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6-24
인천공항을 출발해 4번의 비행기를 갈아타야 했다. 그렇게 지구 반대편의 나라 페루에 도착하는데 꼬박 36시간이 필요했다. 온 몸은 파김치처럼 늘어질 대로 늘어졌다. 그러나 페루의 수도 리마를 거쳐 쿠스코로 향할 때는 그동안의 피곤함이 오히려 묘한 설레임으로 바뀌어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아레키파를 경유하며 기내에서 콜카캐니언의 모습을 만나자 머리 속은 앞으로 펼쳐질 페루 여행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득 찼다.
글, 사진 | 사진가 신미식
Cusco & Machi Picchu
동체가 좌우로 한번 흔들리더니 황톳빛 고원도시가 기내로 가득차 들어온다. 드디어 비행기가 쿠스코에 도착한 것이다. 작지만 깨끗하게 단장된 공항을 빠져나오니, 이곳이 페루구나 싶을 정도로 특색 있는 모습들이 눈에 띈다. 길에는 커다란 보따리를 동여매고 총총히 걸어가는 인디오 아줌마의 모습이 보인다. ‘내가 정말 페루에 왔구나.’
좁은 골목을 돌아 쿠스코의 상징인 아르마스 광장에 도착했다. 유럽의 여러 성당을 봤지만 이곳의 대성당은 규모나 아름다움이 가히 환상적이라고 할 만큼 훌륭하다. 바로크 양식의 거대한 성당은 1,560년 잉카의 비라코차(잉카인들이 숭배한 신) 신전을 허물고 100여 년의 긴 세월에 걸쳐 지어졌다고 한다. 성당 내부는 겉모습보다 더 화려해 눈이 휘둥그레진다.
그중 나무를 섬세하게 조각해 만든 제단과 호사스런 드레스를 입은 성모상, 검은 예수상이 특히 인상적이다. 정복자들은 예수가 잉카의 신보다 더 위대하다는 것을 원주민들에게 주입시키기 위해 이런 성당을 지었다고 한다. 사실 성당의 화려함과 웅장함은 엄청나지만 그 성당을 터전으로 살아가는 이곳 사람들에게 성당은 정신적인 안식처일 것이다.
잉카는 11세기에 태동하여 16세기까지 위세를 떨쳤던 대제국이었다. 스페인 정복자들은 잉카 문명을 파괴하고 그 자리에 유럽식 건물들을 지었다. 잉카의 석조 건물, 태양의 신전 위에 교회를 세운 산토 도밍고 성당이 대표적인 예다. 반듯하게 마감하여 정교하게 쌓아올린 외벽과 조그만 창으로 연결되는 내부 신전에서 잉카 문명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1953년 발생한 지진으로 성당이 많이 부서지면서 원래의 건축물이 드러났는데, 교회의 동의 아래 재건축을 진행하면서 일부 벽들을 보전하기로 했다. 왜 하필 잉카 조상들의 얼이 담긴 이곳에 성당을 지었을까? 자신들의 뿌리가 눌리고 파괴된 잉카인들이 안쓰럽다.
쿠스코는 여행자에게 그리 녹록한 곳이 아니다. 고도가 3,800미터에 가까워 조금만 걸어도 숨이 턱에 찰 정도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지만 가끔 머리도 아프며 심할 경우 구토증세와 함께 방망이로 얻어맞은 듯 온몸이 욱신거리기까지 한다. 아침에 일어나니 고산 증세로 인해 머리와 온몸이 뭔가로 얻어맞은 듯 욱신거린다.
밤새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탓에 정신은 오락가락한다. 그렇게 이 도시는 이방인의 출입을 흔쾌히 허락하기 싫은가보다. 한동안의 열병을 앓고 난 이들에게만 쿠스코의 존재를 각인시키려는 욕심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거리의 인디오들의 모습에서 진한 삶의 향수가 배여 나온다. 그들이 데리고 나온 하얀 라마는 순한 눈동자로 관광객에게 자신의 모습을 담아달라는 듯 하염없이 쳐다본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엽고 앙증맞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워진다. 쿠스코의 골목을 질주하는 택시는 이곳에서 가장 잘 적응한 한국산 자동차 티코다. 쿠스코 어디를 가나 2솔(1솔=320원)이어서 저렴한 가격 때문에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높다.
쿠스코의 야경은 그 어느 곳보다 아름답다. 밤이면 여행자들과 현지인들이 한데 어우러져 광장을 가득 메우고 야경에 취한 채 하루를 마무리한다. 고산지대인 쿠스코의 날씨는 습하고 춥다. 숙소로 정한 유스호스텔은 더운 물이 나오긴 하지만 난방이 되지 않아 옷을 여러겹 껴입고도 담요를 세 장이나 덥고 자야 했다. 그럼에도 아침에 일어나면 온몸이 추위에 얼어붙는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아침에 마시는 따뜻한 코카잎차 한 잔이다. 코카잎차는 추위를 이기게도 하지만 고산병에도 도움이 된다. 코카잎을 말려 더운물에 띄워 마시는 차 한잔은 이곳에서 하루를 지탱하는 힘이 된다.
페루의 배꼽이라 불리는 쿠스코 여행은 다른 도시에서 느끼지 못하는 독특한 매력이 있다.
숨을 쉬는 듯한 건물들의 표정도 그렇고, 이곳을 지키며 살아가는 잉카인들의 모습, 그 자체만으로도 이 도시는 충분히 멋진 곳이다. 여행자들은 곳곳에 남아있는 잉카 시대의 흔적들을 만나면서 이곳이 그 옛날 오랫동안 영화를 누리던 잉카 제국의 수도였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감동을 받게 된다.
쿠스코가 숨을 쉬는 동안 여행자들은 끊임없이 이곳을 찾아올 것이며 이곳에서 진정한 여행자의 본 모습을 찾아 돌아갈 것이다.
* 본 기사는
<월간사진>
2009년 7월호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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