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6-29
한경훈은 기타 말고 달리 애인이 없다.
대신, 매킨토시가 애인이고, 기타를 사랑할 뿐이다.
해가 뜨고 해가 지고, 어둠이 오고,
어둠이 가는 하루 스물 네 시간을
온전히 기타와 함께 하고 싶다는 사람, 한경훈.
그로부터 햇수로만 20여년. 그는 스스로 잘 알고 있다.
음악을 한다는 건, 빈 칸 채우기 게임이라는 사실을.
뭐든 찾아 써내려 가야 한다는 것도.
하지만, 그 다음엔 뭐가 남을까?
우린 모두 자신의 감방에서 자기만의 고립을 겪지만,
어쨌든 그는 잘 알고 있다.
그에겐 음악을 만들거나 만들지 않거나,
두 가지 중에 하나만 남았다는 것을.
인생은 짧고 하고 싶은 음악은 너무 많다는 것을.
글ㅣ 이종수
사진ㅣ 김세랑, 이승섭
진정한 산책엔 햇빛이 동행하겠지만, 비가 내린 뒤 습기가 가로변의 색깔을 지워버리고 있었고, 습기가 너무 차 자욱한 수증기 속을 걷는 듯한 날이었다. 지금까지 수많은 수요일이 있어왔던 것처럼, 4월 19일 수요일 홍대 근처는 불분명한 침출수로 질퍽거리고 있었다. 숙취 같은, 어딘지 안전한 풍경과 소음이 있는 홍대 근처 언저리에 잘 은닉돼 있는 선술집 2층에서 나는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어딘지 비린 듯한 피로를 느꼈다. 나는 그가 아직 당도하지 않은 것에 안도하면서 또다른 동행자와 함께 간밤의 숙취를 달래고 있었다.
순간, 그가 읊조리듯 서정성을 한껏 입혀 만들었던 ‘내 곁에서 떠나가지 말아요’를 듣던 기억들이 떠올랐다. ‘이별을 아쉬워하는’ 대중가요라고 묘사하기엔 너무 단조로워 깔끔했던...서두르지 않는 호흡으로 리메이크한 이소라의 애절함이 한껏 강조된 것과는 다른 목소리로, 약간 굵은 크기로 부스러지는 비스킷 같은 음정 곁에서 나는 언젠가 내가 문을 닫아 누군가 문 밖에서 울던, 그렇게 서툴게 상처를 입히고 또 상처를 받던 내 자신을 연민하고 있었다. 그리고 기념해야 할 날들이 오면 습관적으로 듣던
<내 곁에서 떠나가지 말아요>
앨범들. 그에 관한 자료는 희귀했다. 온라인에서 검색해 보면, 그가 벅스뮤직이나 소리바다 등의 온라인 뮤직 사이트에서조차 찾기 힘들 정도다. 마치 숨박꼭질이라도 하자는 듯이 ‘빛과 소금’이라는 밴드의 일원이었다는 뮤지션이라는 것과, 방송음악을 하고 있다는 기록만을 보여주고 있었다. 당연했다. 그를 이해하기 위해 음악 말고 다른 단서는 없었다.
누군가 그를 두고 매킨토시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뮤지션이며, 언제나 소년 같다던 말이 생각났다. 그를 만나는 데 계산된 두려움은 없었다. 어쩌면 그의 날들은 다른 의미로 밀폐돼 있었고, 그는 삶의 몇 가지 목록들과 무관한 듯했다. 그는 생각보다 조금 작은 몸으로 우리 곁으로 다가왔고, 조금씩 천천히 느리지만 단아한 음성으로 음악과 매킨토시에 대한 얘기들을 풀어놨다.
나는 특별한 애정으로 도태에서 살아남은 한 뮤지션의 크레딧을 지켜보고 있었고, 음악과 기타를 취한 지 20년을 넘긴 그의 시간들을 반추하기 위해 질문들을 굳이 정리하지 않아도 될만큼의 친밀감을 느끼고 있었다. 현실 속으로 잠입하게 된 그의 목소리는 따뜻한 온수처럼 천천히 술잔 사이로 흘러나왔다. 오랫 동안 내 마음 속에 고요하게 응고돼 있던 목소리처럼.
내>
“다들 원해서 음악을 하잖아요. 나는 지금까지는 내가 제 멋에 겨워서 음악을 했다고 할까. 지금까지는 내가 갖고 있던 고민이나 문제를 쉽게 기타로 표현했을 뿐인데. 이제는 조금이나마 음악이 뭔지 알게 됐다는 생각이 들어요. 원래 미술을 했었어요.
