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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푸른 눈의 그 남자가 한국에서 사는 법

2006-05-08


우리나라의 첫 D-SLR이 나오던 날을 잊지 못한다. 샘플 촬영을 위해 종로 한복판에 나섰다가 덕분에 기분 좋은 친구를 만났기 때문이다. 푸른 눈의 잘 생긴 청년. 그 낯선 이방인은 나와 같은 편 횡단보도에 서서 신호를 기다리다가 이따금씩 빨간 불이 들어온 신호등과 내 손에 있는 삼성의 첫 D-SLR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내 눈에 들어온 것은 그의 손에 들려 있는 캐논의 D-SLR이었다.

동병상련이요. 이심전심이라고 했던가. 그 피부색이 다르고 언어가 틀려도 그 또한 영락없는 사진쟁이였다. 캐나다에서 인체공학자가 될 기회를 포기하고 서울에서 열심히 사진을 촬영하고 있는 그 남자를 만나보자.

글 ㅣ 함영민 (DC@digitalcatch.net)

랄프가 세계 여행을 처음 떠난 것은 2001년 8월이다. 그 해 6월 졸업을 하고 1-2년 정도 다른 나라에서 삶을 누려보고 싶다는 것이 그가 비행기를 잡아탄 간소한 이유였다. 어릴 적부터 그는 여러 나라의 문화에 관심이 많았다. 유럽, 미국, 캐나다, 바하마 등을 여행하다가 문득 아시아의 매력에 사로잡혔다. 2002년 월드컵을 보다가 TV속의 붉은 악마들의 응원은 축구광이었던 그의 마음 한구석을 뭉클하게 했다. 그 날의 응원함성은 랄프를 2002년 월드컵의 나라 대한민국으로 이끌었다. 그때도 단지 그의 계획은 1년이나 2년 영어강사로 한국에 머물며 새로운 경험을 하고 캐나다로 돌아가 대학원에서 다시 공부를 하는 것이었다.

한국 사람들이 옷을 잘 차려 입는다는 것을 아는가? 몇 년 전 랄프의 남동생이 한국을 방문했다. 동생과 공원에 갔다가 동생이 크게 놀란 적이 있었다. 공원에 있던 모든 한국 여성들이 얌전한 정장에 하이힐 차림이었기 때문, 캐나다 또는 미국의 공원에는 누워서 선탠 하는 젊은이. 양말을 벗고 앉아서 책을 읽는 아주 캐쥬얼 한 모습과는 대조적인 모습이었던 것이다. 공교롭게도 랄프가 처음 한국생활을 한 곳은 경남 진주였다.


아무래도 서울보다는 더욱 보수적인 색채가 남아 있는 것 같아 애를 먹었다. 처음 아내를 만나서 아내 집을 방문 했을 때, 그는 평소에 해본적 없는 한국식 예의란 것을 아내에게 배우고 행해야만 했다. 연예관계에 있어서도 더욱더 신중히 해야 할 것들은 많았다. 게다가 호칭은 아직도 그에게 가장 어려운 숙제이다. 집사람, 부인, 여보, 아내, 장인, 장모, 매형, 매부, 처제 등의 결혼하면서 생겨난 파생 단어들은 아직도 알쏭달쏭하다. 그가 살았던 캐나다에서 여자친구의 집을 방문 하는 건 격식 없는 (그의 표현을 빌린다면, 캐쥬얼한) 일일뿐이다.
그녀의 부모와의 대화에서도 호칭은 you로 아주 마음 편한 일이기에 한국에서의 격식과 예의에 대해 한참을 적응해야 했다. 반면에 거리에서 사람을 찍을 때는 한국이 더 호의적이다. 찍히는 동안 웃어주는 사람도 있고 그냥 찍게 배려해주는 사람들도 많다. 반면에 캐나다의 그가 살던 곳에선 카메라로 그네들의 사진을 한 장 찍으려면 난리가 난다. 심하게 피하고, 불편해한다. 아니 매우 불쾌해한다.

