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6-20
내게 행복하게 책 읽는 풍경은 어떤 것일까? 어린 시절, 따끈한 아랫목에 누워 어머니가 가져다주신 고구마를 먹으면 만화책을 읽던 행복한 기억이 떠오른다. 사진가로 활동하는 요즘이라면 섭씨 40도가 넘는 동남아를 취재하다가 데이비드 앨런 하비의 사진이 담긴 책을 보며 더위를 식힐 때이거나, 러시아의 스산한 풍경 속에서 쿠델카의 사진책을 보는 순간일 듯하다. 이렇듯 책을 읽는 공간은 중요하다. 어떤 공간에서 책을 읽느냐는 것은 책에 담긴 정보를 뇌 속에 저장하는 일 이상으로 의미 있는 일이다. 책에 담긴 정보와 내가 존재하는 지금 이 공간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룬다면 그 정보는 뇌에 새겨지는 것이 아니라 가슴에 새겨진다. 하지만 책을 보자고 늘 그 책과 인연 있는 공간을 찾아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다. 뭔가 책에 집중할 수 있는 그런 공간이 우리에게는 필요하다.
글, 사진│ 이상엽(이미지프레스 대표)
기사제공│ 월간사진
인류 최후의 피난처, 도서관?
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는 인간을 ‘유전자복제를 위한 생체기계’라고 정의했다. 질 들뢰즈의 기계론을 빌려 책을 정의한다면 ‘지식 기계’쯤 될까? 그 두 기계가 만나는 공간이 바로 도서관이다. 도서관은 수 없이 많은 두 기계가 모여 지식을 확대재생산하는 공장이다. 인류는 지식을 확대재생산하기 위해 아주 오래전부터 도서관을 만들었다. 저 멀리 수메르인의 점토판 도서관에서부터 전설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과 비밀스런 선지자들의 양피지 책이 잔뜩 쌓여있다는 교황청 도서관까지 지구상에는 헤아릴 수 없는 도서관들이 존재했고 존재한다.
그 수없이 많은 도서관 중 한곳이 영화 ‘투모로우’(The Day After Tomorrow, 2004)에 등장한다. 부시의 도쿄의정서 거부를 조롱하는 듯한 이 재난 영화에서 거대한 자연의 재앙 앞에서 살아남은 이들이 피신을 한 곳은 공교롭게도 도서관이다. 나는 오래전 영화의 촬영장소가 된 뉴욕시립도서관을 방문한 일이 있었다. 개가식으로 디자인된 이 오래된 도서관은 거대한 지식의 전당이자 아름다운 책읽기의 공간이었다. 은은한 텅스텐 조명은 책을 읽고 싶다는 욕망을 불러일으킬 정도였다.(형광등 아래 고시 공부하는 독서실 분위기인 우리나라 도서관과는 차원이 다르다!) 영화는 ‘인류의 절멸을 앞두고 어떤 책을 보존해야하는가?’를 묻는다. 독자들도 상상을 해보시라. 당신이라면 과연 어떤 책 한권을 선택하겠는가? 나는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도 맑스의
<자본론>
도 브레송의
<결정적인 순간>
도 아닌 ‘농업기술서’가 떠올랐다. 참으로 멋없지만 먹고는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사실 이렇게 도서관에 관한 이야기를 떠드는 것은 최근 읽고 있는 두 권의 책 때문이다. 뉴욕대 교수인 라이오넬 카슨이 쓴
<고대 도서관의 역사>
와 니콜 하워드가 쓴
<책, 문명과 지식의 진화사>
가 그것인데, 이 책 모두 이번에 만날 최종규라는 사람과의 인터뷰를 위해 읽고 있다. 그런데 왜 도서관이냐? 갤러리가 넘쳐나고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사진 관련 책들이 쏟아지는데도 우리에게는 사진책 전문도서관이 없다. 뭔가 분위기 있고 가슴에 와 닿는 사진책을 보기 위한 그런 공간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정부나 기업도 아니요, 돈 있는 미술관도 아닌 ‘헌책방 지킴이’로 알려진 한 젊은이가 홀로 사진책 도서관을 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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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최종규가 쓴 글에서 도서관이란 어떤 곳인지를 밝힌 대목이 있다. “도서관이라 하면 으레 돈을 들여서 새 건물을 지어야 하는 곳, 중고등학교 아이들이 입시공부를 하거나 대학생들이 고시공부 하는 곳쯤으로 알기 일쑤입니다. 하지만 진짜 도서관은 한 사람(개인)이 오랜 세월에 걸쳐서 한 가지 주제로 모아온 책을 차곡차곡 모아서 나누는 곳이기도 하며, 돈이 없더라도 자기 살림집을 고쳐서 책꽂이를 알뜰히 짜 놓은 뒤, 느긋하게 책 하나 즐길 수 있도록 마련하는 곳이 아닐까 생각해요. 지금 대한민국 법률에서는 도서관 사서 자격증을 갖추고 도서관위원회를 꾸리고 무슨 시설검사에 합격을 해야만 도서관을 열 수 있다고 못 박는데, 돈 없는 사람도 책을 즐길 수 있는 곳, 동네사람들이 스스럼없이 찾아들 수 있는 곳, 멀리서도 찾아와 지역 책 문화와 지역 사람들 삶터를 함께 부대낄 수 있는 곳이 도서관이요, 이런 지역 도서관이 전국 곳곳에 하나 둘 문을 열 수 있으면 좋으리라 꿈꿉니다.” 그래서 도서관 구경도 할 겸 그를 만나러 인천으로 갔다.
