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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 | 리뷰

시간과 공간, 그리고 사람이 함께 만드는 건축의 가치

김정후 | 2013-12-17


런던의 데이트모던 현대미술관은 화력발전소를 문화 공간을 탈바꿈시킨 혁신의 대표적인 아이콘이다. 한국에서도 지난 몇 년간 산업시설물을 새롭게 사용하는 방안을 모색한 시도들을 선보이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건축물 자체의 역사와 흐름에 집중하기보다는 공간을 어떻게 하면 새롭게 활용하느냐에 대한 결과 중심의 건축물들은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 이는 산업 공간의 활용에 대한 개념이 낯설 뿐 아니라, 사회 문화적 맥락 아래에서 어떻게 다뤄야 대한 고민과 논의가 아직은 부족하다는 말이기도 할 것이다.

‘발전소는 어떻게 미술관이 되었는가’는 우리보다 좀 더 일찍 이러한 고민을 접하게 된 유럽에서 일어난 산업유산 재생 프로젝트 14개를 소개한다. 이 사례들은 유럽 전역에 걸쳐 발전소, 가스 저장고, 기차역, 감옥을 공원이나 문화 공간으로 효과적으로 변화시켰다는 점에서도 충분히 매력적이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에서 더 주목해야 할 부분은 공간의 변화를 기존의 공간과 도시,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존중하고 이해하는 태도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이다.

에디터 | 정은주(ejjung@jungle.co.kr)
자료제공 | 돌베개

독일 ‘뒤스부르크 환경공원’은 그 과정과 결과물 모두에서 혁신을 보여준다. 티센 제철소는 대부분의 오래된 제철소가 그러했듯 도시의 경관을 해치고 자연환경을 악화시킨다는 이유로 지역 주민들로부터 외면을 받았다. 어쩌면 철거를 하고 새로운 건축물을 세우는 것이 당연한 순서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조경건축가 피터 라츠의 생각은 달랐다. 오히려 녹슬고 낡은 기존 시설물을 그대로 남기는 방법을 택하는 한편, 주변 환경을 정화하는 데에 집중한 것이다. 사람들의 외면을 받았던 시설물을 그대로 두는 것도, 단기간에 해결이 될 것 같지 않은 자연을 회복시킨다는 데에 대해서 의견이 분분했지만 그대로 진행하게 되었다. 그에게 티센 전철소는 없어져야 할 흉물이 아니라, 지역 주민들의 삶과 함께한 공간이자 뒤스부르크가 가진 역사와 자부심으로 인식한 것이다. 이 결과물로 등장한 ‘뒤스부르크 환경공원’은 공장 굴뚝을 전망대로, 용광로를 스킨스쿠버장으로 탈바꿈시키는 등 건축물에 대한 상상력을 넓히는 동시에 살아 있는 산업박물관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하게 됐다. 이 사례는 피터 라츠라는 뛰어난 조경 건축가 외에도 이를 실행 가능하게 도와준 정부와 행정가, 시민들의 협조로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영국의 ‘트루먼 브루어리’는 버려진 양조장을 문화 예술 공간으로 변화시킨 프로젝트다. 런던의 낙후된 지역으로 분류되던 이스트엔드에 새로운 바람이 찾아온 것은 젊은 예술가들이 모여 들면서였다. 이들은 런던 중심부와 가깝고, 값싼 임대료로 다양한 크기의 공간을 빌릴 수 있다는 점 때문에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자발적으로 작업을 하고, 함께 어울리면서 이곳은 영국의 대표적인 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작가들의 각기 다른 개성 때문이었는지 이곳은 ‘있는 그대로’ 양조장 건물과 주변 시설을 재활용해 사용하고 있다. 이로 인해 기존 전시장이나 공연장에서 할 수 없는 대규모 캠페인이나 공연과 행사가 끊임없이 이뤄지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끊임없이 확장시키는 중이다. 자본이나 정부의 개입 없이 오로지 예술가들과 시민들의 힘으로 공간의 쓰임새에 대해 고민하고, 그 생명력을 스스로 부여한 점은 특히 인상적이다. 그 쓰임새에 대해 고민하고, 살려낸 공간이라는 점에서 이 공간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 밖에도 가스 저장소와 산업 시설물에도 도시계획의 관점으로 접근해 주거 및 문화 공간을 비롯해 다양한 가능성을 고려할 수 있었던 오스트리아의 가소메터 시티와 사람들에게 혐오시설로 불리던 감옥을 세계적인 호텔로 변신시킨 핀란드의 카타야노카 호텔, 개발에 맞서 건축물과 시설을 보존한 끝에 세계문화 및 자연유산으로 지정된 독일 촐퍼라인 탄광 등의 사례는 건축물 속에 새로운 시간이 더해짐으로써 이뤄낸 놀라운 순간들이었다.

버려진 산업시설은 좁게는 하나의 지역에서 넓게는 한 국가의 경제와 사회까지 다양한 영향력을 갖는다. 이는 산업시설이 단순히 경제, 사회적 기반이었다는 점뿐만이 아니라 역사적 흐름 속에 도시의 형성에 기여했고 사람들의 삶 속에도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유럽의 사례들은 흉물이라는 이유로, 혹은 쓸모를 다했다는 이유로 건물을 철거하고 새로운 랜드마크를 세우는 데 급급하지 않았다. 공간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사람들의 의견을 수렴하면서 얼마만큼의 시간이 걸리더라도 모두를 위한 건축물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내려고 했다. 오랜 논의 끝에 이뤄진 이 작업들은 그 자체로 도시의 역사로서 남아 있을 것이다. 어쩌면 건축이 갖고 있던 이러한 가치들을 우리가 잠시 잊고 있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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