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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언제나 어둠은 빛을 기다린다

2012-12-26


누구나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 싶어한다. 그 욕구는 다양한 방식으로 표출된다. 그 중 가장 쉽고도 친숙한 것이 사진이 아닐까 싶다. 과거 장시간 노출이 필요하던 거대한 카메라의 시기를 지나 최근에는 많은 사람들이 전문가용 카메라를 소유하고 있을 만큼 사진이란 장르는 우리와 친근해졌다. 사진이 단순한 일상을 담거나 지극히 사실적인 어떤 한 순간만 담긴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을 때는 의심 없이 그 장면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 많은 이야기들을 한 장면으로 받아들이고 인정한다는 것은 무언가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이미지는 얼마든지 조작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기술의 발달은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마음만 먹으면 감쪽같이 조작을 할 수 있게 했다. 그것은 우리가 보는 것이 100% 사실이 아닐 수 도 있다는 비판적인 시선을 싹 틔웠다. 순수함이 결코 미덕이 될 수 없는 안타까운 세상이 되어가고 있지만 그래도 어딘가에 있을 무언가를 꿈꾸는 소녀처럼 희망을 놓고 싶지는 않다.

사진은 빛으로 그리는 그림이라고 했던가? 여기 빛의 흔적을 흑과 백으로 담백하게 담아내는 사진이 있다. 흑백사진에 담겨진 이야기는 한편의 ‘시’처럼 서정적인 감성을 자극한다.

에디터 | 김윤 객원기자(cosmosstar00@naver.com)


시처럼 읽히는 사진을 찍고, 사진을 떠올리게 만드는 시를 짓는 작가

마리오 쟈코멜리의 사진은 잠시 있고 있던 순수했던 감정을 자극한다. 흑과 백 그리고 시인의 작품에서 인용해온 제목들은 화려하진 않지만 곰곰이 곱씹어 볼 수 있는 시간을 선물한다.

이탈리아의 작은 마을 세니갈리아(Senigallia)에서 태어난 쟈코멜리는 아홉 살에 갑작스럽게 아버지를 떠나 보내면서 겪게 된 죽음과 이별의 상처를 알게 되었고, 그 기억은 평생토록 그의 작업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인쇄소의 식자공으로 일하면서 그림 그리기와 시 쓰기를 즐기는 소년이었던 쟈코멜리는 가난은 생의 고통과 무게를 가르쳐준 축복이라고 표현하였다.


그 어떤 것도 우연히 일어나지 않는다. 어둠도 밝음도……

가난한 환경 때문에 정식 사진교육을 받지는 못했던 쟈코멜리는 28세가 되어서야 자기 자신을 위한 카메라를 구입하며 사진작업을 시작한다. 다소 불우했던 환경은 오히려 그에게는 독특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갖게 하는 기회를 주었다.

"그 어떤 장면도 우연히 만들어 지지 않는다. 빛도, 어둠도, 언제나 어둠은 빛을 기다린다."

작품철학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그의 말이다. 어두운 곳에 있더라도 빛을 기다리면 언젠가 그 빛을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그의 사진을 보는 이들이 느끼길 바란다.


쟈코멜리는 어머니가 근무하던 요양병원에서 찍은 사진들을 가장 좋아했다. 요양원이라는 장소가 주는 무거운 이미지들이 작품의 영감의 원천이 되었던 것이다. 죽음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을 보았고 가난하지만 이겨 내며 그래도 살아야 하는 생의 부조리함과 외로움, 그리고 절망을 느꼈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것에서 오는 우울에 갇히지 않고 이겨냈다. 아마도 사진을 찍으며 위로를 받지 않았을까.

이탈리아의 유명한 시인 체자레 파베제 (Cesare Pavese, 1908∼1950)의 시에서 빌어온 ‘죽음이 찾아와 너의 눈을 앗아가리라’라는 제목의 작품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찾아오는 생의 마지막 순간을 진솔한 표현으로 완성시켰다. 무겁게 다가온 죽음의 순간이 마치 깊이 잠든 어머니의 모습처럼 보인다.


춤추는 사제들을 다룬 그의 대표작 ‘나에게는 얼굴을 쓰다듬을 손이 없다’ 또한 시인이자 수필가이기도 했던 다비드 마리아 투롤도(David Maria Turoldo, 1916∼1992) 신부의 시집에서 따온 제목이다. 사제들의 모습을 조형성이 돋보이는 구도로 역동성을 느끼게 함으로써 흑과 백 이주는 강렬한 명함대비로 인해서 자칫 무겁고 답답해 보일 수 있는 삶의 장면을 한 편의 시처럼 쉽고도 어렵고, 어렵지만 가볍게 보아도 무방한 자유를 주고 있다. 이러한 자유가 흔적으로 남아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검은색 전통 의상을 입고 살아가는 이탈리아의 작은 마을 스카노의 사람들을 보여준 연작은 당시 뉴욕 현대미술관의 사진부장 존 사코우스키가 모든 연작을 소장했을 만큼 많은 관심을 보인 일화로도 유명하다.


노년에는 기존의 작업들을 합성함으로써 새로운 연작을 만드는 일에도 몰두했으며, 연출 기법을 시도 하였다.

그가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해까지 붙들고 있던 ‘이 기억을 이야기하고 싶다’라는 제목의 작품에서 어린 시절 돌아가신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마치 아버지 곁으로 돌아가려는 듯 아버지를 상징하는 가면을 옆에 두고서 모자를 들어 인사를 하고 있다.

작가의 배경을 모르고 사진만 접했을 때는 피사체를 찾아 방황하는 작가인 줄 알았다. 개인적인 취향이겠지만 흑백이 주는 단단한 이미지는 막연한 멋있음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수없이 만들어지는 이미지의 홍수 속에서 멋있어 보이기 위해 치장하고 자신이 아닌 다른 모습을 만들어내는 작가들 속에서 진짜 자기 이야기를 하는 작가들이 얼마나 될까 궁금해졌다. 게다가 진솔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서 인정받을 수 있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전시는 오는 2013. 2. 24(토)까지 한미사진미술관에서 볼 수 있다.


참고자료
한미사진미술관 www.photomuseum.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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