인천 배다리 헌책방 골목
동인천역에서 내려 시장 길을 따라 배다리 헌책방 골목으로 갔다. 이 골목은 한국전쟁 당시 손수레와 노점상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어 만들어진 상가였지만 주로 책이나 문구를 전문으로 취급하는 사람들이 몰려들어 70년대에는 40여개의 헌책방이 자리 잡을 정도로 호황을 이뤘다고 한다. 40대 나이에 인천 사람이라면 학창 시절 참고서나 문제집 또는 경찰의 문을 피해 사회과학 서적을 구하기 위해 이곳을 방문했던 경험을 갖고 있다니 서울 사람이라면 동대문 헌책방 거리를 떠올리면 되겠다. 하지만 80년대 중반 이후 헌책의 인기가 시들해지고, 인터넷 서점까지 가세해 편하게 안방에서 책을 받아보는 시대가 되다보니 이곳 헌책방들은 하나 둘씩 문을 닫고 말았다. 지금은 집현전, 아벨 등 허름한 간판을 내건 6곳의 헌책방만이 남아 배다리 헌책방 골목을 지키고 있다. 하지만 이 골목을 걷다보면 확실히 먹물 냄새가 난다. 낡은 건물과 활기 잃은 골목이지만 오래된 문화의 깊이가 느껴진다.
그러나 이마저도 헌책방거리가 위치한 금곡동 한가운데에 산업도로가 놓일 예정이어서 배다리 헌책방 골목은 영원히 사라질 안타까운 신세에 처해있다. 인천시는 2011년까지 중구 신흥동에서 동구까지 연결하는 길이 2,570m에 폭 8차선의 산업도로를 신설키로 하고 지금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그런데 재개발이라는 거대한 힘 앞에 ‘찍소리’도 못 낼 것 같았던 주민들과 헌책방 주인들이 인천지역 문화인들과 함께 ‘배다리 살리기’ 운동에 나섰다. 그 운동의 중심에는 최종규도 있었다.
그런데 영~, 사진책 도서관을 찾을 수가 없었다. 넓지 않은 곳이어서 발품 파는 것이 힘들지는 않지만 벌써 동네를 세 바퀴째 돌고 있다. 전화를 다시 건 후에야 허름한 건물 3층을 찾을 수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차라리 도서관이라기보다는 분위기 있는 헌책방이라야 맞을 듯한 공간이 눈에 들어온다. 최종규가 직접 찍은 듯한 흑백사진들이 빨랫줄에 걸려있다. 멀리서 찾아 왔는데도 손님 맞는 태도가 영 달갑지 않다는 분위기다. 30대 초반의 나이에 불과한데도 긴 머리에 수염까지. 음, ‘도사 같은 분위기로 책과 함께 산다’ 이거지! 오랜만에 ‘뭐하는 인간인가?’하는 기자 특유의 호기심이 발동한다.
나만의 특색 있는 도서관을 만든다
사진책 도서관을 만들었다. 특별히 이런 도서관을 만들게 된 계기가 있었나?
