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8-07
스카이가 IM-S110이라는 슬림폰을 내 놓았고 그에 대한 브로슈어 촬영이 있었습니다. 새로운 제품이 출시될 때마다 제품의 특성을 파악해 전체 촬영의 주제를 정하게 되는데 이번 주제 역시 슬림Slim입니다. 얇은 제품의 특성을 강조하기 위해 모든 배경은 차갑고 예리한 느낌의 철판으로 제작되었고, 2명의 외국인 남녀 모델이 철판으로 만들어진 벽과 벽 사이의 좁은 공간 속에서 각각의 핸드폰 기능에 어울리는 포즈를 취하게 됩니다. 이번 스카이 슬림폰의 특징을 슬림, 컬러, 패션, 뮤직, 카메라 기능 등으로 정리하여 모두 5개의 이미지를 제작했으며 그 중 3개의 이미지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먼저 서로 모르는 젊은 남녀가 좁은 통로를 아슬아슬하게 교차해 지나가는 장면을 연출하여 핸드폰의 슬림한 디자인을 이야기해 줍니다. 통로 세트는 실제보다 뒤쪽은 좁게, 앞쪽은 넓게 만들고, 광각렌즈로 촬영하여 원근감을 강조해 주었습니다. 약간의 하이앵글(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시각) 위치에서 수직선이 기울어져 보이도록 긴장감을 연출해 주고 가능한 한 닿을 듯 말 듯, 극적인 순간을 연출하여 촬영해야 했습니다. 두 번째 이미지는 그 남자의 사진이 걸려 있는 좁은 통로를 여자 모델이 지나가다가 사진의 컬러가 옷에 묻어나온다는 상황을 표현함으로써 카메라의 생생한 화질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액자 속에 들어갈 남자 모델의 옷에 페인트칠을 한 뒤 촬영하고, 대충의 위치를 가늠한 다음 여자 모델의 옷과 오른쪽 팔에도 같은 페인트칠을 하여 촬영을 합니다. 모델의 의상을 고르면서 가능한 한 물감의 색이 잘 드러나도록 흰색(여자)과 밝은 회색(남자)을 선택하였고, 전체적으로 5개의 이미지 모두 동일한 모델을 사용하기 때문에 단조로움을 피하기 위해 각 이미지마다 메이크업, 의상, 헤어스타일에 많은 변화를 줘야 했습니다. 세 번째 이미지 역시 좁은 통로 안에서 이뤄지는 남녀의 극적인 모습을 통해 ‘유혹보다 매혹적인 핑크 컬러의 신비로운 매력’이라는 카피로 폰의 컬러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가능한 한 너무 선정적으로 보이지 않게 해달라는 광고주의 요청이 있었고 그 수위를 놓고 고민을 해야 했습니다. 약간 로우 앵글(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보는 시각)로 은밀한 유혹의 장면을 육감적인 느낌으로 담았습니다.
실제 바디페인팅용 물감을 등에 바르고 촬영하기도 했지만 물감 흔적의 크기나 위치를 자유롭게 바꿀 수 있도록 따로 촬영을 해둡니다. 전체적인 조명은 역광의 실루엣으로 통로 끝이 아주 밝게 보이도록 하여 깊은 공간감이 느껴지도록 하였습니다. 통로 끝에 4개의 조명을 카메라 쪽으로 설치하고 모델들이 광원을 어느 정도 가려 플레어 현상을 막도록 서로의 위치(모델, 조명, 카메라)를 조절해야 합니다. 그리고 역광으로 어두워진 전면부를 어느 정도 밝혀주기 위해 모델의 약간 앞쪽 탑 위치에서 중간 크기의 소프트박스를 이용해 전체적으로 절제된 필 라이트를 줍니다. 이때 소프트박스 앞에는 사각형의 소프트박스 전용 허니컴 그리드를 설치하여 부드러운 빛이 너무 넓게 퍼지지 않도록 차단해 주어야 합니다.
한참 촬영을 하다보면 스튜디오가 비좁다는 느낌이 듭니다. 50평 남짓한 공간에 20여 명의 스탭들이 함께 하다보니 더 그렇게 느껴지나 봅니다. 아직까지 어시스턴트 없이 혼자 스튜디오를 꾸려온 저에게는 이런 분위기가 매우 적응하기 힘든 환경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그럭저럭 혼자서 하는 시스템을 유지해오고 있습니다. 몇 명의 어시스턴트가 있어 자신의 일을 대신해 주고 시키기만 하면 촬영 준비가 끝나고 파인더 몇 번 봐주면서 셔터만 누르면 되는 그런 시스템이 가끔은 부럽습니다만 그러다보면 점점 더 촬영 실무에서 멀어져 말로만 사진을 찍고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모습이 되지 않을까 염려 됩니다. (물론 대부분의 스튜디오 실장은 효율적인 조직 관리를 위해 더 큰 일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대체로 나이가 들면서 기력이 쇠하고, 열정도 식으면서 체면치레는 해야겠는데 현장에서 뛰자니 몸도 감각도 모두 둔해져 있다고 합니다. 사실 저는 그런 상황이 제일 두렵습니다. 좀 어리석은 방법이긴 하지만 혼자 일하면서 촬영에 관련한 이런 저런 일들을 직접 챙기다 보니 몸은 좀 힘들지만 언제나 처음인 듯 마음은 항상 설레고 새롭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