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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고릴라를 보셨나요?

2013-03-14


독일 월드컵이 한창이던 시절, 몇장의 사진들이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다. 게슴츠레 반쯤 감긴 눈, 잔뜩 일그러진 미간으로 보기 민망한 국가대표 축구선수들의 ‘굴욕사진’은 온라인을 통해 삽시간에 퍼졌다. 굴욕사진의 촬영자는 연합뉴스의 한상균(40) 사진기자. ‘신선하다, 재밌다’는 열띤 환호와 ‘사진기자가 이래도 돼?’라는 원성을 동시에 사며 수많은 댓글들이 이어졌다.

글│박지수 기자
기사 제공│월간사진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조금은 색다른 보도사진이 대중에게 어필하면서 ‘안티기자’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조금은 엉뚱하지만 기발함과 재치가 담긴 보도사진으로 사진기자 중에서는 드물게 팬심을 확보하고 있는 한상균기자가 지난달 처음으로 포토에세이 ‘고릴라를 쏘다’(마로니에북스 펴냄)를 내놓았다.

책에는 지난 10여년간 사진기자로 생활하면서 쌓아두었던 한상균표 재기발랄한 사진과 함께 그와 관련된 재밌는 에피소드가 유쾌한 필체로 소개된다. 또한 사진기자로서 고민하는 보도사진의 딜레마와 좋은 사진에 대한 생각이 진지하게 펼쳐진다. 제목부터 잔뜩 궁금증을 일으키는 책의 첫장을 한기자와 함께 넘겨본다.

안티기자라는 별명을 즐기는 것 같다.
별명과 함께 사는 동안 들어야 할 욕도 다 먹었다.(웃음) 2006년 독일 월드컵 기간동안 하루 평균 미니홈피의 방문객이 1만명이 넘을 정도로 관심을 받았다. 차츰 나와 가족들이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찍은 기념사진들도 알려지면서 ‘이 사람은 자기에게도 안티’라는 반응이 생기면서 비난이 줄어들더라. 네티즌들이 붙여준 별명이지만 그 출발에는 왜 찡그린 표정의 사진은 사용되지 않는지 사진기자로서 품은 의문과 연결된다. 축구선수들이 헤딩하면 표정이 일그러지고 눈을 감는 것이 자연스러운 모습이지만 신문에는 그런 사진이 실리지 않는 것을 보면서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한정된 지면에 맞는 모범적인 사진만 싣던 신문사를 떠나 좀더 자유롭게 찍을 수 있는 통신사로 옮기면서 평범한 사진과 함께 내가 원하는 사진을 회사에 전송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한 네티즌이 축구선수 이동국의 굴욕사진들만 모아서 인터넷에 올리면서 화제가 된 것이다.

책 제목 ‘고릴라를 쏘다’에는 어떤 의미가 담겼나?
‘보이지 않는 고릴라’라는 책을 읽다가 힌트를 얻었다. 책에는 미국 하버드대학의 심리학과 교수가 실험한 내용이 나온다. 실험에서는 흰색과 검은색 옷을 입은 사람이 뒤섞여서 농구공을 주고받는 영상을 보여주면서 흰옷을 입은 사람이 패스한 횟수를 세라고 주문한다. 그리고 영상이 끝나고 패스의 횟수를 말하는 피실험자에게 화면에서 고릴라를 보았는지 물어본다. 영상 중간에 고릴라 복장을 한 사람이 가슴을 치고 사라지지만 절반 이상이 고릴라를 보지 못했다고 대답한다. 이 부분에서 사진과 일맥상통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취재를 나가면 현장에서 중요한 순간을 보지 못하거나 똑같은 현장에서도 사진기자들이 목격하는 것이 조금씩 다르다. 결국 좋은 사진이란 자신만의 고릴라를 찾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사진가는 지금 이 순간을 그대로 복사하는 것이 아니라 남들이 잘 보지 못하는 고릴라를 담아내는 사람이 아닐까? 이러한 맥락에서 사진기자로서 카메라를 통해 고릴라를 쏘기 위해 노력한다는 의미다.