95년인가, 출판계 선배가 네덜란드의 아미쉬공동체를 찍은 사진책을 보여준 적이 있다. 당신이라면 이런 책을 봐야 한다면서. 그런데 그 책에는 글만으로는 할 수 없는 이야기가 있었다. ‘아 사진책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구나’하는 것을 깨닫고 사진책을 사모으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도서관에는 사진책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말 관련 책, 사전들, 그림책, 인문학, 교육, 여성, 환경 등등 다양한 책이 있다. 사진하는 사람은 이런 다양한 책을 두루 봐야 한다. 사진책이 몸통 바퀴라면 다른 갈래의 책들은 작은 톱니바퀴들인데, 함께 돌아가야 제대로 사진을 찍게 되는 것이다. 도서관에서 사진책이 가장 안쪽에 있는 것은 기웃기웃 여러 책을 보고 나중에 사진책을 봐도 된다는 생각 때문이다.
주로 어떤 책을 수집해서 비치하나?
나는 특정 작가나 분야의 책을 모으는 수집가가 아니다. 수집가는 언제고 다시 판다. 나는 책을 팔지 않는다. 책을 살 때 사진 뿐 아니라 편집 같은 여러 가지를 본다. 그리고 살만하다 싶은 것은 산다. 도서관이기 때문에 꼭 갖추어야 할 책은 무리를 해서라도 사지만 특정 작가의 책은 내 소유욕만 높이는 것 같기도 하고 너무 비싸기도 해서 피하는 편이다. 다른 도서관에서 볼 수 있는 책 말고, 최종규가 발품을 팔아 어렵게 선택한 책을 보여주려고 한다. 문제는 재정적인 것인데, 꼭 사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밥을 굶더라도 사야 한다. 그것이 참 어려운 문제다.
지금까지 모은 사진책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책은 어떤 책인가?
아쉽게도 나라 안에서 만든 사진책은 없다. 아마도 그분들이 덜 애를 썼기 때문일 것이다. 김기찬 선생은 10년은 더 사셨어야 했다. 안타깝다. 그리고 최민식 선생은 조금 더 곧게 길을 가셨어야 했다. 오마이뉴스에 사진을 싣는 노순택씨는 먹고사는 걱정, 주제 선정, 시의성 등등 온갖 압박이 느껴진다. 자기 성에 갇히는 것 같다. 아마도 그런 이야기를 주변에서 해주는 사람이 없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전민조 선생의 책이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그 분의 전시회를 몇 번 갔었는데, 전시장에서도 카메라를 메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일본 사진책에 좋은 것이 많다. 특히 키요시 카와카미의 1974년 사진책
<하얀 바람>
을 가장 아낀다. 헌책방을 꼼꼼하게 다니며 수집하고 보이는데 까지 최선을 다해 이런 책을 모을 생각이다.
도서관에 몇 권의 책이 있냐는 물음에 “나도 모른다. 왜냐하면 매일 숫자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도서관은 미래를 담아야 하기 때문이다”라고 답한다. 고집도 상당히 세다. 하지만 대충 추산해 보면 1992년부터 최씨가 모은 책은 3만권 정도이고, 사진 관련 책은 4천권이다. 그 중 3천권 정도가 사진책이다.
최씨는 1975년에 인천 중구 송월동 3가 3번지에서 태어나 신흥동과 연수동에서 살았다. 대학교 1학년 때까지 인천 집에서 학교를 다녔지만 날마다 네 시간 반을 길에서 버리는 것이 고달프고, 텔레비전 소리로 시끄러운 집이 싫어 2학년이 되던 해에 집을 나왔다. 그리고는 대학 앞 신문사지국에 들어가 신문 돌리는 일을 하며 자취를 한다. 이 때 생계형 자전거 타는 일을 시작했는데 지금은 이것이 취미이자 유일한 교통수단이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인천을 떠나 서울에서 살며 1999년부터 출판사에서 일하다가 2003년에 충주로 옮겨 이오덕 선생의 유고를 정리하며 지냈다. 그리고 그 다음 한 해 동안은 자전거로 전국 나들이를 하며 지냈다고 한다. 처음에 최씨는 시골에 마을도서관을 꾸릴까 생각했는데, 어느 날 배다리 헌책방골목 ‘아벨서점’ 아주머니가 “그런 도서관이라면 인천에 있으면 더 좋을 텐데”라며 바람을 넣는 바람에 모든 계획을 바꿔 고향인 인천으로 살림을 옮기고, 6월1일 사진책 도서관 ‘함께 살기’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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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하는 사진가이고 싶다
사진은 언제부터 했는가?
