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6-19
스마트폰으로 주변 카페를 검색하면 순식간에 수십개의 위치바늘이 눈을 찌르며 아우성을 쳐댄다. 굳이 검색하지 않더라도 몇 걸음만 걸어가면 여기저기서 카페 간판이 쉽게 눈에 띈다. 그야말로 ‘카페대국(?) 대한민국’이다. 거대 프랜차이즈부터 개인이 운영하는 공간까지 우후죽순 생겨나는 가운데, ‘갤러리카페’를 표방하는 공간 또한 부지기수로 생겨났다. 그러나 금방 문을 닫거나 업종을 바꾸는 등 운영이 어렵기는 마찬가지였다.
글│현정아 기자
기사제공│월간사진
그나마 경쟁력을 갖추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Only One’의 차별화와 개성이 필요하다. 작품 몇점 거는 것만으로 갤러리카페를 운영했다가는 작품을 내리는 동시에 간판도 내려야 하는 불상사가 일어날 터. 그 공간만의 이야기와 개성, 즉 플러스 알파 요인을 갖춰야 한다.
서울 가회동의 ‘사진관 티카페’, 신촌의 ‘여우사이’, 화양동의 ‘ZAKO’는 모두 공간의 특수성과 개성을 무기로 손님이자 관객을 이끈다. 단순히 커피를 마시고 작품을 감상하는 공간에서 벗어나, 공간이 지닌 그만의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오랜 시간 우려낸 차(茶)향처럼 ‘사진관 티카페’
생각 사(思)를 새겨 넣은 ‘사진관’(思眞館) 현판부터 뭔가 범상치 않다. 종로구 가회동에 위치한 ‘사진관 티카페’는 사진가 이쥬(본명 이주희)가 초등학생 시절부터 30년 넘게 살아온 한옥을 개조하여 만든 갤러리카페이다. 아버지가 직접 써주신 현판을 걸고 오픈한 지 이제 갓 1년이 됐지만 나름 두터운 단골층을 확보하고 있다.
티소믈리에인 부인 박은정씨와 함께 운영하는 이 공간은 크게 ‘사진’과 ‘차’가 중심이다. 이름 역시 사이좋은 부부처럼 ‘사진관 티카페’ 아니던가. 현재는 지인 사진가들의 작품으로 전시를 열고 틈틈이 본인의 작품을 건다. 고등학생 때 처음 사진을 시작해 20년 넘게 언론사, 영화, 연극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일해 온 이쥬 작가는 사진은 자신에게 첫사랑과 같다고 말한다. 지금은 연출사진을 공부하기 위해 연극 일을 하고 있으며 얼마 전에는 몽골에서 ‘대지’ 시리즈를 촬영하고 돌아왔다.
한옥은 그가 사진공부를 위해 일본 유학을 떠나기 전까지 부모님과 함께 살았던 곳이다. 애정이 남다르겠다고 물어오는 사람들에게 그는 오히려 덤덤히 얘기한다. “그저 오랜 세월 함께한 아내를 바라보는 느낌이에요. 남다른 애정보다는 익숙하고 편안한 느낌, ‘오랫동안 수고했네’라는 느낌이 더 강해요.” 그럼에도 이곳을 찾는 손님들은 특별한 무언가를 느끼고 돌아간다. 결혼식도 이곳에서 치렀다고 하니, 아무래도 이 공간에 서린 추억과 의미를 공유하려는 듯하다.
사진과 차, 음악, 사람이 모인 작업실
카페에는 유난히 아날로그의 아련한 향이 짙게 풍긴다. LP, 필름카메라 등 오래 전부터 작가가 모으고 써온 이 물건들은 예전 삼청동 작업실의 것들을 그대로 옮겨온 것이다. 실은 카페를 오픈하기 전부터 지인들 사이에서 옛 작업실은 이미 카페 같은 공간이었다고 한다. “평소 커피와 차를 좋아해서 직접 원두를 갈아 지인들에게 대접하곤 했는데, 제가 타준 커피가 제일 맛있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좋아하는 사진과 차, 음악, 사람이 모두 모이는 장소였는데 그것이 그대로 옮겨진 게 사진관 티카페죠.”
