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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정체성 분명히 한 스코프, 공개리뷰도 호평

2012-05-15


4회째를 맞은 KT&G 상상마당 한국사진가지원프로그램 SKOPF(이하 스코프)가 지난 12월17일 2차 선발작가 3명의 공개 포트폴리오 리뷰를 끝으로 최종 지원작가를 선발하고 막을 내렸다. 전체적으로 지난 회에 비해 응모작가 수가 늘어난 반면, 2차 선발작가와 최종작가의 선발 수가 각각 5명과 2명에서 3명과 1명으로 줄어 어느 때보다 치열한 분위기로 진행됐다.

글│현정아 기자
기사제공│월간사진

스코프는 전체 응모작가 중 1차와 2차 선발작가를 선정하고 이중 다시 최종작가를 선정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심사위원장 한정식은 “작년에 비해 눈에 띄는 작품이 많아 심사하기가 힘은 들었어도 즐거웠다는 것이 심사위원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실제로 3명의 2차 선발작가를 고르기 위해 심사위원들이 상당 시간 토의에 토의를 거듭해야 했다”라고 전했다. 4회 스코프는 새롭게 고은사진미술관이 후원하게 되면서 최종작가뿐 아니라 2차 작가들에 대한 지원의 폭을 넓힐 수 있게 되었고, 무엇보다 지원프로그램으로서의 정체성과 신뢰도를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최종작가를 선발하기 위한 공개 포트폴리오 리뷰는 여느 때처럼 상상마당 시네마에서 진행되었다. 77석의 좌석은 이미 다 차고 통로계단까지 관객들로 북적였다. 약 4시간에 걸친 리뷰가 끝난 뒤에는 간단한 와인파티와 함께 선발작가 3명의 포트폴리오를 관람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

입대직전 청년들의 심리, ‘12mm’ 강재구 선정>

KT&G 상상마당의 스코프는 컨퍼런스, 리뷰, 전시, 작품집 출간, 작품 컬렉션을 통해 한국의 젊은 사진가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으로서 1년 동안 진행된다.

지난 8월17일 포트폴리오 공모에 응모한 작가들은 모두 50여명 정도였다. 심사위원은 사진가 한정식 심사위원장을 필두로, 사진가이자 고은사진미술관 디렉터 이상일, 사진평론가 최봉림, 국립현대미술관 학예관 강수정, 사진기획자 송수정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가 맡았다. 공모제와 추천제를 혼합하는 방식인 스코프는 심사과정에서 내부 추천제라는 독특한 방식을 두고 있다. 5명의 심사위원은 응모한 50명의 작가를 5개 그룹으로 나눈 후, 제비뽑기를 통해 각자 한 그룹씩을 맡아, 그 그룹 안에서 2명씩 작가를 추천해 모두 10명의 1차 작가를 선발한다. 이어서 심사위원은 인터뷰를 통해 각자 자신이 추천한 작가를 제외한 8명에게 점수를 매긴 후 2차 선발작가 3명을 선정한다. 그렇게 선발된 2차 작가들은 심사위원 한 명씩과 멘토-멘티의 관계를 맺고 작품제작 지원금을 받아 공개 포트폴리오 리뷰를 준비하게 된다.

이번에 선정된 2차 작가는 강재구, 권진우, 김태동이다. 이들은 각자의 작업 개성이 뚜렷하며 스트레이트와 다큐멘터리 등 사진의 본질적인 특성에 기반해 작업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즉 상상마당 스코프가 지향하는 사진작업 방식에 부합하는 작가들로 선정됐다. 또 이들은 각각 최봉림, 강수정, 송수정을 멘토로 삼아 자기 작품에 정체성과 철학을 부여하는 과정을 거쳤다.

