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4-25
한 장의 사진작품이 나오기까지 사진가에게 영감을 주는 공간(장소), 사진작업이 시작되고 결실을 맺는 공간을 찾는다. 사진가 내면과 공간의 채취를 변순철의 인물사진과 중앙일보 정재숙 기자의 글로 담았다. 첫 회는 경기도 양평군 문호리에 있는 민병헌의 작업실을 찾아갔다.
기사제공│월간사진
“흰 집이겠지요?” 무심코 누군가 말했다. 봄빛이 완연한 경기도 양수리 들길을 쌩 달리던 변순철 사진가의 차가 잠시 헤매고 있을 때였다. 사진가 민병헌(56)이 지었다면 분명 흰 색일 것이라는 공감이 번졌다. 그의 사진, 그의 취향, 그의 고집, 그의 행로, 특히 그의 ‘눈’을 생각해본다면 그가 흰 빛깔 외에 다른 색을 참아낼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샛길을 우왕좌왕하다 결국 전화를 걸고, 마침내 눈이 일자로 접힐 만큼 환하게 웃는 민병헌의 얼굴이 풍경화처럼 등장한 수대울길 161번지는 예상 그대로 희고, 아니 희다기보다는 봄볕 속에서 아슴푸레한 색이었다. 지중해식이랄까, 담백하고 심플한 집은 그가 꺾어 신고 나온 흰 실내화 분위기였다. 1970년대 풍 아지트의 냄새가 났다. 그의 은신처이자 놀이터이며 소굴로 들어서는 일행에게 자부심 섞인 주인장의 짐짓 명랑한 목소리가 터졌다.
“제가 다 설계한 거죠. 며칠 전 일본 여행 다녀와서 부엌을 좀 고쳤어요. 뭘 해먹는 건 아니지만.”
산이 좋고, 바람이 불고, 햇빛이 고운 집 치고는 창들이 작았다. 지인들이 잔소리를 해대서 들 쪽으로 큰 창이 달린 베란다를 내긴 했지만 겨울 추위 탓에 막아버렸다. 의자 두 개가 산을 바라보고 놓인 베란다는 고즈넉해보였다. 가끔 그곳에 나와 앉아 포도주잔을 기울일 민병헌의 실루엣이 떠올랐다. 사진을 열심히 찍기보다는 사진을 오래 생각하는 사람에 어울리는 곳, 민병헌의 작업실이 초면인 방문객에게 수대울길 흰 집은 그렇게 다가왔다.
적막강산, 유치 찬란
시큼한 신 냄새가 났다. 취기가 느껴졌다. 오래 혼자 일해 온 사람의 묵은 열정이 숙성되고 발효된 그 낌새를 좇아 지하 1층으로 내려갔다. 낡은 암실, 고독한 망명지, 처절한 몸부림이 벽에 새겨진 듯한 면벽실이 거기 있었다. 2006년 집 바로 옆에 공장 스타일의 대형 작업장을 짓기 전까지 그는 이 작고 음습한 지하 공간에서 무수한 날밤을 보냈다.
“혼자 무섭지 않냐고? 아니, 너무 편해요. 이 적막강산이 내게 맞아. 사람들이 날 보고 외로운 걸 즐기는 것 같다고들 하는데 세상에 외로운 걸 즐기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사실 지긋지긋해. 나도 혼자 있는 게 싫어. 근데 같이 있음 더 싫어. 얘기해야지, 뭘 먹어야지. 그러느니 혼자 있지.”
그는 “사람들이 상대를 안 해 주니까 혼자 있다”라고 말하지만, 진실은 그 자신이다. 그가 사진을 생각하기 위해서는 혼자여야 했을 것이다. 사고한다는 것은 고독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세상이 입을 좀 다물어주었으면 하고 민병헌은 세상으로부터 돌아앉았다. 그는 작업하기 위해 머리를 쓰기 바란다면 철저하게 자신을 고립시키는 것이 필요하다는 걸 일찌감치, ‘독학’으로 깨친 사람이다. 오로지 자신이 사진에 구현한 어떤 아우라로, 그 씁쓸하고 뿌연 느낌으로, 아스라이 사라져가는 거리감으로, 그는 세상과 접촉하고 시공을 넘어 수많은 인간들에게 말을 건다.