사진관 티카페는 커피가 메인인 주변 카페들과 달리 45종의 차를 다양하게 소개하고 판매한다. 대기업 패션회사의 MD로 일했던 박은정씨는 평소 좋아하던 차를 전문적으로 공부하기 위해 회사를 그만두고 캐나다로 건너갔다. 그리고 미국 티협회에서 한국인 최초로 티소믈리에 자격증을 취득하고 돌아와 지금도 계속 차를 연구 중이다. ‘이달의 차’처럼 매달 테마를 잡아 새로운 차를 소개하고 알리는 일도 빠뜨리지 않는다. 해가 바뀐 1월달에는 새로움과 함께 아침의 상쾌한 느낌을 선사하는 망고가 블렌딩돼 있는 차들을 할인행사하고 있다. 또한 앞으로는 차를 시음하고 고를 수 있는 차 리테일 공간을 마련할 계획이다.
여기에 전시할 수 있는 공간까지 갖춰졌으니 그야말로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작품은 사진, 회화 등 장르 구분 없이 평균 6주 동안 전시된다. 올 초에는 얼마 전 한미사진미술관에서 ‘Mute 2’ 시리즈를 선보였던 김재경의 초기 작업들을 전시할 예정이다. 초창기에 작업한 한옥사진 시리즈를 8×10 밀착 작품으로 전시할 예정이다. 개인적으로 8×10 밀착 흑백사진에 굉장한 매력을 느낀다는 작가는 “마치 ‘나가수’를 보는 느낌일 거예요. 가수와 노래는 몰라도 좋은 것은 느껴지기 마련이죠. 디지털 시대에 흑백사진이 갖는 매력도 이런 게 아닐까요”라며 기대를 전했다. 02-743-2238
여기서 우리들의 사진을 이야기하자 ‘여우사이’
남녀노소 누구나 사진을 찍는 시대가 됐지만, 그렇다고 누구나 자신의 작품을 전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럴듯한 전시장을 대관하자니 비용부터 만만치 않고, 프로작가가 아닌 바에야 어쩐지 겸연쩍기도 하다. 그러나 여기, 사진 자알~찍는 사장님이 손수 품평까지 해주며 무료로 전시해 주는 곳이 있다. 서대문구 창천동에 위치한 갤러리카페 ‘여우사이’는 사진을 전공한 김희기씨가 운영하는 곳으로 아마추어와 프로 사진가들의 작품을 고루 전시하고 있다.
카페명 ‘여우사이’는 ‘여기서 우리들의 사진을 이야기하자’의 줄임말이다. 류시화의 시 ‘여기서 우리들의 사랑을 이야기하자’에서 ‘사랑’을 ‘사진’으로 바꾼 것이다. 사진을 좋아하는 이들이 모인 동명의 온라인 커뮤니티를 오프라인으로 만들어 2008년 9월, 자신이 사랑하는 ‘사진’과 ‘사람’과 ‘커피’를 한 공간 안에 모았다.
캐나다에서 2년 동안 사진을 배우고 돌아와 스튜디오, 카메라 조명회사 등에서 일한 김희기씨는 사진을 업으로 삼기보다는 커피 한잔 나누며 사진을 이야기하는 쪽을 택했다.
인화지 선택부터 작품배열까지 아낌없는 조언
사진과 미술 등 장르 구분이 따로 없는 여느 갤러리카페와 달리 이곳은 오직 ‘사진’ 매체만을 다룬다. “개인적으로 미술작품의 경우는 공간의 크기와 위치, 작품간의 거리가 굉장히 중요하기 때문에 이 공간으로는 작품성을 극대화시키는데 한계가 있어요”라고 말하는 김희기씨는 작품의 순서, 위치 등도 꼼꼼히 체크한다. 아무래도 아마추어 사진가의 전시가 많기 때문에 인화지 선택부터 작품에 대한 개별적인 조언까지 세세하게 가르쳐준다. “그저 액자를 걸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고 해서 ‘갤러리’가 될 수는 없어요. 그들에게는 전시도 중요하지만 그들의 사진을 진지하게 논해주는 것도 필요해요. 단순히 손님을 끌기 위한 수단으로 갤러리카페를 운영한다면 오래갈 수 없겠죠”라 말하는 그의 목표는 일반인들이 전시를 경험하며 더 많이 배워가는 것이다.
이야기를 담고 있는 사진이라면 작품의 질은 크게 논하지 않는다. 최대 40점 정도의 작품을 걸 수 있으며, 평균 20~25점을 전시하고 있다. 또한 B컷의 경우, 철판에 약 200장 정도를 전시할 수 있으며 삼성에서 지원한 디지털액자 5대에 디스플레이할 수도 있다. 액자나 인화는 개인적으로 해야 하지만 대관은 무료이다. 다만 항시조명을 옵션으로 택할 경우 주당 5만원의 전기세를 내야하며 계약금 5만원을 받고 있다.
