부르크(1906)에 차례로 지하철이 들어섰다.
나라마다 지하철을 호명하는 방식에 약간의 차이가 있는데 프랑스는 메트로(metro), 영국 지하철은 언더그라운드(Underground) 또는 튜브(Tube)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 지하철을 뜻하는 서브웨이(subway)란 말은 영국에서라면 길 건너편을 연결해주는 지하통로를 의미한다. 런던의 지하철을 튜브라고 부르는 까닭은 지하터널을 처음 건설할 때 사용했던 틀이 수영장 튜브의 단면을 닮아 지금까지 튜브라고 부르게 되었다.
한국의 지하철, 시스템적으로는 ‘세계 최고’에 선정
유럽 대륙에서 처음 시작된 지하철은 이후 미국 보스턴(1901), 뉴욕(1904),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1913) 등 신대륙을 거쳐 아시아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로 널리 퍼져나갔는데, 지하철은 도심 대중교통의 이상적인 모델이자 다른 한 편으로 근대화의 상징이었다. 아시아에서는 가장 먼저 서구 문물을 받아들여 근대화에 성공한 일본의 도쿄(1927)가 시초였다. 우리나라의 지하철은 1971년에 착공해 1974년 8월 15일 서울시 1호선 서울역과 청량리 사이의 7.8km 구간을 연결한 것이 최초였다. 개통 당시 지하철 규모는 서울역에서 청량리역까지 1개 노선에 9개역, 전동차 60량 수준이었는데 공식 명칭도 현재의 1호선이 아닌 종로선이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북한이 우리보다 1년 앞서 지하철을 개통했다는 것인데, 당시만 하더라도 북한의 경제력이 남한을 앞서고 있었던 점을 상기해본다면 놀랄 일도 아니다. 북한의 지하철은 중국의 지원을 받아 1968년부터 건설되기 시작해서 1973년 9월에 개통할 수 있었다. 평양 지하철이 운영을 개시할 무렵엔 중국 장춘자동차생산회사의 객차를 일부 운용했다고도 하는데 평양 지하철은 평양시의 동서남북을 이어주는 총 연장 40km 구간으로, 일일 평균 승객 수는 40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얼마 전 미국의 자동차 전문매체인
<잘롭닉>
이 실시한 ‘세계 최고의 지하철 시스템을 갖춘 도시’라는 주제 발표에 따르면 북한의 평양이 스페인의 바르셀로나(10위) 보다 앞선 순위인 9위에 선정되었다.
이들이 평양을 9위에 선정한 까닭은 무엇보다 평양 지하철이 주변 시설과 구조물이 청결하고 외벽 장식이 매우 아름다우며 세계의 모든 지하철 중에서 가장 깊은 곳에서 운용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실제로 우리나라 지하철의 평균 깊이가 20m인데 반해 평양 지하철은 지하 110m의 깊이에서 운행되고 있다고 하니 북한의 지하갱도 파는 능력만큼은 확실히 남다른 면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들의 조사에 따르면 세계 최초의 지하철인 런던 지하철이 세계 5위, 영국 지하철의 전통을 물려받은 홍콩 지하철이 4위, 프랑스 파리가 3위, 일본 도쿄가 2위, 우리나라의 서울 지하철이 역사 내부의 청결, 시설의 안락성, 요금결제 및 안내의 편리함 등으로 인해 세계 1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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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디자인의 교과서로 불리는 런던 지하철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지하철은 대표적인 대중교통 수단으로 특히 도심을 이용하는 승객들의 가장 편리한 이동수단이 되었다. 이 때문에 지하철은 그 도시의 생활수준은 물론 그 도시가 지닌 문화인식의 수준을 대변하는 지표 역할을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하철은 그 나라가 가지고 있는 기술력 못지않게 그 나라가 생각하는 공공성(가치), 건축과 디자인, 예술적 수준을 드러내는 지표가 되고 있다. 