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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김정욱의 Surfing Surface

2008-06-03


그는 바다로 갔다. 서핑 보드를 들고서. 그곳은 와이키키 해변도, 호놀룰루 남쪽 해안도 아니었다. 그는 파도를 탔다. 부산 해운대 앞바다에서. 한 겨울에도, 비가 오고 눈이 내려도, 파도만 허락하면 거침없이 뛰어들었다. 그리고 사진을 찍었다. 파도와 파도 사이에서. 물살을 가르고 박자를 맞춰가며, 찰칵찰칵 셔터를 눌렀다.

글 | 이상현 (shlee@jungle.co.kr)


몇 해전, 부산 해운대 앞바다에서 물개를 목격한 일이 있다. 작고 까만 물개는 자꾸 바다에 고꾸라졌다. 이상히 여겨 가까이 가보니, 물개가 아니라 ‘서퍼(surfer)’였다. 부산 앞바다에서 비치보이를 만나리라곤 생각지도 못했던 서울 촌놈은, 그대로 주저앉아 멍하니 그 광경을 지켜봤다. 주어진 조건을 무기력하게 받아들여야만 했던 시절, 조건을 발견하고 즐거움을 찾아내는 서퍼들의 모습이 너무 눈부셨다. 서울로 돌아와, 가끔 가사를 바꿔 노래를 흥얼거렸다. “저 바다에 누워 외로운 ‘물개’될까….”


우연히 찾아간 전시회에서 ‘물개’와 다시 만났다. 네모난 사진 프레임 속에서 서퍼들은 여전히 아무렇지 않게 고꾸라지고 일어나길 반복한다. 아찔한 순간의 연속이지만 사진에선 뜻 모를 정적이 흐른다. 다이내믹한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혈안이 되었다기 보다는, ‘사건이 벌어졌고 내 손에는 카메라가 있었다’는 식으로 찍은 컷이었다. 이 묘한 생동감이 흐르는 사진의 주인은 김정욱, 국내에서 유일하게 서핑 사진을 찍는 사람이라고 했다. 물 밖에서 서퍼를 촬영하는 것은 어린애가 핸드폰 카메라로도 가능한 일이겠지만, 그는 파도와 파도 사이에서 셔터를 누른다. 서퍼이자 포토그래퍼인 것이다.

김정욱을 ‘한국의 라이언 맥긴리(Ryan McGinley)’라고 수식한다면 과도한 상찬일까. 카메라 앞에서 벌어지는 일을 즉흥적으로 연주하는 기록, 그러나 소리는 이내 사라지는 기이한 정적의 플레잉…. 라이언 맥긴리의 그것처럼, 김정욱의 사진에서도 도도히 흐르는 무드다. 청춘의 한때는 그렇게 소리 없이, 환하게 빛났다 사라지는 것.



“카메라에 스트로보까지 장착한 후 통째로 ‘하우¡(카메라 방수장비)’에 넣은 뒤, 리시(서핑보드와 몸을 이어주는 끈)를 이용해 팔과 연결시킨다. 그리고 큰 파도(세트)를 타는 서퍼들을 따라 수영 한계선 너머까지 수영해 들어간다. 순간의 파도를 타는 서퍼들의 움직임을 기록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그들과 ‘합’을 맞춰야 한다. 발이 땅에 닿지 않는 상황이기 때문에 양팔을 위로 높이 치켜 들고 셔터를 누른다. 발로는 계속 평영 킥을 차면서 박자에 맞춰 사진을 찍고, 다시 파도가 부서지기 전에 그 밑으로 파고든다.

위험은 시시각각이다. 서퍼와 부딪쳐 사고가 나는 것은 물론이고, 파도의 힘이 셀 때는 의지와 노력에 상관없이 휩쓸리게 되기 때문이다. 요령이 없으면 세탁기 속 빨래처럼 물속에 갇힌 채 계속해서 빙글빙글 돈다. 큰 파도일수록 충격이 심하고 갇히는 시간도 길어진다. 그럴 때는 안간힘으로 카메라를 사수해야 한다. 2007년 5월 촬영 중 리시가 오른손 엄지를 잡고 비틀어 인대 2개가 모두 끊어지고 손가락이 뒤틀려버렸다. 전신마취를 한 뒤 수술을 두 번이나 하고 두 달 동안 병원에 입원 해야 했다. 그래도 다시 일어나 바다로 갔다.” _김정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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