98년부터 사진을 찍었다. 대학 시절 신문방송학과에서 보도사진론을 청강하면서 아버지가 갖고 계시던 자동카메라를 고쳐서 사진을 찍었다. 일회용 사진기를 쓰기도 했다. 신문배달하면서는 매일 10가지 신문을 봤다. 어떻게 사진이 사실을 비틀고 거짓을 말하는지 알았다. 보도사진론 교수가 “기술보다 주제를 가져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이리저리 주제를 찾다가 그것이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 생활인 헌책방을 찍으면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10년 후에 두고 보자고 했다. 이제 10년이 됐고, 나도 사진으로 말하겠다. 지금 까지 쓴 210꼭지의 사진에 대한 글과 사진 200장으로 책을 꾸밀 예정이다.
헌책방에 관련해서 쓴 두 권의 저서에는 모두 흑백사진이 실려 있다. 주로 흑백으로 작업하는가?
일포드 델타 400 필름을 1600으로 증감해서 찍는다. 헌책방을 찾은 사람들을 방해하기 싫어서 플래시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컬러로 안 찍는 이유는 번들거리는 색에 이끌려 책방의 느낌을 보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흑백사진은 현실을 덜 왜곡시킨다. 최근에는 디지털카메라도 사용하는데 주로 골목을 찍을 때 쓴다. 이 도서관이 있는 배다리는 사람이 살아가면서 어울림이 있는 곳이다. 그래서 월 평균 50만원도 못 벌어도 재미있게 사람들이 살아가는 흔치않은 골목길 문화가 있다. 내년 봄까지 사계절을 찍을 생각이다. 그리고 작은 사진책으로 만들려고 한다.
사진 뿐 아니라 글과 함께 책을 엮고 있다.
3년 전 첫 책
<모든 책은 헌책이다>
(그물코)에는 많은 사진을 넣었다. 사실 사진을 넣지 않겠다고 했는데 출판사에서는 “독자들이 헌책방을 잘 모른다”고 해서 그 의견을 따랐다. 책은 잘 나간 편이지만 개인적으로 실패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독자들이 글은 읽지 않았다. 그래서 두 번째 책
<헌책방에서 보낸 1년>
은 딱 12장, 한 달에 한 장만 보라는 의미로 실었다. 사진이 중요하다면 사진만으로 책을 만들어야 한다. 사진이면 사진, 글이면 글이 독립해서 한 자리에 모여야 한다. 어설프게 섞는다면 이도저도 아니다. 사진을 보면서 글을 상상하고, 글을 보면서 사진을 상상하는 그런 책이어야 한다. 책에 글과 사진을 함께 할 땐 새롭고 진지하게 다가가지 않으면 실패한다.
헌책방에서>
모든>
자신의 삶 속에서 사진은 무엇인가?
신문배달을 할 때부터 자전거를 탔다. 일테면 생계형 자전거다. 지금은 차 삯이 안 나간다. 사실 대중교통은 싸지 않다. 그리고 기름을 때서 가거나 전기로 간다. 즉 자연을 파괴한다. 입에 집어넣는 밥이 더러워지는 것이다. 그러지 않으려면 실천을 해야 하고 그래야 앞뒤가 맞다. 나는 자전거로 움직여야 사람을 느낄 수 있다. 더 많은 사람, 더 많은 풍경을 본다. 차로 출장 다니며 좋은 사진 찍는다는 건 거짓말이다. 사실 사진도 문화도 서울로만 간다. 그 때문에 서울 사람들은 게을러졌다. 서울을 떠나려는 사람이 적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서울이 싫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의 문화를 가꿀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자신 주변에서 가장 잘 알고 사랑하는 것들을 지금까지 익힌 사진 솜씨를 발휘해 찍어야 한다. 나는 그것을 실험하고 있다. 전몽각 선생처럼 가족을 찍고 주변 풍경을 찍고. 그런 사진을 모아 책을 만들고 그런 책을 모아 도서관을 만들려고 한다. 나는 그런 실천을 한다.
그가 격월간으로 펴내고 있는
<우리말과 헌책방>
이라는 잡지를 보며 서울행 전철에 몸을 실었다. 그가 혼자서 쓰고 찍은 글과 사진을 담은 ‘1인 잡지’였다. 헌책방을 사랑하고 그래서 우리말을 사랑하다가 사진에 빠져 사진책 도서관까지 만든 최종규의 고집이 책 속에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그리고 그 고집이 앞뒤가 맞도록 실천하는 삶을 살고 있다. 나는 어두워지는 창밖을 보며 이 청년이 고집스레 실천하는 것들을 몇 가지나 기억하며 살고 있는지 헤아려 본다. 책 나오고 나면 다시 한 번 배다리를 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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