그림을 그렸었는데, 계원예고 다닐 때 둘째 형님이 기타를 했었는데, 가르쳐주질 않더라구요. 동생이 그러면 다들 귀찮아 하잖아요. 기타를 띵띵 거리면서 배워보려는 중에 학교에서 친구를 하나 만났어요. 그 친구가 무슨 음악 좋아하냐면서 밴드를 하자고 하더라구요.
어렸을 때 다들 그러잖아요. 악마의 유혹 같았죠. 딥퍼플의 리치 블랙모어 곡을 땄죠. 그 다음부터 기타에 빠져서 밤에 자다가도 기타 치고...다 그렇지 않나요? 그러다가 미국에서 비디오아트스쿨 다니다가 때려치고, 기호형을 만나 밴드 결성하고 앨범도 내고 그랬지만, 내 자신이 스스로 더 공부해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나만의 음악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거예요.”
부적합한 곳에 찾아온 부적합한 때였을까? 삶은 거칠게 다가와 반대방향으로 쓰러지는 도미노 게임 대신 새로운 면류관을 마련해 놓았다. 그리고 그는 이 현실을 추스려야 할 앞날을 근심한다. 확실히 음악은, 세상을 구하는 대신 풀이하는 의사(意思) 전달자인 것 같다. 그는 자신이 그랬듯이 해군 홍보단의 인연으로 만난 장기호, 박성식, 김종진, 전태관같은 기라성 같은 선배들 앞에서 차분히 그들이 나줘준 음악과 자신이 이루려는 열망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 선한 남자의 감수성이 그들의 마음에 안겨준 영향의 크기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길은 없다. 하지만, 그는 그 선배들을 보면서 음악을 하기 위해 갖춰야 할 집중력과 인내를 배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제 불혹의 나이를 넘어 새로운 솔로 앨범을 준비하고 있다고 조심스럽게 고백했다.
“솔로 앨범을 준비 중이예요. 목표가 이번 가을인데, 기사엔 내지 말아 주세요. 약속을 지키지 못할까봐... 앞으로 계획이 있는데, 구체적으로는 대중들과의 교감하는 것을 음악으로 만들어 표현하고 싶고, 한경훈이 아직도 살아있는데, 이런 음악을 만들고 좋아하고 있구나, 하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반응이 좋으면, 그동안 방송음악을 한 걸 모음집으로 내고 싶고, 또 반응이 좋으면, 내가 보여주고 싶은 음악도 만들고... 일단, 첫번째 단계로는 빛과 소금 정도의 파퓰러한 음악을 하고 싶어요. 그 당시에는 어려웠는데, 어려운 음악 아녜요. 지금 들어보면(웃음)...“
무기력한 회상을 하는 것도, 투덜대지도 헐떡이지도 않으면서 그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내장까지 뜨듯해지는 말의 촉감으로 들려주는 그 불연속적 일상들은 아주 나른한 친화감으로 에워싸고 있었다. 어쩌다 음악이 이렇게 수다스러운 포화 상태의 소음, 아무데서나 뺑뺑이를 도는 캬바레 쓰레기 음악처럼 돼버렸을까.
TV를 볼 때마다 고어텍스를 입고 온 몸을 드러내며 떼로 몰려나오는 어린 것들을 보기도 겁난다. 요즘 노래가 갖지 못한 속성들을 아쉬워하면서 열거하다보면 그렇게 퓨전재즈를 구가하던 밴드들이 생각나는데, 대한민국의 대중가요 시스템 속에서 그의 처지가 가증스러운 나이주의에 속하게 된 걸까?
그가 방송음악으로 자리잡은 건 그다지 이른 나이가 아니었으니까? 재즈 뮤지션들은 음악을 통해 자유를 얻는다고들 한다. 그는 방송음악을 통해서라고 말했다. 수단으로서의 방송음악, 음악적 가치를 투영해 주는 영상과의 조화. 그는, 생의 볼륨이라기보단 음악적 편집증에 사로잡혀 있는 것 같았다. 한 가지 생각에만 몰두하도록 짜여진 것처럼. 그건 어떤 의미의 외과적 정확성이다.