그와 아주 한국스런(?) 저녁을 먹다가 TV에 비치는 노래하는 채연을 보더니 그의 푸른 눈이 고정되었다. 한국에서 가장 예쁜 것은 이효리와 채연이라나. 마치 그가 한국문화를 좋아하고 이효리와 채연을 좋아하는 한국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가 한국에 와서 처음 접한 영화가 “엽기적인 그녀”였다. 전지현의 광팬이 되어 캐나다에 있는 가족에게도 추천을 했다. 처음 만난 아내의 모습도 랄프의 눈에는 전지현이었단다. 맙소사. 국내 영화는 한국의 문화를 잘 모르는 외국인들에게 큰 도움이 되나보다. 최근에 그가 본 “왕의 남자”는 외국인인 그가 한국의 오랜 역사와 전통을 느낄 수 있었고 “태극기 휘날리며“로 한국전쟁을 간접적으로 배웠단다.


그 중에서도 ”올드보이“는 DVD로 아버지께 선물로 드릴 정도로 그가 감명을 받은 영화이다. 그의 아내는 한국의 친구 집에서 파티 중 만났는데 아내는 그 친구의 학원생이었다. 첫 눈에 반한 랄프는 그 날 가벼운 굿나잇 포옹을 받아냈고 애프터도 받아냈다. 그 후, 국적을 불문한 뜨거운 열애로 결혼에 골인했다. 결혼이 몇 년이 지난 지금도 그의 아내는 그에게 전지현이다. 그의 아내는 그를 언제나 후원해주고 사랑해주며, 랄프 또한 그렇다고.

랄프의 아버지는 대학에서 과학을 가르쳤고, 어머니도 고등학교에서 과학을 가르쳤다. 그 것은 그가 자연스럽게 과학을 좋아하게 되는 이유가 되었다, 결국 인체공학을 전공하게 되었다. 인체공학은 우리인체에 대해서 배우는 학문으로. DNA나 세포가 어떻게 우리 몸에서 활동하며 역할하며, 우리가 어떻게 숨을 쉬며, 살아가는지 등을 다루는 학문이다. 그러나 랄프는 언제나 역사책을 더 가까이에 했고, 아버지는 그런 그를 야단쳤다. 후에 그의 아버지는 물론 그의 한국행을 반대했다.

여권을 뺏어 못 가게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러나 자식이기는 부모 누가 있으랴. 시간이 지나 한국에 가고 독립을 하고 아내와 함께 행복하게 오순도순 사는 모습을 보고나서야 그의 아버지는 그가 한국에서 사는 것에 만족한다고 한다. 만약 그가 다시 태어나 전공을 정하게 되면, 역사 아니면 포토저널리즘을 선택하고 싶단다. 그는 현재 강남의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얼마 전 그의 홈페이지에 아버지가 그의 사진을 보고 남긴 글은 랄프가 한국에서 생활하는데 큰 힘이 되었다.
www.pbase.com/koreanczyk 랄프의 홈페이지 주소
“It really is like painting with a camera. Very much as you liked to do with a pencil...when you were a kid. ”

랄프에게 서울은 아주 흥미로운 곳이다. 그는 직업상 비는 시간이 많은데 그 시간을 활용하기에 서울은 안성맞춤이다. 갤러리를 가고, 박물관과 인사동, 경복궁 등, 갈 곳도 볼 곳도, 사진 촬영할 곳이 많아서 마음에 든다. 가끔 아내의 고향인 진주에 내려가면 그의 마음에 드는 피사체들이 없어 아쉽다고 한다. 여러 가지 일들이 벌어지는 서울은 그런 연유로 서울은 그에게 가장 좋은 촬영 장소이다.

