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0-19
우리는 대화를 통해 상대방을 이해하고, 파악한다. 하지만 때로는 그 대화 자체에서 의미를 찾는 경우도 있다. 양민하의 작업과 대화하는 관객들은 종종 그의 이미지를 다르게 해석하기도 하지만, 그는 의외로 담담하다. 그것조차 하나의 과정이자 방법이라 생각하기에 그는 이 대화를 지속시킬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한다.
에디터 | 정은주(ejjung@jungle.co.kr)
자료제공 | The Creators Project
그가 미디어 아티스트의 길을 걷게 된 것은 뜻밖의 일이었다. 막연히 만화가를 꿈꾸다 대학 진학까지 포기한 그는 고민 끝에 디자인 과에 입학한다. 하지만 미디어 아트 수업 시간에 만난 마에다의 작품은 디자인 혹은 만화만 생각하던 삶에서 찾은 새로운 작업이었고, ‘해야 할 일’이 되었다.
양민하의 작업 중에서는 기술을 통해 최대한 자연을 모사하려고 한 시도들이 인상적이다. Garden 역시 그중 하나였다. 그는 과거 한 인터뷰에서 “기술로 이루는 최상의 결과물은 자연과 닮아있는 무엇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렇지만 기술로 표현하려고 하는 자연은 자연이 될 수 없었다. 이에 대해 자연과 자연이 되고자 하는 기술의 차이에 대해 질문하려고 했던 그의 생각과는 달리 이 문제에 대해서 고민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가 처음 인터랙티브 작업을 시도한 것이 재미를 위해서였듯, 사람들 역시 그의 작업을 즐거움과 호기심으로 대했던 것이다. 양민하는 사람들의 이러한 반응마저도 작업의 일부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일부러 작업의 의미와 작업의 괴리를 통해 1차원적인 인터랙션을 우선으로 하는 미디어 아트에 대한 비판적인 의견을 담아냈다.
Meditation 1008(묵상 1008)은 그가 비판하는 1차원적인 인터랙티브 아트가 아니라, 관객들의 참여가 작품에 다양한 해석과 가능성을 제공하는 작업이다. 벽면을 가득 메운 어두운 조명과 그 중심에 있는 세 개의 원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치 어릴 적 벽에 그려진 점을 보며 집중을 했던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이 원은 파동을 일으키거나, 강렬한 컬러를 보여주며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미디어 아트와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명상의 시간을 제공한다.
지난 10월 18일에 개최된 설화문화전에서 그는 ‘불연속적인 축적’이라는 작업을 선보였다. 한국 전통 옹기 장인들의 작업을 디지털 미디어로 재해석한 것이다. 흩어져 있는 흙 입자가 한데 모여 장인들이 만든 진짜 옹기와 같은 모양을 보여주는 작업으로, 이를 통해 실체가 있는 것과 실체가 없는 사물을 하나로 묶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최근 양민하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추상적인 것을 아예 물리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다. 가령 언어의 무게를 잰다거나, 에너지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미디어 아트 작업을 시연해보려 한다.
예술과 기술은 서로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보완해 줄 수 있을 때 새로운 예술 작품을 만드는 원천이 된다. 이때 중요한 것은 서로의 역할과 작업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미디어 아티스트 양민하의 작업을 보면 예술과 기술이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는 조력자라는 느낌이 든다.
스스로 사회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면서 동시에 사회에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작업을 선보이고 싶다는 그에게는 또 어떤 작업이 기다리고 있을까. 그 과정에는 기술과 예술, 사회와 미학, 미디어 아트와 만화가 함께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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