“어렸을 때 시작할 때는 장르를 구분할 단계는 아니었으니까. 그 당시에는 처음엔 다 록부터 하잖아요. 그냥, 기타가 좋아서 뒤늦게 시작했고, 대역으로 출발했다고 보면 되요. 어느 날 기타 겸 싱어가 없어서 내가 대신 했고, 하다보니까...그 땐 기타로만 만족했었거든요. 그러다가 재즈 쪽으로 성향이 맞는다는 걸 알았어요. 밴드와 방송음악은 상당히 다른 일이예요. 방송음악이요? 정말 멋진 직업이예요. 방송음악이란 게 시간을 많이 뺏어먹어요. 꼼싹달싹 못하게 하거든요. 금방 일년이 지나가고, 또 일년이 지나갑니다. 목표로 잡고 있는 앨범작업도 그래서 많이 늦춰졌죠. 미니시리즈 하나 하면 뭐 반년이 지나가요. 근데 굉장히 재밌는 작업입니다. 우선 곁가지가 없어지고... 고집스럽게 방송음악하는 분들이 있는데, 전 방송음악을 좋아하다 보니까 벌써 15년 넘게 했는데 그냥 거기에 푹 빠지게 되더라구요.”
그의 목소리는 조용하다. 조용하면 많은 게 보인다. 직선으로 설명하고 싶은 직관적인 얼굴 선, 조그마한 상처에도 마음을 다칠 것 같은 세밀한 감성, 가슴 속 침전물들을 가만히 닦아줄 것 같은 친절한 손바닥. 하지만, 자연인 한경훈의 특징은 어휘선택에서 드러난다. 단순성은 그가 무의식 가운데 밟는 지뢰다. 하지만, 복잡한 신념, 마음을 어지럽히는 추상 대신, 무력한 아이 같기도 하고, 힘센 마초를 보는 것도 같고, 소주 열 잔의 관용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 좋은 눈과 나쁜 눈, 소년의 얼굴과 노인의 얼굴, 과거에 이끌리는 마음과 미래를 향한 마음... 나는 밴드음악과 방송음악 사이에서 줄을 탔던 그 얼굴을 쳐다본다. 왜 언제나 그의 가장 값진 친구는 그 자신 같을까? 그는 연신 술잔을 기울이면서 자꾸만 담배를 피워물었다.
나는 그가 했던 대답들의 숫자들을 헤아리고 있었다. 음악과 기타는 몇 번째 말했고, 매킨토시 얘기는 몇 번째 하는건지. 지금까지도 그를 떠올리면, 음악과 매킨토시말고 신중하게 선택된 게 뭔지 알 수 없을 정도다. 어쨌든 음악과 음악의 필요에 의해 선택된 매킨토시 말고는 바게트 하나 살 줄 모를 것 같은 단순한 서정으로 기억될 뿐이다.
“그래요. 다른 건 할 수가 없었어요. 음악을 가장 좋아하기 때문에. 그런데, IBM 컴퓨터로 작업하다 매일 데이터를 날리는 거예요. 그게 지겨워서 아는 동생이 권한 롤랜드의 MC500MKII를 알게 됐죠. 단말기 수준의 시퀀서를 사용했지만, 나한테는 정말 구세주 같았죠. 그래서 맥을 택했어요. 전, 맥의 대가도 아니지만, 음악적으로 할 말은 있는데 맥이 좋은 이유는 그냥 뭐 벤치마킹도 해보고 논쟁도 해보면서 우열을 가려보기도 하는데, 솔직히 답이 없잖아요. 그냥 어떤 게 좋다는...그냥 눈에 띄는 게 G4라면, 다른 거 놔두고 굳이 G4를 쓰는 건, 나에게 필요하고 괜히 맥을 쓴다고 폼 잡으려고 하는 것도 아니고, 정말 맥이라는 게, 누구나 하는 말이지만 맥은 정말 휴머니티예요. 진짜 휴머니티예요. 그래서 맥은 모든 아티스트들에게 무궁무진한 영감을 준다고 생각해요, 휴머니티하다 보니 자기 생각이 많이 들어가잖아요. 딱 이거다 하는 게 아니고, 내 생각이 친해지면서 욕할 때도 기계가 아니라 너 왜 이래, 하면서 친해지니까.”
그를 보면서 대중음악과 매킨토시의 속도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전체 요리를 해치우고 디저트가 나올 때쯤이면 까맣게 잊고 말걸, 이라고 겁주는 요즘 노래판과 하드웨어에 관심없다는 듯 우월감을 늘어뜨리면서. 방송음악 감독으로서, 매킨토시 사용자로서 지금 그의 삶은 여유로운 것처럼 보인다. 더불어 그가 참된 뮤지션이자 맥 사용자란 것도 의심하지 않는다. 음악을 왜 하는지 아니까. 또 가끔 대중들의 꾸준한 관심은 진정한 선율의 가치를 담보하고 있으니까. 그러나 그 개인적 삶은 모르겠다. 많은 뮤지션들이 음악으로 행복하다고 포만해하는 그 사이로 이 이질적인 성분은 뭐지? 왜 그는 금욕적인 골목 안에서 서성거리는 것처럼 보이는걸까?
