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1-03
“산에 가자.”, “산에는 뭐하려요?”, “별일은 아니고 그냥 네 사진이나 찍으려고.” 아들은 아흔을 훌쩍 넘긴 아버지를 따라 선산인 뒷산에 올랐다. 아버지는 걸음을 멈추고 지팡이로 ‘툭툭’ 무엇인가를 가리켰다. 고개를 돌린 아들에겐 작은 돌무덤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누군가 표시라도 한듯 주먹 크기의 돌을 하나하나 쌓아놓았다. 간간이 이끼가 낀 돌무덤은 제법 오랜 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 같았다. “여기에 나를 묻어라.” 한없이 낯설고 생경한 목소리로 들렸다. “무덤의 방향은 저 앞산이다. 여기에 나를 묻고 저기에 네 어미를 묻어라.” 이내 아들은 돌무덤을 쌓은 누군가가 바로 아버지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거동이 불편한 아버지는 언제부터 뒷산에 올라 홀로 돌무덤을 쌓았던 것일까? 아버지에게 죽음이 가까워진 것일까? 아들의 손에 들려있던 카메라가 처음으로 아버지를 향하기 시작한 것은 바로 그 즈음이었다. 뒷산에 오르려 아버지가 지팡이를 챙길 때마다 아들은 조용히 카메라를 챙겨 아버지의 뒤를 밟았다.
서울 통의동의 류가헌에서 열린 최원락(47)의 사진전 '있다가 없는'에서는 아버지와 아들의 작은 이별의식을 엿볼 수 있다. 고향집 마당에서 뒷산까지의 짧은 여정은 아버지와 아들에게 다가올 기나긴 이별의 예행연습이자 아쉬운 이별여행이었다. 아버지는 지팡이로 돌무덤을 ‘툭툭’거리며 “아들아, 이제 나는 간다”는 말씀을 대신했고, 아들은 마지막 유언을 받아 적듯 아버지의 모습을 카메라에 차곡차곡 담기 시작했다. 그리고 생존 당시 묵묵히 죽음을 준비하던 아버지의 모습부터 지난 해 2월에 치른 장례식의 광경, 이후 아버지의 부재까지 아버지를 떠나보내는 일련의 과정이 충실히 사진으로 남겨졌다.
글│박지수 기자
기사 제공│월간 사진
떠나는 자의 지팡이도 보내는 자의 카메라도 모두 죽음을 직시하고 있다. 특히 아들이자 현직 내과의사로서 아버지의 죽음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에는 복잡한 심정과 함께 애잔함이 묻어난다. 그리고 수많은 타인에게 죽음을 선고하고 사망진단서를 적어주었던 작가가 아버지를 통해 죽음의 문제를 원점에서 다시 바라보고 사유하는 과정을 읽을 수 있다. “그 뒷산에서 아버지의 자리가 언젠가 나의 자리일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의 죽음 뒤에 다가올 나의 죽음이 렌즈를 통해 보이기 시작하였다. 나는 언제까지 살까. 나는 어떤 모습으로 죽게 될까.”
과감한 프레이밍과 부분 묘사를 통해 내밀한 분위기를 환기하는 은유적인 어법은 아버지의 모습을 기록하는 것을 넘어 사진으로 표현하기 힘든 죽음의 문제에 닿으려는 것처럼 보인다. 사진가 홍순태는 “인간의 죽음, 고독, 손실과 같은 보편적인 형이상학적 관념에 대해 깊은 배려가 응축되어 사진의 표현능력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노력이 역력히 드러났다”고 평가했다.
오랜 시간동안 아버지의 모습을 기록했다. 사진을 찍어야겠다고 결심한 계기는?
처음부터 작업으로 진행할 의도는 전혀 없었다. 다만 아버지가 쌓은 돌무덤을 보고 마음이 짠했고, 나도 모르게 ‘사진을 찍어야겠다, 꼭 기록으로 남겨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틈틈이 찍기 시작한 것이 5~6년 전이다. 흑백필름으로 작업해왔지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아 디지털카메라를 사용했다. 현상과 인화과정에 시간을 들이기보다는 아버지를 기록하는 촬영시간에 더 비중을 두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거동이 불편해서 주로 집 근처와 뒷산 주위에서 촬영했는데, 나중에는 하반신 마비가 와서 방 안에만 머물렀다. 목욕을 하거나 이발을 하는 등 지극히 일상적인 장면을 촬영했지만 아버지를 따라다니면서 죽음이 점점 가까이 다가온다는 것을 절감했다. 그러면서 죽음이 다가오는 과정을 하나하나 담아보자는 생각에 이르렀다.
아버지가 어떤 분이셨는지 궁금하다.
한학자인 아버지는 언제나 한복을 정갈하게 차려입은 지금 시대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옛날 사람이었다. 늘 바르고 옳은 일을 중시하는 유교적 관념이 강해서 사업을 통해 이윤을 남기는 것마저도 이해하지 못했다. 어렸을 때에는 한문과 예법 등 시대와 맞지 않는 공부를 강요해서 반항하기도 했고, 성인이 되었을 때는 진로문제로 갈등이 있었다. 집안의 모든 경제력과 결정권을 지닌 아버지는 언제나 거역하기 힘든 막강한 존재였다. 그런 아버지가 돌무덤 앞에서 ‘여기에 묻어라’라고 말할 때는 한없이 작고 왜소하게만 보였다.
