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8-23
사람들로 붐비는 주말이 아닌 평일의 헤이리를 찾아가보면 안다. 이상을 같이 하는 사람들의 공동체를 현실에서 마주하면 아름답다는 표현이 먼저 떠오른다. 주말 관광객에 자리를 내줬던 주민들의 맨얼굴은 하나같이 선하고 때묻지 않았다. 이들에 의해 10여년 가까이 예술가 공동체인 헤이리가 유지되고 완성되어가는 중이다.
기사제공│월간사진
서울에서 자유로를 타고 북으로 1시간여 달려 닿는 파주 헤이리 마을은 창작과 전시가 수시로 열리고, 공동체를 구성하는 예술가들이 서로 이웃으로 관계 맺으며 예술과 공동체에 관한 새로운 담론을 만들어낸다. 사진가이자 헤이리 주민회 부촌장인 이안수(55)는 헤이리 공동체의 중심에 서있다.
헤이리를 방문해본 이라면 검정 고무신을 신고 오른쪽 어깨에 카메라를 걸치고 바삐 걸어가는 그와 한두번은 마주쳤을 것이다. 작은 키에 뚜렷한 이목구비, 멀리서도 한눈에 알 수 있는 길게 기른 흰 수염은 영락없는 도인의 모습이다.
이안수의 공식 명함은 헤이리의 유일한 게스트하우스이자 아티스트 레지던시를 겸한 ‘모티프원’의 주인장이다. 이외에 예술가들의 멘토, 헤이리의 파수꾼, 기록자 등 명함에 없는 무수한 직함이 그의 이름 앞에 붙는다. 그만큼 헤이리에서 그의 역할이 다양하다는 의미다. 헤이리에서 일어나는 대소사는 빠짐없이 기록되어 그가 운영하는 ‘헤이리를 살다! 모티프원’ 블로그와 홈페이지를 통해 전파된다. 전시 등 행사소식은 물론 헤이리 사람들의 소소한 사는 이야기에서 크고 작은 공간들의 근황, 계절과 동식물의 변화상까지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이 없어 보인다. 그리고 이 모든 관찰과 기록의 행위에는 그 대상이 무엇이든 무한한 애정이 묻어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작은 바람의 소리에까지 귀를 열고 마음과 시선을 온통 빼앗기는 사람이 이안수다.
이안수는 헤이리에 정착하기 전에 지난 30여년을 한국과 세계 각지를 떠돌던 여행자로 살아왔다. 여행자의 생존에 필수인 관계 맺기와 성찰하는 삶을 통해 자연스레 그의 시선은 깊어지고 귀는 넓어져 세상을 보고 듣는데 적합하게 진화되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의 관계는 속을 드러내는 대면을 통해서로에게 의미 있는 무엇이 된다는 게 그의 믿음이며, 모티프원에서 이를 실천하고 있다.
그가 운영하는 모티프원은 국적, 장르, 나이를 불문하고 예술가와 일반인들이 찾아온다. 헤이리에 정착한 후 자신이 마음대로 여행을 떠날 수 없게 되자 다른 사람들이 찾아오도록 만든 공간이다. 사람들이 모이는 1층 거실은 벽을 따라 1만2천여권의 책이 꽂혀있다. 이중 그가 가장 귀하게 여기는 것은 이곳을 다녀간 사람들이 남긴 방명록이다. 밤새 예술과 문화를 이야기하고 마음의 평화와 영감을 얻어간 이들의 속마음이 담겼다. 헤이리를 찾는 국내외의 다양한 예술가들의 만남이 이뤄지고 이안수가 가교 역할을 하는 이곳은 다녀가는 모든 사람들이 삶과 예술에서 영감과 모티프를 얻어갈 수 있도록 그가 지은 이름이다. 한국의 가장 개성 있는 숙소 중 한 곳이자 론니플래닛을 비롯해 외국 매체에 더 많이 소개되는 모티프원에서 이안수를 만났다.
헤이리에 산 지 7년째다. 어떻게 들어오게 되었는가?
서울에서 29번의 이사 끝에 마련한 아파트를 처분해 땅을 사고 대출을 받아 건물을 지었다.(웃음) 잡지기자로 25년을 일한 뒤였다. 인생 2부를 산다면 어떤 삶을 살 것인가 선택의 기로에 섰다. 지난 30년간 여행자의 입장이었지 한번도 정주자가 돼본 적이 없었다. 정주자로서 뿌리 내리고 삶을 꾸려보고 싶은 생각에 처음에는 미국 유학을 떠났다. 그러나 내가 가장 가치 있고 내 것을 나누기에는 둥지를 옮기는 게 아니라는 판단이 들었다. 외부를 향한 욕망을 접고 기쁜 마음으로 돌아왔다. 그때 마침 헤이리에 문화예술마을을 만든다는 소식을 들었다. 내가 사랑하는 예술과 공동체가 공존하는 곳이어서 망설임이 없이 발기인으로 동참했다.