“술 먹고, 음악 듣고, 그러고 있음 좋지요. 사진 얘기 안 하고.”
그가 여기서 혐오하듯 내뱉은 “사진 얘기 안 하고”란, 사람들이 이른바 ‘소통의 시대’라 일컬으며 팔아먹는 텅 빈 말에 대한 멸시였을 것이다. 그가 ‘서양식 뽕짝’이라 부르는 팝송과 컨트리 뮤직을 들으며 그는 자신이 구축한 이 공간에서 유치찬란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음악 같은, 흐르는 빗물 같은 사진
그는 아주 느리지만 때로 튀어 오르는 시간을 느긋하게 즐긴다. 속도는 특히 음악의 문법이다. 이 곳에 와서 보니 알겠다. 그는 사진으로 음악을 하고 있다. 암실작업은 음반 레코딩이다. 그의 손가락들 밑에서 사진은 피아니시모 또는 디미누엔도로 태어난다. 점점 사라지듯이 멀어져가는 그의 사진은 비(非)물질화로 치닫는다. 불확실한 시간에서 도망치듯 그가 선택한 음영은 죽음으로부터 훔쳐 온 시간, 죽음에 되돌려 주어야 할 시간을 암시한다. 늘 과거시제로 다가오는 그 사진은 후퇴의 미학을 담고 있다. 더 잘 보기 위해 거리를 둘 것, 이것이 민병헌의 사진 철학이라면 철학이다. 보기보다 생각하도록 만드는 것이 그의 사진이다. 그가 왜 사진은 아주 조금만 찍고 오래 놀면서 암실에 처박혀 머리를 쥐어뜯고 있는지 이제 알겠다.
“내 이 머리를 군대 다녀온 뒤로 누구에게 맡겨본 적이 없어요. 도와줄 것 없어요. 놔두세요. 제가 천천히 하는 게 더 빨라요.”
느릿느릿 커피를 내리고, 주섬주섬 식탁에 주전부리를 차리는 그의 몸짓은 초연하다. 공허해보이기도 한다. 고통 속에 혼자 있을 수 있는 능력이 대단한 사람 같다. 사람이 집을 닮고, 집이 사람을 닮는다 했던가. 골방에 처박혀 빨간 암등 하나 켜놓고 천국을 느낀 순간, “내가 정말 원했던 세상이 여기 있구나” 싶었다고 그는 말했다. 그 암흑 속에서 그는 모든 걸 공상에 맡겼다. 그리곤 무책임하게 살기로 했다. 죽을 때까지 철 안 들기로 했다. 수대울길 작업실은 그에게 그 모든 것을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유토피아다.
이제 다시 현실로 돌아갈 때가 되었다. ‘그의 황홀경은 그의 사진’이란 믿음을 준 이 집을 떠나기가 좀 섭섭했다. 그가 “노래 하나 들려줄까” 인사했다. 잭슨 브라운이었다. 늘그막에 접어든 크리스 크리스토퍼슨의 떨리는 음성이 이어졌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는 음악을, 사진을, 앓고 있었다. 치유될 수 없는 병이다. 그렇다면 이 집은 그에게 일종의 격리 병동이자 요양원이리라. 그곳에서 그가 가끔 보내주는 면역제 같은 사진 덕에 우리는 불길한 하루를 또 보낸다.
사진가 변순철은 우리에게 ‘짝-패’ 사진작업으로 알려져 있으며 한국 현대사진가의 아카이브 프로젝트로 자의식이 드러난 작가의 모습을 세밀한 작업으로 보여줄 예정이다.
정재숙은 대학시절 학보사에서 암실의 매혹에 빠졌던 전직 사진기자다. 지금은 중앙일보 문화스포츠 에디터로 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