의사로서 여러 죽음을 목격했을 것 같다. 아버지의 죽음과 어떤 감정의 거리가 있었는가?
아무래도 직업상 죽음을 사무적으로 대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예전에 종합병원에서 근무할 때는 출근하자마자 밤사이에 죽은 환자의 사망진단서를 작성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그리고 환자의 사체검안 요청이 들어오면 주민증의 사진과 사체의 얼굴을 확인하는 절차도 수없이 겪었다. 죽음이 언제나 가까이 있었지만 나와는 거리가 먼 막연한 것이었다. 하지만 막상 아버지가 죽는다는 사실이 현실로 다가오자 먼저 가슴이 덜컹했다. 비교적 건강했던 아버지이기에 마냥 건강할 것이라고 방심했던 것이다. 의사로서 지켜본 사람이 죽는 과정은 오래된 초가집이 무너지는 것과 닮았다. 하나를 고치면 다른 곳이 무너지고, 또 다른 곳을 고치면 다른 쪽이 무너지는 형국이다. 결코 돌이킬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죽어가면서도 한 고비만 넘기면 ‘살 수 있다’는 희망을 마지막까지 놓지 않는 것이 사람이다. 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의사이자 아들로서 그 과정을 바라보는 것이 무척 안타깝고 고통스러웠다. 비록 의사이지만 아버지가 죽음의 문턱에 이르렀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자식으로서 곁에 있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돌아가신 직후에 카메라를 드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에 지인들에게 문자 메시지로 소식을 알렸다. 고은사진아카데미에서 나를 지도했던 최광호 사진가는 아버지의 시신을 사진으로 꼭 찍어두라는 답장을 보내왔다. 처음에는 차마 찍을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결국엔 카메라를 들었다. 나중에 후회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제와 생각하면 그 문자 한통 덕분에 죽음을 다루는 이번 작업이 온전히 마무리될 수 있었던 것 같다.
사진을 찍으면서 자신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는가?
이제 진찰 받으러 온 어르신들이 ‘아프다’고 말하면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라 신경이 많이 쓰인다. 예전에는 어르신들이 ‘빨리 죽어야지’라고 말하면 거짓말로 여겼는데, 아버지를 바라보며 그 말의 속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차라리 죽는 것이 더 나을 만큼 죽음의 과정이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항상 한복을 차려입고 꼿꼿했던 아버지가 거동이 불편해져 누워 지내면서 부쩍 불안한 모습을 자주 비췄다. 가족들에게 자신의 곁에 있어달라고 부탁하는 모습을 보면서 마지막 순간까지 불안에 떨기보다 빨리 지나가기를 바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 모두에게 고통스러운 순간이었다.
기록적인 성향이 강했던 전작 ‘아버지의 자리’에 비해 은유적인 분위기가 강해졌다.
처음에는 기록으로 남겨야겠다는 마음이 강하다보니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방식을 택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간접적이거나 우회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은유적인 어법이 관객에게 스스로 생각할 여지를 준다고 생각했고, 죽음이라는 문제를 다루는 데도 어울리는 것 같았다. 뒤늦게 사진을 하면서 나름대로 강의를 찾아 듣고 책도 많이 보면서 사진의 주제나 표현방법에 대해 많이 고민하는 편이다. 한컷 한컷 찍는 것은 재밌지만 어떻게 하나의 이야기로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다큐멘터리 제작과 시나리오 작성을 배우기도 했고, 때로는 젊은 작가의 연출사진을 참고해 따라하면서 보다 효과적인 표현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해왔다.
이번 작업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가?
사진의 가치는 내게 가장 가까운 존재를 찍을 때 그리고 그 존재가 부재할 때 가장 빛나는 것 같다. 만약 사진을 찍지 않았다면 이렇게까지 아버지를 자주 만나게 됐을까? 물론 아버지를 뵙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었지만 때로는 사진을 찍기 위해 아버지를 더 자주 찾게 되었다. 그리고 작업이 진행되면서 여러 책을 뒤져보며 나름대로 죽음의 문제에 관해 답을 찾고자 했다. 결국 답은 존재하지 않았지만 그나마 분명한 사실은 누구에게나 죽음은 피해갈 수 없고 인생에 단 한번뿐이라는 것 그리고 마지막에는 누구나 살고 싶어 한다는 것 정도일 뿐이다. 아버지도 마지막까지 살기를 원했고 가족들이 손을 잡아주는 것을 무척 좋아했다. 죽음에 가까워질수록 살아있다는 것을 육체적인 접촉으로 확인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의사로서 바라본 환자들의 죽음이나 아들로서 바라본 아버지의 죽음이나 사람이 죽어가는 과정은 거의 비슷하다. 단지 자신의 가족이나 주변사람의 죽음에는 관심을 가지지만 타인의 죽음에는 무관심하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대부분 자신이 죽는다는 생각을 잘 하지 않고 살아가는데, 한번쯤 죽음을 현실적으로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