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7-15
사진 프레임 안에 무엇을 담을 것이며, 사진으로 어떤 메시지를 전달할 것이냐의 문제 가운데 사진적 유머에 대해 논의해 보도록 하겠다. 사실 포토저널리즘이라고 하면 대부분 심각한 사건, 사고, 재난 등 뉴스 중심의 사진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독자들은 이러한 심각한 뉴스 사진만을 선호하지는 않는다. 만약 이러한 사진들만으로 지면이 채워진다면, 가뜩이나 각박한 사람들의 정서는 더욱 더 메마르게 될 것이다.
글 | 김성민 경주대 미디어아트학부 교수
피처사진, 취향과 메시지 고려해야
피처(feature) 사진은 사고, 화재, 정치, 경제 뉴스라는 음식물을 소화하는 독자에게 시각적인 디저트에 해당된다. 피처 사진은 사건이나 비극과는 다른 상황에 있는 보통 시민들을 다루는 것으로, 평범한 장소, 일상, 삶의 단편들을 기록한다.(케네스 코브르, 포토저널리즘 : 프로패셔널 어프로치, 청아람미디어 : 서울(2006), pp. 105-106)
이러한 일상생활 가운데에서도 우리에게 가장 편안함을 부여할 수 있는 소재가 바로 유머일 것이다.
유머 감각이 뛰어난 사진은 일상생활에서 발견할 수 있는 병치와 부조화를 보여줌으로써 사물을 지나치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여유롭게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한다. 그러나 불행한 것은 이러한 유머가 포토저널리즘에서는 흔치 않은 필수품이라는 점이다. 포토저널리즘에 등장하는 많은 소재들이 계획에 맞추어서 촬영되었거나, 셋업을 통해 만들어진 경우가 많기 때문에 지나치게 무겁게 느껴진다. 사진을 통해 우리는 터져 나오는 함박 웃음을 기대하기 보다는 재미를 부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즉 ‘아, 재미있다’라는 가벼운 미소를 자아낼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유의해야 할 점은 유머는 사진에서 나와야지, 사진 설명에서 비롯되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사진에 동반되는 캡션이나 본문은 독자들이 이미 추측하고 있는 것을 확인시켜 주거나 잠정적인 오해의 소지를 없애는 역할을 할 뿐이고, 사진 그 자체가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사진가나 편집인들이 사진적 유머를 좀더 익히려면 로베르토 도아노(Robert Doisneau)나 엘리엇 어윗(Elliot Erwitt)의 사진을 연구하면 좋을 것이다.
웃음을 자아낼 수 있는 대상을 찾자.
사례 1. 소개된 두 장의 사진은 모두 머리와 관련된 사진을 통해 웃음을 자아내면서 동시에 사진이 촬영된 상황을 잘 보여준다. 왼쪽 사진은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사진 설명에서 분명하게 이 남자가 거울을 옮기고 있는 중이라는 것을 명시해야 할 것이다. 몇몇 독자들은 오른쪽 사진을 보면서 HEAD라는 것이 테니스 라켓 회사라는 것을 모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오히려 글자가 없다면 더 효과적일 수 있을까? 심각하진 않지만, 이런 고민을 해보는 것도 나름대로 다음에 더 좋은 사진을 촬영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글자를 그냥 지워버리면 있는 것을 보이지 않게 조작한 것이므로 윤리적인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점도 유념해야 한다. 그리고 이 두 장의 사진을 포토 페어(photo pair, 두 장의 사진으로 동일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법)로 보여주는 것도 한번 고려할 수 있다. 사진을 잘 찍는 것도 중요하지만, 편집자의 입장에서는 기존에 있는 사진을 잘 활용해 좀더 재미있고, 분명한 메시지를 만드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사진가와 편집자는 항상 이런 고민을 통해 독자들의 눈을 즐겁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사례 2. 많은 조사 결과에서 알 수 있듯 독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사진은 어린이와 동물 사진이라고 한다. 그런 이유에서 어린이와 동물은 피처 사진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며, 사람들에게 웃음을 제공하는데 꼭 필요한 소재가 된다. 여기에 소개한 사진이 가지고 있는 유머 감각은 상황 자체가 재미있다는 점과 다음에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에 대한 기대감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실제로 이 사진 다음에 벌어진 상황은 우리가 기대한 것만큼 재미있지 않을 수도 있고, 강아지에게 큰 재앙이 될 수도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진가는 스토리를 전달할 수 있는 연속 사진(sequence)을 만들 태세를 갖추고 현장을 계속 주시해야 할 것이다.
