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5-01
‘아름답지만, 표독스럽지만 금방 시들어 버리는 나는 꽃이다’라고 노래하는 작가 임주리. 얼마 전 설렘과 수줍음이 가득한 첫 개인전을 마치고 현재 여러 그룹전을 통해 자신의 이름을 널리 알리고 있는 그녀의 작업실을 찾았다.
취재| 서은주 기자 (ejseo@jungle.co.kr)
꽃다운 나이 스물여덟이 되면 생을 마감하겠다던 소녀는 언제 시들지 모를 마지막 꽃 한 송이를 피우며 아름다운 꽃 향기를 뿜어내고 있다. 하지만 “이젠 향기를 내뿜는 일도 지쳐버렸고, 날 항상 싱싱하게 가꾸는데도 힘이 다 빠져버렸다.”는 그녀는 아직 만개하지 않은 꽃봉오리에 지나지 않는다. 여자 나이 스물여덟. 꽃망울을 터뜨리며 세상을 향해 고개를 내밀었지만 어느 쪽을 바라봐야 할지 과연 어떤 빛깔을 뿜어낼지 알 수 없다. 새빨간 사랑과 미래에 대한 희망을 찾아 헤매는 불안정한 나이.
“나는 꽃이다. 금방 시들어 버리는 나는 꽃이다.” 작가 임주리는 작품을 통해 자신의 삶을 대변하고 있다. “저는 지금 가장 꽃다운 나이를 살고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이 순간이 지나면 금방 시들어버릴 테죠. 그래서 가장 아름다운 지금 이 때를 기억하고 싶었어요. 소소한 일상에 대한 기억.” 언제 시들지 모르는 꽃이기 때문에 마음이 불안정하고 때로는 우울하다는 그녀. 그래서 그녀는 가식을 모두 벗어 던져버리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주려 애썼다.
미술계 큰 이슈로 떠오르고 싶은 욕망, 재봉틀 앞에 앉아 바느질 하는 모습, 샴쌍둥이에 대한 관심 등 평소 그녀가 생각하고 늘 접하는 오브제들이 그녀의 삶을 잘 말해주고 있다. 때로는 우울하고 때로는 가학적이며 때로는 피식 하고 웃음이 새어 나오게 하는 그림들. 꽃은 시들어 고개를 푹 떨구고 있지만 그 안에 숨겨진 재미난 위트는 재기발랄하다. 실연당한 후 두루마리 휴지를 휙휙 풀어 눈물을 훔치고 있는 모습, 꽃등심과 함께 푸줏간에 걸려있는 그녀, 젖가슴에서 케첩을 짜내어 핫도그에 발라먹는 모습 등이 그 대표적인 예. 특히 동시대를 살아가는 여자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상황들이 대부분이어서
<쭐양의 외롭지만 육덕진 생활>
展은 젊은 여성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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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28일부터 4월 3일까지 인사동 가나아트 스페이스에서 열렸던
<쭐양의 외롭지만 육덕진 생활>
展. 대학원 졸업을 앞두고 열린 임주리 작가의 첫 개인전이었다. “첫 개인전치고는 반응이 좋아 작품도 꽤 팔렸다.”는 그녀는 전시 후에 찾아오는 피로와 허무함을 채 느끼기도 전에 또 다른 전시 준비로 바쁜 모습이다. 새롭게 론칭하는 의류업체의 론칭쇼에 초대되어 작품을 전시하고, 현재는 여러 작가와 함께 헤이리의 야외 공간에서 대규모의 전시를 진행하고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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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좋아하는 작가는 영국 미술계의 불량소녀라고 불리는 트레이시 에민. 트레이시 에민의 작품은 지극히 사적이어서 강인한 인상을 남기지만 오히려 이러한 솔직함이 그녀가 얼마나 약하고 여성스러운 존재인지를 깨닫게 한다. 임주리 작가의 말을 듣고 트레이시 에민의 작품과 임주리의 작품을 번갈아 보니 이미지가 자연스레 오버랩된다. “작품을 통해 삶을 고백하고, 그 속에서 안정을 찾고 싶다.”는 그녀는 이번 전시를 통해 작업에 대한 더욱 강한 열정과 희열을 맛보았다고 한다.
꽃은 시들기 때문에 더욱 향기롭다고 했던가. 그녀는 모른다. 그녀 자신이 얼마나 아름답고 향기로운지를. 아직 몸을 웅크린 채 봉오리가 필 날만을 기다리고 있는 임주리 작가. 초록 잎에 싸여 과연 어떤 색깔의 꽃을 피울지 알 순 없지만 이것만은 확실하다. 그녀가 가진 색깔과 향기는 그의 작품을 통해 점점 진하게 물들어갈 것이라는 사실.