모티프원에 관해, 무엇을 위한 공간인가?
그동안 남의 삶을 관찰하며 만나러 다녔는데, 헤이리에 정착하면서 내가 갈 수 없으니 나를 만나러 오게 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정식 명칭은 모티프 넘버 원이다. 예술가라면 주제나 소재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영감은 예술가로서 한발 더 내딛게 만든다. 이곳에 오는 모든 예술가들이 최고의 작품을 구상하고 완성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겼다. 또 직업이 예술가가 아니어도 누구나 자신의 삶을 가장 가치 있고 조화롭게 엮어가려 한다는 점에서 우리 모두가 예술가이다. 모티프원은 어떻게 살고 왜 사는지 삶의 동기를 얻어가는 곳이다. 이러한 목적과 기능성에 충실하게 모든 공간이 설계되었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 모티프원만의 특별한 무엇이 있는 것 같다.
지금껏 여행하고 사진을 찍고 글을 쓰는 모든 것이 삶의 문제를 고민하는 한 양태였다. 모든 것이 우리가 어떤 존재였고, 추구해야 할 가치, 사람과 사람 그리고 사람과 자연의 관계 맺음과 조화에서 못 벗어난다. 타인과의 대면은 서로 다른 문화, 성장환경, 가치가 소통하는 것으로 이 차이가 발전의 에너지를 만든다. 가령 물의 발전을 위해서는 에너지가 필요하고, 물의 낙차가 곧 에너지를 만든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다. 타인과 대화하면서의 가치의 차이가 미세한 에너지를 만들고, 그 에너지가 서로의 발전의 동인이 된다. 즉 개인의 성장은 대면을 통해 이뤄지고, 만남은 성장의 에너지를 만든다. 지금까지 1만6천여명 정도가 모티프원을 다녀갔고, 이중 20~30퍼센트가 60여개 나라에서 온 외국인이다. 전업 예술가는 10퍼센트 정도 된다. 돌파구가 필요하거나 해답을 구하는 이들은 이곳에서 자연스럽게 자신을 드러낸다. 조언을 하는 입장에서도 관점과 지평이 넓어진다. 사람관계에서 일방적인 스승이란 없다.
헤이리에서의 사진작업은 어떤가?
더 자유로워졌으면서 덜 자유롭다. 조직에서 벗어났으니 자유롭지만 다른 굴레가 기다린다. 헤이리에서 작가로 산다는 건 굴레이다. 하지만 벗고 싶지 않은 굴레이다. 주변 작가들의 선동과 채찍이 항상 깨어있게 한다. 나의 화두는 자연과 사람이다. 자연과 사람, 사람과 사람이 어떻게 관계 맺는지가 늘 흥밋거리다. 더 큰 자유와 구속 속에 살지만 헤이리에 들어와 이곳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새로운 작업이 즐겁고 소중해진 이유다. 헤이리는 앞으로 10년은 더 두고 완성되어갈 곳이다. 뜻을 같이 했던 370여명의 발기인 중 절반만 집을 지어 들어왔다. 연령과 성장배경이 모두 다른 사람들이 공동체로 모여 이웃이 되고 시간을 공유하고 추억을 쌓아가는 과정은 마치 인류 초기의 부족사회의 태동을 보는 듯하다. 공유하는 이상은 같아도 때로는 부딪히고 싸우고 화해하며 공동체가 만들어진다. 이러한 변화는 그때그때 기록해놓지 않으면 조금만 시간이 흘러도 무디어진다. 이웃뿐만 아니라 이곳의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새 한 마리까지 늘 소중하다.
헤이리는 어떻게 구성되고 움직이는가?
두 종류의 사람이 산다. 하나는 창작자이고 다른 하나는 예술문화 경영인들 즉, 창작자와 대중 사이를 연결하는 갤러리, 아트샵을 운영하는 사람들이다. 대략 반반 정도 되는데 명확히 구분되지는 않는다. 창작자가 자신의 여유공간에 갤러리를 운영하는가 하면, 갤러리스트들 중에는 개인작업을 병행하는 이들도 있기 때문이다.
