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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자꾸 눈에 밟히는 사람들, 가족의 탄생

2012-02-13


쪽방촌 사람들을 돕고 있던 마음씨 착한 친구를 따라나선 게 첫 만남이었다. 서울 종로구 돈의동의 쪽방촌 사람들을 알게 되었고, 그중 유독 박동기(56)씨와 김태일(81) 할아버지에게 눈길이 가닿았다. 평생 결혼 않고 홀로 살아온 두 독신남은 벽 하나를 사이에 둔 옆방에 살며 어느덧 밥상을 합친 식구에서 서로를 돌보고 의지하며 살아가는 한 ‘가족’이 되었다. 박씨를 형님으로, 김씨를 어르신으로 부르는 사진가 이강훈(37)은 이들 삶 속으로 스며들어 오래 머무르면서 새로운 ‘가족의 탄생’을 기록했다.

기사제공 | 월간사진


박씨는 젊었을 때 건설노동자로 사우디아라비아에도 다녀왔지만 서울역 노숙자가 되어 2004년에 쪽방으로 들어왔다. 옆방에 살던 말수 적은 김노인을 만나 외로움을 달래면서 두 사람은 부자사이처럼 서로를 의지하게 되었다. 온갖 병을 달고 사는 박씨지만 김노인을 위해 밥을 짓고 휠체어를 밀어 공원을 산책하고 병원을 오가는 등 늘 곁을 떠나지 못한다. 이런 박씨를 김노인은 자식 대하듯 믿고 진심으로 잘 되길 바란다. 때론 티격대며 다투기도 하지만 서로를 걱정하는 마음에서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안다. 늙고 병든 두 사람의 앞날은 여전히 위태롭지만 아름다운 동행으로 나아가는 중이다.


쪽방촌 두 남자와 함께한 1년6개월

1년6개월간 두 사람의 특별한 관계 속에 함께 했던 이강훈은 스스로 가족이 무언지 되묻고, 자신의 선입견과 결핍을 하나씩 허물고 채워나갔다. 서로 마음이 열리고 진솔하게 다가서기 전까지 사진은 뒷전이었다. 만난 지 6개월이 지나서야 첫 사진을 찍었고, 그뒤로 그는 사진 속에서 있는 듯 없는 듯 흔적을 안 남기며 세밀하게 두 사람의 일상과 관계를 기록했다. 사진에선 이방인인 사진가에 대한 어떤 경계나 의식이 없어 보이고, 흔히 떠올리는 쪽방촌 사람들에 대한 동정심 유발이나 관심 호소와도 거리가 멀다. 대신 겉으로 알 수 있는 고독과 궁핍은 가족 사이의 신뢰와 공감으로 무마되고, 시종일관 사진가의 시선은 인간의 존엄에 맞춰져 있다.

무엇이든 빨리 지나가고 변하는 시대에 굼뜰 정도로 느리게 대상에 밀착하는 이강훈의 접근법은 답답해보일지 몰라도 사진에선 돋보인다. 좀체 꾸밈과 숨김을 발견할 수 없는 그에 관해 사진가 임종진은 ‘바보 같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온전히 자신을 그 속에 놓고 기다리는 진솔함과 성실함은 다큐멘터리 사진가에게 꼭 필요한 덕목이지만 이를 강요하기에 현실은 너무 재빨리 흘러간다. 사진평론가 최봉림은 ‘다큐멘터리 사진의 일반적 특성과 사회적 기능을 모범적으로 보여주는 작업’이라며 ‘무엇보다 사진가가 대상과 격의 없는 관계를 만들었기 때문이다’고 평가했다.

서른이 넘어 사진을 처음 접한 이강훈은 서두름 없이 뚜벅뚜벅 자신의 사진을 찾아가는 중이다. 아직 말보다 수줍음이 더 앞서지만 자신의 카메라가 향할 곳과 그곳을 찾아가는 방식에선 어떤 사진가보다 분명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사회 인연이 만든 대안적 가족형태에 관심