“맥이 만들어내는 소프트웨어는 다른 소프트웨어와 정말 운영방식이 틀리고 개념도 다르고 사람들에게 아이디어를 줄 수 있는 툴을 제공해요. 이 툴을 이용해 메뉴를 살펴보고 메뉴를 쓰고 메뉴를 활용하다 보면, 생각지도 못했던 아이디어도 나오고...요즘 컴퓨터들이 거의 비슷해져서 별 차이를 느끼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맥의 오리지너리티를 아무나 흉내낼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엄마한테 가는 불만 아빠한테 가는 불만처럼 마찬가지인 거 같아요. 기대하는 것에 대한 애정어린 불만이죠. 이렇게 영감을 많이 주는 컴퓨터를 권하고 싶을 뿐이예요. 맛집 추천하는 거 있잖아요. 성향이 다 틀린데, 내가 뭘 이해하는지 반 정도만이라도 이해하는 사람들한테는 권하고 싶어요. 먹어보고 써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거잖아요. 안 그런 사람한테 굳이 너무 어려운 얘기죠. 양질의 것을 추천하고 싶은 것 뿐이예요. 똑같은 것이라면, 나를 선호하고 나를 원하고 나를 선택하는 것처럼...음악이나 맥이나 다 그런 거죠 뭐.”
가끔 어떤 종류의 삶은 외면까지 마음을 붙잡는다. 하지만, 흔들리지 않는 걸음으로 헤쳐가기엔, 사랑 혹은 음악은, 왜 이렇게 고루하게만 느껴질까? 왜 그것만으론 충분하지 않을까? 알콜 없는 삼페인을 마시는 것 같은 이 기분. 그의 말을 들으니 급한 허기 대신 미지근한 식욕만이 남아버린 기분이다. 향수를 말해주는 그 사람의 내면의 재질은 요즘 표준과 다르다. 시간의 물결 따라 삶의 과정도 변하기 마련이니까. 어쨌든, 대중가요는 길게 남는다. 하지만 온통 개인적 번민과 슬픔 투성이다. 물론 대한민국 유행가 때문에 머리에 총을 쏜 사람은 없다. 하긴, 질펀해지고 싶을 뿐인 관객에게 복잡한 이념이 무슨 소용 있나.
“난 음악을 만들어요. 그것 자체가 기쁨이죠. 후세 사람들도 내 음악을 영원히 들을 수 있는 거 아녜요? 음악이라는 것 자체를...”
음악을 만드는 기쁨. 그를 유지하는 건 그것이면 충분하다. 연민을 주는 조그만 사람의 얼굴로 다가와 음악의 피부 위를 산책했던 이 사람은 마지막 전장에서 죽기를 고대하는 직업군인 같다. 하지만, 난 빛과 소금을 처음 알았을 때, ‘그녀를 위해’를 연주하고, ‘내 곁에서 떠나가지 말아요’를 부르던 한경훈, 초라한 시작에 모든 에너지를 바친 그 때 노래들과 성품이 더 좋다. 얘기는 끝났다. 어느새 밤이었다. 질퍽한 어둠이 성급하게 길 위에 내려와 있었고, 빛 없는 성층권 위의 하늘은 검게 골이 져 있었다. 어두운 거리 어딘가, 그 때 누군가의 등에 업혔던 순간의 그리운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이젠 나 홀로 커다란 참나무 밑둥 같은 세상 속으로 밀려들어 가겠지.
그렇게, 다음날 아침까지의 시간들이 마찰하는 것 같은 느낌 속에서. 하지만 이 기분은 뭘까. 다시 그에게 돌아가 그와 어깨동무하고 싶은 그리움을 억제하기 위해 헛기침을 하는 건... 가끔 삶엔 섬광 같은 순간이 깃들어 있다고들 하지만, 그 순간이 바로 섬광이었다고 진술하고 싶진 않다. 난 단지 그가 만들어 불렀던 음악들과 조우하고 접촉했을 뿐이다. 그리고 그는 가장 편안한 미소로 내 지난 추억들을 어루만져 줬다. 정말, 그걸로 족하다. 정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