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2-22
프리랜서로 2년째 아기사진을 찍어오는 박진경(31, 사진)씨는 ‘지지’라는 이름으로 돌스냅 사진계에선 꽤 알려진 베테랑이다. 의뢰를 받아 주말에 돌이나 백일잔치를 찍고, 평일에는 8살과 3살의 두 딸아이를 키운다. 두 아이를 키우며 사진 일에서도 실력을 인정받은 열정맘인 박씨는 최근 새 도전에 나섰다. 7월27일부터 8월22일까지 서울 홍익대 현대미술관에서 열리는 미술품 전시와 판매행사인 ‘2011 아시아프’(아시아 대학생·청년작가 미술축제) 참여작가에 응모해 80명의 사진분야 참여작가 중 한명으로 선정된 것. 틈틈이 해온 순수 개인작업을 들고 아트마켓에 나가게 됐다. 대학생 참가자가 많은 아시아프의 특성상 만 30세인 연령기준을 턱걸이로 통과했을 정도로 늦깎이 응모 자체에도 용기가 필요했다.
기사제공 |
<월간사진>
2011년 8월호
“사진 찍고 찍히기를 모두 좋아했어요. 찍고 있으면 마치 프로작가가 된 듯 설레는 기분이 들어요. 나만의 이야기로 작은 사진 시리즈를 만들어 개인전을 여는 게 꿈이어서 아이사진을 찍으며 사진 공부를 계속하고 제 작품을 만드는 중이에요. 아시아프는 제 작업을 평가받는 첫 무대여서 기대가 커요. 박진경만의 사진장르를 만드는 출발점이죠.”
젊은 작가의 열정과 잠재력을 확인하는 아시아프에서 그녀의 목표는 소박하다. 판매까지는 기대않지만 자신의 작품을 보여주는 첫 자리로서 관객의 반응이 궁금하다. 아시아프에 응모한 포트폴리오는 ‘Not Venus’가 제목이다. ‘더는 순수하고 사랑스러움은 없다’는 주제로 치열한 교육경쟁 속에서 부모에 이끌려 순수함을 잃고 기계적으로 변해가는 아이의 내면을 표현했다. 대비되는 표정과 컬러, 사각의 틀 안에 갇힌 아이의 다양한 표정 등 심리상태를 표현하는데 공을 들였다. 작품에 등장하는 아이는 첫째 딸 정윤이다.
‘Not Venus’에는 엄마이자 경쟁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박씨의 경험이 담겼다. “부모는 내 아이를 세상에서 가장 예쁜 것들로 치장하려지만 정작 아이들이 바라는 건 보잘 것 없는 작은 진심이라는 것을 알까요?” 아이 둘을 키우며 느꼈던 것들을 사진에 솔직하게 풀어냈다. 박씨는 사진이 공감을 얻으려면 진심이 담겨야 한다고 말한다. 느낀 만큼을 거짓 없이 표현했을 때 보는 사람도 똑같이 공감하는 ‘거울 같은 사진’이 나온다는 것. 이런 점에서 그녀에게 돌사진과 순수사진은 다를 게 없다. 단지 사진을 보는 사람이 누구인지가 다를 뿐이다. 이제 그녀는 경험과 진심에서 찍힌 사진으로 더 많은 관객을 만날 준비와 기대로 설렌다.
월간사진>
돌스냅 사진은 어떻게 시작했는가?
2008년에 모 UCC공모전에서 2등을 하며 경품으로 니콘 D90과 18~105mm 렌즈를 풀세트로 받았다. 간단히 조작법을 배운 뒤 둘째 백일사진을 집에서 찍어 한 육아카페에 올렸는데 그 사진을 보고 연락이 왔다. 그냥 기록만 남기면 되니 부담 갖지 말라고 해서 찍은 게 시작이었다. 잠드는 모습, 아기답게 큰 소리로 우는 모습 등 자연스러운 장면을 소품, 조명, 구도를 달리해 독창적으로 찍어봤는데 다들 좋아해줬다.
경험이 없어 처음엔 실수가 많았겠다.
사진 찍으러 처음 간 날, 주위서 사진 찍는 분들이 계속 힐끔 쳐다봤다. 내가 좀 예쁘지 착각하며 더 열정적으로 찍고 있는데, 나중에 한 분이 슬쩍 다가와 ‘스트로보 안쓰세요’ 묻더라. ‘그게 뭐에요?’ 순진한 표정으로 반문했다. 지금도 손발이 오글거린다. 그뒤로 스트로보를 두 개씩 갖고 다닌다. 파일관리를 소홀히 해 주말 내내 찍은 4~5명의 아기 돌잔치 사진을 한방에 날려버린 적도 있다. 가장 큰 사건이었고 고소당할 뻔했는데 남편이 돈으로 물어줬다. 정말 힘들었다. 폴대세트가 무너져 아이가 다칠 뻔한 적이나 도착해서야 카메라 배터리를 안 갖고 온 것을 알고 남편에게 SOS 요청한 일 등 초반엔 엄청난 일이 많았다. 그래도 인생은 극복이라고, 이 모든 시련을 겪을 때마다 조금씩 노하우를 쌓아갔고 지금은 엄마들 사이에서 인기작가다.(웃음) 아마 남편의 응원과 도움이 없었다면 엄두를 못 냈을 것이다. 남편이 영화조명 일을 해서 도움과 조언을 많이 해준다.
아시아프에 도전하게 된 이유는?
사진전공도 하지 않았고 기술도 부족한 내가 과연 작품사진이라는 것을 찍을 수 있는지 가능성을 시험해보고 싶었다. 사진에 매료될 때쯤 나만의 작은 시리즈를 만들어 개인전을 열고 싶다는 생각을 가졌다. 그런 꿈을 지니며 살다 우연히 아시아프 공모를 보았고, 이 기회를 놓치면 후회할 것 같았다.
어떤 개인작업을 준비 중인가?
한국의 교육현실을 풍자한 ‘Not Venus’가 첫 시리즈다. 공감할 수 있는 사회적인 내용을 담고 싶다. 사회 이슈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 다들 알지만 해결되지 않고 반복되는 우리사회의 소리 없는 전쟁 같은 문제를 사회구성원의 한 사람으로서 나만의 시선으로 담고 싶다. ‘Not Venus’ 역시 아이를 키우며 느꼈던 것들을 담았다.
앞으로 계획은?
아이사진은 계속 찍어 작은 스튜디오를 갖고 싶다. 그리고 사진공부를 계속하고 내 작품을 하나하나 만들어 박진경만의 사진장르를 만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