취향의 문제 : 잘못된 유머는 사진 속 피사체와 독자를 공격하는 것과 마찬가지
사진에서 취향은 사진을 촬영할 때 무엇이 심미적으로 적절한지, 그리고 적어도 사진 속 피사체와 독자들을 공격하지 않도록 하는 것인지를 감지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물론 이러한 취향이라는 것은 하루아침에 가르칠 수 있는 것도, 배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개별적인 감각과 능력, 그리고 경험을 통해 우리는 이러한 사진적 취향을 익힐 수 있다. 과거 여성지, 특히 주간지들은 센세이셔널리즘(sensational)적인 성향이 매우 짙었다. 그런 측면에서 이런 잡지들은 길이나 공공장소에서 재밌는 행동(하품을 하거나, 코를 파거나, 누군가의 치마가 올라간)을 하는 사람들의 사진을 빈번하게 게재하곤 하였다. 이는 물론 초상권을 침해하는 행위이기도 하지만, 독자들에게 저속한 취향을 내보이는 일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간과한 행동이다. 누군가의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유머라고 생각한다면 이는 큰 오산이다. 사진가는 누군가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면서까지 유머를 유발할 필요는 없다는 점을 항상 명심해야 한다.
이런 사진들은 사진가와 주제 모두에 대한 좋지 않은 취향을 드러낼 수 있다. 사진가들은 때론 상대에게 심미적으로 적절치 못하거나, 문제가 될 수 있는 행동을 요청하는 경우가 있다. 또한 몇몇 사람들은 자신이 사진에 찍힌다는 것을 인식하고, 의도적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기이한 행동을 하기도 한다.
편집자들은 이러한 문제를 유발할 수 있는 소지를 가진 사진을 싣는 것이 자신의 취향을 드러낼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사진이 무방비 상태의 피사체의 행동을 기록하는 정직한 도구가 된다는 것이 출판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기는 어렵다. 이상한 행동을 하는 대상이 담긴 사진을 출판하는 것은 독자와 사진 속 인물을 모두 공격하는 행위가 될 수 있다.
사례 3. 야구 선수가 씹는 담배를 뱉는 장면은 단순히 하품을 하는 대상을 촬영한 것보다 훨씬 더 문제의 소지를 많이 가지고 있다. 이 한 장의 사진이 수많은 독자들에게 보여진다는 점에서 사진가들과 편집인들은 더 많은 책임감을 감수해야 한다. 영향이 크면 클수록 책임도 그만큼 커지는 것은 너무도 자명한 사실이다. 이 사진이 미국 한 주의 포토저널리즘 협회에서 개최한 공모전에서 스포츠 기획 부분 1위를 차지했다는 사실은 어떻게 보면 무척이나 부끄러운 일이다. 두 번째는 신문의 상단 전면을 차지할 정도로 크게 편집이 되었던 사진이다. 나무를 가늘게 만들어서 침을 거기에다 뱉어내는 이런 사진이 지면을 차지했다는 것에 우리는 촬영한 사진가와 편집인이 과연 정확한 편집 판단을 했는지 의문을 가질 필요가 있을 것이다.
사진 메시지의 문제 : 의심스러운 행동
문제를 유발할 수 있는 행동이 담긴 사진의 출판은 조심성 없는 사진가와 편집인들에게는 치명적인 상처를 줄 수 있다. 이런 사진이 출판되면 독자들은 신문사 자체가 이러한 사진 게재를 인정한 것이라고 가정할 수 있다. 요즘 같은 세상에는 엄청난 인터넷 상의 공격을 받을 수 있다. 이런 사진을 촬영할 때는 항상 출판물이 가질 수 있는 큰 영향력을 고려해야 한다.