공개 리뷰를 마치고 심사를 통해 최종 선발된 작가는 ‘12mm’의 강재구이다. 선정 평가 항목인 프리젠테이션(Presentation), 작품(Artwork)에서 충분한 역량과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게 심사위원들의 설명이다. 심사위원들은 “무엇보다도 강재구 작가가 선정된 것은 한국의 징병제 문화에 대한 10년에 걸친 사진적 탐색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다. 그는 이미 ‘이등병’, ‘예비역’, ‘사병증명’이라는 세 차례에 걸친 개인전을 통해 ‘12mm’ 프로젝트의 성공적 완수를 위한 경험을 축적했다는 신뢰감을 주었고, 경제적 보답 없는 주제에 매진함으로써 심사위원들에게 향후 성실한 작가활동에 대한 믿음을 주었다”라고 밝혔다.

최종 지원 작가로 뽑힌 강재구는 2차 지원금과 함께 2011년 6월1일부터 30일까지 상상마당에서 개인전을 열었고, 2차 선발작가 2명과 함께 9월8일부터 11월27일까지 부산의 고은사진미술관에서 그룹전을 열었다.

날카로운 질문 오고간 포트폴리오 공개리뷰 현장

공개 포트폴리오 리뷰는 강재구, 권진우, 김태동 순으로 진행됐고 한 작가당 소개와 질문을 포함해 약 35분의 시간이 주어졌지만 정해진 시간을 초과해 날카로운 질문들이 쏟아져 나왔다.

가장 먼저 강재구는 한국 청년들의 군입대에 관한 문제를 다룬 작업 ‘12mm’ 시리즈를 선보였다. 멘토 최봉림은 발표에 앞서 “강재구는 10년 전부터 꾸준히 한국 청년들의 군입대 문제를 다뤄왔다. 젊고 능력 있는 작가 중에는 자기 작업의 주제의식, 사회의식에 매진하기보다 상업성과 시장성에 곁눈질해가며 재능을 소모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강재구는 이와 달리 일관된 주제의식을 가지고 성실하게 작업하고 있다. 이에 대해 칭찬을 아끼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발표가 끝난 후에는 기념사진과의 차이점 혹은 차별성을 묻는 질문들이 이어졌다. 또 뻣뻣하게 서서 정면을 바라보는 사진 속 모델에게서 입대 전의 심정과 청년들의 비애를 느낄 수 없다는 지적도 있었다. 이에 대해 작가는 사진의 중립성에 초점을 맞춰 답변했다. 더 많은 이야기를 풀어내기 위해서는 최대한 힘을 빼고 감정을 배제해야 했다는 것이 작가의 설명이었다. 반면 사진에 ‘릴레이’ 방식을 도입한 시도는 좋은 평가를 이끌어냈다. 친구의 입대를 지켜보던 청년이 다음 사진에서는 군인이 되어 찍혀있고 몇 개월이 지나서는 군기가 바짝 든 군인으로 등장한다. 한 인물이 군대를 통해 변화하는 과정을 추적하며 담아낸 강재구의 사진적 시도와 발상은 흥미와 공감을 얻기에 충분해 보였다.

이어서 권진우 작가가 ‘한국인’ 시리즈를 선보였다. 이국적인 외모를 가진 한국인들의 초상사진을 통해 그동안 단일민족이라고 배워왔던 한국인의 정체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 작업이다. 권작가는 한 나라의 문화적이고 시대적인 코드를 제거하기 위해 모델의 화장을 지우고 옷을 벗겨 증명사진 형식으로 촬영했다. 이에 관해 한 관람객이 “그런 이치라면 머리스타일은 왜 그대로인가?” 질문을 던졌고, 권작가는 일종의 ‘타협’이라며 작업과정에서 발생한 여러 한계와 어려움을 밝히기도 했다.

‘Day Break’ 시리즈를 선보인 김태동의 작품은 세 작가 중 가장 감각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사진은 깊은 밤 혹은 이른 새벽녘 서울에서 만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로, 이미지 가득 미스터리하면서도 스산한 분위기가 감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이미지만큼 내용의 임팩트가 부족했다는 점에 아쉬움을 표시하기도 했다.