랄프에게 고궁이나 광화문 주위의 오래된 전통문화 명소는 생소하면서도 색다른 피사체들이다. 그리고 나를 만난 종로 주위 인사동을 꼽았다. 그는 학교가 쉬는 겨울방학동안 쉬지않고 인사동에 나갔다. 언제나 흥미로운 사람들. 갤러리. 그리고 물건들. 그 누구도 카메라에 대해 반감을 가지지 않고 편하게 촬영할 수 있어서 좋았다. 그 만의 숨겨진 베스트 촬영장소를 묻는 나의 질문에 그는 지체 없이 대답한다.
“봉-은사”

그가 처음으로 잡았던 카메라는 캐논 eos 55. 필름카메라로 사진을 처음 찍었다. 그냥 스냅사진을 찍을 뿐이었는데 사진들이 대부분 잘 나왔다. 필름카메라의 한계로써, 아내가 계속 눌러대는 셔터소리를 싫어하여 늘 말싸움을 하곤 했다. 그런 이유로 코닥 이지쉐어로 첫 디지털카메라를 구입했다. 그러나 필름카메라를 사용하던 그의 기대에는 못미치는 것이었다. 결국 소니 사이버샷을 구입했다. 그가 처음으로 진지하게 사진을 찍기 시작한 카메라로 7개월 정도를 사용하면서 그의 사진 실력을 향상시키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그리고 캐논의 EOS 20D는 그에게 또 다른 기회를 주었다. 그가 생각한 그대로 결과물로 옮겨낼 수 있을만한 카메라. 그의 손에 현재 들려 있는 EOS 20D는 사진을 촬영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그의 잠재된 재능까지도 불러일으킬만한 것이라고 그는 극찬했다. 그가 사진을 따로 배운 적은 없다. 찍은 사진 중에서 결과가 좋았던 사진들을 위주로 다시 사진을 찍었다. 결국 경험만으로 꾸준히 찍고 있다.

또한 책과 사이트들을 섭렵하며 독학으로 사진을 배우고 있다. 그가 원하는 사진은 고급스러운 맛이 나는 사진이 아니라 순간을 포착한 심플한 사진이다. 그 누구도 언제나 늘 그 자리에서 촬영할 수 있는 사진이 아닌 단 한 순간의 장면 말이다. Robert Capa의 "Death of a Loyalist Soldier "(1936) - 스페인전쟁을 한 군인이 총에 맞아 쓰러지는 순간을 포착한 사진을 보며 그는 생각한다. 스페인 전쟁을... 아니 세상의 모든 전쟁을 대표하는 사진이라고. 그가 후에 훌륭한 포토저널리스트가 되면 큰 사건의 대표가 되는 그 사진을 찍고 싶다고 한다.

그는 사진작가가 이 세상 최고의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여행을 자주 하며,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며, 타인으로부터의 나의 작품을 인정받는 것은 아주 황홀한 일이다. 랄프는 자기 자신의 사진이 아직은 많이 미숙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점차 다른 이들로부터 다른 견해와 격려의 목소리를 들으며, 성장하고 있다. 시간 나는 대로 많은 사진들을 촬영하고 발전시키며, 그 만의 스타일을 찾고 있다. 그는 더 많은 기회가 생겨서 그 만의 사진을 알리고, 인정받기를 바란다. 그리고 10여 년 후에는 뉴욕에서 사진가로 성공하고 싶다는 미래를 이야기 한다. 그 때는 여유시간으로 작업하는 것이 아니라 그에게 주어진 100%의 시간과 모든 열정을 다 쏟아 그 만의 사진을 만들어 가는 것, 그 것이 그의 꿈이다.

그와 함께 이틀간을 함께 만나 이야기하고 촬영하면서 '역시 사진은 세계를 하나로 만들 수 있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엉터리로 들릴 나의 영어를 귀담아 듣고 대답해 주었다는 것에 무엇보다 랄프에게 감사한다. 특히 사진과 디지털카메라에 대해 이야기 할 때 초롱초롱 빛나던 그의 영롱한 눈빛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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