문제를 유발할 수 있는 사진의 출판 결정은 사진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중요성에 근거해야 한다. 만약 독자들이 반드시 알아야 할 정당한 주장을 사진이 하고 있다면, 독자들의 거센 반발이 예상되더라도 사진은 출판되어야 한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중요한 것은 이러한 독자들의 반응은 지역마다, 국가마다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자신이 사진을 게재하고자 하는 출판물이 소속된 지역 사람들의 정서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사례 4. 위쪽 사진은 미인대회에서 촬영된 사진인데, 앞의 클로즈업된 여성의 엉덩이와 뒤에서 물총을 들고 웃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만 보면 상당히 재미있는 사진이다. 그러나 이 사진은 지역 신문사에서 출판이 되지 못했다. 그 이유는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만들었다는 점과 어린 아이들이 흑인이기 때문에 인종차별적인 뉘앙스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위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이 사진은 인종문제가 민감한 미국에서는 출판되기 어렵다고 볼 수 있다. 아래쪽 사진은 플로리다의 한 청소년 센터에 있는 두 아이를 촬영한 사진이다. 이 사진은 어린 청소년들의 교제 현장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기 때문에 부모들로부터 엄청난 항의를 받을 수 있는 소지가 있지만, 현장을 정확히 보도한 것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편집실에서는 이 사진을 게재하기로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청소년들의 성적인 문제를 목격한 부모들로부터의 빗발치는 항의에도 불구하고, 알 권리를 고려한 책임 있는 저널리즘에 입각한 결정을 내린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포토저널리즘 주제의 선택 : 극한 상황에 처한 사형수 취재
켄 라이트의 텍사스 사형수 감방
사진가 켄 라이트(Ken Light)는 멕시코 국경지역에서부터 시작해 미시시피강 주변 지역에 이르는 광대한 장소에서 농부들의 삶을 20년 동안 촬영해 세 권의 사진집으로 출간하였고, 텍사스의 사형수 감호소(Texas Death Row)를 기록한 사진집을 출간하였다. 그는 많은 나라에서 120차례가 넘는 개인 및 그룹 전시를 통해 자신의 작품들을 선보였는데, 이중에는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 휴스턴 미술관, 국제사진센터, 스미소니안 박물관 전시 등이 포함된다. 그의 작품들은 11개가 넘는 카달로그와 포트폴리오로 출판되었다. NEA, 도로시아 랭 다큐멘터리 사진기금, 핫셀블라드 사진기금 등을 수상하였고, 캐논 포토 에세이스트 콘테스트, 미국사진기자협회 사진상 등에서 두각을 나타낸 바 있다. 그는 현재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버클리 분교에서 저널리즘을 강의하고 있고, 사진 통신사 등을 통해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그의 작업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이같은 화려한 경력이 아니라, 아무런 금전적 대가도 보장되지 않은 상태에서 많은 시간과 에너지, 그리고 돈을 투자한 그의 결단력을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가장 성공적인 작품은 가슴에서 나오는 것이다. 내면에서 시작된 작업은 잡지 일에서는 전혀 이루어낼 수 없는 나 자신만의 것이 될 수 있다”는 그의 말을 통해 우리는 사진에 대한 그의 신념을 읽을 수 있다.
여기서 소개하고자 하는 작품은 그의 작품들 가운데 텍사스 사형수 감호소를 촬영한 것들이다. ‘텍사스 사형수 감방’은 이전의 켄 라이트 사진들 속에서 보여졌던 사람들의 삶들보다는 훨씬 더 극단적인 사형수들의 마지막 시간들을 기록하고 있다. 이 사진들을 살펴보기 전에 우리는 사형제도가 가지는 사회적 의미를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한다. 1976년 이후 사형이 집행된 인원이 92명으로 텍사스는 미국 전체에서 사형 집행율이 가장 높은 곳이다. 켄 라이트가 촬영하였던 1994년에만도 14명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호주에서는 마지막으로 사형이 집행되었던 해가 1968년으로, 죄수는 펜트리지 감호소에 수감중이던 로날드 라이언(Ronald Ryan)이었다. 무죄가 입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사형은 집행되었고 이후 공식적인 사형 집행은 사라졌지만, 아직도 많은 죄수들이 ‘자살’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채 사라지고 있다.
그의 사진 속 주인공이기도 한 토마스 밀러-엘(Thomas Miller-El)은 촬영 인터뷰에서 “이러한 가학적 방법들이 테크놀로지 사회 어느 곳에서나 자행되고 있는 것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야만적 행위는 가장 민주적인 미국에서 지속적으로, 그리고 체계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정치체계이다”라고 이야기한다. 켄 라이트의 사진들은 고도로 발달한 민주사회에서 자행되고 있는 ‘야만적 처벌’ 행위를 고발하고, 그 대상들이 가지고 있는 마지막 삶의 숭고한 순간들을 담담한 자세로 풀어나간다.
텍사스 헌트빌에 위치한 엘리스 감호소의 사형수들은 운동을 하거나, 그림을 그리고, 책을 보고, 기도를 하면서 하루하루를 나름대로 보람 있게 보내고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사진 속 인물들은 이미 텍사스 주법에 의해 사형집행이 끝나 우리와는 운명을 달리한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켄 라이트가 자신의 사진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바로 각각의 고귀한 삶을 구가하던 사람들이 사형이라는 비인도적 제도를 통해 목숨을 잃었다는 점이다. 보이스카웃 시절 자신의 모습을 자랑스럽게 간직하고 있는 어느 사형수의 모습에서, 자신들을 가로막고 있는 면회소의 유리창 사이로 애절한 사랑을 표현하고 있는 모자의 모습에서 한때의 잘못된 행동으로 죄를 저지른 사람들도 결국 우리와 같은 ‘인간’이라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