론 쉬크 | 2012-03-15
크리스마스 선물을 안고 들뜬 표정으로 집에 들어서는 아이와 아이를 반기는 강아지, 눈가에 멍이 든 채 교장실에 불려 온 소녀, 자동차 핸들을 잡은 아버지와 긴 여정에 잠든 아이들. 일러스트레이터 노먼 록웰은 미국인의 일상을 친근하게 그려낸 ‘가장 미국적인 예술가’이자, 50년 가까이 무려 321점의 주간지 표지그림을 그렸던 ‘상업예술계의 슈퍼스타’이다. 그의 화려한 성공 뒤에는 ‘사진’이라는 비밀 병기가 숨어있었다.
글 | 오윤주 객원기자( ozz55@hanmail.net)
자료제공 | 인간희극
만약 당신이 ‘그림’을 ‘작가의 온전한 영감의 산물’이라고 믿는다면, 이 책을 보고 실망할 수도 있을 것이다. 노먼 록웰은 원하는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 철저히 사진을 이용했기 때문이다. ’노먼 록웰, 사진과 회화 사이에서’에서는 그의 독특한 일러스트에 숨겨진 비밀을 알려준다.
노먼 록웰(Norman Rockwell)은 1912년 18세가 된 후부터 사망 1년 전인 1977년까지 일평생 동안 활발하게 활동했던 미국의 대표적인 일러스트레이터이다. 그의 미국사회에 대한 통찰력과 주변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은 당시 대표적인 미국 주간지인 ‘새터데이 이브닝 포스트(Saturday Evening Post)’의 표지그림과 진보성향 잡지 ‘룩(LOOK)’의 삽화에서도 잘 나타난다. 그가 그린 일러스트들은 20세기 미국사회와 미국인의 일상 그 자체를 표현할 뿐 아니라 삶에 대한 보편적인 정서를 느낄 수 있게 해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의 공감을 얻었다.
지난 2006년 미국 문화재 보존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메사추세츠 주(Massachusetts 州)에 있는 노먼 록웰 박물관의 자료들이 디지털화되었다. 그 과정에서 그의 일러스트에 기반이 된 사진들이 대거 발견되었다. 이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완성된 이 책은 그의 머릿속 아이디어가 어떻게 작품으로 실현되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먼저, 완성된 일러스트와 사진을 비교할 수 있도록 구성한 점이 돋보인다. 그리고 이러한 배치를 통해 사진 속의 요소들이 어떻게 최종적인 이미지로 완성되는지를 보여준다. 또한, 사진의 모델들과 지인들이 들려주는 그의 대표작에 얽힌 일화들은 책에 재미를 더해주면서 독자들이 그의 작품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정감 가는 캐릭터들은 실제로 그의 이웃들이었다. 그는 이 아마추어 사진모델들을 통해 “꾸며내지 않은 것”을 얻을 수 있었고, 그가 추구하는 리얼리즘을 완성할 수 있었다. 이러한 발견은 그의 작품을 보는데 새로운 시선을 제공한다.
그는 머릿속에 있는 아이디어를 그림으로 완성하기 위해 일러스트레이터뿐만 아니라 연출가가 되어야 했다. 준비한 시나리오에 맞춰 신중히 모델을 캐스팅하고 열성적으로 연기를 지도했을 뿐만 아니라 궁극의 표현을 얻기 위해 모델의 비위를 맞추기도 하고 신랄한 말도 서슴지 않았다. 이에 대해 그는 1979년 교육용 책으로 출간된 『록웰이 바라본 록웰(Rockwell on Rockwell)』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당신의 그림에 맞는 올바른 자세를 잡도록 모델들을 연출하는 것은 그것 자체가 예술이며 어떤 면에서는 영화제작에서 감독의 역할과도 비슷한 면이 있다. 우선 당신은 자신의 모든 자존심과 허영심을 버리고 그 현장에 스스로 몰입해야 한다. 그래야 당신의 모델로 하여금 그들의 자만심을 버리게 유도할 수 있고 당신이 그림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감정을 느끼고 표현하게 할 수 있다.”
20세기 많은 일러스트레이터들의 돈과 시간절약에 일조하면서도, 창작이 아닌 편법이라는 비판을 받게 하기도 했던 사진. 하지만 ‘가장 미국적인 예술가’, ‘미국 상업예술계의 슈퍼스타’라는 노먼 록웰(Norman Rockwell)의 화려한 호칭은 그가 적극적으로 사진이라는 신매체를 수용했기에 얻을 수 있던 것이었다. 게다가 어디까지나 시각적인 보조수단이었던 사진은 노먼 록웰의 세심한 연출 아래, 그 자체로써 하나의 작품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