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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백민 출판으로 우리것 3부작 마친 육명심

2012-01-02


“공경해 눈맞추면 바위도 마음 연다”


“정확히 1978년부터 찍기 시작했어. 사람들 가운데서도 지난날 우리사회의 기층민인 토박이들이야. 무나 오이를 장독의 된장 속에 한동안 깊이 박아두면 그 맛이 배듯이, 자연 속에 깊이 파묻히어 평생을 살아가는 동안 이 나라 우리 풍토의 땅기운이 뼈속까지 스며든 그런 맛이 나는 사람들 말야.”

내년이면 팔순을 맞는 사진가 육명심은 최근 사진집 ‘백민’(한미사진미술관)을 출간했다. 이미 출간된 ‘장승’, ‘검은 모살뜸’과 함께 70년대부터 90년대까지 계속된 그의 ‘우리것 3부작’이 마지막 사진집을 내면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백민’ 속 촌부와 무당은 지금의 사진가 나이쯤 되었으려나. 이미 세상을 등져 다시 못볼 사람과 시절이 ‘백민’에 담겼다.

기사제공 | 월간사진 2011년 8월호

“그때 이 사진을 찍어두지 않았다면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하면 사진의 기록성이 참으로 소중함을 다시 느끼게 돼.”

백민(白民)의 사전적 의미는 ‘아무런 벼슬이나 감투를 쓰지 아니한 일반 백성(百姓)’을 뜻한다. 요즘 말로 서민(庶民) 정도이겠으나 그 어감에선 묘한 돌기와 주종관계에 얽매지 않은 자유로움과 친숙함이 느껴진다. 해방 후에 나온 한 잡지의 제호에서 육명심은 친숙한 우리 토박이들을 떠올렸다. “우리 전통사회의 기층민들이지. 지금은 백민의 가장 전통적인 원형을 민속놀이인 인형극이나 가면극에서나 볼 수 있어. 전통적인 연희의 무대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지난날 우리 고향을 지키던 토박이들이야. 서양 문물이 밀려들어 오기 전까지 아침저녁으로 마주하던 친근한 이웃들은 점차 만나기 어렵게 되고, 앞으로 영원히 사라져 자취마저 찾을 수 없을지 몰라.”


백민, 장승, 검은 모살뜸 출판해 3부작 마무리

백민 속 토박이들이 더 정겹게 느껴지는 데는 육명심 특유의 아이 콘택트(Eye Contact, 시선을 마주함) 접근법 때문이다. 소통과 만남을 소중히 여겼던 사진가는 차 없이 팔도를 유람하듯 백민을 만나는 여행길에 올랐다. 길 위와 논두렁, 초가집에서 만난 백민은 사진가에게 마음을 열고 눈을 맞춘다. 낯선 이와 시선을 맞추기란 쉽지 않을 터. 더욱이 카메라 앞에선 더 긴장되고 눈길을 피하기 일쑤다. “사진을 찍기 전에 대상이 바위라도 속으로 큰절 두 번을 하고 찍으라고 그래. 공경하는 마음과 만남을 소중히 여기는 자세는 바위라도 마음을 열게 만들어.” 그래서일까, 소마저 사진가를 지긋이 응시한다.

찾아가는 과정 역시 그에게 중요했다. 백민은 그에게 순탄치 않은 역사를 꿋꿋이 이겨내고 떠받쳐온 어머니 같은 존재들이다. 역사의 위인이 있게 만든 숨은 주역들이지만 한 세대만 지나면 잊히고 만다. 자연히 이들에게 향하는 길은 설레고 신비감으로 가득했다. “몇 만년 역사를 거쳐 내려오면서 같은 DNA로 연결되는 느낌이 있어. 그렇게 만난 사이니 얼마나 소중하고 신비롭겠어.” 소통하고 교감한 사진에선 따뜻한 온기가 전해진다.


