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2-27
섬은 사진가의 마음속에 있다.(중략) 그 섬은 단지 하나가 아니다. 많은 섬과 섬들이 원을 그리듯이 연결되듯, 우리들 하나하나의 마음속에 있는 섬들도 연결되고 있다. 이경희의 사진세계는 고립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차라리 우리들의 마음에 품은 기억들을 부드럽게 맺어주는 힘을 갖추고 있다. - 이자와 코타로(일본 사진평론가)
글 |
<월간사진>
김보령 기자
기사제공 |
<월간사진>
2011년 8월호
월간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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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여성사진가 이경희(52)의 사진행보는 거침이 없다. 2007년 매그넘 사진가 데이비드 알란 하비(David Alan Harvey)의 한국 워크숍에서 부산의 흐릿한 흑백 풍경사진 ‘Island’로 최고 수료자에 선정되어 2008년 미국 뉴욕 국제사진센터(ICP) 워크숍에 참여하는 기회를 얻었다. 그리고 같은 해에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열린 매그넘 워크숍에도 참여해 세계 유수의 작가들과 작품을 만났다. 일본 Toseisha 출판사에서 첫 사진집 ‘Island’를 발간했으며, 마침 이 책을 계기로 일본이 주빈국이었던 2008년 파리포토의 북사인회에도 초청받았다. 그의 작품은 2009년부터 2010년까지 중국의 리엔죠, 얀쉐이, 따리, 핑야오의 국제사진축제에 소개되었으며, 미국 워싱턴DC의 포토위크DC와 뉴욕 Burn 갤러리에도 전시되었다. 2010년에는 데이비드 알란 하비가 발간하는 사진집 ‘Burn01’에 작품이 수록되었고, 올해 연말에는 ‘Asphalt Island’를 정리한 두 번째 사진집이 발간될 예정이다. 5년 사이에 벌써 8번의 개인전을 갖고 20여 차례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이경희가 이처럼 워크숍과 전시, 출판 등 다방면에서 왕성한 활동을 펼치는 이면에는 오랜 ‘결핍’이 있었다. 부산에서 태어나 자란 토박이인 그는 약사로 일하며 느즈막이 사진을 시작한 두 아이의 엄마다. 지역의 사진가이면서 사진에 온전히 몰입할 수 없는 처지에서 비롯되어 누적돼온 결핍은 그를 더욱 열정적으로 도전하게 만들었다. 절실한 배움의 의지는 어느덧 지역의 아마추어 여성사진가로 한정 지어진 틀을 스스로 걸어 나오게끔 이끌었다. 그는 지난 4월 세계 7개 도시를 여행하며 기록한 새 작업 ‘Asphalt Island’로 부산 고은사진미술관이 운영하는 토요타아트스페이스에서 초대전을 갖기도 했다.
섬과 같은 소통의 관계 탐색한 사진
이경희의 사진은 마치 잘못 찍은 사진처럼 보인다. 그의 사진 속 카메라의 초점은 늘 근경의 사물 너머에 맞춰져 있다. 마치 한 공간 안에 다른 시간의 층이 존재하는 듯 사진은 현실과 환상이 한 프레임 안에 공존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걸으면서 찍은 것처럼 기울어진 앵글이나 무형식의 카메라 워크도 그동안의 사진 상식을 뒤엎는다. 그의 사진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미스터리하고 생경한 사진을 읽기 위한 단서는 이경희가 대상을 바라보는 태도를 이해하면 쉽게 찾을 수 있다. 이경희는 ‘나’라는 주체를 근경의 흐린 대상에 대입시켜 주체가 마치 사진 프레임 안에 들어가 있고 원경을 바라보는 것처럼 표현한다. 즉 작가 스스로 타자의 시선을 가짐으로써 자신이 타자가 되고, 또 타자가 자신이 되는 ‘소통’의 관계를 만든 것이다.
이경희에게 사진이란 소통이며, 타자에 대한 열림, 이해, 연결하려는 의지와 같다. 그는 2004년 9월, 과로로 몸과 마음이 지쳤을 때 사진을 처음 만났다. 두 번의 수술과 입원을 반복하며 심신이 쇠약해져 가만히 있어도 눈물이 폭포수처럼 흘렀을 때였다. 그리고 이듬해 봄기운이 돌 무렵 대학동기들과 밀양 강변으로 봄 마중을 나가며 봄기운에 의지해 다시 일어서려 다짐했다. 그때 동기가 가져온 검은 기계가 니콘 F70이었다. 한 번 찍어보라는 친구의 권유로 처음 렌즈를 통해 버들개지를 보았을 때, 마치 비밀 통로로 버들개지가 말을 건네는 듯한 느낌을 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 느낌은 자신이 태어나고 숨쉬던 부산의 하늘과 낙동강 물줄기를 바라보면서도 이어졌다. 바닷바람에 묻어나는 소금기만으로도 삶의 무의미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그에게 고향이라는 장소성이 주는 위로와 안도감은 다시 한번 타자와 자신을 연결하려는 ‘소통’의 의지를 일깨웠다.
타자와 소통하려는 의지에서 시작된 사진작업은 작가 자신을 닮았다. 마치 섬처럼 홀로 떨어진 외로운 존재이지만 소통을 갈망하는 모습이 사진에 비친다. 부산의 풍경에서부터 세계 도시의 풍경으로까지 소통의 대상을 넓히며 확장 중인 길목에서 이경희는 다시 한번 자신을 탐색 중이다.