책에서는 사진놀이를 많이 언급한다. 재밌는 사진이 좋은 사진이라고 생각하나?
노출이 좋고 포커스가 쨍한 사진만 좋은 사진일까? 기술적으로 잘 찍은 사진이 반드시 좋은 사진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똑같이 그린 초상화보다 인물의 특징을 잘 잡아내는 캐리커처가 더 효과적일 때가 있는 것처럼 잘 찍은 사진이 반드시 좋은 사진의 개념과 항상 일치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10년 넘게 사진기자를 했지만 아직까지 무엇이 좋은 사진이라고 콕 집어 말하지 못하겠다. 애초에 정답이 없는 것이 아닐까? 다만 내가 지향하는 것은 사진놀이처럼 재밌는 사진이다. 여기서 재미는 웃긴 것만이 아니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부분을 찾아내고, 나만의 시각을 표현하는 것이 진정한 사진놀이라고 생각한다.

나만의 시각을 담는 것과 일로서 사진기자에게 요구되는 것 사이에는 갈등도 있을 것 같다.
사진 한장으로 현장을 담아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나도 모르게 자극적인 사진을 쫒게 된다. 그런 사진이 과연 현장을 정확하게 담아내는 것일까? 사진은 프레임 바깥에 제외된 부분은 보여주지 않는다. 슬픈 사건이 벌어진 현장에 가면 ‘아니 쟤는 왜 안 울어?’라면서 그 사람을 프레임 밖으로 제외시킨다. 스스로도 팩트를 전달하는 보도사진으로서 무언가 잘못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실천으로 옮기기는 어렵다. 있는 그대로 현장을 전달하기보다는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사진이 우선되기 때문이다. 의성어로 치면 ‘팍, 퍽, 윽, 콱’ 하는 사진들이 신문의 일면을 장식하는 것이다. 한번은 이산가족이 상봉하는 현장을 취재했는데, 어떤 할아버지를 정면에서 평범하게 찍었다. 눈가에 눈물이 살짝 고인 할아버지의 모습에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고, 남쪽인지 북쪽인지 구분되지 않는 겉모습에서 남북이산가족의 상징성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버스 창문을 사이에 두고 남쪽과 북쪽의 사람들이 서로 손을 뻗고 오열하는 모습의 사진에 밀려 실리지 못했다. 이처럼 격정적인 사진이 큰 감동을 준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는 감동적인 것이 아니라 감정적인 것이 아닐까 싶다. 때로 잔잔한 사진이 더 큰 감동을 줄 수 있지만 신문에서는 그런 사진을 볼 수 없어 안타깝다.

사진기자로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사진기자라면 사진촬영이 아니라 사진취재를 해야 한다. 예를 들어 A병원에 불이 났다고 하자. 기사를 쓰려면 화재의 원인은 무엇이고, 발화점은 어디인지 그리고 소방안전에 미흡한 점은 없었는지, 피해자 중에서 소개될 만한 사연은 없는지 알아봐야 한다. 사진을 찍는 것도 마찬가지다. 보이는 대로 촬영하는 것이 아니라 수집한 정보를 바탕으로 화재 사건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위치와 앵글을 고민해야 한다. 이것은 기술이 아니라 마인드와 연관된 문제라고 본다.

사진기자로서 꿈이 있다면?
사진기자라면 누구나 특종을 꿈꾼다. 하지만 특종은 많은 경우 우연이 좌우하기 때문에 우연의 확률을 줄여가는 과정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현장에서 사진기자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촬영하면 기본적인 결과물은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이곳을 포기하고 아무도 없는 곳을 선택한다면 대박을 건지거나 망하거나 둘 중 하나다.(웃음) 처음에는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지만 연차가 쌓이다보니 어느 쪽에 베팅을 할지 고민이 생긴다. 여유무취(餘裕無臭), 고수는 땀을 흘리지 않는다고 하는데 그런 경지까지는 아직 멀었지만 현장에서 동분서주하며 땀만 뻘뻘 흘리던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이제 현장에서 여유롭게 여러 가지 변수를 계산할 수 있지만 점점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웃음) 어느덧 체력적인 부분을 무시할 수 없는 나이가 돼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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