우리역사 떠받쳐온 토박이와의 눈맞춤

백민 시리즈는 70년대 육명심의 예술가 시리즈의 다음 작업이다. 육명심은 70년대의 10년간을 한국의 예술가들을 찍어왔다. 책으로 나온 ‘문인의 초상’(열음사, 2007)에 등장하는 문인 이외에도 화가, 조각가, 국악인, 영화감독에 이르기까지 당대 최고의 예술가들이 그의 카메라 앞에 섰다. 예술가 시리즈는 1972년에 그가 당시 유일한 사진학과이던 서라벌예대 사진과에 전임교수로 부임하면서 시작된 작업이다. 사진가로서 새 출발점에 섰고, 사진작업에서도 변화와 책임감을 함께 느끼던 그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이들은 젊은 시절 자신이 몸담았고 친숙했던 예술가들이었다. 육명심은 대학 때부터 문학을 공부했고 연극무대에도 수차례 오르는 등 촉망받던 시인이자 연극배우였다. 사진작업의 테마로 예술가들을 촬영하기 시작하면서는 차츰 피사체에 접근하는 방식이 달라졌다. “처음에는 말 그대로 예술가로서 찍었는데,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한 사람의 인간으로 비치기 시작하는 거야. 굳이 예술가라기보다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한 인간으로 접근하게 되었지.” 예술가에서 발견한 인간은 좀더 소박하고 진솔한 대상인 백민으로 옮겨가는 계기가 된다. 그리고 당시 세계 사진사를 강의하며 로버트 프랭크와 앙리 카르티에-브레송 등 서구 사진의 흐름에 해박하던 그에게, ‘그럼 한국적인 사진은 무엇인가’ 자각과 의식이 자연스럽게 생겨날 즈음이었다. 그렇게 20년 여정의 ‘백민’, ‘장승’, ‘검은 모살뜸’ 우리것 3부작이 시작되었다.


면면히 내려온 우리 정신과 기운 불러내는 사진

백민 사진 속 시간은 주로 70년대 말과 80년대다. 이 시기는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옮겨가던 급격한 근대화시기로,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신작로가 뚫리고 고층의 빌딩이 생겨났다. 우리 삶의 터전과 토속적인 문화, 토박이들이 하나둘 자취를 감추기 시작하면서 육명심은 부지런히 백민을 만나러 다녔다. 백민은 80년대의 민중예술운동과 맞물리면서 시대적인 흐름과도 공통분모를 갖는다. 시대의 가장 밑바닥에서 사회를 떠받치고 지탱해온 사람들 편에 서서 이들 삶의 가치와 감정을 표현하려던 민중예술운동은 지금껏 역사의 전면에 드러난 적 없는 민중을 역사의 주체로 인식했다.

이처럼 역사 흐름의 큰 줄기에서 백민을 인식했고 이를 통해 한국적인 사진미학을 고뇌했던 육명심의 백민은 단지 사라져가는 대상에 대한 연민이나 동정의 시각이 아니다. 이보다는 생명력과 기운을 가진 존재로 인식하면서 당시 비슷한 소재를 다룬 리얼리즘 사진과도 차별화된다. 이러한 백민의 생명력은 마을의 문지기인 장승 작업으로 옮아간다. 영적인 장승의 기운은 신기를 뿜는 백민의 무당 사진(강원도 강릉, 1983)에서 이미 예견되었다. 장승은 외양과 모진 생명력에서 백민을 닮았고 수천년 세월을 함께 해오며 이들의 영혼이 투영되었다. 백민의 생명력과 영혼이 투영된 장승은 제주도 검은 모래에 묻혀 땅과 사람이 하나 되어 기운을 북돋우고 안녕을 기원하는 ‘검은 모살뜸’으로 갈무리된다.

육명심의 우리것 작업은 사람을 통해 우리의 정신과 기운을 불러내고 있다. 일찍이 ‘사진은 형식이 아닌 정신’이라는 철학으로 이어져온 원로 사진가의 사진작업은 이제 후배 사진가들에 의해 더욱 다양한 양상으로 전개되는 중이다.

“소재주의가 아닌지 회의가 왜 없었겠어. 20년 하다보니 뿌리 깊이 내려오면서 우리를 떠받쳐온 근간이 무언지 사진에서 보여. 정신적인 부분에서 한국적인 사진미학에 도달했다는 생각이야.”



육명심은 90년대 후반부터 10년째 히말라야를 찾아 기계문명 속 유일하게 남은 정신문명을 기록하는 중이다. 오는 10월8일부터는 한미사진미술관에서 70년대 예술가 시리즈를 모두 선보이는 <예술가의 초상> 전을 갖고 책으로도 낼 예정이다.



육명심은 1933년 대전에서 태어나 연세대 영문학과와 홍익대 대학원 미학미술사학과를 졸업했다. 72년 서라벌예대 사진과 전임대우, 75년 신구대 사진과 창설 교수를 거쳐 99년에 서울예대에서 정년퇴임했다. 사진집으로는 ‘육명심 사진집’(사진예술사, 1994), ‘하늘아래 첫 땅-Tibet’(장산, 1999), ‘미명의 새벽’ 공저(눈빛, 2001), ‘문인의 초상’(열음사, 2007), ‘장승’(웅진출판사, 2008), ‘검은 모살뜸’(눈빛, 2009), ‘백민’(한미사진미술관, 2011), ‘예술가의 초상’(열화당, 2011)이 있다. 저서로는 1978년 ‘한국현대미술사’(국립현대미술관) 사진편 공저, 1987년 ‘세계사진가론’(열화당), 2005년 ‘사진으로부터의 자유’(눈빛)가 있다. <사진 김녕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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