세계 7개 도시로 소통의 대상 확장
첫 작업 ‘Island’의 무대인 부산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부산은 내가 태어나고 숨쉬고 자란 곳이다. 하늘 위에서 굽이치는 낙동강 물줄기를 볼 때면 절대 이 산하를 버릴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마음 깊은 곳에서 밀려온다. 금정산을 오르면서 하아하아 숨을 내쉬면서는 어린 고래를 생각한다. 바닷바람, 파도, 산, 항구 이런 것들이 나와 타자를 연결하려는 의지이자 배경이다. ‘Island’는 2006년부터 2007년까지 2년간 부산의 풍경을 찍은 작업으로, 부산이라는 장소성이 매우 중요하게 다뤄진다. 내게 가장 친숙하고 익숙한 곳이라야만 나를 둘러싼 관계와 소통을 이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을 반영한 사진 프레임 밖에서 나와 타자, 주체와 객체 사이의 관계를 보고 싶었다.
소통과 관계를 ‘섬’이라는 단어로 표현했다.
평소 시를 자주 읽으며 시어에 묻어나는 이미지를 떠올려보는 편이다. ‘섬’ 이외의 다른 제목을 고려해본 적이 없다. ‘섬’ 하고 소리 내어 불러보면 외롭고 소외된 느낌이다. 행간을 살피면 외로움 너머 외롭기 때문에 소통하고 싶어 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다. 이 작업은 나 스스로가 타자의 시선을 가짐으로써 내가 타자가 되고, 타자가 곧 내가 되어 보면서 대상과 소통하는 작업이다. 일본에서 발간한 사진집 ‘Island’의 표지는 일본의 디자이너 이시야마 사스키(Ishiyama Satsuki)의 작품으로, 그는 반복해서 내 작업의 이미지를 보며 표지 이미지를 구상했다. 얇은 천 위에 붓으로 ‘Island’라고 쓰고 선풍기로 바람을 일으키며 번지는 모습을 찍은 작업은 끊임없이 밀려오고 밀려나가는 바다 속 섬 같은 느낌이 들게 한다. 작품을 통해 서로 소통하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결과다. 이렇게 섬은 관계를 끊임없이 이어나가고 확장시키는 과정 속에서 자신의 본질을 찾는다.
세계 7개 도시를 여행하며 찍은 ‘Asphalt Island’를 보면 소통에 성공한 듯 보인다.(웃음)
‘Asphalt Island’는 2008년 3월부터 2년간 한 작업이다. 처음 여행을 떠나게 된 계기는 노르웨이 오슬로의 매그넘 워크숍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마감 하루 전날 포트폴리오를 준비해 등록했는데, 담당자로부터 정원 초과라는 메일을 받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럴 때마다 더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절실해진다. 그래서 아직 마감 시간이 남았으니 포트폴리오를 보고 결정해달라는 답변을 보냈다. 결국 담당자는 ‘당신의 포트폴리오는 정말 좋다. 하지만 먼 한국에서 이곳까지 정말 올 수 있겠느냐’는 메일을 보내왔고, 나는 ‘Surely!’라고 대답했다. 그날 주고받은 메일만 7통이었다. 워크숍에 갔을 때 이 에피소드로 인해 이미 난 유명인사가 되어있었다.(웃음) 사진집 ‘Island’ 발간을 위해 동경에 머무르며 촬영했고, 뉴욕 ICP 워크숍에서는 뉴욕을, 파리포토 2008 북사이닝에서는 파리를, 2009 베이징포토페어에서는 북경을 찍었다. 카트만두는 NGO 활동을 하면서, 시드니는 데이비드 알란 하비의 워크숍에 참여하면서 찍는 등 모든 작업은 사진과 관련된 여행 중 이뤄졌다. 7개 도시는 내가 처음으로 오로지 나 혼자서 카메라와 여행한 곳들이다. 사진은 생경한 도시, 사회, 환경 그리고 처음 만난 사람들과 내가 어떻게 만나고 소통하는지를 보여준다. 이 작업은 내가 없는 나의 자화상이자 말이 없는 이야기책, 명확한 답이 없는 끊임없는 질문들이다.
타자에게 열린 마음과 사진에 대한 열정
지금껏 다양한 워크숍과 포토페어에서 무엇을 느꼈는가?
2008 파리포토가 열리던 해에 사진집 ‘Island’가 일본에서 출판되었는데, 그 사진집이 당시 일본을 주빈국으로 초청한 파리포토의 초대를 받아 북사이닝을 했다. 그때 처음으로 독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기념사진도 찍으면서 어떤 소통의 장벽도 넘어서는 공감대를 느낄 수 있었다. 특히 그때 만난 어떤 상담사에게서는 내 사진을 통해 위로 받았다며 조그마한 바다 사진을, 미국 작가인 아서 트레스(Arthur Tress)로부터는 사진집과 최근 작업에 대한 기사, 짧은 편지를 선물 받았다. 평생을 사진과 함께 한 일흔의 노사진가를 통해 나이, 성별, 국적을 초월하는 사진의 놀라운 소통의 힘을 경험한 순간이었다.
현재 진행 중인 다른 작업이나 사진집이 있는가?
예술학 박사 과정을 밟으며 구조와 관계 속에서 개인이 갖는 환상이 어떻게 삶을 이끌고 존재에 의미를 부여하는지에 대한 작업을 구상 중이다. 이 역시 내가 왜 사진을 통해 환상을 갖고 삶의 의미를 되찾는지에 대한 자문이자 탐색이다. 준비 중인 새로운 사진집 ‘Asphalt Island’는 현재 출판사를 결정할 단계까지 왔다. 일부러 나를, 내 작업을 규정짓고 싶지는 않다. 규정되는 것을 거부하며 온 몸으로 대상을 받아들이고 맞부딪혀 보고 싶다. 그래야만 스스로와 타자에게 좀더 솔직해지고 진실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