진화하는 스코프, 문턱은 낮추고 지향은 뚜렷히

4회째를 맞는 KT&G 상상마당의 스코프는 지원 문턱을 낮춰 가능성 있는 신진작가들이 더 많이 지원할 수 있도록 제도에 변화를 주었다. 나이제한, 개인전 횟수 등을 모두 없앤 것이다. 반면 스코프가 지향하는 방향과 원칙을 담은 매니페스토를 통해 작가 스스로 기준에 부합하는지 판단한 후 지원토록 했다. 한 장 분량의 매니페스토에는 모두 4가지 항목을 제시하고 있다. ‘작가활동에 대한 확고한 의지’, ‘사진의 정통성과 역사성을 중시하며 사진작업의 완성도와 깊이를 갖춤과 동시에 새로움을 개척해 나가는 실험정신’, ‘한국사진의 정체성을 창의적으로 고민하는 태도’, ‘한국의 동시대 의식과 사회 상황을 주제로 작업하는 의지’ 등이 그것이다.

부산의 고은사진미술관이 이번부터 스코프를 후원하게 된 것도 변화상 중 하나다. 고은사진미술관의 이상일 디렉터는 “본관에 이어 신관을 개관하면서 젊은 작가들과 여러 작업을 전시할 수 있는 여건이 되었다. 무엇보다 다른 공모전과 차별화된 스코프의 지향점이 고은사진미술관과 일치했다”며 “고은사진미술관은 사진이라는 매체가 지닌 독창적인 미학성이 중요하다는 취지에서 설립된 곳이다. 스트레이트 사진과 다큐멘터리 사진으로 대변되는 사진다운 사진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일치한다”라며 후원하게 된 계기를 밝혔다. 고은사진미술관은 상상마당의 전시가 끝난 후 2차 선발작가의 그룹전을 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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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스코프 책임큐레이터 김일권


스코프의 지향점을 담은 매니페스토는 어떤 내용인가?

사진영역이 본격적으로 미술영역과 혼합되기 시작한 후 현재 사진가라고 이름 붙여진 사람들 중 미술을 베이스로 한 사람이 굉장히 많아졌다. 그것은 사진이라는 매체를 빌린 것뿐이지 순수한 사진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즉, 사진을 매체로 사용하는 아트일 뿐이다. 또한 포토그래퍼가 아닌 아티스트라 표현해야 할 것이다. 사진의 본질은 기록성이다. 이러한 본질에 충실하게 사진다운 사진을 하는 사람들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바로 스코프이다. 매니페스토의 핵심은 스트레이트 사진, 다큐멘터리 사진작업과 한국적인 것을 고민하는 것이지만 반드시 사회적 현상에 대한 이슈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사진에 대한 본질을 다루고 그것에 근접한 작품을 지원하겠다는 의미를 가진다.

선발작가들의 연령대가 낮아진 느낌이다.

지금까지 공모 조건이 꽤 까다로웠다. 디지털 합성은 안되고 나이제한도 있었고 개인전 1회 이상의 증명서도 제출해야 했다. 외부에서 너무 견고하다는 지적도 있었고, 자체 내에서도 이런 규정이 굳이 필요할까라는 의심이 들어 올해부터는 매니페스토로만 공모하였다. 그런데 지난 스코프에 선정된 작가들이 채승우, 이선민, 노순택 등 어느 정도 이름이 알려진 작가들이어서 그런지, 경력이 꽤 되는 작가들도 응모하기를 지레 겁내하더라.(웃음) 용기 있게 응모한 이들은 오히려 젊은 신진 작가들이었다. 물론 40대 작가들도 있었지만, 우연찮게 2차 작가 모두 젊은 작가들로 선정되었다.

고은사진미술관의 후원으로 기대하는 바는?

KT&G 상상마당에는 그동안 무수히 많은 지원프로그램이 있었지만 지금까지 남아있는 것은 음악관련 지원프로그램과 스코프 2개 뿐이다. 지원프로그램의 지속성은 그것이 가진 가치와 의미의 확산과 직접적으로 관련된다. 고은사진미술관이라는 공신력 있는 문화재단이 후원의 형식으로 힘을 실어준다는 것은 비단 물질적인 측면 이상으로 긍정적인 효과를 준다. 즉, 프로그램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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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회 스코프 최종작가 선정된 강재구
군인 작업만 10년째, 아직 못다한 작업 많아

강재구는 1977년생으로 2003년 계원조형예술대학 사진예술과를 졸업했다. 2004년에는 제6회 사진비평상을 수상했고 그동안 개인전 2회, 그룹전 10회의 전시경력이 있다.