자체개발한 퓨전 메뉴들
제아무리 갤러리카페라지만 커피가 맛없다면 ‘말짱 도루묵’이다. 카페를 오픈하기 전, 바리스타 자격증을 취득한 김희기씨는 다른 카페에서 흔히 맛볼 수 있는 커피 외에도 새로운 메뉴를 계속 개발하고 있다. 이중 자체적으로 만든 독특한 퓨전 커피인 유자 아메리카노, 홍차 아메리카노가 베스트셀러이다. 녹차를 넣은 그린초코, 블루베리를 넣은 블루초코, 체리가 들어있는 레드초코도 인기가 좋다. 이밖에 코코넛밀크를 이용해 만든 코코트러블 시리즈도 ‘강추’ 메뉴이다. 02-325-1211
사진가들의 놀이터와 아지트, ‘아트스페이스 ZAKO’
문 열고 몇 발만 내딛으면 백사장과 에메랄드 빛 바다를 한눈에 품을 수 있는 몰디브처럼, 문 하나만 열면 음악과 커피, 작품을 음미할 수 있는 일터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만으로도 행복한 이런 공간이 실재한다고 하니, 바로 광진구 화양동에 위치한 아트스페이스 ‘ZAKO’이다.
‘ZAKO’는 사진을 기반으로 교육, 홍보 기획, 광고 마케팅을 담당하는 회사로 심은식 대표를 필두로 김주원, 이윤환, 권오철 등 사진가와 사진기자 등 11명이 소속되어 있다. 이들의 사무실은 복합문화공간이자 갤러리카페인 아트스페이스 ZAKO 내에 있으며, 이곳에서 주요미팅이나 회의를 갖기도 한다. 그러나 엄연히 모두에게 개방된 문화공간으로, 무료로 작품을 전시할 수도 있고 여느 카페처럼 오랜 시간 책을 읽으며 머물 수도 있다.
ZAKO 멤버들은 종종 우스갯소리로 ‘좋은 일 해서 돈 벌기는 어렵지만 돈 벌어서 좋은 일하기는 쉽다’고 말한다. 그들이 움직이는 동력 역시 ‘재미’와 ‘보람’ 그리고 ‘돈’이다. 이 셋 중 둘만 충족돼도 일을 맡는다는 것이 ZAKO의 원칙이다. 무료로 전시를 대관해주는 아트스페이스 ZAKO는 무엇보다 그들 자신에게 재미와 보람을 선사해주는 공간이다.
복합문화공간, 열린 가능성의 공간
아트스페이스 ZAKO는 젊은 감성의 아마추어 아티스트들을 위한 창작활동을 지원하며 지금까지 약 20회 이상의 전시를 열었다. 사진, 미술, 일러스트, 설치 등 장르 구분 없이 다양하게 수용하고 있으며, 현재 장선미의 일러스트 작품 ‘얼굴 빨개지는 여자’s 26’을 전시하고 있다. 또한 부근의 건국대와 세종대의 예술계열 대학생들에게 후원의 형태로 전시공간을 제공해주고 있다. 대학가에 위치하다 보니 주머니가 넉넉지 않은 예술계열 대학생들에게 마음이 쓰이는 건 당연할 터. 심은식 대표는 포스터 한장이라도 더 찍어주자는 마음으로 그들의 전시를 물심양면으로 돕고 있다. 단, 후원대관과는 별도로 기업체 등의 개별행사나 프라이빗 파티를 위한 공간 대관은 유료이다.
이밖에 복합문화공간으로서의 입지를 다지기 위해 올해부터는 보다 다양한 장르를 선보일 예정이다. 심은식 대표는 “요일을 정해서 매주 금요일에는 사진관련 영화를 상영한다거나 사진책을 출간한 작가가 있다면 출판기념회와 같은 행사도 진행해보고 싶어요. 빔프로젝터로 작품을 크게 감상할 수도 있고, 작가들과 팬들이 모여 도란도란 얘기도 나눌 수 있고요. 이밖에도 이 공간을 활용해 해보고 싶은 문화행사가 참 많아요”라고 전했다.
‘일터’가 아닌 ‘놀이터’와 ‘아지트’라고 표현하는 ZAKO 멤버들처럼, 이 공간을 찾는 누구나가 놀이터처럼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거듭나길 기대해본다. 070-8682-98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