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3-15
상업사진과 예술사진의 경계를 넘나들며 척박한 현실의 한국 사진 계에 뿌리를 박은 남자. 이마부터 턱까지 이어진 고운 주름선이 지나온 세월을 느끼게 한다. 곱슬곱슬한 흰머리가 희끗희끗, 한 눈에 보기에도 그가 오늘의 주인공이다. 바로 박경배 작가이다. 사진밖에 모른다며 수줍게 잡아빼던 그 남자의 이야기를 시작해 본다.
신기하게도 겨울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날이었다. 안개까지 자욱해서 마치 새벽의 영국 런던 거리를 걸어 다니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한국 사진의 메카라 불려진 그 곳. 충무로 한 켠에서 그와 마주했다. 어제 늦은 밤까지 안면도의 촬영을 다녀왔다고 엄살을 부린다. 안면도에는 여러 촬영 포인트가 있다며 얘기에 열중하기 시작하는 남자. 자신만의 촬영포인트를 만드는 것은 사진가의 자산이란다. 사진 이야기가 나올 때면 그의 눈에 광채가 돈다. 영락없는 사진가의 모습이다.
자신만의 사진을 촬영해오던 그가 생계를 위해 골프사진을 시작할 때만 해도 국내에는 골프 사진가들이 많은 줄 알았다. 그리고 그가 골프 사진을 촬영하며 주위를 둘러보았을 때 그는 국내의 사진 작업의 범위가 여전히 비좁다는 것을 깨달았다. 국내 패션, 음식, 건축 등의 분야에 전문 사진가는 모두 있는데 유독 골프와 관련한 사진작업들은 많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본격적으로 사진의 범위를 넓히기 위해 공간을 마련하고 생계를 위한 사진과 자신만의 사진을 공존시키며 사진작업을 해왔다. 순수사진과 광고사진은 적어도 그에게 별개가 아니다.
양립하는 사진 작업의 공존이야 말로 그 누구도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사진 작업이 아니던가. 그 것은 별개로 놓고 볼 것이 아닌 작금의 현실 속의 사진가의 솔직한 삶이다. 단순히 말하자면 예술사진만 촬영해서 먹고 살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본격적으로 사진 계에 뛰어 들어 상업사진과 예술사진을 병행하던 그에게 작은 사건이 있었다. 그가 촬영한 예술 사진을 가만히 보고 있던 절친한 작가가 건넨 단 한마디였다. 그의 예술사진 속에서 돈 냄새가 난다는 것이었다. 이 일을 계기로 그는 많은 고민을 해야 했다. 고민 중 생각 외로 해답은 명쾌하게 나왔다. 그가 제주에 간 일이 있었다. 제주의 오름들을 단체로 촬영할 기회가 있었는데 다른 이들은 경치에 감탄하며 촬영하고 있을 때에도 유독 그만큼은 한 장도 촬영하지 않았다.
그렇게 2주가 흘러갈 무렵, 모두가 촬영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그의 눈에 아주 소담스런 작은 오름 하나가 보였다. 한 장을 촬영해 보았는데, 평소에 촬영하던 그 느낌과는 사뭇 달랐다. 그렇다. 사진은 꼭 예술로 만들기 위해 촬영해야 하는 것이 아니었다. 적어도 자기 자신의 사진만큼은 자신의 눈에 비친 그대로 담아야 하는 것이었다. 그가 찾은 해답은 창작활동을 위한 사진은 셔터를 아낀다는 것이었다. 많은 이들이 풍경이 좋다고 찍어대는 그 순간에도 그는 자신만의 느낌이 오지 않으면 셔터를 누르지 않았다.
그가 이해를 못하는 사람들이 바로 이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다. 찍을게 너무 없다라고 불평하는 사람들 말이다. 그는 반면에 구상이 너무 많은데 쫓아가질 못할 정도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나이는 한살씩 늘어나서 늙어가는데 오히려 조바심이 들 정도. 그는 자신의 눈으로 확인한 느낌이 있는 장소들에 애착을 가지고 있다. 그는 자신만의 장소를 발견하면 밑그림을 머릿속에 그린다.
그 장소가 변화하는 것을 보면서 머릿속의 그림과 매칭이 되기를 기다린다. 때가 되면 찾아서 확인하고는 또 다시 기다린다. 그러기를 반복하기 벌써 10년째다. 사진은 창조력 아니면 인내력과의 싸움이다.