우리나라 지하철이 시설의 청결과 안락성, 요금 결제 편의성 수준에서는 세계 1위일지 모르겠지만 지하철 역사의 건축과 디자인, 예술 수준 역시 세계 1위라고 자랑할 만한 것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오늘날 영국의 런던은 세계적인 금융도시이자 창조도시의 원조로 각광받고 있는데 런던이 이처럼 세계적인 창조도시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밑바탕에는 런던 지하철의 공공디자인이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런던 지하철의 공공 디자인은 세계 디자인사에 길이 남는 기능성과 심미성을 자랑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은 런던 지하철을 상징하는 로고만 보더라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런던 지하철(언더그라운드)의 공공디자인은 빨간 동그라미 안을 가로지는 파란 띠로 이루어진 UFO 모양의 지하철역 로고 표지판과 복잡한 지하철 노선을 알아보기 쉽게 색깔별로 깔끔히 정리된 노선도를 꼽을 수 있다. 단순하면서도 세련된 런던 지하철의 명료한 디자인은 도시의 중심과 외곽을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연결하고 있는 거대한 네트워크에 전체적인 통일성과 개별적인 정체성을 동시에 부여한다. 이처럼 통합된 디자인으로 인해 런던 지하철은 오늘날에도 전 세계 공공디자인의 교과서로 여겨지고 있으며 언더그라운드의 디자인은 ‘영국에서 가장 효율적인 시각교육센터’라고 부른다.
런던 언더그라운드 로고, 대중교통의 아이콘 되다
런던 지하철이 이처럼 명품 디자인을 자랑하게 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1907년 당시 런던 지하철을 운영하던 런던 제너럴 옴니버스 컴퍼니(London General Omnibus Company)의 사장은 프랭크 피크(Frank Pick)라는 한 젊은이를 고용해 당시 런던 지하철 역사를 뒤덮고 있던 온갖 간판들과 산만하게 나붙은 광고 포스터를 한데 모아 정돈하는 업무를 맡겼다. 프랭크 피크는 자신이 맡은 임무를 성실히 수행해 어느덧 각종 간판과 사인보드를 정비하는 달인이 되었고, 그 재능을 높이 평가받아 런던 지하철의 디렉터가 되었다.
그는 이 같은 광고물들을 정비하는 것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런던 지하철의 디자인을 질적으로 강화하기로 마음먹고, 서체 디자이너인 에드워드 존스턴(Edward Johnston)과 건축 디자이너인 찰스 홀든(Charles Holden) 등을 참여시켜 대대적인 공공디자인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의 지휘 아래 존스턴은 런던 언더그라운드 로고(1925)를 만들었고, 홀든은 50여 개의 아름다운 역사를 탄생시켰다. 그리고 전기회로도에서 영감을 얻은 해리 베크(Harry Beck)는 오늘날 우리가 한 눈에 일목요연하게 지하철의 노선을 살필 수 있는 노선도(1933)를 만들었다. 그의 지하철 노선도 디자인은 이후 전 세계 지하철 노선도의 표준이 되었던 것이다.
프랭크 피크는 지하철 공공디자인의 영역을 단순히 표지판이나 광고에 국한하지 않고, 객차 좌석을 덮은 직물의 패턴부터 런던 지하철이 알려야 하는 각종 정보와 관련 행사를 홍보하는 포스터에 이르는 모든 영역에 디자인 개념을 도입했다. 또한 당시만 하더라도 전위적인 성향의 신진 작가들에게 과감하게 디자인을 의뢰하여 단순한 인포메이션 정보를 넘어 삭막한 교통 환경에 새로운 미감을 불어넣도록 했다. 그의 후원 덕분에 런던의 아방가르드 예술은 런던 지하철과 함께 성장할 수 있었고, 오늘날 영국의 창조산업이 성장하는 데 있어 프랭크 피크의 지하철 공공미술 프로젝트는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다. 공공 디자인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인식했던 한 사람의 노력 덕분에 런던 지하철(언더그라운드)는 탄생 150주년을 맞이하는 오늘날까지 런던 시민은 물론 런던을 통해 유럽으로 건너가는 수많은 세계 시민들의 사랑받고 있다. 프랭크 피크는 구겐하임과 더불어 20세기 최고의 아트 패트런 중 한 명으로 손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