당신에게 가족이란 무엇인가? ▷ 피가 섞인 좁은 형태뿐만 아니라 서로가 자꾸 눈에 밟히고 마음이 가는 사람들이다. 서로 믿고 의지하고 공감을 나누는 가족의 의미를 사회적 인연으로 만난 공동체에서 찾았고, 새로운 가족의 형태라고 생각한다. 사춘기 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님이 재혼하면서 더 가족의 형태나 의미에 관심이 갔고, 내 안에 결핍감 같은 게 있었는지 모르겠다. 강화 교동고의 장애인시설인 샬롬원, 지리산 살상사 내의 대안학교인 작은학교, 태국의 미얀마 불법 체류자 마을 등이 마음이 움직여 사진작업해온 곳들이다. 이곳에서 공동체와 대안적인 가족의 형태를 보았다. 쪽방촌은 소외된 내지는 혐오스러운 곳으로 여기지만 그곳 역시 가족의 형태를 띠면서 살아간다. 쪽방촌 사람들 중에는 환경 때문에 더 의욕을 잃거나 나가고 싶어도 갈 곳 없는 이들이 많다. 그래서 더욱 맞는 사람끼리 의지해 같이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사진은 어떻게 시작했는가? ▷ 한겨레문화센터에서 임종진의 필름카메라 수업을 처음 들었다. 그의 캄보디아 사진을 보면서 인간을 따뜻하게 바라본다는 시선이 느껴졌다. 사진이 하고 싶어져 무작정 그에게 도와달라고 했다. 결정적으로는 복지사인 친구의 부탁으로 샬롬원 개관식을 찍으러 갔을 때였다. 의례적으로 필요한 사진을 찍고난 뒤 나랑 동갑 즈음으로 돼 보이는 한 여성장애인을 찍으려는데 나를 향해 너무 환하게 웃어주었다. 파인더로 그녀를 보면서 내 사진은 사람들 속으로 가야겠구나 결심을 굳혔다. 그뒤로 앞서 얘기한 곳에서 개인 사진작업을 하고 틈틈이 사보나 주간지 일도 해왔다. 학교에 들어갈 생각은 원래부터 없었다. 서른이 넘어 사진을 시작했지만 혼자 해보고 싶은 고집이 강했다. 주변에 권유가 없지는 않았지만 제도나 학교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시각을 갖고 다큐멘터리 사진을 해보고 싶다.


그러니까 가족이지! 울고 웃기는 가족이야기

쪽방촌 작업에 관해 말해달라. ▷ 다큐멘터리 사진가에게 치명적인 약점인데, 낯가림이 심한 편이고 쭈빗거리는 스타일이다. 사진을 찍을 때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 쪽방 작업 때는 이것 때문에 울기도 많이 울었다. 나름 한다고 하는데 좀체 사진을 찍을 수 없었다. 지금은 두 분 다 술을 끊었지만 초기에는 갈 때마다 어울리는 네댓 분과 항상 술이었고, 대낮부터 취해 있자니 스스로 한심한 생각까지 들었다. 그렇게 같이 술은 해도 자신들의 쪽방 안으로 들이지는 않았다. 6개월쯤 지난 하루는 동기형님과 둘이서만 술 마실 기회가 있었는데, 각자의 살아온 얘기며 가족 얘기를 하게 됐다. 그날 처음으로 쪽방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그전까지 찍으려는 마음만 있었지 내 자신부터 마음을 열지 못했던 것 같다. 쪽방에 들어간 순간부터 사진 찍는 나를 전혀 의식 않았고 싫은 소리 한번 하지 않으셨다. 전시가 될지 책이 될지는 몰라도 두 분 중 한 분이 돌아가시면 추억할 수 앨범 한권은 꼭 만들어 드리겠다고 약속했다.

촬영과정은 어땠는가? ▷ 마지막에 꼭 찍고 싶은 장면이 있었는데 두 분 관계가 안 좋아졌다. 어르신이 눈 수술을 받으면서 평소 말이 적던 분이 더 말이 없어지자 동기형님이 화가 난 것이다. 하루는 조용히 날 불러 전화하기 전까지는 안 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밥 먹듯이 드나들며 사진을 찍었지만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기운이 쏙 빠져있는데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말을 들었다. ‘그러니까 가족이지!’ 그때까지 사진 하는 나를 못마땅해 하던 아버지 생각이 나면서 가족의 보기 좋은 면만 찍으려고 했던 게 아닌지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이밖에는 가족처럼 대해줘 별다른 어려움은 없었다. 내가 잘 되었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자주 하셨고, 자신들의 사진이 걸린 전시장에도 오셔서 이때가 언제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얘기하면서 즐거워하셨다. 반면 두 사람이 마주 앉으면 얼굴이 닿을 정도로 좁은 쪽방이다보니 표현하고픈 장면이 있어도 각도가 안 나오는 경우가 많았다. 간혹 까치발로 서서 찍는 등 큰 키 덕을 보기도 했다.(웃음)

앞으로 계획은? ▷ 가족에 대한 나의 결핍감에서 비롯되었고 사람들이 가진 선입견을 깨려는 작업이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내가 가진 상처를 치유하고 선입견을 깨는 과정이었던 것 같다. 가족이 그립거나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적인 가족관계에 계속 관심을 갖고 작업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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