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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북촌의 작은 반상회 ‘레인보우, 북촌’

2011-08-24


서울 북촌의 작은 갤러리가 동네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전시장 벽에는 사람들의 얼굴이 담긴 작은 크기의 흑백사진이 옹기종기 붙어있고 관객들은 사진에 얼굴을 들이밀고 아는 얼굴이 없는지 찾는다. 복덕방 할아버지에서 새마을 금고 점장님까지 북촌에 살면 알만한 사람들의 얼굴이 사진으로 모두 모였다. 갤러리는 어느새 북촌 사람들의 사진과 이를 보러 온 주민들이 뒤엉켜 북촌반상회처럼 변해버렸다. 이 광경을 흐뭇하게 보고 있는 이가 있으니 그가 바로 사진가 황진(49)이다. 그는 지난달에 북촌의 갤러리담에서 북촌사람들의 사진을 모아 <레인보우, 북촌> 사진전을 보름간 열었다.

글 | 월간사진 박지수 기자


사진관까지 차린 조각가의 사진외도 30년

갤러리에서 만난 황진은 동글동글한 얼굴에 콧수염을 기르고 아무렇게나 운동화를 꺾어 신어 ‘동네아저씨’ 같은 인상을 풍겼다. 조심스레 사진가라 부르자 만화캐릭터처럼 얼굴을 찡그리는 표정을 하고 마구 손사래를 쳤다. 사진을 찍어온 지 30년이 됐고, 지금까지 14차례의 사진전을 열었지만 한사코 사진가라는 호칭을 사양했다. “저는 조각가에요. 대학에서 조각을 전공했고, 미국 유학을 가서도 드로잉과 조각을 공부했어요. 어떻게 하다보니 지금은 사진을 더 많이 하고 있지만 결국 다시 조각으로 돌아갈 거예요.” 그는 강릉에서 태어나 강릉대에서 조각을 전공했고, 대학의 사진동아리 ‘초점’에서 사진을 처음 만났다. 동아리 회장까지 지냈지만 사진은 어디까지나 취미였고, 그에게는 조각이 소명이었다. 1987년에 대학을 졸업하고 조각 공부를 위해 뉴욕으로 유학을 떠났고 1994년에 귀국했다. 이후 조각에 매진하면서 카메라를 다시 잡게 된 계기도 조각 작업에서 느낀 한계 때문이었다. “작업실에서 홀로 조각을 하면서, 제 자신이 스스로 고립됐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조각 작업에서 느낀 고립감을 벗어나기 위해 그는 다시 카메라를 들었고, 사진에서 즉흥성과 우연성의 매력을 맛봤다. “사진은 ‘우연한 새 한 마리’ 같아요. 언제 어디서 어떤 상황을 만날지 모르거든요. 그래서 스냅사진을 좋아해요. 카페에 앉아 차를 마시다가도 우연히 재밌는 상황을 보면 즉흥적으로 찍는 재미가 있어요.” 다시 사진 찍는 재미에 빠져 본격적으로 충무로의 사진학원에서 광고사진을 배우기도 했고, 인사동의 쌈지길에 ‘황진사진관’을 차렸다. 흑백폴라로이드와 흑백필름으로 기념사진을 찍어주는 황진사진관은 2평 남짓 비좁은 내부에 천여장의 흑백사진이 도배되어 사진마니아 사이에서 유명세를 탔다. 2004년부터 3년 동안 영업하다 문을 닫았지만 지금도 그를 황진사진관 주인으로 기억하는 이들이 많다.


작업실 오가며 북촌사람 찍은 스냅사진

그뒤 자택인 부암동에서 작업실이 있는 낙원동을 오가며 자연스럽게 북촌과 가까워졌다. 매일매일 습관처럼 북촌의 풍경과 사람들을 스냅사진으로 찍었고 동네주민과도 친해졌다. 북촌하면 흔히 한옥마을을 떠올리지만 그가 자주 오가는 곳은 계동길 일대다. 예전 현대사옥에 못 미쳐 왼쪽 골목길로 들어서면 계동인데 도자기나 전통의상, 민속공예와 관련된 작은 공방이나 예술가의 작업실이 나타난다. “북촌은 강남처럼 아파트가 많지 않고, 골목마다 볼 것도 많아서 지루하지 않아요. 걸어 다닐 때마다 자유로운 느낌이 들고, 사람들도 정겹고 맑은 느낌이에요.” 북촌의 매력에 빠져 찍은 사진들을 하나 둘 모아 <레인보우, 북촌> 전시를 열었다. “구정도 가깝고 해서 동네 사람들과 모여 잔치하는 기분으로 전시를 열었어요.” 그의 말처럼 마을잔치 같은 소박한 전시를 통해 다양한 북촌 사람들 안에 숨겨진 희망(레인보우)을 만날 수 있다. 손수 담근 장아찌가 유명한 식당 ‘계동마나님’의 허식씨, 문화공간 ‘아리랑’의 운영자이자 근대만요 가수인 최은진씨, 조선시대부터 내려온 금박공예 가업을 잇고 있는 ‘금박연’공방의 김기호씨, 강원도 횡성에서 공수해온 참숯으로 로스팅한 커피를 맛볼 수 있는 ‘커피한잔’의 이형춘씨, 오직 나무액자만 만드는 ‘꼴액자’의 임기연씨 등 다양한 북촌 사람들의 얼굴이 흑백사진에 담겼다. “흔히 하는 말이지만 사람마다 맑은 영혼이 있다고 생각해요. 나름대로 영혼이 보일 때 사진을 찍으려 노력했고, 그 과정이 무척 재밌어요.” 사람뿐이 아니다. 1968년 김신조 사건 때 순직한 최규식 경무관의 동상과 금호미술관 창립자 박인천 회장의 동상 그리고 정독도서관의 교통법규 안내 만화 캐릭터 등의 사진도 전시됐다. 그는 “비록 동상이지만 북촌에서 만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 전시에 포함시켜 봤어요”라며 장난스런 웃음을 지었다. 황진은 언제나 라이카 R6Ⅱ 필름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아직도 많은 양의 흑백사진을 찍는다. “사진을 오래 찍다보니 ‘사진은 무게다’는 생각이 들어요. 찍은 필름의 무게에 따라 좋은 사진이 나오니까요.” 손에 익숙하다는 이유로 아직도 필름카메라를 쓰는 그의 사진에 대한 고집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황진은 현재 부암동의 자택에서 가족과 함께 진돗개 일곱 마리를 기르며 살고 있다. 그가 사진만큼이나 열심히 공을 들이는 것이 진돗개 키우기다. 20년간 약 150여 마리의 진돗개를 길러온 그는 진돗개가 커가고 새끼를 낳고 죽어가는 모든 순간을 사진으로 기록했다. 이것들을 모아 책으로 묶는 것이 요즘 그의 계획 중 하나다.


*본 기사는 <월간사진> 2011년 3월호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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