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7-06
영화는 비주얼의 예술이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주체는 캐릭터지만 인물이 들고 있는 찻잔, 걷고 있는 거리의 풍경이 어떤 대사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술사조에 야수파와 인상파가 있듯이 가까운 미래에 영화미술에도 사조가 나오지 않을까 싶은 멋진 예감이 든다. 그 가이드라인에 있는 김대우 감독을 만났다.
대표작
<정사>
,
<스캔들>
. 명실공히 한국 최고 멜로 작가에서
<음란서생>
으로 화려한 감독 데뷔를 마친 김대우 감독. 독특한 소재는 물론이고 수려하고 아름다운 비주얼로 찬사를 받았던
<음란서생>
은 영화에서 미술이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지 극명하게 보여줬다. 특별하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한 화려하고 깊은 색감과 감각의 뿌리는 어디에 있을까 궁금해졌다. 그의 영화세계에 영향을 준 예술가와 작품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글_ 최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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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우 감독은 관객을 “공간과 감각을 여행하는 관객의 눈”이라는 표현으로 함축하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가 영화를 바라보는 지점이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그런가 하면 “화면에서 인물을 뺀 나머지는 미술이고 배우에게 얼굴을 뺀 나머지는 의상이다.” 영화에서의 미술의 비중을 묻자 명료하게 나온 답변이다. 영화를 시작하기 전부터 미술과 건축을 좋아했고 그러다보니 그의 미술감각은 당연히 수준급 이상인지라 작업시 까다롭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고 한다. 오해의 소지가 있으므로 덧붙이자면 “내가 원하는 것은 선명하다. 선명하지 않으면 아예 주문하지 않고 선명한 것만 체크한다”는 것이다.
자, 그렇다면 그가 꼽는 아티스트는 누구? 그가 좋아하는 아티스트는 화가 에드워드 호퍼, 팝아트 작가 데이비드 호크니, 사진작가 안드레아스 걸스키이다. 세 작가의 공통점은 도시적이며 쓸쓸한 뉘앙스를 품고 있다는 데에 있다.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의 작품 속 인물들은 무표정하게 먼 곳을 응시하고 있다. 인물이 나오지 않은 풍경사진이라도 황량한 시선의 인물이 느껴진다. 인물들의 쓸쓸하고 공허한 눈빛은 김대우 감독의 작품 속에 단골로 등장한다. 『정사』의 서현(이미숙)이 그랬고 『스캔들』의 조원(배용준)과 조씨부인(전도연)이 그랬다. 허공 어딘가에 멈춰있는 눈빛은 발을 딛고 서 있는 현실 바깥의 닿을 수 없는 무엇을 응시하는 그곳에 멈춰있다.
김대우 감독은 비주얼 컨셉트의 결정타가 된 아티스트로 팝아트 작가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를 꼽는다. 호크니 역시 호퍼와 같은 맥락인 사실주의적인 화풍을 바탕에 두고 있는데 피사체와 관객의 거리감 있는 앵글을 구사한다. 더군다나 인물을 차갑게 만드는 화면 사이즈가 객관화시키는 것이 아닌 의외의 동질감을 느끼게 한다. 『음란서생』의 한 장면, 왕과 정빈이 각각의 의자에 나란히 앉아 있는데, 풀샷이긴 하나 가까이 앉은 두 인물의 심리적 거리는 멀게만 느껴진다. 밝은 듯 차갑고 리얼한 듯 하나 비현실적인 화면을 보여주는데 지금은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려는 극복의 단계라고 한다.
마지막으로 사진작가 안드레아스 걸스키(Andreas Gursky)의 큰 공장과 거대한 슈퍼마켓 등의 작품이 주는 집약적인 이미지를 좋아한다. 영화 『디어헌터』의 철강공장 씬을 봤을 때 ‘공장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구나’라는 느낌을 강렬하게 받았다고 한다. 『음란서생』의 유기전 장면이 걸스키의 영향을 받은 집약적인 장면이다. 『99 cent Ⅱ』처럼 같은 물건을 반복해서 많이 배열하는 방식에 매력을 느낀다.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감독의 허무하고 냉정한 인물들 그리고 죽음의 충동에 대한 심미적 형태를 사랑하는 김대우 감독. 안토니오니가 만들어내는 우연에서 태어난 색채와 형태에 관심을 갖는다. 감정이 끼어들 틈 없이 객관적으로 보여주는 안토니오니의 화법 역시 위의 세 작가들의 연장선상에 있다.
영화계에서 베스트 드레서로 꼽힐 만한 미적 센스로도 정평이 나있는 그가 가족들에게 사진을 잘 찍지 못한다는 핀잔을 듣는다는 의외의 고백을 한다. 김대우 감독이 보여줄 다음 작품의 색깔은 어떤 색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