최종작가 선정을 축하한다. 선정된 소감은?

군인 작업을 시작한지 올해로 10년이 되었다. 작업기간이 길다고 좋은 작업이 나오는 건 아니지만, 이번 결과로 인해 앞으로의 작업에 큰 자신감을 얻었다.

최종 포트폴리오 리뷰 과정은 어땠나?

모든 리뷰가 그렇겠지만 끝마치고 나면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이번 리뷰에서도 심사위원들에게 어필은 잘 하였나, 꼭 이야기해야 했던 부분을 빼놓지는 않았나 돌이켜 보면 수십번 연습하고 준비했던 생각들이 완벽하게 전달되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

어떤 점이 높은 점수를 받았다고 생각하나?

자칫 단조롭게 보일 수 있는 주제이지만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작업해 왔다는 점에 높은 점수를 주지 않았나 생각한다. 또 대상을 바라보는 독특한 시각을 심사위원들이 좋게 평가한 것 같다.

작업에 대해 간략히 소개해 달라.

작업명인 ‘12mm’는 육군에서 지정하는 삭발기준이다. 군대에 입소하기 한시간 전후의 모습을 촬영한 것으로 처음엔 내가 과거에 경험했던 것들을 어떤 식으로 다시 바라볼까라는 시선으로 접근하게 됐다. 입대 전 삭발을 하고 가족, 연인, 친구들과 이별의 시간을 갖는 청년들의 얼굴을 정면으로 촬영하며 그들의 심리, 불안함, 체념 등을 기록하고자 했다.

작품을 통해 가장 이야기하고 싶었던 부분은?

나의 작업은 군대에 대한 개인적인 경험이 시작이다. 훈련소에 모인 청년들의 얼굴에 나타나는 심리를 섬세하게 기록하는 동시에 군인의 신분으로 변화될 이십대 청년들의 다층적 모습을 추적하였다. 또한 이들과 함께 포즈를 취한 동년배 혹은 부모 세대의 모습을 통하여 동시대 현대인의 정체성의 한 단면을 바라보고자 했다.

스코프의 진행과정은 어땠나?

가장 좋았던 점은 심사위원 한명을 멘토로 두어 지속적인 피드백을 받을 수 있었다는 점이다. 최종 3인이 멘토-멘티제를 통해 더욱 성숙된 작업을 선보일 수 있도록 지원하는 스코프만의 프로그램이 여느 공모전들과 차별화된 강점이었다. 이를 통해 최종 작업물의 완성도가 높아진 것에 대해 아주 만족한다. 반면 정해진 기간 내에 무언가를 이루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다. 시간에 쫓기다 보면 처음 세웠던 방향에서 엇나가고 있지는 않나, 혹은 작업이 어떻게 흘러가는 것인지 혼란스러울 때가 많았다. 그러나 계속해서 고민하고 점검하며 작업을 보완시켜나갔다. 뒤를 돌아보며 나의 방향을 잃지 않으려 노력했다.

앞으로 어떤 작업을 계획하고 있나?

지금도 진행 중인 작업이 있다. 입대를 앞둔 청년들의 누드초상작업으로, 입대를 앞두고 삭발을 하기 직전의 긴장감, 삭발을 하고 난 후 초조함이 극에 달한 모습을 촬영하고 있다. 촬영은 한 사람의 입대 전 모습을 시작으로 입대 후 일반인으로 돌아오기까지의 몇 년에 걸친 시간을 담아내는 작업으로 이어질 것이다. 이밖에도 사실 군대이야기로 몇 가지 작품 시나리오를 써놓은 것이 있다. 요즘 주위에서 어떤 작업하고 있냐는 질문에 “군인 작업하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하면 모두 깜짝 놀라한다. 아직도 할 이야기가 남았냐고. 군대에서 억울한 일 많았나보다고.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마음속으로 아직 할 이야기가 많다고 대답한다. 이 모든 이야기를 작업으로 보여줄 때가 올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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