그는 곧 출범을 앞두고 있는 한국 기독사진가 협회 (KCPA)의 회장직을 수행하고 있다. 다른 종교에 비해 유독 기독사진가회의 활동이 뜸한 것을 안타까워하던 사람들이 모여 KCPA가 조직되었다. 그리고 사진가로 활동을 해오던 그가 초대 회장직을 맡았다. 협회는 물론 사이트도 제작 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많은 이들이 와서 사진을 포스팅하고 활동을 하고 사진에 대한 이야기들을 인터넷에서 나누고 있는 중이다. 남들이 얘기하는 것처럼 ‘특정 종교의 홍보보다는 차별 없이 사진으로 하나 될 수 있는 공간‘이며 더욱 많은 이들이 들어와 뜻을 같이하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이따금씩 인터넷 안에 특정종교에 대한 비방이 있음을 거론하자, 그가 생각한 KCPA 사이트는 ‘있어도 있는 줄 몰라 활동하지 못한 안타까워하는 이들’을 위한 것이라며 인터넷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무조건적인 배타의식과 타종교에 대한 비방 등은 익명성을 이용한 현재의 인터넷 문화의 단적인 폐해이며 고쳐져야 할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KCPA 활동을 하면서 그는 필름시절에 비해 초심자들의 셔터가 무척이나 가벼워졌음을 느꼈다. 필름을 쓸 경우는 먼저 사진 공부를 하고 촬영에 임하는 반면, 디지털카메라는 누르면 된다는 생각이 팽배해졌다는 것.
“KCPA 안에서 제가 제일 먼저 할 일은 사진교육이에요. 그리고 좀 더 발전하게 되면 사진 전시회나 사진 공모전을 하게 될 것입니다. 봉사할 수 있는 곳을 찾아서 가는 것도 KCPA의 중요 할일이 될 것입니다.”
그는 불혹을 넘은 나이에도 남들보다 빠르게 디지털로 전환을 시도하여 성공했다. 3년간 필름과 디지털을 병행하면서 직접 비교하면서 그가 느낀 점은 디지털이 경제적으로나 사진작업 면에서나 사진가를 위한 최적의 솔루션이라는 것. 그의 첫 디지털카메라는 Nikon의 D100이었다. D100은 필드카메라로도 유용했지만 그가 디지털로 전환하는데 사용되었다. ‘한번 사용한 카메라는 닳도록 쓴다’라는 것이 그의 평소 지론이지만 필름이 아닌 디지털에서만큼은 업그레이드가 대세였다.
아프가니스탄에 촬영을 가면서 수리를 맡긴 D100 대신 D2X를 구입했다. D2h도 염두에 둔 그였지만 화소수가 생각보다 적은 편이라서 고민 끝에 D2x를 골랐다. 골프 스윙을 촬영해도 D100에 비해 D2x는 연사로 더욱 많은 샷을 잡아 낼 수 있었다. 하루는 사진 한 장을 대형 인화를 하여 납품하려 준비하고 있는데 한 사진 전문가가 사진을 보더니 대뜸 얘기했다. “와우~ 역시 필름이 좋으니까 이런 사진이 나오지” 그러나 그가 촬영한 사진은 디지털카메라로 촬영한 사진이었다. 반대로 필름으로 촬영한 사진이 약간 이상하거나 수상하면 몇몇은 “디지털로 찍으니까 이상하지”라고 이야기 한다.
아직도 충무로에는 그러한 선입견이 존재한다. 자신있게 ‘디지털입니다’라고 이야기 하면 트집을 잡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그는 아예 무엇으로 촬영했는지 이야기 하지 않는다. 사실 필름 사진을 할 때는 사진을 찍으면서도 내 사진이라는 생각을 해 본적이 없었다. 어차피 50%는 현상인화소가 만드는 사진. 그러나 디지털 사진은 촬영부터 출력까지 모두 촬영자의 느낌과 생각이 들어간다. 어렵기도 무척이나 어렵고 까다롭고 변화도 많다. 그러나 고생만큼 낙이 있는 것이 디지털 포토이다.
그가 추구하는 사진이다. 전문 골프 사진가로 출발한 그 남자. 자신만의 사진을 개척해내며 마음먹은 하나의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그 프로젝트는 외롭고 꾸준히 지금까지 10년 동안 지속되었다. 그는 현재 자연 속에 숨겨진 신비로운 모습을 사진으로 담는 것에 그는 모든 열정을 쏟고 있다. 이 작업이 언제 끝날지는 그 누구도 모르는 일이다.
그가 촬영한 사진 속의 피사체들은 기다림의 끝이 어디인지 알 수 없다. “춥고 배고프더라도 전 제 자신이 좋은 사진을 찍을 겁니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은 한 사진가의 웃음 섞인 단호한 한마디가 계속해서 나의 귓가에 맴돈다.
글, 사진 함영민 (dc@digitalcatch.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