전체 16만평 부지에 구분선은 없지만 기능에 따라 7개 마을로 나뉜다. 가장 남쪽에 위치한 2개 마을은 창작과 거주를 위한 전용공간으로, 헤이리의 9개 출입구 어디와도 직접 연결되지 않아 쾌적한 환경을 유지한다. 용적률도 제한해 2층 이상 건축할 수 없다. 가장 북쪽은 쇼핑 공간으로 이른바 공예점, 잡화점, 광장 등이 있어 관광객이 가장 많이 몰리는 곳이다. 거주와 쇼핑 공간의 가운데가 문화예술 비즈니스가 가능한 곳이다. 잘 알려진 미술관과 박물관, 소극장, 아트샵 등이 이곳에 있고, 3층까지 건축이 가능하다. 각 공간은 모두 사유재산이지만 공동체가 동의한 규약을 지켜야 한다. 가령 급격한 상업화를 막기 위해 반드시 60퍼센트는 문화공간으로 할애해야 하고 카페나 레스토랑 등 식음료 공간은 40퍼센트로 제한해 비지니스 지역이지만 문화예술 비즈니스가 주가 되게 하고 있다. 또 개성을 살린 작은 공간들을 위해 도심 어디든 있는 프랜차이즈점은 아예 들어올 수가 없다.
공동체의 규약이 흔들린 적은 없는가?
여전히 바람 앞의 촛불 같다. 헤이리는 정부나 지자체가 주도해 만든 곳도, 돈 많은 개인이 땅을 내놓아 만든 곳도 아니다. 뜻을 같이하는 수많은 개인들이 모여 단시간에 이처럼 모던한 공간을 만든 사례는 전세계에서 유일하다. 반면 내부의 규제나 규약은 법적인 구속력이 없어 절대 다수의 동의와 지지가 없으면 공동체가 유지되기 어렵다. 이곳에도 성공과 실패가 존재한다. 갤러리를 운영하면 작품이 팔려야 하는데, 아직 헤이리는 컬렉터들이 활발히 찾는 곳이 아니다. 또 식음료 공간을 운영한다지만 주말에만 손님이 있지 주중에는 거의 비었다. 반면 냉난방비 등 건물관리나 유지에는 훨씬 더 많은 비용이 들어간다. 이런 상황에서 전 재산을 투자해 들어온 주민의 경우 이곳에서 자급자족이 안되면 문제가 생긴다. 자신이 죽을 지경인데 온전하게 규약이 유지되겠는가. 자율적으로 지키지 않으면 방어하기 힘든 구조다. 현재로선 서로가 응원하고 다잡는 수밖에 없다. 이처럼 헤이리에는 예술만 있는 게 아니라 절박한 삶의 문제도 존재한다.
헤이리의 미래, 대안은 무엇일까?
10여년 전에 만들어진 건축 규약 중 까다롭고 시대에 안 맞는 게 있다면 당연히 바뀌어야 한다. 단 문화예술 공동체와 예술가촌으로서 헤이리의 정체성을 잃을 정도로 상업적으로 경도돼서는 안된다. 중요한 건 창작이 더욱 활발해지고, 각 공간이 독창적이고 새로운 문화 콘텐츠를 개발하는 것이다. 고여 있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문화적인 것들을 발현해서 대중과 나누고 삶을 지탱할 수 있는 근간이 마련되어야 한다. 그리고 정체성을 드러내는 행사도 중요하다. 매년 봄이면 열리는 아트페스티벌처럼 헤이리의 정체성과 문화를 알리고 공유하는 행사들이 꾸준히 열려야 한다. 점차 지자체들까지 헤이리의 문화현상에 주목하고 있는 등 ‘세계 속의 헤이리’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믿는다.
10년 후 헤이리와 나
여전히 헤이리의 개비름과 바랭이 그리고 자작나무 잎의 바람 맞는 모습에 시선을 뺏기고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누군가의 말에 귀기울이고 있을 것입니다. 제 오른쪽 어깨에는 좀더 낡은 카메라가 걸려 있겠지요. 지금보다 더 깊어진 사랑의 시선이며, 더 넓어진 귀를 가진 모습일 수 있기를 희원할 뿐입니다. 그러나 카메라는 결코 저의 변덕스러운 마음을 숨겨주질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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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가로서 이안수는 관계와 삶의 원천을 탐구하는 사진작업을 해오고 있다. 물성을 통해 사람 본성을 탐구한 여러 작업과 함께 생명의 기원을 실핏줄처럼 연결된 나뭇가지에서 찾는 ‘강(江)’, 죽음을 통해 삶을 관찰하고 원천을 엿보는 ‘The Relief’ 등이 있다. <2011 헤이리 한일교류전>(2011, 헤이리 북하우스갤러리),
<상상공간-dmz 600리>
(2010, 수원미술관),
<우리시대의 리얼리즘전 ‘삶 | 쌈’>
(2010, 헤이리 마음등불),
<포토코리아 슈팅 이미지전>
(2009, 서울 코엑스 장보고홀),
<티베트의 길 위에서 평화를 연다>
(2008, 인사동 평화공간 스페이스 피스),
<파주현대작가전>
(2006, 헤이리 커뮤니티하우스) 등 여러 단체전에 참가해 꾸준히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파주현대작가전>
티베트의>
포토코리아>
우리시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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