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5-25
오는지 가는지도 모르게 스쳐지나갔다고 여겨지는 봄이지만, 달력은 아직 봄을 가리키고 있다. 여름 같은 5월이 야속하게 느껴진다면 봄 그림자가 아직 남아 있는 헤이리로 가 보자.
에디터 | 정윤희(yhjung@jungle.co.kr)
헤이리에 위치한 써니갤러리가 올해 첫 기획전으로 마련한 ‘봄_靜 · 爭’전은 전통적인 정물의 대상을 사진으로 바라보는 세 명의 사진가의 작업을 통해 동시대 정물 사진과 시선의 변주를 보여준다.
전시제목의 봄은 바라봄의 봄(Seeing)이자, 계절 봄(Spring)이기도 하다. 바라봄은 전시 작품인 ‘정물(Still Life)’이 단지 멈춰지고 죽은 사물이 아니라, 살아있는 사물의 한 순간, 즉 작가가 바라보는 순간을 정지시킨 것을 의미한다는 점과 관련된다. 즉, 정물의 정(靜)은 사물의 움직이려는 힘과 멈추려는 힘의 쟁투(爭鬪)의 순간이라는 점에서 여전히 생(Still Life)이자 잠재적인 움직임이며, 그 쟁투의 순간은 작가의 바라봄의 시선을 통해 만들어 진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전시는 권순평, 조성연, 임수식의 작업을 아우른다.
중앙대학교 사진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권순평 교수의 작품 ‘비원’은 자연의 신비로움과 생명의 주기를 모두 간직한 분재목이 ‘뿌리채’ 드러나 던져지는 그 순간 나무 내부에서 일어나는 삶과 죽음의 충돌과 공존하는 에너지를, 그 카오스적인 에너지를 고스란히 담은 채 순간적으로 정지시키고, 진공상태로 만든다.
한국적이고 여성적인 에너지를 담은 사진으로 친숙한 사진가 조성연의 작품 ‘사물의 호흡’은 사물과 함께 숨을 쉴 수 있을 때까지 응시하여 얻어진 순간이다. 그 순간은 멈춤이라기보다 작가와 사물과 함께 숨을 쉬어야만 감지되는 아주 미세한 진동이다. 사물 저 깊이 내부에서 움직이고 있는 생의 의지가 작가의 시선과 호흡에 의해 가만히 떠오른다.
최근에 주목받는 젊은 작가 임수식의 ‘수필’은 한 권의 책을 한 장의 사진에 차곡차곡 찍어 하나의 이미지로 축적한 작품이다. 사적이고 일상적인 수필이라는 장르적 특성이 존재하긴 하지만 이미 가독성을 포기한 책은 작가의 시선에 반응하는 책들인 것이며, 흐릿하고 장황한 이야기들은 이미지 위로, 위로 흔들리며 떠오른다.
‘2010 파주 헤이리 예 나들이 축제’ 기간에 함께 오픈하는 이 전시는 주말과 공휴일 전시 연계 체험 프로그램, ‘Polarloid, Make it your Style! - Polaroid Image Transfer Workshop’도 함께 진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